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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9일 화요일

삶이 무엇인가


 🏕 삶이 무엇인가  

건강을 잃고난 후에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을 찾을 수 없다. 

지금 누가 아파트 몇 평에 살고 있는지, 배기량 얼마 짜리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지는 관심도 없다. 

늘 그런 비교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네 아니였는가... 

음성 꽃동네 입구에는 커다란 비석이 
서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새겨있죠.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꽃동네 
창설자이신 오웅진 신부의 묵상 
글이라고 합니다. 

중국에는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땅위를 걷는 기적이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어려운 재활치료 끝에 다시 걸을 수 있는 사람 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절감하리라. 

이웃 블로그에서 가슴에 와 닿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거든 한겨울 새벽 시장에 나가보세요. 

손발 얼리며 열심히 사는 그들을 보면 당신이 힘든 것은 위로를 받을 것 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면 병원에 가서 중환자 가족을 만나봐요. 

환자를 위한 그들의 애타는 염원을 들어보면 당신이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할 것입니다. 

새벽 시장에 가보지 않아도, 중환자실에 가보지 않아도,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나님의 은총 입니다."라는 
이 말 한마디만 
조용히 묵상해 
보아도,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며 살아왔다는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 내가 어제와 같음에, 그리고 온 가족이 무탈함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제 손으로 밥 떠먹고 
제 발로 걸어다니고 스스로 대소변 볼 수 있다면 더는 바라지 말아요. 

이 모두가 하나님의 
더 없는 크나 큰 은혜입니다. 
오늘도 축복과 
은혜가 넘쳐나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2026년 6월 6일 토요일

옛날 옛저에 시계가 밥먹던시절에


●옛날  옛적에
            옛날 옛날
아주 가까운 옛날
시계가 밥 먹던 시절에~

추워도 다 같이 춥고
고파도 다 같이 배고팠던 시절에~
검정 솜이불에
식구 모두가
덮고 자던 시절에~
집에서 태어나서
집에서 저 세상 가던 시절에~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뒤통수 벗겨진 색경 보고
바리깡으로 상고머리 빡빡머리 깍던 시절에~

쥐를 잡자, 
저축의 달,
불조심,
방공방첩,
가슴에 표어를 달고 살던 시절에~

신문지로 모자 접고
칫간에 똥누고
포대종이로 똥닦고 글로브 만들던 시절에~

남자들이 미장원에 가면 큰일나고,
여자들이 겨드랑이털 깍지않던 시절에~

아무데서나 엄마들이 저고리 올리고
아기들 젖 먹이던 브라자없던 시절에~

신문이 오면
TV방송 편성표, 
오늘의 운세 먼저보고,
고우영의 수호지 보려고 일간스포츠 사던 시절에~
주간경향,
썬데이서울, 보고
펜팔하던 시절에~
밤마다 천정에서 쥐새끼들이 운동회하고
쥐꼬리,
회충,
모아서 학교 가던 때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베고누워 텔레비전 보다 깜빡 잠들던 시절에~
동네에 TV 한대밖에 없던시절에~
다방마다
마담,
DJ있던 시절에
레승링,
권투,
경기에 다방마다
앉을자리도 없어
단골손님만 VlP대우
받던시절에~

외국인은 모두 미국인이라고 했고
토요명화는 미국영화, 
외국 노래는 모두 팝송이던 시절에~

급해서
뛰어가다 가도 
국기 하강식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야간 민방위 훈련 때 민방위대원이
“불 꺼요” 하던 시절에~

경인역전
마라톤대회에 
맨발의 아베베 선수가 달리고
외국 대통령이 오면 단체로 길에 나가 국기 흔들던 시절에~

수놈은 다 쫑(john,요한), 암놈은 무조건 메리(Mary,마리아)
동네 덕구(dog)들이 죄다 미국이름의 요한이요, 
성모 마리아 였던 시절에~

구두닦이,
넝마주이,
지게꾼,
신문팔이,
우산장사,
상의군인,
연탄가스,
토큰,
회수권,
장수만세, 
주택복권,
말표신발, 왕자표신발, 범표신발,
흰 고무신,
검정 고무신,
커피는 맥스웰 하우스, 
프림은 동서식품,
감기엔 판피린, 
소화제는 훼스탈,
매 맞아 멍든데는 안티프라민, 이명래고약, 송충이 잡기, 칙뿌리 캐기, 요괴인간,
우주소년 아톰,
여로, 아씨, 법창야화,
오제도 검사, 전설의고향,
대연각호텔, 대왕코너,
시민회관, 쥬시후레시, 스피아민트,
풍선 껌,은 오~오~..롯데껌, 

김일의 박치기, 당수왕 천규덕, 시발택시, 크라운택시,
포니,
삼륜차,
한강다리 전찻길엔 전차가 느리게 달리고, 아이들은 열쇠키를 만든다며 전차 철길에 대못을 올려놓고 도망가고, 우리 삼촌은 전차비 안내려고 뛰어 내리다 다리가 부러져 삼각지
뼈 접골에 다녔던 시절에~

다마네기,
다꽝,
벤또,
빠게스,
다라,
와루바시, 
모찌,
빤스~
난닝구,
일본말이 너무많아
우리랑 같이 살던 시절에~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 라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시던 시절에~

시골영감이 처음타는 기차 놀이에 차표파는 아가씨와 실갱이 하면서
이 세상에 에누리없는 장사가 어딨어 따지던 시절에~

오후반이면 오전반 끝날 때까지 공기하고,
고무줄 하며 기다리고
소풍가기 전날, 
비가 올까봐 연신 하늘을 살펴보던 시절에~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 엎어지면 이불에 묻은 밥풀 떼어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가방메고 다시 학교가려던 시절에~

이소룡의 정무문, 성룡의 취권,
왕우의 외팔이 시리즈
추석,설날 명절 특집 영화는 중국무협 영화이던 시절에~

운동장을 돌며 맹호부태,
백마부대,
군가 부르고
옥수수빵 배급받던 시절에~

씹던 껌을 벽에 붙여놨다가 다시 씹고
덴찌 후래시로 편먹고 놀던 시절에~

어린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하며
엄마에게 자기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노래하던 시절에~

딱지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달고나,
무궁화꽃이 피었
습니다.
오징어게임이 생활이던 시절에~

당구장에 갔다고 학생부에 끌려가 뒤지게 맞고
극장에 갔다가 걸리면 처벌받던 시절에~

안소영이 말을 타고 가슴 출렁이며 해변을 달리고
키스신이 나오면 단체로 휘바람 불던 시절에~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 혼자서 잠자고 있던 기분 야릇했던 시절에~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는 
아직도 몸 성히 성히 성히 잘 있느냐?

옛날 옛날 
아주 가까운 옛날
우리 모두가 이제 막 피어나는 연두색이던 시절에....

아 ~~  그립구나 
그 시절이 .....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구나~^.^   
아~옛날이여~~
                                                                       👍그랬었지~!!!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

                     (받은 글)

2026년 6월 5일 금요일

두 다리로 걷는 오늘이 최고의 선물

          아침 편지 

2026년6월6일(토요일)

👩🏻‍🤝‍👩🏽두 다리로 걷는 오늘이 
     최고의 선물

아침에 눈을 뜹니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아이고…”
작은 신음이 먼저 나오지만
그래도
내 두 다리가 나를 받아 줍니다.

이불을 밀치고
바닥을 딛는 그 순간,
나는 오늘도
기적 위에 서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몰랐습니다.
걷는다는 것이,
숟가락을 드는 일이,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이
이렇게 고마운 축복인 줄.

돈이 많으면 다 가질 줄 알았고
자식이 잘되면 다 이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수백억 통장보다
오늘 내 발로 동네 한 바퀴 도는 
일이 더 값지다는 걸
나이 들어 알았습니다.

작은 집이라도 좋습니다.
비가 새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눕고 싶을 때 눕고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 천국입니다.

내 리모컨이 있고
내 밥그릇이 있고
내 이름으로 들어오는 
작은 연금이 있다면
나는 이미 당당한 사람입니다.

혼자 걷는 길이
처음엔 쓸쓸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바람이 말을 걸고
햇살이 등을 토닥이며
“잘 버텼다”고
속삭여 준다는 것을.

친구가 없어도
약속이 없어도
오늘 하루를 내 힘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내 다리가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고
내 손이 나를 먹여 살리고
내 심장이 묵묵히 뛰어 준다면

나는 이미
부러울 것 없는 사람입니다.

행복은
멀리 날아가는 파랑새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두 다리로 서 있는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걷고 있다면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다.”

두 다리로 걷는 오늘,
그것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2025년 9월 9일 화요일

착각하지 말자


♧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노후에 
대해서 착각을 합니다.
7대 착각이라고 
해서 일곱 가지를 주로 얘기합니다.

-첫 번 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광고에 자주나오는 이야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보면요, 
절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제 나이가 1946년생
만으로 79세 입니다. 
70세 초반하고 75세 중반 하고 큰 차이가 나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러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나이가 차면 굉장히 힘들어 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노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됩니다.

만약에 60이다. 
아직도 40년이 남았어, 
그건 거짓말 입니다. 
그 40년의 삶의 질이라고 하는 건 팍 떨어지기 때문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 
그 착각에서 깨어야 됩니다.
 
-두 번째, 
인생은 60부터인 줄 안다

인생은 
60부터 내리막길 입니다.
60쯤 되면 현직에서 떠나지 않습니까? 
그 다음부터는 나머지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덤으로 사는 것 처럼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60부터가 아닙니다. 
한가지 여기서 인생이 60부터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인생은 60부터 한가 하니까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60부터입니다. 
그 외의 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죽을 때까지 일해야 되는 줄 안다.

수많은 노후에 관한 책들이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100세 시대이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일해야 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90살, 100살까지 일하고 있는 분들을 자꾸만 거론하면서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 하는데 
그런 분들 어쩌다가 한 두 분이지 일반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생각할 때는 80세 정도까지 자기의 취미생활 이라든가 
이런 걸 하면서 또는 일자리가 있으면 일을 하되 가급적이면 노후에는 편히 즐기면서 살기를 권합니다. 

그것이 저는 노후 생활의 바람직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는 
100세 시대라 40년 더 
살 줄 안다. 그건 착각입니다

세상과 만나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전부 건강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병원에 가 보면 그리고 요양원에 가보면 앓아 누워 있는 분들이 엄청 많다는 거 잊지 마십시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되고 절대로 노후에 건강하게 9988이 되기가 힘들다는 거 어느 가수가 불렀더라고요. 
“99세까지 팔팔하게 3일만 앓다 사망하자” 
99세까지 팔팔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99세까지 팔팔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셔야 됩니다.

-다섯 번 째, 
자기만은 멋지게 늙을 줄 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늙으면 다 노후에 멋쟁이라고 해봤자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나만은 그래도 멋지게 늙을 줄 안다는 거 착각이라는 거 잊지 마시고 자기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여섯 번째, 
막연히 무슨 수가 있을 줄 안다. 그건 착각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며 보람찬 노후, 멋진 노후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막연히
’잘 되겠지, 무슨 수가 나겠지, 국가가 알아서 해주겠지‘
국가가 뭘 어떻게 알아서 해줍니까? 
그 착각에서 깨시기 바랍니다

-일곱 번 째, 
그래도 나만은 예외일 줄 안다. 그거 착각입니다. 
다 똑같습니다

다 나이 들면 몸도 아프고, 
건강도 해치고 일거리도 없어지고, 주변에서 싫어하고, 꼰대가 되고 다 똑같습니다. 
예외없이 노후가 온다는 것
노후 대비 잊지말고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고 요약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쓴웃음을 지어봅니다
나도 똑같이 착각속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60대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줄 알았습니다.그렇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지금 느낌은 “나이는 그냥 먹는게 아니구나” 생각이 확실합니다.

세월의 느낌이 
60대만해도 한해 두해 지나는 것이 별 느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70대가 되니까 한해가
지날때 마다 달라짐이 
느껴 졌습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 살아보진 않았지만 살아본 분의 이야기로는 90대는 날마다 달라진
다고 들 하시더라고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통계상 보면 80세 이상 20%~30% 살아있고, 

90세 나이면 2% 만 살아 
있다고 합니다.

지금껏 산것 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하시고  감사하며

나이에 맞은 생각 
나이에 맞는 언어
나이에 맞는 행동
나이에 맞는 운동
나이에 맞는 삶을 
살아 봅시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을 준비 하여야
합니다.

*참고 사항*
거울 앞에 서서 본인의 모습을 바라 볼때면 
대충 바라 보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두눈을 크게 뜨고 거울 가까이 서서 현재 본인의 
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며
바라 보세요~~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실감 하게되고 모두가
착각과 망상 이였음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결코 나이는 속일수 
없다는 것을...~~

오늘도 복된 날  
몸과  마음이 
건강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2025년 8월 20일 수요일

Coffee 이야기

Coffee 이야기! 

나이 60~70대 후반 지난 사람치고 옛날 다방에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시의 다방에는 낭만도 있었고, 남자의 자존심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눈물 쏟아내는 이별의 장이기도 했었다.​

가끔 열리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단체 관람 장이기도 했으니, 그 당시 다방은 ‘한국적 명물’로 
어른들의 사랑방, 대학생들의 만남의 방, 직장인의 휴식 공간, 
동네 한량(閑良)들의 Hideout (아지트)였으며, 데이트와 맞선 공간, 
가짜 시계등이 거래되는 상거래 공간, 
음악감상 공간 등, 
'거리의 휴게실'이자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45년 해방무렵 서울에 60개 정도의 다방이 있었고, 1950년대 말엔 1,200개로 늘었다고 하는데, 
1990년대 후반 들어 커피 전문점 ‘cafe(카페)’로 대변되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부흥하기 이전인, 30년간 다방은 한국 문화를 이끌며 전성기를 謳歌(구가)했다.​

본격적 음악 감상실이 생겨나기전까지 항구도시 부산의 光復洞과 南浦洞에도,
大邱 半月洞에서 東城路를 거쳐 大邱驛으로 이어지는 큰 길, 골목길에도,
우후죽순처럼 다방이 
마구 생겨나고 있었다.​

작은 booth(부스)에 DJ가 들어 앉아 金秋子 노래도, 宋昌植의 고래사냥, 
pop song도 틀어 주면서, 때로는 “양복점 이사장님 카운터에 전화 왔습니다.”라는 소식도 들려주면서
연락병 역할도 했었고, 음악감상실의 역할까지 하면서 “邑內茶房” "鄕村茶房" "심지茶房'' "수茶房" "王妃와 王茶房" "
黃金茶房" “中央茶房”에서, 서서히 이름이 바뀌어 “松竹茶房” “준(JUN)茶房” “New York 茶房”까지, 
한 시대를 風靡(풍미)했다.​

젊은 청춘을위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다방은 카운터에 중년 여성인 ‘마담’이 앉아있고, ‘레지’( lady)라고 불리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커피를 날라주는 동안에, 구슬픈 뽕짝가락이 손님들의 가슴을 저윽히 적셔주는 그런 형태였다.​

그 당시 사람치고 시골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 中央통에있는 다방의 마담이나 레지와의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친숙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려고 酒幕(주막)에서 세련된 다방으로 가는 사람도 많았다.​

다방에 들어서면 낮익은 마담과 레지가 경쟁하듯 환하게 웃으며 맞아줬고,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어김없이 옆자리에 살포시 앉으면서 속보이는 친절을 떨었다.

손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정오빠보다 더 정겹게 팔짱을 끼며 애교까지 부리는 그 분위기를 우쭐하며 즐겼으니..​

"커피 한잔 가져와!"하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저도 한잔하면 안 될까요?"가 곧바로 이어졌고, 
그 상황에서 "NO!"는 존재하지 않았다.​

70년대 후반 들어 Yakult(야쿠르트)로 바뀌기도 했지만, 요즘이야 맹숭커피한 잔에도 돼지국밥 한그릇 값을 지불하지만, 그 당시 커피 한 잔은 실없는 농담에 가벼운
신체접촉 권한까지 주어졌으니 참으로 옹골진 값어치였던 셈이다.​

분위기가 넘어왔다 싶으면 마담이나 레지의 "우리 쌍화차 한 잔 더하면 안되요?"라는 
비싼 차 주문이 발사되고, 여기에도 "NO!"는 거의 없었다.​

그 시절 그렇게 분위기가 익어가는것이 뭇 사내들의 멋이었고 낭만이기도 했지만, 마담이나 레지에게는 매출을 올려 주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인사고과였으니, 그런 손님과 레지의 의기투합에 그 당시 인기 레지는 거의 연예인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60~70년대의 다방에서는 커피가 한 종류만 있었기에 손님들은 그냥 ‘커피’를 주문하면 되었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초기에는 우리와 비슷해서 모든 종류의 커피를 그냥 조(Joe)라고 불렀으며, 한 잔의 커피란 뜻의 ‘ a cup of Joe'라는 숙어도 있었다.​

다방이 아닌 요즘의 커피 전문점 ‘cafe'에서 coffee 메뉴판을 보면 커피 종류가 다양하고, 그 이름이 하나같이 복잡하고 어렵다. Espresso(에스프레소)는 ‘진한 커피’로,
Americano(아메리카노)는 ‘연한 커피’로, Caffe Latte(카페라떼)는 ‘우유 커피’로,Cappuccino(카푸치노)는‘거품 커피’ 등으로 불러지면 좋을 텐데....!​

다방에서 Café로, 세월 따라 이름도 변해감에 따라, 한 때 옛날 다방을 주름잡던 청춘에게 나이만큼 서글픔이 몰려온다.

한 잔의 커피에는 반드시 꽃향기가 있으므로 꽃향기가 풍성한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의 다양해진 커피 맛과 향이 옛날 다방의 낭만적인 커피맛보다 더 낫다고 누가 말할수 있겠는가? morning coffee (모닝커피)라며 족보에도 없는 계란 노른자까지 곁들였으니, 커피를 한잔하고 마담과 레지의 환송을 받으며, 다방문 나설 때의 우쭐해지던 커피 맛 외의 또 다른 그 맛을 요즘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양장을 걸치고 카운터에서 무게 잡던 김 마담과 Miㅡ미니스커트 입고 아양 떨던 미스 박이라는 레지는 
지금 쯤 뭘 하고 있을까? 
그 들도 그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영화도 흘러간 영화가 정겹고 가슴에 와닿듯이, 커피도 옛날 다방의 커피 맛이 더 맛있고 운치있고 정겨웠다고 한다면 
그냥 넌센스라는 말이나
들을까?

하지만, 문득문득 그시절이그리워 지는것은 나이탓일까.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미국은 일본인들을 어느정도로 빨가벗겨 보냈는가!


📚 미국은 일본인들을 어느정도로 빨가벗겨 보냈는가!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이 정도는 알아야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귀속재산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그 진실을 들여다보자.

귀속재산 (Vested Property)이란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제가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그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금전적, 비금전적 손익계산서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귀속재산》 이다.
(Vested Property) 이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2015년 10월,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는
<<귀속재산연구 : 식민지 유산과 한국경제의 진로>>
이숲, 682쪽의 저서를 냈다. 아래에서 그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 일본인들이 놓고 간 국내 기업들

두산그룹, OB맥주, 하이트맥주, 한화그룹, 해태제과, SK그룹,
동양시멘트, 삼호방직,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화점, LG화학,
쌍용그룹, 동국제강, 삼성화재, 제일제당, 대성그룹, 동양제과, 대한조선공사, 동양방직, 한국생사, 한국주택공사, 벽산그룹, 한국전력, 일신방직, 한진중공업, 대한통운, 한진그룹, 대한해운,
동양화재해상보험,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중외제약 등.

국민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사람들은 재산을 만든
일본인과 이를 빼앗아 우리에게 넘겨준 미국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은 그들이 36년 동안 선택의 여지가
없이 조선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을 고용하여 조선 땅에 건설해
놓은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강제로 추방당했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재산
모두를 그대로 두고 <몸> 만 빠져나갔다.

북한에는 29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남한에는 23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이
한순간 횡재로 조선에 굴러 들어왔다.

남한에 쌓인 23억 달러어치의 일본재산은
미군정이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는 당시 이 돈은 남한경제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귀속자산이 없었다면 당시 한국경제에는
그 실체가 없었다.

이로부터 만 20년 후인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공여 받은 액수는 3억 달러, 위의 23억 달러는
이 3억 달러의 약 8배였다.

이 엄청난 자산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한국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씨 조선 518년을 대대로 통치해온 27명의 조선시대 왕들이
이룩해 놓은 자산이 무엇이었는가를~
도로를 닦아놓았는가? 철로를 건설해 놓았는가?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는가?
한글 단어장 하나 마련해 놓았는가?

그 27명의 조선왕들은 길을 넓게 닦으면
오랑캐가 침입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던 길도 없앴다.

선조는 임진왜란 내내 중국으로 망명할 생각만 했다.
이 27명의 왕들은 조선의 백성, 노예들의 골만 빼먹었다.

조선왕들이 518년 동안 쌓아올린 재산은 초가집,
도로 없는 서울, 똥오줌으로 수놓은 소로, 민둥산, 미신, 거짓과
음모를 일삼는 미개인들이 공존하는 가두리 땅에 불과했다.

급기야 고종과 민비 일족은 부정부패로 나라를 거덜냈고,
이권이 되는 것은 외국에 마주잡이로 팔았으며,
결국 왕과 왕족, 고관대작, 지방유지들은 일제로부터 한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 거금의 경제적 혜택과 높은 작위를 받고
묵묵부답으로 묵종하며, <총 한 방 못 쏘고> 나라를 넘겼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36년 동안에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쌓아올렸다.

이 엄청난 재산 중 남한지역의 23억달러를 미국이 빼앗아
보관했다가 대한민국 건국자 이승만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미국은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땅도 빼앗아 주었고,
조선인들로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빼앗아 주었다.

이 두 가지 구체적 선물에 대해 우리는 빼앗아 준 미국과
돈을 만들어 준 일본 모두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이 묻혀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었고, 좌파정권은 북중러의 지령에 따라 걸핏하면 반일 반미
감정에 불을 지피고 있고, 그 배은망덕의 소치는 순전히 빨갱이
들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이런 자료들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길 두려워하며 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미군정은 처음 사유재산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매우 다행하게도 곧 이어 사유재산까지도 압류했다.
(군정법령 제8호, 1947.10.6.제정).

공적-사적 재산 목록이 170,605건,
이승만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은 고생을 했다.
엄청난 관리 인력과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에 인수되지 않고 농림부 등에 등록되어 있던
또 다른 일본인 재산이 121,304건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한 총 재산은 291,909건이었다.

↪️ 미국은 어느 정도로 일본인을 발가벗겨 보냈는가?

미군은 퇴각하는 일본인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폐까지도 압수했다.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극도로 제한했다.

민간인은 1,000엔, 군장교는 500엔, 사병은 250엔 이상
소지할 수 없었다. 미군은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본인의
주머니를 검열했다.

1945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5년 11월 3일에
작성한 (G-2 Periodic Report) 54호에 의하면
일부의 일본인들이 150엔을 주고 밀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밀항선을 타고 탈출한 일본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미국이 일본인들을
무산계급으로 만들어 겨우 몸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조선반도에서 이렇게 빈손으로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전후 일본의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그 많은 주식회사 급 기업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그 회사 직원이거나 관련이 있던 친일 조선인들에게
헐값으로 불하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오늘의 우리 대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기업들 이었다.

조선인들이 세운 업체는 작은 ‘상회’라는 이름을 단
개인 가게들이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방 이후 맨땅에
헤딩해서 창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할 것이다.

• 쇼와 기린맥주 = 당시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되었다.

• 삿포로 맥주 =  명성황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되었다(1998년에 하이트맥주로 상호 변경)

•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 = 당시 직원이었다가
  관리인이 된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 = 해방 후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되어,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 조선제련 =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 =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 =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 의 모태가 되었다.

• 아사노 시멘트 경성공장’ = 김인득에게 불하되어
                                                ‘벽산그룹’이 되었다.

• 경성전기-남선전기-조선전업 = 해방 후 합병되어
                                                        ‘한국전력’이 되었다.

• 조선우선 = 직원이던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되었다.

• 선경직물 = 공장의 생산관리 책임자이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매매 하던 선만주단(鮮滿紬緞)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이란 이름은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직물의 ’京‘를 따서
지은 것이다.

• 경기직물과 조선방직 =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하던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 동양방직 = 관리인이던 서정익에게 불하되었다.

• 아사히견직 = 부산공장장이었던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되었다.

• 가네보방직 광주공장 = 김형남,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일신방직’이 되었다.

• 동립산업 = 관리인이었던 함창희에게 불하되었고,
                       제일제당 (현CJ)이 이를 흡수했다.

• 쥬가이제약 = 서울사무소 관리인에게 불하되어
                           현 ‘중외제약’이 되었다.

• 조선주택영단 = ‘한국주택공사’가 되었다.

•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 = 해방후 ‘한국미곡창고 주식회사’가
                                               되고, 후에 ‘대한통운’이 되었다.

• 조선중공업주식회사 =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가 되었고,
              후에 한진그룹에 편입되어 ‘한진중공업’이 되었다.

• 한국저축은행 = 정수장학회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삼호방직의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 조선생명 =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되었다.

• 조선화재 해상보험 = ‘동양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가,
                                        지금 ‘메리츠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

•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 =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 백화점’ 이 되었다.

• 조지아 백화점 = ‘미도파 백화점’이 되었다.

• 나가오카제과‘(永岡製菓) =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식품 = 해방 후에 ‘동립식품’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1985년에 ‘제일제당’에 병합되었다.

• 토요쿠니제과 = 해방 후에 ‘풍국제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
           되어오다가 1956년에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되었다.

이외에도 내로라하는 한국기업들은 거의가 다 일본인이
설립 운영하던 회사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조선인이 설립 운영하던 큰 기업은 김성수, 김연수 집안에서
설립한 ‘경성방직’, ‘삼양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商會’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화신상회, 개성상회, 경성벽지 등이다.

일본이 팽개치고 나간 회사들을 조선인들이 이승만 정부로부터
‘불하’란 명목으로 헐값에 인수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1961년 5.16군사혁명 후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축재자’로
몰렸다.

일본인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겠는가?
반면 불하받은 사람들은 어떤 ‘횡재’를 했는가?
그래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단계에서 남조선에
두고 간 23억 달러 어치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요구했다.

해방 직후 북한을 선점한 소련은 군정을 통해 북한에 건설된
발전소, 공장 등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그것들을 건설하거나
운영해온 일본인 기술자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련군정은 만주에 주재한 ‘일본 피난민단장’과 협의하여
북조선에 있던 모든 기계-설비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일본 기술자들을 북조선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일부는 억류했다. 친일파가 남아 북의 재건을 도운 것이다.

그들이 건설하고 애지중지 운영해오던 기계-설비들에 대한
엔지니어로서의 애착심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46년 1월 현재 총 2,158명의 기술자들을
일본으로의 즉시 귀국을 막고 북조선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스탈린은 당초 북조선에 있는 설비들을 소련으로 옮기라
명령했고, 소련군정은 중요한 기계들을 분해하여 포장한 후
소련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 직전 다시
스탈린으로부터 반출을 중단하라는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
세간에는 당시 소련이 북조선 기계들을 모두 뜯어 소련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럼 스탈린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 당시 이미 6.25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한다.

6.25 전쟁을 치르려면 북조선에서 병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자체 생산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기계-설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산의 나무도 귀속재산이었다. 또한 조선의 산은 민둥산이었다.
여기에 일본은 과학의 힘으로 경제성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산마다 쭉쭉 뻗어 올라간 경제목들이
들어차 있다. 해방 당시 전국의 산에는 일본이 심은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광릉(수목원)에 보존된 나무들이 바로 일본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전후방에 군부대들이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서면서 ‘후생사업’이라는 것이 활기를 띄었다.

당시는 군대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역대 사단장들이
너도나도 덤벼들어 군 후생을 빙자해 벌목을 했다.
거목들을 베어내 시장에 팔아 자금을 마련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 대한민국 산이 다시 민둥산으로 변한 것이다.

이에 박정희 정부 농림장관인 장경순씨가 대통령의 명을 받고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지만 그 나무들은 일정시대의 산림처럼
경제림이 아니었다.

포항제철 사례에서 보듯이 공업 분야에서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대대적으로 받았지만, 나무를 심는 식수계획에서는
일본기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장경순 씨의 이야기로는 수종선택은 토종기술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나마 푸른 산을 푸르게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땔감의 개발이 필요했다.
1960년대, 19공탄이 산림훼손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강원과 문경 등지의 탄광에서 서울과 대도시로 직행하는
열차에는 석탄이 실렸고, 그 후부터 산은 푸르게 우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영조시대인 1750년대에 석탄이 나무를
대체했다. 영국이 한국을 210년 정도 앞서 간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격차를 만들어 낸 주역은 1961년에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아니라 조선의 왕들이었다.

일본이 가꾼 산림, 비록 금전적으로 환산은 될 수 없지만
어마어마한 자산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도 귀속재산이라 할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일본과 미국의 덕분이다.
제대로 알고나, 반미 시위를 하자.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제공/

 

2024년 9월 10일 화요일

평범한 진실


      🛑  평범한 진실
건강(健康) 하게 산다는 것은 위대(偉大)한 일이고, 생존(生存) 한다는 것은 지뢰밭처럼 예측(豫測)할 수도 없으며, 위험성(危險性)도 매우 큽니다. 

정말 인생 80까지 살면 90점이고, 85면 100점 이라고 평소에 공언(公言)해 온 것이, 타당(妥當)함을 새삼 느낍니다. 

오늘도 “평범(平凡)한 진실(眞實)”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1.기적(奇蹟) 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2.행운(幸運)도 특별한게 아닙니다.
아픈데 없이 잘 살고 있다면 그것이 행운(幸運)입니다. 

3.행복(幸福)도 특별한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지내면 그것이 행복(幸福)입니다.

🔺️하루하루가 하늘이 특별히 주신 Bonus 입니다.

1. 오늘은 선물입니다.
하늘이 나에게 특별히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2.오늘은 내가 부활한 날입니다.
어제 밤에서 다시 깨어 났습니다. 자다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생각 하면 깨어난 것이 부활 입니다.

3.오늘은 Bonus로 받은 날입니다 70부터는 하루하루가 특별히 받은날, Bonus는 안 주면 그 뿐입니다.

4.오늘을 인생(人生)의 첫날처럼, 또한 마지막날 처럼 살겠습니다.

"天國은 감사하는 者만 가는 곳이다." 라고 Martin Luther(마틴 루터) 는 말했습니다. 

🎈
그러므로 스트레스 받을 이유도 없고 누구를 원망 하거나 미워할 이유도 없으니, 오늘도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로 합니다. 

하루 종일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