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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가끔은 어리석어 보자

요즘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 찾기가 힘들다.
모두들 나름 영리하고 똑똑하고 계산이 빠르며 이문에 밝다.

*옛말에 기지(基智)는 가급(可及)하나 기우(基愚)는 불가급(不可及) 하다 라는 말이 있다.

똑똑한 사람은 따라할 수 있으나, 어리석은 자는 흉내낼 수 없다.
사람은 영리해 지기는 쉬워도 어리석어 지기는 힘들다.
그만큼 어리석음을 따라 하기가 더 힘들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악한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사람에게 헛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그걸 채워 주려고 한다.
사람의 관계가 그런 것이다.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주고 어리석음을 감싸주며 미숙함을 배려 해주는것이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는것이다.
내가 똑똑하여 남에게 배울게 없다면 그 사람은 고독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다.
남이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은 일부러라도 모르는척 어리석은척 못난척 하며 사는것이 되레 도움이 될때가 있다.
노자는 "알면서 모르는것이 최상이요,
모르면서 안다함이 병이다" 라 했다.

남을 속이는것이 아니라면 가끔은 어리석은척 하며 살아보자.
내가 모자란다고 하니 남과 분쟁도 없을 것이요, 되레 남이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할 것이다.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생명체의 신비

신기하고 재미나는 이야기
"쌀(米)과 보리(麥)의 궁합,,

*쌀은 여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보리는 남성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
*벼에는 ~*  수염이 없으나
*보리에는~*  수염이 있다.

그리고,
*쌀밥은 부드럽고 감미로워서 먹기가 좋으나,
*보리밥은 거칠고 쌀밥처럼 달콤하지 않다.

조물주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해서"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면서도 둘이 만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섭리해 놓았다.

*여성과 밭*은 화성(火性)이며
*남성과 논*은 수성(水性)인데
"남성인 보리"는
     "화성(여성)인 밭"에서 생육하고
"여성인 벼(쌀)는
     "수성(남성)인 논"에서 생육한다.

"남성은 여성인 밭"에서 생존하며
"여성은 남성의 논"에서 생존할수 있음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는, 곧 남녀간에 서로 다른 이성이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여성인 *벼(쌀)는 어릴 때부터 생장한 묘판에 그대로 두면 벼 구실을 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남성의 집인 *논으로 옮겨 심어야 하고
남성인 *보리는 싹이 난 바로 그 자리에서
    옮기지 않고 계속 살아가게 된다.

이들 생태는
"여성은 시집"을 가서 살아야 정상적인
여자 구실을 할수 있고,
"남성은 생장한 자기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상임을 일깨워준다.

여성들의 가장 큰 비애(悲哀)가  "시집가는 일" 이라고도 할 수가 있으나
이것은 조물주의 깊은 뜻에 의한 섭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는 간혹
아들이 없거나,  재물이 많으면 딸자식을 내집에 두고 사위를 맞아들여 살게하는  부모들을 볼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딸은 여자의 구실을 할수가 없으며 사위 또한 남자의 구실을 제대로 할수 없게된다.

"벼와 보리"는 어릴 때는 꼭 같이 고개를 숙이지 않으나, 익을수록
벼(여자)는 고개를 숙이지만
보리(남자)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않는다.

그래서,
*보리의 성*을 지닌 남성은 젊어서나 늙어서나 아내에게 고개를 쉬 숙이지 않는 천성이 있지만,

여성은 나이가 들고 교양이 있어 속이 찬 여인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미덕을
    갖게되며 이런 여성을 품성을 갖춘
    여인(현모양처)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여성인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나이든 여성들은 남성들의 천성(天性)을 체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므로
머리를 숙이듯이 이해하고 참아준다.

여인의 그런 품성 덕분에 "가정에 평화"가 있고, "변함없는 부부의 애정"을 지킬수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꼿꼿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서 있는 벼 이삭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쭉정이듯이 숙일 줄 모르는 여인 또한
속이 차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화(家和)의 바탕은 아내에게 달려있다 남편을 굴복시키려는 생각이나 맞서려는
    생각보다는,

  "익은 벼"가 머리를 숙이듯이 져주면서  
   “미소”와“애교” 라는 부드러운 무기를
    사용한다면 아내에게 굴복하지 않을
   남편은 아마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조물주의 참 이치를 아시겠지요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사랑의 이름으로 머문다면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고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생의 욕망이 있다면
마음 다하여 사랑할 일이다

인연도 세월도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생의 들판에서
무엇으로 위안삼아 먼 길을 가랴

누구를 위하여 눈물을 삼키고
아파도 쓰러져도 가야 하는
생의 길은 얼마나 긴 방황인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부서지고
썰물처럼 사라져 가는 세월을 두고
덧없음에 마음 둘 일이 아니다

진정 가슴을 열어
세월에 맞서 뜨겁게 태우고 태워
사랑할 일이다

애절한 그리움에 마음 다 하고
눈물 겹도록 손길을 마주 한다면

가는 길이 멀어도
그리 거칠어도
미련없을 세월이요
생이리라...

한없이 태워야 할 생의 욕망이라면
뜨거운 사랑을 하여야 할 일이다

스치는 바람도
사랑으로 머물고
스치는 계절도
사랑의 이름으로 머문다면
얼마나 멋진 아름다움인가...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랑을 가꾸고
사랑을 위하여 나를 잊어야 한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세월도 걸어야 하기에
오는 시련과 아픔도
사랑 없이는
허무함이요 덧없음이다

生은 어차피
쉴 곳 찾는 방황인 것을...

덧없는 욕망과 방황을 끝내고
사랑을 위하여 오늘을 걸을 일이다

눈물 마르도록 사랑을 하고
사랑을 위하여 갈 일이다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혼자 먹는 밥

혼자 먹는 밥-오인태

찬밥 한 덩어리라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 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히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서로
힘 돋워 함께 할 삶도 없이
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
혼자 밥 먹는 세상

밥맛, 없다
살맛, 안 난다

- 시집 <혼자 먹는 밥>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삶을 같이하는,
즉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의 성원을 '식구'라 부르는 것이리라.
요즘은 식구끼리도 밥상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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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 송수권(1940∼2016)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이 시는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는 말로 시작된다. 혼자 먹는 밥은 정말 쓸쓸한가. ‘혼밥’이 흔해진 요즘은 헷갈린다. 과연 이것은 쓸쓸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당연한 것인가. 만약 쓸쓸하다고 말한다면 치열하지 못한 사람이 될 것만 같다. 뛰어가며 밥을 먹어야 하는 누군가에게는 쓸쓸함이 사치일 수도 있다. 쓸쓸하면 뭔가 지는 것 같아서, 다시는 씩씩해지지 못할 것 같아서 혼자 꾹 눌러보려고 할 때 이 시는 일종의 대답이 되어 준다. 송수권 시인은 혼자 먹는 밥은 퍽 쓸쓸하고, 인생은 더 쓸쓸한 거라고 말한다.

저 시가 태어난 날을 생각해 보자. 시는 2006년에 발표되었는데 그때라면 시인이 퍽 나이 든 노인일 때다. 혼자 산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해 보인다. 끼니가 되면 밥을 챙겨 먹었고 자연스럽게 설거지까지 해 놓았다. 시인이 막 저녁밥을 치우고 돌아설 찰나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방금 엎어놓은 밥그릇. 시인은 거기서 무덤을 보았다. 엎어놓으면 무덤, 다시 집어 사용하면 밥그릇. 겨우 이 한 끗 차이가 우리네 삶과 죽음을 가르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생의 밥그릇을 대할 수 있을까. 밥그릇을 보고 삶과 죽음을 생각하니 시선은 저절로 먼 곳으로 향한다. 이제 혼자 먹는 밥의 쓸쓸함은 무럭무럭 자라 더 큰 쓸쓸함이 되었다. 시인의 복잡한 심사를 알아주는 것은 저 그믐달뿐이다.

쓸쓸함은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특별히 나약한 개체의 표시가 아니다. 이 시에 따르면 인생은 하나의 밥그릇 같은 것, 원래부터 그 안에는 쓸쓸함이 들어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카푸치노

   
                   ☕📖☕

카푸치노는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는 커피이다
  

카푸치노는 카푸친 수도회에서 유래한 말이다.
카푸친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작은형제회의 독립된 분파중 하나이다.

이들은 청빈의 상징으로 두건이 달린 원피스 모양의 옷을 입는다.
진한 갈색의 커피위에 우유거품을 얹은 모습이 카푸친 수도사들의 두건 모습과 비슷해 카푸치노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카푸친 수도회의 본원은 로마 바르베리니역 근처에 있다.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가면 놀라운 모습이 펼쳐진다.

1599년부터 1920년대까지 카푸친출신 수도사들의 유골 4000여구를 동원해 정교하게 장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십자가도 전등도 테이블도 눈에 보이는 모든 재료가 해골이다.

이곳의 해골들은 말한다.‥

"우리도 당신과 같았다.머지 않아 당신도 우리와 같아질 것이다."

수도사들은 서로 마주치면 "메멘토 모리"하고 인사를 나눈다.
당신의 죽음을 묵상하라는 뜻이다.

우리 한국사회가 오만과 탐욕의 사회로 변한것은 죽음의 철학을 망각했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다.

천주교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로 기념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묵상하는 주간이다.

11월에는 카푸치노 커피를 앞에 두고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는 계절이다.

1.카푸치노 만트라.‥'메멘토 모리'를 세번 염송한다.

2.카푸치노 커피가 죽음의 왕이 내린 사약이라고 생각한다.
사약은 내 마음속의 사악한 번뇌를 정화하는 약이다.

3.카푸치노 기운이 온 몸에 퍼지며 무지와 자만 질투과 분노 욕망등 다섯가지 번뇌가 정화된다.

4.내 가슴속에 사랑의 꽃이 피고 지혜의 달이 떠오른다.

5.카푸치노 기도문이다.
"나의 본성은 자비심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과 자비를 전파하는 빛과 사랑의 존재이다.
내 안의 탐욕과 무지의 존재가 죽고 지혜와 자비의 꽃을 피우는 것이 영적인 부활이다."

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孝不孝橋(효불효교)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어린 나이에 시집 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 밭 몇마지기가 전 재산이다.

정신없이 시집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이다.

아들 둘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다.

혼자서 아들 셋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셋이 쑥쑥 자랐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

세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 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이다. 베개를 부둥켜 안아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농익은 30대 후반 유씨댁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삼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세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뼈를 사다 고아줬다.

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셋이 잠든 후 집을 빠져 나와 범골로 향했다.

유씨댁은 깜짝 놀랐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세 아들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경상북도 사적 제 457호지정)이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다

요즈음  자식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다리를 놓아줄려는지?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황혼의 사춘기


아직은 바람이고 싶다.
조용한 정원에 핀 꽃을 보면
그냥 스치지 아니하고 꽃잎을 살짝 흔드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

스테이크 피자가 맛있더라도
조용한 음악이 없으면 허전하고
언제 보아도 머리를 청결하게 감은
아가씨가 써빙해야 마음이 허뭇한
노년의 신사이고 싶다.

선생님이라고도 부르지 마라
질풍 노도 같은 바람은 아닐지라도
여인의 치맛자락을 살짝흔드는 산들바람으로 저무는 노년을 멋지게 살고 싶어하는 오빠라고 불러다오

시대의 첨단은 이니지만
두손으로 핸드폰 자판을 누르며 문자 날리고 길가에 이름없는 꽃들을 보면
디카로 담아 메일을 보낼줄 아는 센스있는 노년이고 싶다.

아직은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를 보면
살내음이 전해와서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나이
세월은 어느듯 환갑이 이미 지났지만

머물기 보단 바람 부는 대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나이
이제는 선생님 이라고 부르지 말고
젊은 오빠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

나에겐 병이 있었노라

강물은 깊을수록
고요하고
그리움은 짙을수록 말을 잃는 것

다만 눈으로 말하고
돌아서면 홀로 입술 부르트는
연모의 질긴 뿌리
쑥물처럼 쓰디쓴
사랑의 지병을

아는가
그대 머언 사람아

(이수익·시인, 1942-)

효자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효자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남편은 권위적이어서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입만 열면 도덕책 같은 소리를 했다. 넌더리를 내던 아내는 딸의 대학 진학을 핑계 삼아 서울로 와 별거했다. 남편은 다달이 봉급을 아내 통장으로 입금했다. 은퇴한 뒤에도 연금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을 찾아가지 않았다. 박완서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부부의 결혼은 껍데기만 남았다. 많은 아내가 벼른다. ‘남편 늙어 아파도 눈 하나 깜짝하나 봐라.’ 자식은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다. 낯 붉혔다가도 아이들 봐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다 자식 크고 남편 은퇴하면 일이 꼬인다.
 
남편은 할 줄 아는 게 없어 집에만 붙어 있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으니 편히 수발 받고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손가락 까딱 안 하는 남편에게 세끼 챙겨주자니 열불이 난다. 갖은 살림 참견을 해대는 '남편 살이'에 시달린다. 애들 키우고 이제야 하고 싶은 일하려는데 남편이 발목을 붙잡는다. 10개구 조사에서 한국 50대 여성의 행복도가 꼴찌였다. ‘불행하다’는 답이 37%였다. 일본에 ‘나리타의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가 막내 결혼식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 보낸 뒤 갈라선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인천의 이별’이 닥쳤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에 결혼 20년 넘은 부부가 26.4%를 차지했다. 그동안 가장 높던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비율 (24.7%)을 처음 넘어섰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고, 이혼을 보는 사회 시선이 너그러워졌고, 여자 몫 재산 분할이 나아지면서다.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가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아내는 남편의 모기 물린 정강이를 어루만지며 화해한다. 박완서는 그것이 측은한 마음도 동정도 아니라고 했다. “세월을 함께 하며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자, 늙음과 삶의 허망함에 대한 연민”이라고 했다.

우리 중, 노년 이혼이 늘어나지만 대다수는 결혼 서약을 지키며 산다. 유대 금언집 탈무드에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이 키를 낮추라'고 했다. 결혼은 둘이 다리 하나씩 묶고 뛰는 이인삼각이다. 일흔 세 살 남편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치매에 걸렸다. 부모 자식도 기억 못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은 알아본다. 불편한 대로 걷고 밥 먹고 책 본다. 일흔 두 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간병 일지를 쓰며 지성으로 수발한 덕분이다. 남편은 아내가 장 보러 간 사이 마루 걸레질하고 세탁기 돌린다.
 
아내 고생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다. 부부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닌다. 부부가 추억 어린 계곡에 갔다. 처녀 총각 때 남편이 나오라고 했던 곳이지만 아내는 바람을 맞혔다. 남편이 “여기 온 생각이 난다.” 더니 노래를 불렀다. “내 사랑 양춘선은 마음씨 고운 여자 / 그리고 언제나 나만을 사랑해···.” 남편이 결혼식 때 불러줬던 노래다. 의사는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도 “병이 나아진 건 아니다” 고 했다. 아내는 말했다. “남편이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본 서귀포 노부부 이야기다.
 
“부부 사랑은 주름살 속에 산다”는 말이 있다. 좋든 싫든 기대고 부대끼며 서로 닮아 간다. 이혼을 바라보는 시인 김종길은 늙은 부부를 한 쌍 낡은 그릇에 비유했다. “오십 년 넘도록 하루같이 붙어 다니느라 때 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들 명이 짧아 해로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0년만 해도 예순다섯 넘는 고령자 성비는 여자 1000명당 남자가 62밖에 안 됐다. 통계청이 지난해 ‘고령자 통계’에서 노인 성비가 70.7까지 올라갔다고 밝혔다. 부부 함께 사는 노인비율도 2000년 52%에서 2010년 57.7%로 높아졌다. 남자 수명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2030년이면 노인성비가 81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늙도록 오래 사는 부부가 그만큼 많아지는 셈이다. 속담에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는 속담도 있다. 늙은 남편 너무 타박할 일 아니다.

가슴으로 하는 사랑

가슴으로 하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사랑하는 일 인줄 알았습니다.

아무 것 가진 것 없어도
마음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은 바다처럼 넓고도 넓어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르고
주고 또 주어도 모자라고
받고 또 받아도 모자랍디다.

사랑은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가슴에 소복소복 모아놓고
간직만 하고 있으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쌓아놓고 보니 모아놓고 보니
병이 듭디다 상처가 납디다.

달아 날까봐
없어 질까봐 꼭꼭 쌓아 놓았더니
시들고 힘이 없어 죽어 갑디다.

때로는 문을 열어 바람도 주고
때로는 흘려보내 물기도 주고
때로는 자유롭게
놀려도 주고 그래야 한답니다.

가슴을 비우듯 보내주고
영혼을 앓듯 놓아주고
죽을 만큼 아파도 해봐야 한답디다.

모아둔 만큼 퍼내야 하고
쌓아둔 만큼 내주어야 하고
아플만큼 아파야 한단걸

수 없이 이별연습을 하고 난 후에야
알수 있겠습디다.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디다.

그리움 흐려지면

그리움 흐려지면
                         / 빗새

파란 하늘 푸른 색이 탈색되는 것처럼
물기 빠진 낙엽도 단풍물이 바래집니다
겨울로 향하는 잠겨 있던 그리움도
그대 멀어지듯 흐려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은 늘 푸른 물 속에 잠겨 있는데
그대는 강건너에 희미하게 서 있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강이었을 땐
그대 모습 선명했는데
계절이 지워지는 옅음을 닮아
그대 그리움도 흐려지는가 봅니다

그래도 나는 그대가 보일 때까지
이 강가를 지키겠습니다
혹여 날이 맑아 그대가 보일지도,
혹여 누군가 당신 향해 건너갈
다리를 놓아줄 지도 모를
기적을 기다려 봅니다

하지만, 하루씩 지날 때마다
옅어져 가는 이 그리움은
하늘과 강물과 그대가
물기에 얼룩진 수채화처럼 헝클어져
구분할 수 없는 아련함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이젠 이 손 놓아드려야 하는 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