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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대중주의에 대한 반발 거세진다


칼럼
대중주의에 대한 반발 거세진다

대중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인종주의가 세계의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큰 희망이 되어주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전에서 마크롱은 개혁과 다자주의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프랑스를 하나로 결속시키며 유럽연합(EU)과 기타 국제연합체 및 국제기구들과의 굳건한 결합을 유지했다.

그는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에 열린 주요 모임에 세계 각국의 지도자 65명을 초청했다. (글로벌 거버넌스란 국제적 차원의 문제에 개별 국가가 충분히 대응하지 않을 때,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해결책을 찾는 ‘세계적 규모의 협동관리 또는 공동통치’를 뜻한다.)

지금 마크롱은 “노란 조끼” 가두시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부 개혁조치를 뒤집어야 했고, 엄청난 예산적자를 초래할 새로운 정부 보조금 지급안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브렉시트 불확실성으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고, 이탈리아는 예산우려에 시달리고 있으며, 헝가리와 폴란드는 비자유 민주주의를 수용했다. 이들을 하나로 합치면 유럽과 서구의 우울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유럽과 서구의 현실이 정말 그렇게 암울하기만 할까?

폴리티코의 매튜 카르니트슈니히는 EU에 대한 지지가 지난 수십 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라고 지적한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일부 지역으로 대중주의 세력이 계속 물밀 듯 밀려들고는 있지만 지난 수개월간의 스토리는 대부분 이에 대한 반발이었다.

여러 면에서 대중주의-민족주의 움직임의 대표주자인 폴란드와 헝가리의 예를 살펴보자.

폴란드의 사법개혁 노력은 전국차원의 대대적인 시위를 불러왔고, 유럽연합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폴란드에 대법관의 퇴직 연령을 낮추는 새 법규의 적용을 즉시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바르샤바는 유럽최고법원의 명령에 따랐다.

노동법 개정과 사법부 개혁을 골자로 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독재적인 조치도 광범위한 시위를 불러일으키면서 야권의 유례없는 대동단결을 가져왔다. 

가두시위는 집권당을 향한 일반적인 집회와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준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 거의 어김없이 평화로운 시위자들에게 최루탄이 발사되고, 시위군중은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매도되며, 조지 소로스가 시위의 배후로 지목된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몰락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것은 사실이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극우주의자인 마린 루 펜보다 그를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그의 임기는 5년이고, 그가 속한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분석가들은 프랑스가 투자를 유치하고 성장을 촉진시키려면 그가 추구하는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재임기간 내내 한 세대 만에 나온 가장 중요한 변화를 선도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새로운 연정은 전국민 기본소득과 조기 은퇴를 약속하는 대중주의 예산안을 발의했으나 유럽연합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기 싸움에서 먼저 눈을 깜빡인 것은 대중주의자들이었다.

이번 주 로마는 그 같은 대중주의적 조치를 거둬들이고 브뤼셀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른 예산안을 발표했다. 지난 2015년 그리스 대중주의자들이 당초 반대했던 프로그램을 시행한 것을 연상시키는 일화다.

영국의 경우는 조금 까다롭지만 기본적인 이야기는 실질적인 브렉시트에 다가설 때마다 관련 비용에 놀라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친다는 것이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EU는 탈퇴하지만 단일시장 내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EU 분담금을 부담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하드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조롱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총리를 축출할 수는 없다. 메이 총리를 끌어내릴 경우 그녀에게 맡겨진 불가능한 미션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영국민에게 EU의 룰을 준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채 유럽시장 접근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을 팔았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많은 영국인들이 그들에게 유리한 것만 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주의와 민족주의를 자랑스레 포용한 대통령이 통치하는 미국을 보라.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워터게이트 격랑이 일었던 1974년 이후 가장 많은 하원의석 증가를 기록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거나 내부 혼란에 식상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추가 사퇴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트럼프와 그의 주변 인사들에 대한 17건의 조사가 진행 중이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기소됐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의 핵심 위원회들을 차지하게 된 민주당의 의회조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난 2년간 공화당은 워싱턴을 통째로 지배했다. 정부 소식통의 모든 정보 통제권과 소환장 발부권한 및 감독권이 모조리 그들의 수중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의회가 개원하는 2019년 1월이면 그들의 권력독점도 끝이 난다. 아직도 서구와 세계의 다른 지역을 내닫고 있는 대중주의 물결의 의미를 최소화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우려가 실망에게 길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세계 어느 곳에건 분노와 정체성의 정치에 반대하는 많은 건강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빨리 달려야 할 필요는 있지만, 겁에 질릴 필요는 없다.

파리드 자카리아

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1년 후의 신문

♡1년 후의 신문

어떤 사람이 바닷가를 거닐다가 요술램프를 주웠다. 이 사람이 램프를 문지르자 곧 연기와 함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말했다.

“주인님, 소원이 무엇입니까?
단 한 가지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소원을 말씀해 보십시오.”

이 사람은 무슨 소원을 말할지 한참동안 곰곰히 생각하다가 "1년 후의 신문" 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주가를 미리 알아서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해 거부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램프의 요정은 예~하고는 금방 1년 후의 신문을 가져왔다.

이 사람은 급히 주식시세표를
찾았다.
그는 주식시세를 보면서 ..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는 이제 곧 자신의 전 재산과 지인들에게 빌릴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보았다.

한참을 계산하고 "이 정도면...."
어느정도의 재산이 될지 가늠을 해보면서  만족스러워 했다.

그는 곧 실행을 하려고 보던 신문을 접었다.
그런데 접혀진 신문 뒷면에 작은"부고(訃告)"란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사망"소식과 함께 "장례식"시간이 적혀 있었다.
       .........................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 관한 새로운 신조어로 "시계 제로"란 말이 있답니다.

그 뜻은  시력이 미치는 범위를 뜻하는 시계(視界)와 숫자 0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제로(zero)로 이루어진 신조 합성어 인데 원래 시계 제로란 안개나 연기 어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 쓰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할 때 "시계제로"란 용어를 사용  한다고 합니다

인생은 정말 시계제로와 같습니다.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座中談笑 愼桑龜(좌중담소 신상구) 


座中談笑 愼桑龜
(좌중담소 신상구) 

앉아서 서로 웃고 담소를 할 때는 
뽕나무와 거북이를 삼가(조심)하라! 

뽕나무와 관계된 고사(故事)로
입 조심을 하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돌아가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온갖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 다녔고,

좋은 약을
다 해 드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산 거북이를 고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거북이를 
찾아 나선 지 며칠만에
효자는 마침내
천 년은 되었음 직한
커다란 거북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뭍으로 나오는
거북이를 붙잡은 아들은
거북이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거북이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다 

커다란 뽕나무 그늘에서
잠깐 쉬면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어렴풋이 잠결에
뽕나무와 거북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거북이가
느긋하고 거만하게 말을 합니다.
"이 젊은이가
이렇게 수고해도 소용없지.

나는 힘이 강하고
나이가 많은 영험한 거북인데

자네가 나를 솥에 넣고
백년을 끓인다 하여도
나는 죽지 않는다네."

거북이의 말을 들은 뽕나무가 
가당치 않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이보게 거북이, 
너무 큰 소리 치지 말게. 

자네가
아무리 신기한 거북이라도
나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고으면 
당장 죽고 말 걸세."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거북이를 
가마솥에 넣고 고았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아무리 고아도
죽지를 않았습니다.
그 때 효자는
집으로 올 때
뽕나무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얼른 도끼를 들고
뽕나무를 잘라다
뽕나무로 불을 때자
정말로 거북이는
이내 죽고 말았습니다. 

거북이 
고은 물을 먹은
아버지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답니다. 

거북이가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뽕나무의 참견을 받아
죽지 않았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뽕나무도
괜한 자랑을 하지 않았다면
베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괜한 말을 하다
거북이도 죽고
뽕나무도 
베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늘 말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말을 하고나서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
후회 할 때가 많으니까요.

아래는
장자의 좌우명이었다고 합니다.

世上功名 看木雁
(세상공명 간목안)
: 잘난 체 하지마라.

座中談笑 愼桑龜
(좌중담소 신상구) 
: 말을 조심하라.

市虎三傳 人皆信
(시호삼전 인개신)
: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된다.

母裙振蜂 父亦疑
(모군진봉 부역의)
: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마라. 

말이
난무하는 시대를 사는 오늘날도
'신상구'의 교훈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함부로 했던 말이
언젠가는 자신을 옥죄는 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C   O  P   Y
                

어느날 부자가 남기고 떠난 편지

♡어느날 부자가 남기고 떠난 편지♡

나의 편지를 읽게 될 고마운 당신에게

오늘도 자네들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먹게나

여기까지 와보니
알겠더군

비싼 돈으로 산 핸드폰

70프로의 성능은
사용하지도 않았고

나의 비싼 차도

70프로의 성능은
필요도 없는것이였고

호화로운 우리집도

70프로의 면적은
비여있는 공간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옷과 일용품들

70프로 또한 지극히
필요가 없는 것들이였소

살아보니
인생은 경기장과 같더군

전반전은
학력, 직위, 권력, 돈을
비기며 살아왔고

그런것들이
높고 많으면 이기는 것이였지

하지만 후반전은 달랐다네

전반전의 승리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하나밖에 없는 몸

혈압, 혈지, 당뇨, 뇨산을 낮추기에
후반전은 급급했지

전반전은 나보다 높은
코치의 명령을 따라야 했고,

후반전은 나의 명줄을 잡고있는
의사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네

이제야 알겠더군
전반전에서 높이 쌓았던 모든것들

잘못하면 후반전에선
누릴 수가 없다는걸

하물며 경기도 중간에
쉼이 있었거늘

나도 쉬며 쉬며 갔었던것을...

전반전에서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았던 날들
이제는 씁쓸한 추억으로 남았소...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번 살아보게나

돈과 권력이 있다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할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게나

천원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주고 

3 천만원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주고

5억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주는지 알고 있는가?

바로,

건강한 몸이라네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게나

건강할때 있는 돈을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뿐이니...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차를 몰아줄 기사는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사람들
역시나 있을것이오

하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테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되찾을수 없는것
하나뿐의 생명이라오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다네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진 차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게 되겠지 

내가 한때 당연한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 직위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뿐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아
너무 총망히 살지를 말고

후반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만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보시라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낀다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

힘없는 나는
이젠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주겠네.

= 모 그룹 회장=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어떤것이 생애의 행복일까요

어떤것이 생애의 행복일까요

인간이란ᆢ 무얼 파괴하기 위하여 또 창조합니다.
어렸을때를 생각해 보십시요.
장난감을 갖고 싶어 간절히 조르다가도
막상 손에 쥐면 한참
갖고 놀다가 싫증이 나고 때가 되면 부셔 버리고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100% 만족되는 일이 어디가 있겠는가요?
 
억만장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
(향년69세)는 무대 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칼라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8년이 되기 전에 주부로서 너무
모자라고 권태가 나서 이혼하고  재클린에게 다시 장가 갔습니다.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과 함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재클린과 결혼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내가 실수 를 했다."  하며 고민
하기 시작합니다.
  
'파혼할 길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니 이혼도 못합니다.
 
재클린이 한달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니. 오나시스는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 갑니다.
그의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도 얼마 못살고 죽었습니다.
 
끝까지 이혼에 합의 않던 재클린은  오나시스의 엄청난 유산을 거의 차지 했지요.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하며
오나시스는 가슴을 치고 후회하다 죽습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 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가정주부로서는 크게 미흡 했습니다.
 
우리는 오나시스의 체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세기적인 미녀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와
살면 행복할까요?
 
아름다운 외모와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그저 가정살림 잘하고 따뜻이 가족들
볼줄 아는 알뜻 살뜻한
주부가 최고랍니다.
 
평생 '갑(甲)'으로 살아온 사람들 일수록
퇴직하면 더 외롭게 지내는 것을 종종
봅니다.
항상 대우만 받고
남들이  만나자고 하는 약속만  골라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언제 한번 만나자.는 말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점심 약속을 잡으세요.
아니면, 그 다음날 전화나 이 메일로 먼저
연락하자고 하든지요.
 
안그럼 영영 사람 만날 기회를 놓치고 결국
평생 외롭게 됩니다.
 
보십시오.
개처럼 고생하다 살다가는 우리네 인생이랍니다.
 
-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뇌기능 중
70%는 놀고 있다.
- 최고급 핸드폰 기능 중
70%는 쓸데가 없다.
- 최고급 승용차의 속도 중 70%는 불필요하다.
- 초호화 별장의 면적
  70%는 비어있다.
- 사회활동의 
  70%는 의미없는 것이다.
- 집안의 생활용품 중 
70%는 놔 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
- 한평생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70%는 다른 사람에게 쓴다.
-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죽은뒤에는
70%의 재산은 남이 갖는다.
 
결론은, 삶은 간단 명료합니다.
살아있을 적에 인생을 즐기십시요.
개고생만 하지 말고..
그리고 상대의 겉모습에 헛정신 팔지 마십시오.
그리고
70%는 남이 가지니
자신을 위해 쓰십시요.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부끄러운 조국 大韓民國


<傳文> 부끄러운 조국 大韓民國

어릴적 시골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나는 싫어했다. 담임이나 교장을 향한 언행이 막무가내인 울엄마가 창피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요즘 애들도 자신의 잣대에 따라, 못났거나 흠결있는 엄마라면 내 어릴적 마음과 다를 리 없다. 선생이나 친구들에게 엄마가 부끄러운 대상이라 여길때 그러하다.
오늘날의 많은 백성들은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는걸 우려한다. 말과 행동에 실수는 없는지, 각종 인터뷰에 동문서답은 안 하는지, 회담중 커닝 페이퍼를 훔쳐 보는지, 엉뚱한 웃음을 웃어대는지 등의 불안한 요소들이, 마치 정신박약아를 정상兒들 과의 "토크 쇼"에 보낸 부모마음 처럼 불안하고 조마조마 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런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이 부끄럽고, 그 국민됨이 또 창피스럽다.
그렇게도 잘 나가고 당당하던 우리나라. 세상이 주목하고 경이로운 시선으로 부러워하던 우리조국, 대한민국. 이상한 과정을 거치며 들어선 소위 "촛불정부"이래, 그들의 혁명적 작태에 이젠 세계가 점점 놀라고 있다. 저것이 정말 대한민국 인가.
저것이 진정 대한민국 대표자인가.
나라 살림이야 깨지든 말든, 세계인들의 이목이야 좋든 말든, 모두 관심밖인듯 나 몰라라 하고, 우리의 실질적인 敵國과 한 통속이 되어, 온 천지에 대고 적국을 대변.옹호하는 그 자가 이나라 대통령인가. 아니면, 敵 指令에 따라 움직이는 거물 간첩인가.
그들이 틈만나면 읊어대는 "촛불혁명"이 實은, 北 생명줄을 돕기위한 "爲北革命"의 출발점인가. 북의 비핵화라는 불씨를 살려 성공적 결실을 맺기도 전에, 국제시장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구걸하는 이 나라 지도자가 부끄럽고, 北의 특사나 대변인 쯤으로 취급받는 그가 또 창피스럽다
잘라 말해서, 북한의 비핵화는 꿈이고 妄想이다. 지금의 북 정권이 존재하는 한, 그런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北과의 실무 또는 정상회담을 수십.수백번 해본들, 까도 까도 알갱이 없는 양파껍질만 보게 될 것이다.
늘 그러해 왔듯이, 북한은 만날때마다 노련하게 스타킹을 벗으며 속살을 보일듯 하면서도, 속옷은 끝내 벗지않은채 새벽닭이 울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하여 "핵"을 지키면서, 상대국의 정권교체나 정세변화의 틈새를 엿보며 핵 보유국의 대열에 서겠다는것이, 그들 속셈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런데도 文在寅은 北이 준 붉은완장을 차고 앞장서서, 북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팩트"로 포장하여 온 동네에 선전하고 糊塗한다. 그것도 자신만만하게 보증이라도 설 듯한 그런 태도는, 과연 어디서 오는 확신감인가. 나중 언젠가 北이 미국과 틀어졌다며 남측과도 이별을 告할때가 되면, 어찌 감당할 것인가.
지난 文의 유럽방문 기간중 프랑스의 유력지 "르 피가로"는 특집기사에서, 文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종전선언을 통한 적대관계의 종결시도를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트럼프와 장군님"의 로맨스가 파경을 맞게되면, 文은 모든 실패의 화살을 맞는 희생양이 되고,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게 될 것이라고 썼다.
끔찍한 지적이지만, 실패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았고, 지금도 그 징후는 도처에 널려있다. 미.북간의 실무접촉을 북이 회피하고, 이를 눈치챈 미국이 회담일정에 느긋하며 오히려 대북제재의 고삐를 더욱 조이면서, 유엔사를 무시한 남.북간 합의에 브레이크를 거는등, 한.미.북간의 마찰음이 증폭되고있음이 그 뚜렷한 징표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않아 실패의 화살이, 거짖중재의 책임을 물으며 문재인의 가슴팍을 향해, 팽팽한 시위를 떠나는순간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날은 꼭 올 것이다. 그동안 北의 생생한 비핵관련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사실 文은, 너무 빨리 北과 연정에 빠졌다. 무작정 주는 설익은 사랑은, 돌발적 결별 가능성에 늘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위험한 사랑의 늪에 빠진 우리들 지도자가 또 부끄럽다.
지난 1주일이 넘는 유럽순방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없었고, 북한의 특사자격인 "남측 대통령"만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가안보,국익,미래비전 등의 국제외교는 실종되고, 文은 가는곳마다 대북제재완화만을 주문처럼 반복했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를 北에서 온 대리인 정도로 평가절하했다.
오히려 ASEM회의에서 51국 정상들이 합의.발표한, CVID의 북핵제거관련 성명은, 국제기류를 무시한 "제재완화의 나팔수"를 정면에서 받아친 사건이 아닌가.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외교의 참사라고까지 하는데, 청와대와 文 본인은,커다란 외교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하는걸 보노라면, 부끄럼도 모르는 저들이야말로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지 않은가.
그렇게 국제사회에서 왕따 당하고 머리통까지 얻어 터지고 온 문재인은, 서둘러 9.19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 비준안을 국무회의에서 전격 심의.의결하고 재가 해 버렸다. 야당이 반대하든, 위헌소지가 있든, 옳다고 밀어붙인 것이다. 미국이 태클을 걸어도 내 갈길 가겠다는 독선이다.
文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도 맘대로 파기하고 또 생산한다. 국회도 없고 행정부도 없고 청와대만 보인다. 청와대 비서진들의 화려한 치장뒤에는, 막강한 월권의 계략이 숨어있고, 이제 그 마각이 하나씩 드러날 것이다. 국무위원들마저 청와대 눈치나보며 복지부동의 자세로 잠수 타지 않는가. 그런 청와대역시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툭하면 같은민족.민족끼리를 앞세우는 북한이 우리 이웃이라는 현실도 부끄럽다. 수렁에 빠질때면 민족정서에 기대지만, 그동안 대남도발을 밥먹듯 해 왔고, 전 세계를 상대로 위선과 약속 파기의 끝판왕을 자처했으며, 기회가 오면 거지 근성의 삥땅이나 노리는 그들이 한 민족이라 부끄럽다.
체제와 문화, 살아온 생활환경과 이념등 모든면에서 이미 南.北은 충분히 이질적이지만, 동일 민족의 뿌리라는 피할수없는 DNA를 외면할 수 없음이 서글프고 부끄러울 뿐이다.
운명적 탄생과 파생적 삶이 가져온 민족적 비극이 아닌가.
불쑥 우리세대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나이에 수시로 총성을 들어야했고, 어딘가 폭격하는 비행기들의 폭음도 들으며 살았다. 더구나 찌든 가난속에서 굶주림의 고통과 빵의 가치를 깨우쳐야하는 그런 시대도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지금의 우리는 자식들의 승진과 영전소식에 기뻐하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손주들의 모습에서 또다른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우리들 나이에, 문과 나라 걱정이 웬말이고
세상에 부끄러운 우리조국, 대한민국. 언제쯤 품위있고 떳떳한 나라로 돌아갈 것인가. 언제쯤 세상사람들이 또 부러워하는 나라로 돌아갈 것인가.
머지않아 그런나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文이 실패의 화살을 가슴에 맞고, 그 붉은 무리들도 따라 떨어져 누울때 이 땅에는 새롭게, 빼앗긴 봄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惡은 언제나 善앞에 굴복하는 속성이 있으려니… 예쁜 옷 입고 곱게 단장한 울엄마가, 인자하고 품위 넘치는 모습으로 학교에 찾아와 나를 꼭 안아줄때, 그 모습을 몹시 부러운듯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길을 보며 나는 끝없는 행복에 젖곤 했다.

박병대 前 대법관의 '흙수저' 시절

●은사(恩師) L 선생이 들려준 박병대 前 대법관의 '흙수저' 시절

문무대왕.
8일자 동아일보 45판 5면 종합면에 나온 박병대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 관련 기사부터 소개한다.
 
  <…특히 박 전 대법관 구속영장을 기각한 임민성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가족관계'를 기각 사유에 포함시켰다. 박 전 대법관은 전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어머니가 문에 기대어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의문이망'(倚門而望)을 언급하며 93세 노모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기각으로 7일 오전 1시15분경 의왕시구치소에서 석방된 박 전 대법관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판부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
다음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박목월의 詩 '윤사월'이 떠올랐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인간 본연의 근원적 애수를 노래한 시인 박목월은 눈이 멀어 자연의 아름다운 봄풍경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의 답답한 마음을 꾀꼬리 울음소리에 대치(代置)시켜 기다림의 심경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다림은 희망인 동시에 답답하고 불안함을 함께 하고 있다.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도 시력(視力)이 좋지 않은 93세의 노모(老母)가 있다.
박병대가 영장심사 판사에게 "법조계 선배로 보지 말고 법리대로 판단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은 보도된 바 있다.
박병대가 마음에 걸린 것은 자신이 구속되고 안되고는 법대로 처리하면 되지만 만일 자식의 불행한 모습을 전해듣고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 애틋한 모정(母情)이 박병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으로 보인다.
노모에 대한 박병대의 효심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병대의 노모나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의 기다림에 대한 인간의 순수함은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영장담당 판사가 박병대의 지극한 효심을 제대로 살펴 영장기각 사유에 포함시켰다면 그 판사는 판사이기 전 제대로 된 인간 심성을 가진 훌륭한 판관(判官)으로서의 양심과 성정(性情)을 가졌다고 보고 싶다.
 
우연한 기회에 박병대의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이었던 L 선생으로부터 소년 박병대君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병대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창락초등학교에 다녔다.
총명하고 똑똑한 소년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박군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사업에 실패해서 충북 단양으로 이사를 가게 됐으니 전학(轉學) 절차를 부탁하더란 것이다.
 
단양에서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박병대가 중학교에 다닐 처지가 되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목공소(木工所)를 운영하는 어떤 독지가가 학비를 대어 줄 테니 중학교에 입학하라고 하더란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박병대가 또 고등학교 입학도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독지가가 이번에는 서울 유학을 권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야간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그래서 박병대는 서울 중구 만리동 산중턱의 H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낮에는 어느 회사 사동(使童)으로 일하며 사무실에서 잠자고 밤에는 공부하는 문자 그대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고생한 보람 있어 재수(再修)하여 서울대학교 법학과 76학번으로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다.
사법시험에도 합격, 연수원 12기로 판사가 되고 대전지방법원장, 대법관, 대법원 행정처장 등의 법관 경력을 쌓았다.
동기 가운데는 문재인 대통령도 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이 사법농단, 사법거래와 같은 날조된 신조어(新造語)의 혐의를 받고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서울대 법대 76학번 동기들이 영장담당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고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명망받던 한 법관이 하루아침에 피의자로 전락되고 구속영장 심사를 받아야만 하는 오늘의 이 무시무시한 권력의 칼날이 언제 무디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박병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고향 사람들에게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칭송과 함께 지금도 흙수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 되고 있다.
박병대는 노모에 대해서는 효자요, 형제간에는 우애극진한 버팀목이다.
자신을 길러 준 은인(恩人)에겐 부모를 모시는 마음으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은사 L선생이 필자에 들려 준 박병대 인생 스토리다.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사랑 손님과 어머니

 
사랑 손님과 어머니

 
주요섭

1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이구요. 우리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은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집에는 끼니 때나 외에는 별로 붙어 있지를 않으니까 어떤 때는 한 주일씩 가도 외삼촌 코빼기도 못 보는 때가 많으니까요, 깜빡 잊어버리기도 예사지요, 무얼.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은 날더러 '과부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딸'이라나 봐요. 
2
외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대요. 우리 어머니하고 결혼한 지는 일년 만이고요. 우리 아버지의 본집은 어디 멀리 있는데, 마침 이 동리 학교에 교사로 오게 되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우리 어머니는 시집으로 가지 않고 여기 이 집을 사고 (바로 이 집은 우리 외할머니댁 옆집이지요) 여기서 살다가 일년이 못 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니까 나는 아버지 얼굴도 못 뵈었지요. 그러기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버지 생각은 안 나요. 아버지 사진이라는 사진은 나두 한두 번 보았지요.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야요.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참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잘난 아버지일 거야요. 그런 아버지를 보지도 못한 것은 참으로 분한 일이야요. 그 사진도 본 지가 퍽 오래되었는데, 이전에는 그 사진을 늘 어머니 책상 위에 놓아 두시더니 외할머니가 오시면 오실 때마다 그 사진을 치우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 사진이 어디 있는지 없어졌어요. 언젠가 한번 어머니가 나 없는 동안에 몰래 장롱 속에서 무엇을 꺼내 보시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얼른 장롱 속에 감추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것이 아마 아버지 사진인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먹고 살 것을 남겨 놓고 가셨대요. 작년 여름에, 아니로군, 가을이 다 되어서군요. 하루는 어머니를 따라서 저 여기서 한 십 리나 가서 조그만 산이 있는 데를 가서 거기서 밤도 따먹고 또 그 산 밑에 초가집에 가서 닭고깃국을 먹고 왔는데, 거기 있는 땅이 우리 땅이래요. 거기서 나는 추수로 밥이나 굶지 않게 된다고요. 그래도 반찬 사고 과자 사고 할 돈은 없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바느질을 맡아서 해주지요. 바느질을 해서 돈을 벌어서 그걸로 청어도 사고 달걀도 사고 또 내가 먹을 사탕도 사고 한다고요.
그리고 우리집 정말 식구는 어머니와 나와 단둘뿐인데 아버님이 계시던 사랑방이 비어 있으니까 그 방도 쓸 겸 또 어머니의 잔심부름도 좀 해줄 겸해서 우리 외삼촌이 사랑방에 와 있게 되었대요. 
3
금년 봄에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 준다고 해서 나는 너무나 좋아서 동무 아이들한테 실컷 자랑을 하고 나서 집으로 들어오노라니까 사랑에서 큰외삼촌이 (우리집 사랑에 와 있는 외삼촌의 형님 말이야요) 웬 낯선 사람 하나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외삼촌이 나를 보더니 '옥희야' 하고 부르겠지요.
"옥희야, 이리 온. 와서 이 아저씨께 인사드려라."
나는 어째 부끄러워서 비슬비슬하니까, 그 낯선 손님이,
"아, 그 애기 참 곱다. 자네 조카딸인가?"
하고 큰외삼촌더러 묻겠지요. 그러니까 외삼촌은,
"응, 내 누이의 딸…… 경선 군의 유복녀 외딸일세."
하고 대답합니다.
"옥희야, 이리 온, 응! 그 눈은 꼭 아버지를 닮았네그려."
하고 낯선 손님이 말합니다.
"자, 옥희야, 커단 처녀가 왜 저 모양이야. 어서 와서 이 아저씨께 인사해여. 너의 아버지의 옛날 친구신데 오늘부터 이 사랑에 계실 텐데 인사 여쭙고 친해 두어야지."
나는 이 낯선 손님이 사랑방에 계시게 된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즐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 앞에 가서 사붓이 절을 하고는 그만 안마당으로 뛰어들어왔지요. 그 낯선 아저씨와 큰외삼촌은 소리를 내서 크게 웃더군요.
나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나름으로 어머니를 붙들고,
"엄마, 사랑방에 큰삼춘이 아저씨를 하나 데리구 왔는데에, 그 아저씨가아, 이제 사랑에 있는대."
하고 법석을 하니까,
"응, 그래."
하고 어머니는 벌써 안다는 듯이 대수롭잖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언제부텀 와 있나?"
하고 물으니까,
"오늘부텀."
"에구 좋아."
하고 내가 손뼉을 치니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왜 이리 수선이야."
"그럼 작은외삼춘은 어디루 가나?"
"외삼춘두 사랑에 계시지."
"그럼 둘이 있나?"
"응."
"한방에 둘이 있어?"
"왜, 장짓문 닫구 외삼춘은 아랫방에 계시구 그 아저씨는 윗방에 계시구, 그러지." 
4
나는 그 아저씨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몰랐으나 첫날부터 내게는 퍽 고맙게 굴고 나도 그 아저씨가 꼭 마음에 들었어요. 어른들이 저희끼리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그 아저씨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어렸을 적 친구라고요. 어디 먼 데 가서 공부를 하다가 요새 돌아왔는데, 우리 동리 학교 교사로 오게 되었대요. 또 우리 큰외삼촌과도 동무인데, 이 동리에는 하숙도 별로 깨끗한 곳이 없고 해서 우리 사랑으로 와 계시게 되었다고요. 또 우리도 그 아저씨한테서 밥값을 받으면 살림에 보탬도 좀 되고 한다고요.
그 아저씨는 그림책들이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사랑방으로 나가면 그 아저씨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들을 보여 줍니다. 또 가끔 과자도 주고요.
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이내 살그머니 사랑에 나가 보니까 아저씨는 그때에야 점심을 잡수셔요. 그래 가만히 앉아서 점심 잡수는 걸 구경하고 있노라니까, 아저씨가,
"옥희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누?"
하고 묻겠지요. 그래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마침 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한 알 집어 주면서 나더러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그 달걀을 벗겨 먹으면서,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하고 물으니까, 그는 한참이나 빙그레 웃고 있더니,
"나두 삶은 달걀."
하겠지요. 나는 좋아서 손뼉을 짤깍짤깍 치고,
"아, 나와 같네. 그럼, 가서 어머니한테 알려야지."
하면서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꼭 붙들면서,
"그러지 말어."
그러시지요. 그래도 나는 한번 맘을 먹은 다음엔 꼭 그대로 하고야 마는 성미지요. 그래 안마당으로 뛰쳐들어가면서,
"엄마, 엄마, 사랑 아저씨두 나처럼 삶은 달걀을 제일 좋아한대."
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떠들지 말어."
하고 어머니는 눈을 흘기십니다.
그러나 사랑 아저씨가 달걀을 좋아하는 것이 내게는 썩 좋게 되었어요. 그것은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달걀을 많이씩 사게 되었으니까요. 달걀장수 노친네가 오면 한꺼번에 열 알도 사고 스무 알도 사고 그래선 두고두고 삶아서 아저씨 상에도 놓고 또 으레 나도 한 알씩 주고 그래요. 그뿐만 아니라 아저씨한테 놀러 나가면 가끔 아저씨가 책상 서랍 속에서 달걀을 한두 알 꺼내서 먹으라고 주지요. 그래 그 담부터는 나는 아주 실컷 달걀을 많이 먹었어요.
나는 아저씨가 아주 좋았어요. 마는 외삼촌은 가끔 툴툴하는 때가 있었어요. 아마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아니, 그것보다도 아저씨 상 심부름을 꼭 외삼촌이 하게 되니까 그것이 싫어서 그러나 봐요. 한번은 어머니와 외삼촌이 말다툼하는 것까지 내가 들었어요. 어머니가,
"야, 또 어디 나가지 말구 사랑에 있다가 선생님 들어오시거든 상 내가야지."
하고 말씀하시니까, 외삼촌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제길, 남 어디 좀 볼일이 있는 날은 으레 끼니 때에 안 들어오고 늦어지니……."
하고 툴툴하겠지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그러니 어짜갔니? 너밖에 사랑 출입할 사람이 어디 있니?"
"누님이 좀 상 들구 나가구려. 요샛세상에 내외합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이 발개지시고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외삼촌에게 향하여 눈을 흘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외삼촌은 흥흥 웃으면서 사랑으로 나갔지요. 
5
나는 유치원에 가서 창가도 배우고 댄스도 배우고 하였습니다. 유치원 여자선생님이 풍금을 아주 썩 잘 타요. 그런데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은 우리 예배당에 있는 풍금과는 아주 다른데, 퍽 조그마한 것이지마는 소리는 썩 좋아요. 그런데 우리집 윗간에도 유치원 풍금과 꼭 같이 생긴 것이 놓여 있는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그래 그날 나는 집으로 오는 길로 어머니를 끌고 윗간으로 가서,
"엄마, 이거 풍금 아니우?"
하고 물으니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렇단다. 그건 어찌 알았니?"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이 이것과 꼭 같은데 무얼. 그럼 엄마두 풍금 탈 줄 아우?"
하고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때껏 한 번도 어머니가 이 풍금 앞에 앉은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십니다.
"엄마, 이 풍금 좀 타봐!"
하고 재촉하니까, 어머니 얼굴은 약간 흐려지면서,
"그 풍금은 너의 아버지가 날 사다 주신 거란다. 너의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그 풍금은 이때까지 뚜껑두 한 번 안 열어 보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금방 또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이 보여서 나는 그만,
"엄마, 나 사탕 주어."
하면서 아랫방으로 끌고 내려왔습니다. 
6
아저씨가 사랑방에 와 계신 지 벌써 여러 밤을 잔 뒤입니다. 아마 한 달이나 되었지요. 나는 거의 매일 아저씨 방에 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나더러 그렇게 가서 귀찮게 굴면 못쓴다고 가끔 꾸지람을 하시지만 정말인즉 나는 조금도 아저씨를 귀찮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저씨가 나를 귀찮게 굴었지요.
"옥희 눈은 아버지를 닮었다. 고 고운 코는 아마 어머니를 닮었지, 고 입하고! 응, 그러냐, 안 그러냐? 어머니도 옥희처럼 곱지, 응?"
이렇게 여러 가지로 물을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 입때 우리 엄마 못 봤수?"
하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잠잠합니다. 그래 나는,
"우리 엄마 보러 들어갈까?"
하면서 아저씨 소매를 잡아당겼더니, 아저씨는 펄쩍 뛰면서,
"아니, 아니, 안 돼. 난 지금 분주해서."
하면서 나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는 무슨 그리 분주하지도 않은 모양이었어요. 그러기에 나더러 가란 말도 않고 그냥 나를 붙들고 앉아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뺨에 입도 맞추고 하면서,
"요 저구리 누가 해주지? ……밤에 엄마하구 한자리에서 자니?"
라는 둥 쓸데없는 말을 자꾸만 물었지요!
그러나 웬일인지 나를 그렇게도 귀애해 주던 아저씨도 아랫방에 외삼촌이 들어오면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지요.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나를 꼭 껴안지도 않고 점잖게 앉아서 그림책이나 보여 주고 그러지요. 아마 아저씨가 우리 외삼촌을 무서워하나 봐요.
하여튼 어머니는 나더러 너무 아저씨를 귀찮게 한다고 어떤 때는 저녁 먹고 나서 나를 꼭 방 안에 가두어 두고 못 나가게 하는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바느질에 정신이 팔리어서 골몰하고 있을 때 몰래 가만히 일어나서 나오지요. 그런 때에는 어머니는 내가 문 여는 소리를 듣고야 퍼뜩 정신을 차려서 쫓아와 나를 붙들지요. 그러나 그런 때는 어머니는 골은 아니 내시고,
"이리 온, 이리 와서 머리 빗고……."
하고 끌어다가 머리를 다시 곱게 땋아 주시지요.
"머리를 곱게 땋고 가야지. 그렇게 되는 대루 하구 가문 아저씨가 숭보시지 않니?"
하시면서, 또 어떤 때에는 머리를 다 땋아 주시고는,
"응, 저구리가 이게 무어냐?"
하시면서 새 저고리를 내어 주시는 때도 있었습니다. 
7
어떤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더러 뒷동산에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가자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들어가서 어머님께 허락 맡고 온."
하십니다. 참 그렇습니다. 나는 뛰쳐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을 맡았습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다시 세수시켜 주고 머리도 다시 땋고 그리고 나서는 나를 아스러지도록 한번 몹시 껴안았다가 놓아 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응."
하고 어머니는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아마 사랑 아저씨도 그 소리를 들었을 거야요.
뒷동산에 올라가서는 정거장을 한참 내려다보았으나 기차는 안 지나갔습니다. 나는 풀잎을 쭉쭉 뽑아 보기도 하고 땅에 누운 아저씨의 다리를 가서 꼬집어 보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한참 후에 아저씨가 손목을 잡고 내려오는데 유치원 동무들을 만났습니다.
"옥희가 아빠하구 어디 갔다 온다, 응."
하고 한 동무가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때 나는 얼마나 이 아저씨가 정말 우리 아버지였더라면 하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로 한 번만이라도,
"아빠!"
하고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렇게 아저씨하고 손목을 잡고 골목골목을 지나오는 것이 어찌도 재미가 좋았는지요.
나는 대문까지 와서,
"난 아저씨가 우리 아빠래문 좋겠다."
하고 불쑥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나를 몹시 흔들면서,
"그런 소리 하문 못써."
하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몹시 떨렸습니다. 나는 아저씨가 몹시 성이 난 것처럼 보여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어디까지 갔던?"
하고 나와 안으며 묻는데, 나는 대답도 못 하고 그만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놀라서,
"옥희야, 왜 그러니? 응?"
하고 자꾸만 물었으나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8
이튿날은 일요일인 고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예배당에를 가려고 차리고 나서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잠깐 사랑에를 나가 보았습니다. '아저씨가 아직두 성이 났나?' 하고 가만히 방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책상에 앉아서 무엇을 쓰고 있던 아저씨가 내다보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 웃음을 보고 나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저씨가 지금은 성이 풀린 것이 확실하니까요. 아저씨는 나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훑어보더니,
"옥희 오늘 어디 가노? 저렇게 곱게 채리구."
하고 물었습니다.
"엄마하고 예배당에 가."
"예배당에?"
하고 나서 아저씨는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다보더니,
"어느 예배당에?"
하고 물었습니다.
"요 앞에 예배당에 가지 뭐."
"응? 요 앞이라니?"
이때 안에서,
"옥희야."
하고 부드럽게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었습니다. 나는 얼른 안으로 뛰어들어오면서 돌아다보니까, 아저씨는 또 얼굴이 빨갛게 성이 났겠지요. 내 원, 참으로 무슨 일로 요새는 아저씨가 그렇게 성을 잘 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예배당에 가서 찬미하고 기도하다가 기도하는 중간에 갑자기 나는, '혹시 아저씨두 예배당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나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남자석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 바로 거기에 아저씨가 와 앉아 있겠지요. 그런데 아저씨는 어른이면서도 눈 감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처럼 눈을 번히 뜨고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바라봅니다. 나는 얼른 아저씨를 알아보았는데 아저씨는 나를 못 알아보았는지 내가 방그레 웃어 보여도 웃지도 않고 멀거니 보고만 있겠지요. 그래 나는 손을 흔들었지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더군요. 그때에 어머니가 내가 팔 흔드는 것을 깨닫고 두 손으로 나를 붙들고 끌어당기더군요. 나는 어머니 귀에다 입을 대고,
"저기 아저씨두 왔어."
하고 속삭이니까 어머니는 흠칫하면서 내 입을 손으로 막고 막 끌어잡아다가 앞에 앉히고 고개를 누르더군요. 보니까 어머니가 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군요.
그날 예배는 아주 젬병이었어요. 웬일인지 예배 다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성이 나서 강대만 향하여 앞으로 바라보고 앉았고, 이전 모양으로 가끔 나를 내려다보고 웃는 일이 없었어요. 그리고 아저씨를 보려고 남자석을 바라다보아도 아저씨도 한 번도 바라다보아 주지 않고 성이 나서 앉아 있고, 어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공연히 꽉꽉 잡아당기지요. 왜 모두들 그리 성이 났는지! 나는 그만 으아 하고 한번 울고 싶었어요. 그러나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앉아 있는 고로 울고 싶은 것을 아주 억지로 참았답니다. 
9
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 처음 얼마 동안은 유치원에 갈 때나 올 때나 외삼촌이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밤을 자고 난 뒤에는 나 혼자서도 넉넉히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나 언제나 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때면 어머니가 옆대문(우리집에는 대문이 사랑대문과 옆대문 둘이 있어서 어머니는 늘 이 옆대문으로만 출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밖에 기다리고 섰다가 내가 달음질쳐 가면,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쩐 일인지 어머니가 대문간에 보이지를 않겠지요. 어떻게도 화가 나던지요. 물론 머릿속으로는, '아마 외할머니댁에 가셨나 부다' 하고 생각했지마는 하여튼 내가 돌아왔는데 문간에서 기다리지 않고 집을 떠났다는 것이 몹시 나쁘게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오늘 엄마를 좀 곯려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대문 밖에서,
"아이고, 얘가 원 벌써 왔나?"
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순간 나는 얼른 신을 벗어 들고 안방으로 뛰어들어가서 벽장 문을 열고 그 속에 들어가서 숨어 버렸습니다.
"옥희야, 옥희 너, 여태 안 왔니?"
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바로 뜰에서 나더니,
"여태 안 왔군."
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재미가 나서 혼자 흐흥흐흥 웃었습니다.
한참을 있더니 집에서는 온통 야단이 났습니다. 어머니 목소리도 들리고 외할머니 목소리도 들리고 외삼촌 목소리도 들리고!
"글쎄, 하루 종일 집이라곤 안 떠났다가 옥희 유치원 파하고 오문 멕일 과자가 없기에 어머님댁에 잠깐 갔다 왔는데 고 동안에 이런 변이 생긴걸……."
하는 것은 어머니 목소리.
"글쎄 유치원에서 벌써 이십 분 전에 떠났다는데 원 중간에서……."
하는 것은 외할머니 목소리.
"하여튼 내 나가서 돌아댕겨 볼웨다. 원 고것이 어딜 갔담?"
하는 것은 외삼촌의 목소리.
이윽고 어머니의 울음 소리가 가늘게 들렸습니다. 외할머니는 무어라고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젠 그만하고 나갈까?' 하고도 생각했으나, '지난 주일날 예배당에서 성냈던 앙갚음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나서 나는 그냥 벽장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벽장 안은 답답하고 더웠습니다. 그래서 이윽고 부지중에 나는 슬며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잤는지요? 이윽고 잠을 깨어 보니 아까 내가 벽장 안으로 들어왔던 것은 잊어버리고 참 이상스러운 데에 내가 누워 있거든요. 어두컴컴하고 좁고 덥고…… 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나서 엉엉 울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갑자기 어디 가까운 데서 어머니의 외마딧소리가 나더니 벽장 문이 벌컥 열리고 어머니가 달려들어서 나를 안아 내렸습니다.
"요 망할것아."
하면서 어머니는 내 엉덩이를 댓 번 때렸습니다. 나는 더욱더 소리를 내서 울었습니다. 그때에는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어머니도 따라 울었습니다.
"옥희야, 옥희야, 응 인젠 괜찮다. 엄마 여기 있지 않니, 응, 울지 마라, 옥희야.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다. 옥희 하나만 바라구 산다. 난 너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 일이 없다. 옥희만 있으문 바라고 산다. 옥희야, 울지 마라. 응, 울지 마라."
이렇게 어머니는 나더러 자꾸 울지 말라고 하면서도 어머니는 그치지 않고 그냥 자꾸자꾸 울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원 고것이 도깨비가 들렸단 말일까, 벽장 속엔 왜 숨는담."
하고 앉아 있고, 외삼촌은,
"에, 재수, 메유다."
하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10
이튿날 유치원을 파하고 집으로 오게 된 때 나는 갑자기 어제 벽장 속에 숨었다가 어머니를 몹시 울게 했던 생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어쩐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좀 기쁘게 해드려얄 텐데…… 무엇을 갖다 드리문 기뻐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문득 유치원 안에 선생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꽃병 생각이 났습니다. 그 꽃병에는 나는 이름도 모르나 곱고 빨간 꽃이 꽂히어 있었습니다. 그 꽃은 개나리도 아니고 진달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꽃은 나도 잘 알고 또 그런 꽃은 벌써 피었다가 져버린 후였습니다. 무슨 서양꽃이려니 하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꽃을 사랑하는 줄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꽃을 갖다가 드리면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려니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 유치원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잠깐 어디를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나는 그 꽃을 두어 개 얼른 빼들고 달음질쳐 나왔지요.
집에 오니 어머니는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안고 들어왔습니다.
"그 꽃은 어디서 났니? 퍽 곱구나."
하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걸 엄마 드릴라구 유치원서 가져왔어' 하고 말하기가 어째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잠깐 망설이다가,
"응, 이 꽃! 저, 사랑 아저씨가 엄마 갖다 주라구 줘."
하고 불쑥 말했습니다. 그런 거짓말이 어디서 그렇게 툭 튀어 나왔는지 나도 모르지요.
꽃을 들고 냄새를 맡고 있던 어머니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엇에 몹시 놀란 사람처럼 화닥닥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금시에 어머니 얼굴이 그 꽃보다도 더 빨갛게 되었습니다. 그 꽃을 든 어머니 손가락이 파르르 떠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무서운 것을 생각하는 듯이 방 안을 휘 한번 둘러보시더니,
"옥희야, 그런 걸 받아 오문 안 돼."
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몹시 떨렸습니다. 나는 꽃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어머니가 이 꽃을 받고 그처럼 성을 낼 줄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성을 내는 것을 보니까 그 꽃을 내가 가져왔다고 그러지 않고 아저씨가 주더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참 잘되었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성을 내는 까닭을 나는 모르지만 하여튼 성을 낼 바에는 내게 내는 것보다 아저씨에게 내는 것이 내게는 나았기 때문입니다. 한참 있더니 어머니는 나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옥희야, 너 이 꽃 이얘기 아무보구두 하지 말아라, 응."
하고 타일러 주었습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여러 번 까닥까닥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꽃을 곧 내버릴 줄로 나는 생각했습니다마는 내버리지 않고 꽃병에 꽂아서 풍금 위에 놓아 두었습니다. 아마 퍽 여러 밤 자도록 그 꽃은 거기 놓여 있어서 마지막에는 시들었습니다. 꽃이 다 시들자 어머니는 가위로 그 대는 잘라 내버리고 꽃만은 찬송가 갈피에 곱게 끼워 두었습니다.
내가 어머니께 꽃을 갖다 주던 날 밤에 나는 또 사랑에 놀러 나가서 아저씨 무릎에 앉아서 그림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저씨 몸이 흠칫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귀를 기울입니다. 나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풍금 소리!
그 풍금 소리는 분명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풍금 타나 부다."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안으로 뛰어왔습니다. 안방에는 불을 켜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음력으로 보름께나 되어서 달이 낮같이 밝은데 은빛 같은 흰 달빛이 방 한 절반 가득히 차 있었습니다. 나는 흰옷을 입은 어머니가 풍금 앞에 앉아서 고요히 풍금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나이 지금 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마는 하여튼 어머니가 풍금을 타시는 것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유치원 선생님보다도 풍금을 더 잘 타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갔습니다마는 어머니는 내가 곁에 온 것도 깨닫지 못하는지 그냥 까딱 아니 하고 풍금을 탔습니다. 조금 있더니 어머니는 풍금 곡조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도 나는 이때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우리 유치원 선생님보다도 목소리가 훨씬 더 곱고 또 노래도 훨씬 더 잘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어머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마치 은실을 타고 저 별나라에서 내려오는 노래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얼마 오래지 않아 목소리는 약간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늘게 떨리는 노랫소리, 그에 따라 풍금의 가는 소리도 바르르 떠는 듯했습니다. 노랫소리는 차차 가늘어지더니 마지막에는 사르르 없어져 버렸습니다. 풍금 소리도 사르르 없어졌습니다. 어머니는 고요히 풍금에서 일어나시더니 옆에 섰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다음 순간 어머니는 나를 안고 마루로 나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나를 꼭꼭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달빛을 함빡 받는 내 어머니 얼굴은 몹시도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천사 같다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새하얀 두 뺨 위로 쉴새없이 두 줄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니 나도 갑자기 울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 왜 울어?"
하고 나도 훌쩍거리면서 물었습니다.
"옥희야."
"응?"
한참 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옥희야, 난 너 하나문 그뿐이다."
"엄마."
어머니는 다시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11
하루는 밤에 아저씨 방에서 놀다가 졸려서 안방으로 들어오려고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하얀 봉투를 서랍에서 꺼내어 내게 주었습니다.
"옥희, 이것 갖다가 엄마 드리고 지나간 달 밥값이라구, 응."
나는 그 봉투를 갖다가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받아 들자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그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았을 때보다도 더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들고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초조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거 지나간 달 밥값이래."
하고 말을 하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잠자다 깨나는 사람처럼 '응?' 하고 놀라더니 또 금시에 백지장같이 새하얗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습니다. 봉투 속으로 들어갔던 어머니의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이 지전을 몇 장 끌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입술에 약간 웃음을 띄우면서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다시 어머니는 무엇에 놀랐는지 흠칫하더니 금시에 얼굴이 다시 새하얘지고 입술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바라다보니 거기에는 지전 몇 장 외에 네모로 접은 하얀 종이가 한 장 잡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무슨 결심을 한 듯이 입술을 악물고 그 종이를 차근차근 펴들고 그 안에 쓰인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그 안에 무슨 글이 씌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어머니는 그 글을 읽으면서 금시에 얼굴이 파랬다 발갰다 하고 그 종이를 든 손은 이제는 바들바들이 아니라 와들와들 떨리어서 그 종이가 부석부석 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그 종이를 아까 모양으로 네모지게 접어서 돈과 함께 봉투에 도로 넣어 반짇그릇에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서 전등만 쳐다보는데 어머니 가슴이 불룩불룩합니다. 나는 어머니가 혹시 병이나 나지 않았나 하고 염려가 되어서 얼른 가서 무릎에 안기면서,
"엄마, 잘까?"
하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입술이 어쩌면 그리도 뜨거운지요. 마치 불에 달군 돌이 볼에 와 닿는 것 같았습니다.
한잠을 자고 나서 잠이 채 깨지는 않았으나 어렴풋한 정신으로 옆을 쓸어 보니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가끔가다가 나는 그런 버릇이 있어요. 어렴풋한 정신으로 옆을 쓸면 어머니의 보드라운 살이 만져지지요. 그러면 다시 나는 잠이 들어 버리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잠은 다 달아나고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돌려 살펴보았습니다. 방 안에는 불은 안 켰지만 어슴푸레하게 밝습니다. 뜰로 하나 가득한 달빛이 방 안에까지 희미한 밝음을 던져 주는 것이었습니다. 윗목을 보니 우리 아버지의 옷을 넣어 두고 가끔 어머니가 꺼내서 쓸어 보시는 그 장롱 문이 열려 있고, 그 아래 방바닥에는 흰옷이 한 무더기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롱을 반쯤 기대고 자리옷만 입은 어머니가 주춤하고 앉아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눈은 감고 무엇이라고 입술로 소곤소곤 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마 기도를 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어가서 어머니 무릎을 뻐개고 기어들어갔습니다.
"엄마, 무얼 해?"
어머니는 소곤거리기를 그치고 눈을 떠서 나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들여다보십니다.
"옥희야."
"응?"
"가서 자자."
"엄마두 같이 자."
"응, 그래 엄마두 같이 자."
그 목소리가 어째 싸늘하다고 내게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들을 한 가지씩 들고는 가만히 손바닥으로 쓸어 보고는 장롱 안에 넣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쓸어 보고는 장롱에 넣곤 하여 그 옷을 다 넣은 때 장롱 문을 닫고 쇠를 채우고 그러고 나서 나를 안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우리 기도하고 자?"
하고 나는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밤마다 재워 줄 때마다 반드시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할 줄 아는 기도는 주기도문뿐이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도 모르지만 어머니를 따라서 자꾸자꾸 해보아서 지금에는 나도 주기도문을 잘 욉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젯밤 잘 때에는 어머니가 기도할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잤던 것이 지금 생각이 났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어젯밤 자리에 들 때 내가,
"기도할까?"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너무도 슬픈 빛을 띠고 있는 고로 그만 나도 가만히 아무 소리 없이 잠이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응, 기도하자."
하고 어머니가 고요히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기도해."
하고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기도하는 보드라운 음성이 듣고 싶어져서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어머니는 고요히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에 들지 말게……."
이렇게 어머니는 자꾸 되풀이하였습니다. 나도 지금은 막히지 않고 줄줄 외는 주기도문을 글쎄 어머니가 막히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에 들지 말게……."
하고 자꾸만 되풀이하는 것을 나는 참다못해서,
"엄마, 내 마저 할게."
하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고 내가 끝을 마쳤습니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가만 있다가 오래 후에야 겨우,
"아멘."
하고 속삭이었습니다. 
12
요새 와서 어머니의 하는 일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도 퍽 유쾌하셨습니다. 밤에 때로는 풍금도 타고 또 때로는 찬송가도 부르고 그러실 때에는 나는 너무도 좋아서 가만히 어머니 옆에 앉아서 듣습니다. 그러나 가끔가끔 그 독창은 소리 없는 울음으로 끝을 맺는 때가 많은데, 그런 때면 나도 따라서 울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안고 내 얼굴에 돌아가면서 무수히 입을 맞추어 주면서,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응, 그렇지……."
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요일날, 그렇지요, 그것은 유치원 방학하고 난 그 이튿날이었어요. 그날 어머니는 갑자기 머리가 아프시다고 예배당에를 그만두었습니다. 사랑에서는 아저씨도 어디 나가고 외삼촌도 나가고 집에는 어머니와 나와 단둘이 있었는데,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옥희야, 너 아빠가 보고 싶니?"
하고 물으십디다.
"응, 우리두 아빠 하나 있으문."
하고 나는 혀를 까불고 어리광을 좀 부려 가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한참 동안을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아니 하시고 천장만 바라다보시더니,
"옥희야, 옥희 아버지는 옥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돌아가셨단다. 옥희두 아빠가 없는 건 아니지. 그저 일찍 돌아가셨지.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옥희 아버지는 죽었는데 옥희는 아버지가 또 하나 생겼대, 참 망측두 하지.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한단다. 그리 되문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받구. 옥희는 커두 시집두 훌륭한 데 못 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이렇게 어머니는 혼자말하시듯 드문드문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있더니,
"옥희야."
하고 또 부르십니다.
"응?"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내 곁을 안 떠나지.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는 엄마가 늙어서 꼬부랑 할미가 되어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가 유치원 졸업하구 또 소학교 졸업하구, 또 중학교 졸업하구, 또 대학교 졸업하구, 옥희가 조선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돼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응! 옥희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나?"
"이만큼."
하고 나는 두 팔을 짝 벌리어 보였습니다.
"응? 얼만큼? 응! 그만큼! 언제나, 언제나, 옥희는 엄마만 사랑하지. 그리구 공부두 잘하구, 그리구 훌륭한 사람이 되구……."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또 울까 봐 겁이 나서,
"엄마, 이만큼, 이만큼."
하면서 두 팔을 짝짝 벌리었습니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습니다.
"응, 그래, 옥희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우리 옥희 하나문 그만이야. 그렇지, 옥희야."
"응!"
어머니는 나를 당기어서 꼭 껴안고 내 가슴이 막혀 들어올 때까지 자꾸만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날 밤 저녁밥 먹고 나니까 어머니는 나를 불러 앉히고 머리를 새로 빗겨 주었습니다. 댕기도 새 댕기를 드려 주고, 바지, 저고리, 치마 모두 새것을 꺼내 입혀 주었습니다.
"엄마, 어디 가?"
하고 물으니까,
"아니."
하고 웃음을 띄우면서 대답합니다. 그러더니 풍금 옆에서 새로 다린 하얀 손수건을 내리어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이 손수건, 저 사랑 아저씨 손수건인데, 이것 아저씨 갖다 드리구 와, 응. 오래 있지 말구 손수건만 갖다 드리구 이내 와, 응."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수건을 들고 사랑으로 나가면서 나는 그 손수건 접이 속에 무슨 발각발각하는 종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마는 그것을 펴보지 않고 그냥 갖다가 아저씨에게 주었습니다.
아저씨는 방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손수건을 받는데, 웬일인지 아저씨는 이전처럼 나보고 빙그레 웃지도 않고 얼굴이 몹시 파래졌습니다. 그리고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면서 말 한마디 아니 하고 그 수건을 받더군요.
나는 어째 이상한 기분이 돌아서 아저씨 방에 들어가 앉지도 못하고 그냥 뒤돌아서 안방으로 들어왔지요. 어머니는 풍금 앞에 앉아서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지 가만히 있더군요. 나는 풍금 옆으로 가서 가만히 그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는 조용조용히 풍금을 타십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야요.
밤이 늦도록 어머니는 풍금을 타셨습니다. 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를 계속하고 또 계속하면서. 
13
여러 밤을 자고 난 어떤 날 오후에 나는 오래간만에 아저씨 방엘 나가 보았더니 아저씨가 짐을 싸느라고 분주하겠지요. 내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린 다음부터는 웬일인지 아저씨가 나를 보아도 언제나 퍽 슬픈 사람,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만 보고 있는 고로 나도 그리 자주 놀러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아저씨, 어디 가우?"
"응, 멀리루 간다."
"언제?"
"오늘."
"기차 타구?"
"응, 기차 타구."
"갔다가 언제 또 오우?"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없이 서랍에서 이쁜 인형을 하나 꺼내서 내게 주었습니다.
"옥희, 이것 가져, 응. 옥희는 아저씨 가구 나문 아저씨 이내 잊어버리구 말겠지!"
나는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그래서,
"아니."
하고 얼른 대답하고 인형을 안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 이것 봐. 아저씨가 이것 나 줬다우. 아저씨가 오늘 기차 타구 먼 데루 간대."
하고 내가 말했으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엄마, 아저씨 왜 가우?"
"학교 방학했으니깐 가지."
"어디루 가우?"
"아저씨 집으루 가지, 어디루 가."
"갔다가 또 오우?"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난 아저씨 가는 거 나쁘다."
하고 입을 쫑긋했으나, 어머니는 그 말은 대답 않고,
"옥희야, 벽장에 가서 달걀 몇 알 남았나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깡총깡총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달걀은 여섯 알이 있었습니다.
"여스 알."
하고 나는 소리쳤습니다.
"응, 다 가지구 이리 나오너라."
어머니는 그 달걀 여섯 알을 다 삶았습니다. 그 삶은 달걀 여섯 알을 손수건에 싸놓고 또 반지에 소금을 조금 싸서 한 귀퉁이에 넣었습니다.
"옥희야, 너 이것 갖다 아저씨 드리구, 가시다가 찻간에서 잡수시랜다구, 응." 
14
그날 오후에 아저씨가 떠나간 다음 나는 방에서 아저씨가 준 인형을 업고 자장자장 잠을 재우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들어오시더니,
"옥희야, 우리 뒷동산에 바람이나 쐬러 올라갈까?"
하십니다.
"응, 가, 가."
하면서 나는 좋아 덤비었습니다.
잠깐 다녀올 터이니 집을 보고 있으라고 외삼촌에게 이르고 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나섰습니다.
"엄마, 나 저, 아저씨가 준 인형 가지고 가?"
"그러렴."
나는 인형을 안고 어머니 손목을 잡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면 정거장이 빤히 내려다보입니다.
"엄마, 저 정거장 봐. 기차는 없군."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가만히 서 계십니다. 사르르 바람이 와서 어머니 모시 치맛자락을 산들산들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산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어머니는 다른 때보다도 더한층 이쁘게 보였습니다.
저편 산모퉁이에서 기차가 나타났습니다.
"아, 저기 기차 온다."
하고 나는 좋아서 소리쳤습니다.
기차는 정거장에 잠시 머물더니 금시에 삑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움직였습니다.
"기차 떠난다."
하면서 나는 손뼉을 쳤습니다. 기차가 저편 산모퉁이 뒤로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하늘 위로 모두 흩어져 없어질 때까지, 어머니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바라다보았습니다.
뒷동산에서 내려오자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이때까지 뚜껑을 늘 열어 두었던 풍금 뚜껑을 닫으십니다. 그리고는 거기 쇠를 채우고 그 위에다가 이전 모양으로 반짇그릇을 얹어 놓으십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찬송가를 맥없이 들고 뒤적뒤적하시더니 빼빼 마른 꽃송이를 그 갈피에서 집어 내시더니,
"옥희야, 이것 내다버려라."
하고 그 마른 꽃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 꽃은 내가 유치원에서 갖다가 어머니께 드렸던 그 꽃입니다. 그러자 옆대문이 삐걱 하더니,
"달걀 사소."
하고 매일 오는 달걀장수 노친네가 달걀 광주리를 이고 들어왔습니다.
"인젠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
하시는 어머니 목소리는 맥이 한푼 어치도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 말씀에 놀라서 떼를 좀 써보려 했으나 석양에 빤히 비치는 어머니 얼굴을 볼 때 그 용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주신 인형 귀에다가 내 입을 갖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었습니다.
"얘, 우리 엄마가 거짓부리 썩 잘하누나. 내가 달걀 좋아하는 줄 잘 알문성 생 먹을 사람이 없대누나. 떼를 좀 쓰구 싶다만 저 우리 엄마 얼굴을 좀 봐라. 어쩌문 저리두 새파래졌을까? 아마 어디가 아픈가 보다."
라고요. 

출전:조광1(193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