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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31일 수요일

사과 한 알


몹시 춥고 암울한 날이었다. 
1942년 겨울.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서는 다른 날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종잇장에 불과한 얇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추위에 떨며 서 있었다. 

내게 이런 악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 놀고 있을 나이였다. 

미래를 계획하고, 성장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갖는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나이였다. 

그러나 그 꿈들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자가 아니었다. 

집에서 붙잡혀 수만 명의 다른 유태인과 힘께 이곳에 끌려온 이후로 나는 하루하루, 순간 순간을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거의 죽은 상태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철조망이 둘러쳐진 담장 곁을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있었다. 

추위로부터 체온을 지키기 위해 앙상하게 마른 몸을 두 팔로 감싸고서. 

나는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도 오랫동안 배가 고팠다. 
음식은 꿈 속에나 있었다. 

날마다 사람들은 사라져갔고, 행복한 과거는 단지 꿈 속의 일에 불과했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순간 철조망 건너편을 지나가고 있는 한 소녀가 눈에 띄었다. 

그녀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슬픈 눈이었다. 
그 눈은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한다는 그런 눈이었다. 

나는 낯선 소녀가 가련한 모습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호주머니 안에 손을 넣더니 빨간 사과 하나를 꺼냈다. 
아름답고 광택이 나는 빨간 사과였다. 

아, 저런 사과를 먹어 본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그녀는 조심스레 왼쪽 오른쪽을 살피더니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그 사과를 철조망 너머로 던졌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그것을 집어들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손가락을 떨면서......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세계에 이 사과 한 알은 생명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는 그 소녀가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다음날, 나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똑같은 시간에 다시 철조망 근처로 나갔다. 

물론 그 소녀가 다시 나오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갇혀 있는 나에게는 아무리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한 줄기의 희망이 필요했다. 

그녀는 나에게 희망의 끈을 던져 주었고, 난 그 끈을 단단히 붙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는 나를 위해 사과를 가져왔다. 

그녀는 어제와 똑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철조망 너머로 사과를 던져주었다. 

이번에는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내가 공중에서 그 사과를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볼 수 있도록 그것을 높이 쳐들었다. 
그녀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나를 동정하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만에 처음으로 난 내 가슴 속에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일곱 달 동안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났다. 

어떤 때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냥 사과만 오갔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내 허기진 배만 채워 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내 영혼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의 영혼을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다른 수용소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삶의 끝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나와 내 친구의 만남이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튿날 소녀를 만나 인사를 하면서 내 가슴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나는 떨려서 거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단지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사과를 갖고 오지마. 
나는 다른 수용소로 가게 될거야. 
우린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야." 

나는 자제력을 잃기 전에 등을 돌려 철조망으로부터 달아났다. 
나는 차마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만일 뒤돌아보았다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았을 것이고, 그녀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여러 달이 지나고 악몽과도 같은 고통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소녀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 주었다. 

언제라도 눈을 감기만 하면 마음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그 친절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라도 그녀가 건네 주는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렇듯이 갑자기 악몽이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난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가족을 포함해 나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소녀에 대한 기억을 기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나로 하녀금 삶의 의지를 갖게 했고, 나는 미국으로 건너와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여러 해가 흘러, 1957년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뉴욕 시에 살고 있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자기가 아는 어떤 여성을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나는 마지못해 그 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로마라는 이름의 그녀는 좋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나처럼 이민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민자들은 전쟁의 세월에 대해 물을 때 서로 상처를 주지 않지 위해 조심을 하곤 했다. 

그녀도 그것을 의식해선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쟁 동안에는 어디에 있었나요?" 

내가 대답했다. 
"독일에 있는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로마는 문득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지었다. 
고통스럽지만 달콤한 어떤 기억을 또올리는 듯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러죠?" 

로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였을 때, 나는 유태인 강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었어요. 

그 곳에 한 소년이 갇혀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나는 날마다 그 소년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사과를 갖다 주었어요. 

철조망 너머로 사과를 던져 주면 그 소년은 무척 행복해했지요." 

로마는 무겁게 한숨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가를 설명하기는 무척 어려워요. 
어쨌든 우리는 그때 너무 어렸고, 몇 마디 얘기밖에 주고받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둘 다 서로를 무척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소년이 다른 많은 유태인처럼 처형되었으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았던 그 여러 달 동안의 그의 모습만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로마에게 물었다. 

"그 소년이 어느 날 당신에게 '내일부터는 사과를 가져오지마. 
난 다른 수용소로 끌려가니까' 라고 말하지 않던가요?" 

로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알죠?"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소년이니까요, 로마." 

한참 동안 우리 둘 다 그렇게 말이 없었다. 
오직 침묵만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차츰 시간의 장막이 걷히면서 우리는 눈동자 뒤에 있는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았다. 

우리가 한때 그토록 사랑했고, 그 이후에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그 영혼을. 

마침내 내가 말했다. 
"로마, 난 한동안 당신과 헤어져야만 했소. 
하지만 이제 다시는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소.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당신과 영원히 함꼐 하고 싶소. 
나와 결혼해 주겠소?" 

나는 그녀의 눈에서 한때 내가 보았던 그 반짝임을 다시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네,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그 여러 달 동안 그토록 갈망했지만 철조망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간절한 포옹이었다. 

이제 어떤 것도 다시는 우리를 방해할 수 없었다. 

내가 로마와 다시 만난 그날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운명은 그 전쟁 기간 동안 나에게 회망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만나게 했고,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다시 재회하게 한 것이다. 

1996년 봄, 발렌타인 데이에 나는 로마와 함께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나는 수천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날마다 내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말했다. 

"로마, 당신은 그 강제 수용소에서 내가 배가 고플 때 사과 한 알로 나를 먹여 주었소. 

그리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오. 
아무리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오. 
나에게는 매순간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오." 

<헤르만,로마 로젠발트 부부이야기-- 바바라 드 안젤리스 >

2019년 7월 30일 화요일

똥오줌가리는게 자랑거리^^^ 


"베르나르 베르베르" 의 「웃음」이란 책의 내용 중..
이런이야기가 있네요......

2세때는 ...
똥오줌가리는게 자랑거리^^^ 
 
3세때는 ...
이가 나는게 자랑거리^^^ 
 
12세때는 ...
친구들이 있다는게 자랑거리^^ 
 
18세때는 ...
자동차 운전할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20세때는 ...
사랑을할수있다는게 자랑거리^^ 
 
35세때는 ...
돈이 많은게 자랑거리^^ 
그 다음이 50세 인데.....
재밌는  사실이 있답니다.
이때부터는 자랑거리가
거꾸로 된다고 합니다.
50세때는 ...
돈이 많은게 자랑거리^^^ 
 
60세때는 ...
사랑을 할수있다는게 자랑거리^^ 
 
70세때는 ...
자동차 운전할수 있다는게 자랑거리^^ 
75세때는 ...
친구들이 남아있다는게 자랑거리^^^ 
 
80세때는 ...
이가 남아있다는게 자랑거리^^^ 
85세때는 ...
똥오줌을가릴수 있다는게 자랑거리^^^
결국.. 인생이란!~
너 나 할 것 없이 똥,
오줌 가리는 것^^
배워서 자랑스러워 하다가
사는날 동안 똥오줌.....
내손으로 가리는 걸로
마감 한다는 것!
 
어찌보면
세상 살아 간다는 것이
그리 자랑할것도없고^^
욕심에 쩔어 살 것도없고^^
그냥 오늘 하루를 선물 받은것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
감사하는 맘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어  늙어서는
친구가 있다는게
자랑거리라고 합니다.
친구는 나무와 같아서
바라보고도 웃고^^
함께 울어아하는 ^^
소중하게 서로 바라만보아도 무엇을생각하는지 알고^^
함께 생각해주는 그런사람들이 늙어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 입니다.
늙어도
함께할 친구들이 있는지
둘러보시는 소중한^^
오늘 되시기 바랍니다~~^^

박정희 대통령 대일국교정상화회담 결과에 대한 국민담화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어제 일본 동경에서 한일양국의 전권대표 사이에는 양국 국교정상화에 관한 제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되었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우리나라의 가장 어렵고도 커다란 외교 숙제였으며, 또한 내가 총선거 때에 공약으로 내건 바 있는 이 문제가 마침내 해결을 본 데 즈음하여,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평소 소신의 일단을 밝혀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얻고자 합니다.

한 민족, 한 나라가 그의 운명을 개척하고 전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국제정세와 세계조류에 적응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국제정세를 도외시하고 세계대세에 역행하는 국가판단이 우리에게 어떠한 불행을 가져 오고야 말았는가는 바로 이조말엽에 우리 민족이 치른 뼈저린 경험이 실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국제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적은 국제공산주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 빼앗겨서는 안되지만, 더욱이 공산주의와 싸워 이기기 위하여서는 우리와 손잡을 수 있고 벗이 될 수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고 내일의 조국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감정을 참고 씻어버리는 것이 진실로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나의 확고부동한 신념입니다. 더구나 중공의 위협이 나날이 증대하여 가고 있고, 국제사회가 이른바 다원적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위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반세기 전에 우리가 겪은 민족의 수난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민족의 번영을 기약하는 현명한 판단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아니 수백년간 우리는 일본과 깊은 원한 속에 살아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독립을 말살하였고, 그들은 우리의 부모형제를 살상했고, 그들은 우리의 재산을 착취했습니다. 과거만을 따진다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사무친 감정은 어느모로 보나 불구대천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그렇다고 우리는 이 각박한 국제사회의 경쟁속에서 지난 날의 감정에만 집착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한일간의 국교를 정상화함에 있어서 나와 현정부가 크게 배려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원통스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호혜평등, 협동, 전진의 앞날을 다짐하는 기본관계의 설정이었고, 다음으로는 대일평화조약에 규정된 청구권 문제, 한국 연안의 어족자원보호와 100만 어민의 장래를 보장하는 어업협정문제, 일본땅에 버려진 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60만의 재일교포의 처우문제, 그리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돌려받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제문제가 우리만의 희망과 주장대로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제반여건과 선진제국의 외교관례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데 선의를 다 했다는 사실입니다.

외교란 상대가 있는 것이고 또 일방적 강요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치와 조리를 따져 상호간에 납득을 해야 비로소 타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한일간의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안전과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읍니다.

양국은 비단 지리적으로 가깝다든가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극동의 같은 자유국가로서 공동운명의 길을 걷고 있읍니다.

이 공동의 관계는 호혜평등의 관계요, 상호협력의 관계이며, 또한 상호보완의 관계입니다. 한일 양국간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이 순간에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깊이 다짐할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독립국가로서의 자주정신과 주체의식이 더욱 확고해야 하겠다는 것이며, 아시아에 있어 반공의 상징적인 국가라는 자부와 긍지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국민의 일부 중에 한일협정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 또는 군사적 경제적 침략을 자초한다는 등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매국적이라고는 극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의 주장이 정부를 편달하고, 정부가 하는 협상의 입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이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주장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예속이 될까 걱정을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굴한 생각, 이 것이야말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본사람하고 맞서면 언제든지 우리가 먹힌다 하는 이 열등의식부터 우리는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고 나가겠다는 우월감은 왜 가져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는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의 민족국가가 새로이 부흥할 때는 반드시 민족 전체에 넘쳐흐르는 자신과 용기와 긍지가 있어야 하고 적극성과 진취성이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는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패배주의와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인 소극주의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그 것은 비생산적인 사이비행세, 이것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속은 텅텅 비고도 겉치레만 번지레 꾸미려 하는 권위주의, 명분주의, 그리고 언행불일치주의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과감하게 씻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가진 국민이 됩시다. 자신은 희망인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민족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입니다. 응당한 노력을 지불함이 없이 공짜로 무엇이 되려니, 또는 무엇이 생기려니 하는 생각은 자신력을 완전히 상실한 비굴한 사고방식입니다.

지금 일부 국민들 중에 한일국교정상화가 되면 우리는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지만, 이러한 열등의식은 버려야 하는 동시에, 이와 반대로 국교정상화가 되면 당장에 우리가 큰 덕을 볼 것이라는 천박한 생각도 우리에게는 절대 금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마디로 한일국교정상화가 앞으로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느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관건은, 우리의 주체의식이 어느 정도 건재하느냐, 우리의 자세가 얼마나 바르고 우리의 각오가 얼마나 굳으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못하고,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문화인이나를 할 것 없이 국리민복을 망각하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일이 있을진대, 이번에 체결된 모든 협정은 그야말로 치욕적인 제2의 을사조약이 된다는 것을 2,700만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다같이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일본 국민들에게도 밝혀 둘 말이 있습니다. 우리와 그대들간에 이루어졌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선린으로써 다시 손을 마주잡게 된 것은 우리 양국 국민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과들이 오늘의 일본 국민이나 오늘의 세대, 선도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무조인이 이루어진 이 순간에, 침통한 표정과 착잡한 심정으로 과거의 구원을 억지로 누르고, 다시 손을 잡는 한국 국민들의 이 심정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아 넘기거나 결코 소홀히 생각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두 나라 국민이 참다운 선린과 우방이 될 수 있고 없는 것은 이제부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체결된 협정문서의 조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그대들의 한국이나 한국 국민에 대한 자세와 성의 여하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은 역시 믿을 수 없는 국민이다 하는 대일불신 감정이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또다시 싹트기 시작한다면 이번에 체결된 제협정은 아무런 의의를 지니지 못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남은 절차는 국회의 비준입니다. 물론 국회는 국회대로 충분한 논의를 하겠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도 특별한 관심과 참여의식으로 이 문제의 마지막 매듭에 현명한 판단과 아낌없는 협조가 있을 것을 나는 확신해 마지 않습니다.

1965년 6월 23일 대통령 박정희

2019년 7월 29일 월요일

인간삼락(人間三樂)


人間三樂이란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합니다.

●논어(論語)맨 앞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三樂은...
1)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2)벗이 멀리서 찾아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3)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 아니 겠는가?

●상촌(象村)신흠 (申欽1566~1628)의
    三樂은- - - -
1)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2)문 열고 마음 맞는 손님을 맞는 것,
3)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三樂은
    이러합니다.
1)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돼 오는 것,
2)가난하고 궁색할 때 지나던 곳을 출세해
    오는 것,
3)나 혼자 외롭게 찾던 곳을 마음맞는 좋은
    벗들과 어울려 오는 것입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 가지 즐거움
    (三樂)은.....
1)일 독(一讀),
2)이 호색(二好色)
3)삼 음주(三飮酒)라 했습니다.
책 읽고 글 쓰며 늘 배우는 선비정신,
사랑하는 이와의 변함없는 애정,
벗과 함께 어울리는 풍류입니다.

●공자(孔子)가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다가
    비파를  들고 한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공자가 뭐가 그리 즐거우시냐고 묻자 그는
    말했습니다.
1)사람으로 태어난 것 
2)남자로 태어난 것,
3)95세가 됐을 만큼 장수하는 것을 꼽았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人間 三樂은 무엇 인지요?
    스스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아 즐기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2019년 7월 24일 수요일

신일본제철이란 어떤 회사인가 ??

문정부가 문제삼고 있는 신일본제철이란 어떤 회사인가 ???
일제시대에 강제징용이란 것은 없었다. 1940년대 초에 일본은 전쟁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본 남자들이 모두 징병되어 태평양 군도로 끌려가니까 공장 일손이 부족하여 몇몇 조선인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열린 것이었다. 생활비를 벌려 서독에 간 광부들이 강제징용당한 것인가? 강제징용이란 말은 3~40년이 지난 후 조총련이 남한에서 종북좌익 세력을 키우며 한일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한 심리전을 목적으로 지어낸 용어였다.
1970년대 초에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제철을 건설하려 하셨을 때 한국에 돈을 빌려주는 나라가 없었다. 미국은 돈을 빌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한국에서 제철공장을 짓는 것을 반대했었다. 오직 일본만 3억 달러 차관을 제공하였고 서독도 1억불 차관을 공여하여 힘을 보탯다. 포항제철이 공장을 지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회사가 신일본제철이요 그회사 기술자들이다. 포항제철 공장을 지어주고, 공장을 가동하여 주어 1973년부터 미국으로 철강 수출이 시작되었는데 그때 번 외화가 전부 한국인 주머니로 들어갔지 단 한 푼도 일본인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박태준이 야금야금 철강 기술을 훔쳐가는 것에 대해 신일본제철은 호의적으로 침묵해 주어 한국이 무료로 100% 기술이전을 해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신일본제철이 왜 이렇게 일본의 밥벌이 수단이자 산업첩보인 기술을 무료로 제공하고, 포항제철 공장을 지어주고, 일본 기술자들을 파견해 주었을까?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 이유는 신일본제철 사장이 박태준 사장의 와세다 대학교 동문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과거에 신일본제철 직원들 중에 조선인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들이 호감을 가지고 무료 봉사하며, 로열티도 전혀 받지않고, 포항제철을 지어주고 기술 이전을 해 주었던 것이다.
신일본제철이 나중에 일본제철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그래서 지금 문강도가 일본제철로부터 10억원 뜯어내겠다며 일본제철 국내 재산을 압류하여 매각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제철이 포항제철을 지어주고 완전 무료로 기술 이전을 해주었기 때문에 광양제철도 건설될 수 있었고, 그래서 자동차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 가능하였는데, 이때 미쯔비시가 기술을 제공해 주어 포항제철 건설 직후 현대자동차가 자동차를 생산하여 수출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조선사업 역시 일본제철이 포항제철을 지어준 덕택이었다. 만약 일본제철이 포항제철을 지어주지 않았더라면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육성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서구에서 200년 걸리는 중화학공업 발전을 한국에서 단 10년만에 일구어낸데에는 이처럼 가장 중요한 적기에 일본제철이 포항제철을 지어준 덕택이 컸던 것이다.
그러면 일본제철은 로열티를 요구하기는 커녕 한국에서 무료로 일해준 것에 대한 보상금도 요구하지 않는데, 왜 문재인은 일본체철과 미쯔비시로부터 10억원을 강제로 받아내겠다며 일본제철 국내재산을 압류하여 국제적 문제가 되게 하는가? 한국과 일본 사이를 이간질하여 소위 “삼각동맹”을 부수려는 것이 북괴가 70년 동안 변함없이 추구해온 기본 대남전략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LA에서 김대령> (펌 채무용 WAC)

한국의 Spirit은 무엇인가?

한국의 Spirit은 무엇인가?
                       <Email으로도송출했습니다>
정말 국민들이 문제다.
홍콩은 되는데 왜 우리는 침묵(沈黙)하는가?
분노(忿怒)는 최소한의 생명줄인데 그것마저 없다면 죽은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과 일본의 무역역조가 심해 한국의 요청으로 일본구매사절단이 결성되고 후쿠다라는 사람이 단장이 되어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지방 공단을 방문하고 구매할 대상이나 품목, 업체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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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으로 돌아간 구매(購買)사절단은 경과보고를 위한 회의에서 구매사절단에 참가자들은 단장에게 한국이 공업화(工業化)를 조기에 이루기 위해 지방 공단에 그렇게 공장을 많이 짓고 있으니 한국 물건을 사줄 것이 아니라 한국을 규제(規制)하고 다시 주저 앉혀야 한다는 의견개진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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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의견에 후쿠다 단장은 “당신들의 의견이 틀렸소. 내가 보기에는 한국은 일본을 쫒아오기가 어려울 것이요.
내가 한국에서 유심히 관찰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한국을 20여 일 동안 여행했지만 책을 읽는 한국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순간은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가 없소. 한국은 일본이 걱정할 나라가 아니오.”라고 말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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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평가다. 그러면 한국과 일본사람들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
2017년 문화체육부 국민 실태 조사에서 나타난 연간 평균 독서량은 한국의 성인은 8.3권이라 한다. 일본은 40권이다. 일본은 우리에 비해 무려 5배 정도 책을 더 많이 읽고 있다. 그 외에 미국은 12권, 프랑스 20권,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60권 정도의 독서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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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의 성인들 40%는 일 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무지하고 억지 부리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닐까?

외부 포장(包裝)은 세계적 수준이나 내용물은 저급이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년 간 약 5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다.
유대인들 수준이다.

독서가 주는 중요한 메릿은 인간의 생각을 깊게 하고 진지한 성찰을 도와준다.  인문학은  사람들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은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독서량이 적으니 한국 사람들은 너 나를 구분하지 않고 생각의 힘이 약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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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나?”하고 물으면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지 뭐,”라고 대답한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니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도 아무 생각없이 하니 이런 모습인가? 또 국민들도 생각이 없으니
정치꾼들이 벌이는 나라 망치는 짓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과 분별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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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바로 국민의 독서량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2018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혼조 다스쿠(76세) 교토대 교수는 일본의 24번째 노벨수상자다.
그는 과학잡지인 네이처誌에 오른 기사라도 자신이 납득(納得)될 때까지 어떤 가설(假說)도 절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과 신념이다.
그의 좌우명은 '유지경성(有志竟成)' 즉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많은 독서와 오랜 묵상과 깊은 사유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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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량이 형편없으니 한국 사람들은 합리적(合理的)이고 논리적(論理的)이지 않고 이성적(理性的)인 생각이나 말보다는 감으로 하고 억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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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를 많이 쓴다. 법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떼를 써서 그 법과 원칙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떼씀과 우김이 법보다 상위에 있으면 그런 국가는 원시 미개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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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 참으로 해괴하고 참혹하다. 우선 국방(國防)이 무너지고 있다. 주적인 북한의 목선이 우리 영해를 무단 침략해도 군인도 해군도 해경도 아무도 모르고 있다.
해군 제2함대 사령부의 병기고 앞에 수장한 사람이 나타나서 군부대 동향을 조사하고 도망쳐도 잡지도 못했다.
그러고선 군인들이 자작극으로 자수하면 적당히 끝난다고 지휘관이 부하들을 모아 놓고 조작을 모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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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군대가 아니라 그냥 오합지졸(烏合之卒)의 사기꾼 집단이다. 국군통수권자의 방침이 그런가? 그래서 개판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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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뿐인가?
경제도 폭망하고 외교는 실종되고 민생은 파탄 나고 그래도 주적인 북괴에 대한 지원을 못해서 안달을 내는 이런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50%라고 하니 아연실색이다. 도대체 어느 구석 한 곳도 잘 되는 것이 전혀 없는
나라도 아닌 상태나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이런 정부를 지지하는 자가 50%라니 이게 나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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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물질적 근대화는 이루었지만 정신적 근대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를 다루는 일에 있어선 이들이 국가 경영의 책임자들인가 싶어 놀란다.

무능한 정부와 공무원들이 문제를 만들고 해결은 민간인과 기업보고 하라니 이건 정상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존재 가치가 없는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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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본의 수출 금지 조치를 이용하여 한국 내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선동, 부추켜서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선거에 활용하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고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관제로 하는 듯 하고 그렇지 않고 합리적 대화해결을 촉구하는 국민들을 토착왜구라고 공직자가 규정하는 것에서는 정말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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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이 공직에 있는 것 아닌가?
이런 글을 쓰니 소직도 토착왜구나 친일파로 규정하겠지 ᆢ
반일감정을 유발해  정치와 선거에 이용해 먹기 위해 국민들을 편을 
가르고 경제를 파탄내고 기업을 망하게 하는 의도를 국민들이 진정 모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체 하는 것인가? 이게 국민들 수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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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50%가 지지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수준이 정말 형편없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사람들이 생각이 없거나 생각 수준이 단순 무식하다는 의미다. 단무지다. 즉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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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능력은 바로 독서에서 나온다. 책을 읽지 않으니 생각할 힘이나 능력이 없는 것이다. 한국의 40% 성인들이 일 년 동안 책 한권 읽지 않으니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일본은 1789년 일어난 프랑스 시민 혁명에 관련한 책인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을 찾아내고 1881년에 번역해서 출판하였고 근대국가의 연구와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읽게 하여 그들의 근대국가에 대한 확고한 사상적 무장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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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이 책이 2008년 12월에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란 제목으로 한길사에서 첫 출판됐다. 무려 시차가 127년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근대 국가사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확고하고 품격 있는  민주시민으로서 의식이 없다.

그러니 주사파들이 지금 펼치는 해괴한 짓을 보고도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지지한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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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생각없는 의식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탐욕(貪慾)과 사기(詐欺)가 만연한 사회다. 다소 오랜 된 자료지만 2015년 8월 3일 방송된 MBC뉴스 보도에 의하면 2007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죄가 없는 사람을 무고죄(誣告罪)로 기소한 건수는 일본(日本)과 비교하여 217배 정도로 많다.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500배 차이가 난다고 하니 얼마나 품성이 선하지 못한가를 알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는다니 놀랄 일이다. 또 거짓으로 증언하는 위증죄도 비슷한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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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들도 조작(造作)과 거짓말에 전문성이 높다. 대통령이란 자도거짓말을 잘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품성들이니 한국은 보이스 피싱에 속아 피해도 제일 많은 나라다. 거짓말에 잘 속고 유언비어(流言蜚語)에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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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사상(思想)이나 가치(價値)나 삶의 신념(信念)도 철학(哲學)도 없다. 생각의 내공(內工)이 약하다.

또 탐욕(貪慾)스러우니 욕심(慾心)이 많고 공짜에 약하다. 이러한 심리적인 결함들을 정치꾼들은 거짓말과 조작으로 잘 이용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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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나 신문에 그리고 뭉가  주사파 일당들이 거짓말을 해대도 백성들은 아무 생각이 없으니 잘 속고 있고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개돼지로 취급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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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서 빨갱이라고 노래하는 가수놈이 있어도 침묵하고 오히려 동조하는 이 어리석은 군중들이 있다는  것이 충격이다. 이 모든 것들이 생각의 능력이 없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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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대한민국 파괴작업이 시작되었거나 장기간 의도적으로 빨갱이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 선무공작의 덕택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충격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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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의 Spirit은 무엇인가? 영혼은 있는 사람들인가?
이제라도 진지한 성찰로 생각의 힘을 살리고 제정신을 차려 나라를 주사파들에게서 되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내년 선거는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가 사라지는가 하는 절체절명의 선거다.
제발 국민들이 깨어나야 나라를 구한다. -소나무

===========길조의 카톡에서. 2019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