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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4일 토요일

📚 이인선 수녀님의 글🌷(* 이런 수녀님도 있네요~!)나는 더 이상은 정의를외면한 사랑을 신뢰할 수 없다. 양들이 死地로 내몰리고 있는 처절한 상황 앞에서도 눈 귀 입을 닫은 목자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다.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직장상사에게 굴욕을당해본 적도 없고,자기 방 청소며, 자신의 옷 빨래며,,,자신이 먹을 밥 한번 끓여 먹으려고 물에 손 한번 담가 본적이라곤 없는 가톨릭의 추기경, 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의 고결하고 영성적인 말씀들이 가슴에 와 닿을 리가 없다.언제부터인지 우리 교회에는 가난한사람들의 권리보호를외면하고, 제도교회의사리사욕에만 몰두하는목자 아닌 관리자들이득실거린다. 고급승용차, 고급음식, 골프, 성지순례 해외여행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부자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 자신이 부자이며특권층이 되어버린그토록 많은 성직자,수도자들의 모습이아름다울 리가 없다.주교 문장에 쓰인 멋스런모토와 그들의 화려한 복장, 가슴 위의 빛나는 십자가를 수난과 처참한 죽음의예수님의 십자가와도무지 연결시킬 재간이 없다. 나날이 늘어나는 뱃살 걱정이며 지나치게 기름진 그들의 미소와 생존의 싸움에 지쳐있는 사람들과는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또한 가난을 서원한 수도자들 역시 그리 가난하지가 않다. 수도원에서는 아무도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다. 안정된 공간에서 해주는밥을 얻어먹으면서최소한의 노동으로최대한의 대접을 받고 산다. 어딜 가도 수녀님,수녀님 하면서 콩나물 값이라도 깎아주려는 고마운 분들 속에서 고마운 줄 모르고 덥석 덥석 받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간다. 말만 복음을 쏟아 놓았지 몸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며, 아기를 낳아보고, 남편 자식 때문에 속 썩어 보고, 시댁친정 식구들에게 시달려 보며 인내와 희생을 해본 적이라곤 없는 탓에철딱서니 없는 과년한유아들이 없지 않다.수도복 입었다고 행세할 무엇이 있었던가? 본인이 원해서 하는 독신생활에 자랑할 무엇이 있었던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겸손하게 봉사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지 않는다면 수도복과 수도생활, 독신생활조차 그 의미가 희석된다.교구, 본당, 수도회의 일이 너무 바쁜 나머지 세상일에 눈을 돌릴 수 없다고 변명하고 책임 회피할 수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생명이 함부로 훼손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실의와도탄에 빠진 이 나라 정치 사회의 불의를 향해 단호하게 저항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수도자들이라도 결집하여 그래서는 안 된다고외쳐야 하지 않을까? 수도자들이라도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종교계가 소름끼치도록 조용하다. 이것은 무얼 뜻하는 걸까? 나 역시 작은 수녀에 불과하고 비겁하며 합리화하고회피하고도 싶다. 내가 비판한 사람들 못지않게 비판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는 뼈아픈 자의식으로 인해차라리 그 모든 것에서물러나서 침묵을 택하고도 싶다.그러나, 그러나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미룰 수없는 일처럼 보인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라는 아모스 예언자의 외침이내 심장에서 불꽃처럼뜨겁게 일어서고 있다.□ "나는 朴正熙란 이름 석 자로 족하다" 號도, 명예박사도 거부했던 그는 권력을 빙자한 군림(君臨)을 증오한 이였다.  朴正熙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낸 金聖鎭씨에 따르면 故 박정희 대통령은 號(호)가 없었다고 한다.  고령 朴씨 문중에서호를 지어 올린 적이 있는데, 이 보고를 받은 朴대통령은 "박정희란 이름 석 자로 충분하다"고 金 당시 대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朴대통령은 호를 쓴 적이 없다. 한 보좌관이 모 외국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주기로 했다는 보고를 하니 朴 대통령은 "박사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18년간 재임했으나, 흔한 명예박사 학위가 하나도 없다.  朴 대통령은 私信을 쓸 때에 절대로 '大統領 朴正熙'라고 하지 않았다.  '朴正熙 拜'라고만 했다. 朴 대통령은 자신의 생일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그의 생일은 호적에 잘못 적힌 대로 알려져 한동안 생일이 아닌 날에 장관들이 축하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이를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호, 명예박사,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朴 대통령은 권위적인 것들을 생리적으로 싫어했다. 그럼에도 그가 지도한 체제는 권위주의 체제로 불린다. 그는 특히! 권력을 빙자한 군림을 증오했다. 그는 허례허식도 싫어했다. 항상 淸貧한 마음자세를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었다. 그가 죽을 때 '허름한 시계를 차고, 벗겨진 넥타이핀을 꽂고, 해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래서 당시 屍身을 검시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 박정희의 자연스런 眞面目이었다.온 국민이 애도하는 이건희에 대해서 이처럼 황당한 생각을 하는 이낙연....대통령 감...?!정신병원에 처넣어야 할 병자일 뿐이다...전라도 출신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작고하신 이건희 회장에게 일장훈계의 애도문을 발표했다. 비록 살아 생전에는 잘못한 게 많지만 죽어서라도 뉘우치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했다. 참 고약한 애도문이다.고 서정주 시인이 전라도에는 양반이 별로 없었다는 말씀을 하셨다가 전라인들이 들고 일어났던 사건이 새삼 떠오른다. 전라도는 죽은 사람에게도 훈계질을 하는 모양이지? 죽은 자의 환생 문제까지 걱정해 주는 마음은 가상하나 조선 8도 한 귀퉁이에 죽은 사람에게까지 훈계질하는 장례문화가 있는 줄은 몰랐다.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수녀 이인선

📚 이인선 수녀님의 글🌷
(* 이런 수녀님도 있네요~!)


나는 더 이상은 정의를
외면한 사랑을 신뢰할 수 없다. 

양들이 死地로 내몰리고 있는 처절한 상황 앞에서도 
눈 귀 입을 닫은 목자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다.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직장상사에게 굴욕을
당해본 적도 없고,
자기 방 청소며, 
자신의 옷 빨래며,,,

자신이 먹을 밥 한번 끓여 먹으려고 
물에 손 한번 담가 본적이라곤 없는 
가톨릭의 추기경, 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의 
고결하고 영성적인 말씀들이 
가슴에 와 닿을 리가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보호를
외면하고, 제도교회의
사리사욕에만 몰두하는
목자 아닌 관리자들이
득실거린다. 

고급승용차, 고급음식, 골프, 성지순례 해외여행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부자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 자신이 부자이며
특권층이 되어버린
그토록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의 모습이
아름다울 리가 없다.

주교 문장에 쓰인 멋스런
모토와 그들의 화려한 복장, 
가슴 위의 빛나는 십자가를 

수난과 처참한 죽음의
예수님의 십자가와
도무지 연결시킬 재간이 없다. 

나날이 늘어나는 뱃살 걱정이며 
지나치게 기름진 그들의 미소와 
생존의 싸움에 지쳐있는 사람들과는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또한 가난을 서원한 수도자들 
역시 그리 가난하지가 않다. 

수도원에서는 아무도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다. 

안정된 공간에서 해주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의 대접을 받고 산다. 

어딜 가도 수녀님,
수녀님 하면서 콩나물 값이라도 
깎아주려는 고마운 분들 속에서 
고마운 줄 모르고 덥석 덥석 
받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간다. 

말만 복음을 쏟아 놓았지 
몸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며, 

아기를 낳아보고, 
남편 자식 때문에 속 썩어 보고, 
시댁친정 식구들에게 시달려 보며 
인내와 희생을 해본 적이라곤 없는 탓에
철딱서니 없는 과년한
유아들이 없지 않다.

수도복 입었다고 
행세할 무엇이 있었던가? 
본인이 원해서 하는 독신생활에 
자랑할 무엇이 있었던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겸손하게 봉사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지 않는다면 
수도복과 수도생활, 독신생활조차 
그 의미가 희석된다.

교구, 본당, 수도회의 일이 
너무 바쁜 나머지 세상일에 
눈을 돌릴 수 없다고 변명하고 
책임 회피할 수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생명이 함부로 훼손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실의와
도탄에 빠진 이 나라 정치 
사회의 불의를 향해 단호하게 
저항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수도자들이라도 결집하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수도자들이라도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종교계가 소름끼치도록 조용하다. 
이것은 무얼 뜻하는 걸까? 

나 역시 작은 수녀에 불과하고 
비겁하며 합리화하고
회피하고도 싶다. 

내가 비판한 사람들 못지않게 
비판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는 
뼈아픈 자의식으로 인해
차라리 그 모든 것에서
물러나서 침묵을 택하고도 싶다.

그러나, 
그러나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미룰 수없는 일처럼 보인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라는  
아모스 예언자의 외침이
내 심장에서 불꽃처럼
뜨겁게 일어서고 있다.


□ "나는 朴正熙란 이름 석 자로 족하다"
 
號도, 명예박사도 거부했던 
그는 권력을 빙자한 군림(君臨)을 
증오한 이였다.  

朴正熙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낸 金聖鎭씨에 따르면 
故 박정희 대통령은 號(호)가 없었다고 한다.
  
고령 朴씨 문중에서
호를 지어 올린 적이 있는데, 
이 보고를 받은 朴대통령은 
"박정희란 이름 석 자로 충분하다"고 
金 당시 대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朴대통령은 
호를 쓴 적이 없다.
 
한 보좌관이 모 외국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주기로 했다는 
보고를 하니 朴 대통령은 
"박사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18년간 재임했으나, 
흔한 명예박사 학위가 하나도 없다.  

朴 대통령은 私信을 쓸 때에 
절대로 '大統領 朴正熙'라고 하지 않았다.  
'朴正熙 拜'라고만 했다.
 
朴 대통령은 자신의 생일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그의 생일은 호적에 잘못 적힌 대로 알려져 
한동안 생일이 아닌 날에 장관들이 축하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이를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호, 명예박사,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朴 대통령은 권위적인 것들을 생리적으로 싫어했다. 

그럼에도 그가 지도한 체제는 권위주의 체제로 불린다. 

그는 특히! 
권력을 빙자한 군림을 증오했다. 
그는 허례허식도 싫어했다.
 
항상 淸貧한 마음자세를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었다. 
그가 죽을 때 '허름한 시계를 차고, 
벗겨진 넥타이핀을 꽂고, 
해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래서 당시 屍身을 검시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 박정희의 자연스런 眞面目이었다.

온 국민이 애도하는 이건희에 대해서 이처럼 황당한 생각을 하는 이낙연....
대통령 감...?!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할 병자일 뿐이다...

전라도 출신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작고하신 이건희 회장에게 일장훈계의 애도문을 발표했다. 
비록 살아 생전에는 잘못한 게 많지만 죽어서라도 뉘우치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했다. 

참 고약한 애도문이다.
고 서정주 시인이 전라도에는 양반이 별로 없었다는 말씀을 하셨다가 전라인들이 들고 일어났던 사건이 새삼 떠오른다. 전라도는 죽은 사람에게도 
훈계질을 하는 모양이지? 

죽은 자의 환생 문제까지 
걱정해 주는 마음은 가상하나 
조선 8도 한 귀퉁이에 
죽은 사람에게까지 훈계질하는 
장례문화가 있는 줄은 몰랐다.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수녀 이인선

2021년 9월 2일 목요일

스티브잡스 출생의 비밀


《스티브잡스 출생의 비밀》

21세기 시대 천재였으며 5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스티브잡스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외 스티브 잡스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점은 그리 많치 않다.

그 이유는 스티브잡스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말하는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초청 강연에서 누구도 상상치 못한 고백을하게 된다.

강연에 나선 스티브잡스는 현재 자신이 현재 췌장암을 앓고 있으며, "저의 생모
는 젊은 미혼의 대학원생이었는데 저를 입양보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라고 자신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양부모 에게서 성장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연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스티브의 출생 배경을 듣게되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고 한다.

그는 1995년 샌프란시스코 선셋디트릿에 사는 결혼한지 9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 양부모가 바로 양아버지 폴잡스와 양어머니 클라라잡스였다.

양아버지인 폴 잡스는 미해군 출신으로 전역 후 기계공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어머니인 클라라 잡스는
회계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치 못한 형편이었다.

두 양부모는 스티브가 성장 후 자신의 출생에 대해 받을 충격을 생각해 스티브에게 입양 사실을 어릴적부터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양부모는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았지만 스티브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해주려 노력했고, 어머니 클라라잡스
는 스티브를 수영 강습에 등록시키기 위해 퇴근 후 허드렛일을 겸하면서까지 스티브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스티브가 어릴적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자, 온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등 여느 부모나 다름없이 스티브를 위해 할 수 있는건 다했다.

당시 기계공이었던 양아버지 폴은 스티브에게 전기공학를 가르쳐 주고, NASA 연구소 에 데려가는 등 스티브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 주었다. 
이런 계기로 훗날 스티브잡스가 회사를 창업하고 이회사를 세계최대 IT업체로 큰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005년 당시 연설중계를 TV로 시청하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스티브잡스의 생부였던 시리아 출신의 "압둘파타 존 잔달리"였다. 

스티브의 연설중계 내용이 스티브잡스 가 자신의 친아들 이라고 직감한  잔달리는 관련기관에 문의하게된다. 
얼마 후 관련기관 으로부터 받은 통보는 그의 직감이 맞아 떨어졌다.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친아들인게 맞다는 것이었다.

스티브잡스의 생부인 잔달리는 시리아의 부유한 집안의 출신으로 195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와 위스콘스대학
(Wisonsin Sniversity)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에서 조교로 재직중이던 당시 자신의 제자이자 스티브의 친모인 조앤 시불과 사랑에 빠져 스티브를 임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절실한 카톨릭신자 집안이었던 친모 조앤 아버지 즉 외할어버지의 결사적인 반대와 또한 시리아 무슬림집안이었던 친아버지 잔달리의 집안에서의 반대로 두 사람은 스티브를 임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루어 지지 못했다.

잔달리는 조앤에게 사랑의 도피를 제안했지만 조앤은 병든 아버지
(스티브의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쓰러질까 두려워 받아들이지 못했고 또한 절실한 카톨릭신자였던 어머니 조앤은 스티브를 포기할 수 없어 두 사람은 스티브를 지우지 않고 몰래 스티브를 낳아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스티브가 출생하자 2주 후 양부모인 잡스부부에게 직접 입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스티브를 입양보낸 지 두달 후 조앤의 아버지(스티브의 외할아버지)가 오랜 지병으로 사망하고 드디어 결혼 허락을 받은 두 사람은 곧바로 결혼과 동시에 스티브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미국 입양법상 한 번 입양보낸 아이를 다시 되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 4년만에 이혼하게 되고 평생 스티브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친아버지 잔달리는 50년만에 알게된 친자식이 스티브잡스라는 사실을 알고 당장이라도 스티브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스티브를 버린 죄책감과 스티브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다는 오해를 살까 두려워 고민 끝에 용기를 내 스티브잡스에게 이메일을 보내 스티브의 답장을 묵묵히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그렇게 고대하며 기다리던 스티브의 답장은 5년만에 왔지만.. "고맙습니다" 한 단어가 전부였다. 

스티브잡스의 어떤 인터뷰에서는 지금의 양부모가 1000% 자신의 부모님이며 그에 대한 감사함을 표시하는 반면, 자신의 생부와 생모에게는 정자와 난자의 은행에 불과하다는 말로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깊은 원망감을 내비추기도 했다.

그런 친부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진 후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스티브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저는 그저 아들과 커피 한 잔 할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또한 언젠간 만날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질뿐"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고 두 달만에  TV로 접한 자신의 아들인 스티브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잔달리는 결국 죽기 전 한 번만이라도 아들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은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모진 원망탓 이었던걸까? 스티브잡스의 장례식에 잔달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어떠한 인터뷰도 거절했다고 한다. 

잔달리는 1955년 초 미국으로 유학온 뒤 정치학을 공부하고 미국에 정착해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사업가로 변신해 2005년 당시 네바다주 한 대형카지노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엘리트부모에게 버림받고 가난한 양부모에게서 자라난 스티브잡스, 그의 짧은 생만큼이나 기구한 출생의 비밀, 게다가 사업가로서의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재기한 스티브잡스는 누가봐도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이자 21세기 천재라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