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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1일 수요일

인생, 이렇게 살아라


고달픈 인생

오죽하면 태어날 때 울기부터 했을까마는
양껏 벌어도 먹는 건 세끼요
기껏 살아도 백년은 꿈인 것을
못 산다고 슬퍼말고 못 났다고 비관마라

재물이 늘어나면 근심도 늘어나고
지위가 높아지면 외로움도 더하는 법
부자 중에 제일은 마음 편한 부자요
자리 중에 제일은 마음 비운 자리이다

하늘이 무너질 걱정도
하늘의 몫이지 사람의 몫이 아닐테니
웃으며 살아라
맘껏 웃으며 살아라

웃어야 복이 오고 웃어야 건강하다

물처럼 살아라

물을 벗하지 아니하고 어찌 불을 다스리리
사람이 사람인 이상
비운다 한들 다 비울 수 있을까 마는
어느날 분수에 넘치는 탐욕이 일거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이치에 맞게 양심을 거스르지 말 것이며
어느 순간 미움과 증오로 분노가 일거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분노의 언 가슴 용서로 물로 흘러보낼 일이다

물이 그릇을 탓하더냐
둥글면 둥근대로
모나면 모난대로
제 모습을 그릇에 맞추는 물처럼 사는 사람은
세상을 탓하지 아니하네
각박한 세상에서도 맑은 소리로
순수하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도리에 어긋남이 없고 노릇에 부족함이 없다

- 이채 -

누가 묻거든

누가 묻거든

얘야 묻지 말거라
인생을 알려면 세월에게 물어보렴

얘야 묻지 말거라
그걸 알려고 사계절을 살아봤는데 다시 오는 계절은 또 다른 대답을 가져다 주는구나

해마다 같은 꽃이 피고 해마다 같은 바람이 불고 해마다 같은 비가 오는데 나이가 들수록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니 내가 정답을 말해줄 수가 없구나

얘야 묻지 말거라
배운 게 있다면 수학 공식은 알려줄 수 있겠고 들은 게 있다면 아는 것은 가르쳐 줄 수 있으나 인생만큼은 내가 가르쳐 줄 게 없구나.

똑같은 사람이라면 내 너에게 내가 실패한 것을 말해줄 수 있으나,

사람은 저마다 달라서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니 얘야 묻지 말거라

그저 세월에 가끔 힘들면 해님에게 물어서 방긋이 웃는 법을 배우고
그저 가슴이 아플 땐.! 살포시 내리는 빗물한테 배우고,
고통을 잊고 싶을 땐 휘익하고 지나가는 바람에게 배워서,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렴

혹시나 누가 묻거든 온 세상이 선생님이니 자연에게 배웠다고 전해주렴.

인생도처다상수(人生到處多上手)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인생도처유청산 (人生到處有靑山) 이라 하여 뜻만 있으면어디든 사람살곳은 있다고 했고

이를 응용한듯한 유홍준 교수의 세상 곳곳에 인생의 고수가 있다는 말(人生到處有上手)이 요즈음처럼 나에게 절실히 다가온적은 없었다

또 비슷한 말이 논어에도 있다

子曰 三人行에 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이니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요
其不善者而改之(택기불선자이개지)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세 사람이 길을 감에 반드시 거기에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르고 그 선하지 않은 것을 고친다.” 라는 뜻이다

젊었을때나 한창 일할때는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
아니 내가 최고였다는 생각보다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보다도 더 무지했었을지도...

경험하고 눈에 보인것만 인정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생겨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 오는게 많아짐으로 인해 내가 아는게 우물안 개구리의 개구리보다 못하다는걸 알고..또 알아야 할것들이  점점 많아지져 간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참 세상에 고수가 많다는걸 느낀다

뒷산에 피어 있는 꽃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나를 보면서 오늘도 나는 평범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잘난척하는 많은 사람들...인생도처다상수(人生到處多上手)다 .

2018년 1월 30일 화요일

[結草報恩]

結 (맺을 결), 草 (풀 초)
報 (갚을 보), 恩 (은혜 은).

춘추시대, 진나라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아끼는 첩이 있었으나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어 눕자
본처의 아들인 위과에게 말했다.

“첩이 아직 젊으니 내가 죽거든
다른 곳에 시집 보내도록 해라.”

그런데 병이 깊어지자
말을 바꾸었다.

“나를 묻을 때 첩도 함께 묻어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는 난감했다.
처음에는 시집보내라고 했다가
다시 자신과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고민하던 그는
결국 첩을 살려 주어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깊어지면
생각이 흐려지기 마련이오.
정신이 맑을 때
아버지가 처음 남긴 유언을
따르는게 옳다고 생각하오.”

그 뒤,
진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침략당하자 위과는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터로 향했다.
양측이 싸움을 벌일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위과의 군대는 적군의 공격에 몰려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잡아매어
온 들판에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적군들은 말을 타고 공격해 오다
거기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그 틈을 타, 공격하자 위과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적의 용맹한 장수 두회도 사로잡았다.

위과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친정아버지요.
그대가 그대 아버지의
첫 번째 유언대로
내 딸을 살려 주어,
그 은혜에 보답했다오.”

이 이야기에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유래했는데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위과는
자신이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훗날, 그 대가를 받았다.
반대로 노인은 죽어서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았다.

우리에게 이 고사성어는
은혜를 베푼 사람이나
받은사람 모두에게
본 보기가 될만하다.(share)

그렇습니다
선악은
반드시 뿌린대로 거둡니다

선을 행하고 뿌리면
행운이 뒤따라 오지만,

은혜를 잊거나
보답을 악을 행하면 후일
큰 불행한 날이 연속됩니다

매사 은혜와 보답을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죽으면 흙됩니다. 즐겁게 살아 갑시다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호화로운 묘지 속에
묻힐 수도 있고
이름없는 풀섶에 버려질 수도 있으며
한 줌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기도 한다.

극락이나 천당은
인간의 생명이 있는 동안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理想鄕)일 뿐이다.

신(神)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신을 만든 것은 사람이다.

인간은 본래  나약해서
의지할 신(神)과 종교를 만들어놓고
스스로 그 카데고리 속에 갇혀서 살게 된 것이다.

즉, 사람은
人間으로 시작되어
人間으로 끝나는 것이다.

초대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왔고

허락하지 않았어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간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일진대,

거기에 어떤 탄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살아오면서
다소의 화를 내었을 것이다.

지나고 나니 그 화란 모두
나를 불태운 것이고,
상대를 불태운 것이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불태웠던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장맛이 나쁘면 집안이 기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메주를 담가서 새끼줄로 엮어 벽이나 천장에
걸어 집안의 온갖 미생물이 메주에 달라붙어 그것을 발효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가족 간에 다툼이 잦다면 그 다툼의 홧김에 의해
메주 균이 죽게 된다.
그래서 메주가 꺼멓게 되고 결국 장맛이 고약해진다.

이렇듯 무서운 것이 홧김인데,잔뜩 화를 품고서 아기나 사람을 대하면 어찌 될까?

싸움이 잦은 집에서 사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온몸에 부스럼과 종기를
달고 사는 것은 그 이유다.

노여운 기운은
항상 그 죄없는 아이들의 혈관 속을 흐른다.

살아있는 동안에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언날 바람처럼 떠나는 게
인생'입니다.⛪🍏🍁

2018년 1월 29일 월요일

1%의 행복

♥ ♥

  '텔마 톰슨' 이라는 여인은2차 세계대전 중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한 육군 장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제이브 사막'근처의  육군훈련소에
배속되어 왔습니다.
 
  남편 가까이에 있고자 이사를했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외롭고 고독하기만 했습니다.

  못마땅한 점은 이루 말할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훈련차나가고 오두막집에 혼자남게 되면,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이야기 상대라고는 고작 멕시코인과 인디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항상 모래 바람이 불어 음식물은 물론이고, 호흡하는 공기에도 모래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절로 신세 한탄이 나왔고,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생각이 들어 친정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당장이라도 짐을꾸려 집으로 돌아가겠으며, 이곳에더 눌러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편이 낫겠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형편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당장오라거나 자신을 위로해줄거라 기대했던 아버지의 답장은 '단 두 얘기' 뿐 이었습니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바퀴벌레를 세며,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다."

  너무 간단한 편지 내용에 처음엔
너무나 실망했지만, 이 두 얘기가 그녀의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문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던 그녀는,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그때부터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자신에게 밤하늘의 별이 무엇일까 ?  를 생각했고, 주변을 살피던 중, 원주민들과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반응은 그녀를 놀라게했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편물이라든가 도자기에 대해흥미를 보이면, 그들은 여행자에게는 팔지도 않던 소중한 것들을 이것저것 마구 선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선인장, 난초, 여호수아 나무 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했고, 사막의 식물들을 조사했으며, 사막의 낙조를 바라보기도 하고, 1백만 년 전 사막이 바다의 밑바닥이었을 무렵에 존재했을 법한 조개 껍질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
시켰을까요 !?

  '모제이브 사막' 은 변함이 없고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변한 것은, 바로 그녀 '자신' 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가짐' 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녀는'비참한 경험' 을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모험' 으로 바꾸었고, 새롭게 '발견한 세계' 에 자극 받고, 너무나 감격한나머지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성벽"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출판 싸인회' 에서 그녀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사막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너는 불행하다 !'
'너는 외톨이다 !'
'너는 희망이 없다 !' 라고  말하는 ~
'마귀의 소리' 도 들렸고,

  "너는 행복한사람이다 ! 이곳으로 너를 인도한 이는 바로 나 하나님이다.

  이곳에서 너의 새 꿈을 꾸려무나 "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도 들었습니다.

  "저는 '마귀의 소리' 에 귀를 막고 ~
'하나님의 소리' 를 들으면서,
오늘의 이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

  이와 같이 '행복' 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떤 상황' 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가짐' 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덥다고 짜증을 부리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면, 나머지 가족들까지 신경질을 부리게 되며, '부정적 바이러스'는 모든 가족에게 번져서 ~기분을 망치게 됩니다 !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하면 '살자' 가 되며, 영어의 '스트레스(stressed)' 를 반대로 하면,
'디저트(desserts)' 란 말이 됩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고,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고 살 권리가 있습니다 !

  우리는 절대로 "행복"하여야 합니다 !

  이해인님의  이란 시 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행복 하냐고 ~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살고있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 을 달면 ~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 이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 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 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

  어느 상품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
다시, 얼른 채워 넣어 ~

  "행복의 무게" 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좋았던 추억,
감미로운 음악,
파란하늘, 태양, 달, 별, 나무와 꽃들 ~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

  팽팽한 무게 싸움에서는
아주 '미미한' 무게라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 , 라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행복합니다 ! "

     (받은글)

2018년 1월 28일 일요일

선현들의 자취를 기리자 ! ! !

  선현들의 자취를 기리자  ! ! !

🎋
<<한 위대한 한국인을
    무릎 꿇고 추모하며>>

50년 전
1965년 7월 19일
오전 0시 35분

하와이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나이 아흔의 한국인 환자가
숨을 거두었다.

한 달 전부터 피를 토했다.
7월 18일엔 너무 많은 피가 쏟아졌다.

옆에는 평생 수발하던 아내,
대(代)라도 잇겠다며 들인 양자와
교민 한 사람밖에 없었다.

큰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숨이 끊어졌다.
어떤 어려움에도 우는 법이 없었던 아내가  오열했다.

전기 작가 이동욱씨는 영결식의 한 장면을  이렇게 전했다.

한 미국인 친구가 울부짖었다.

"내가 너를 알아!
내가 너를 알아!
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는지…

그것 때문에 네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바로 그 애국심 때문에.

네가 그토록 비난받고
살아온 것을.
내가 알아…."

그 미국인은 장의사였다.

그는 1920년에 미국서 죽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유해를
중국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이라는
한국인이 찾아와
그 관(棺)에 숨어
상하이로 가겠다고 했다.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데
일본이 자신을
현상수배 중이라고 했다.

그 한국인은 실제 관에 들어가 밀항에 성공했다.

'너의 그 애국심 때문에
네가 얼마나 고생했고,
얼마나 비난받았는지
나는 안다'는  절규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15일 아침 서울 국립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나흘 뒤면  그의 50주기다.

필자 역시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얘기만 듣고 자랐다.

그의 생애 전체를 보고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이 대통령 묘 앞에서

'만약 우리 건국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정치의
변동을 알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 없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없이 우리가
자유민주 진영에 서고,

그 없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그 없이 한·미 동맹의
대전략이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에 누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추모비에 적힌
지주(地主) 철폐,
교육 진흥, 제도 신설 등

지금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바탕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원자력발전조차 그에 의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무지몽매한 나라에 태어났으나

그렇게 살기를 거부했다.

열아홉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나라 밖 신세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썩은 조정을 언론으로 개혁해보려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감옥에선 낮에는 고문당하고 밤에는 영어 사전을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독립하는 길은 미국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1905년 나이 서른에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을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국제정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1년 미국에서 'JAPAN INSIDE OUT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을 썼다.

그 책에서 이 대통령은
일본이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책이 나온 지 넉 달 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인 이승만을 다시 보았다.

이 대통령은 1954년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이렇게 썼다.

'일본인은 옛 버릇대로
밖으로는 웃고
내심으로는  악의를 품어서 교활한 외교로 세계를 속이는…
조금도 후회하거나 사죄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뿐더러…

미국인들은 지금도
이를 알지 못하고
일인들의 아첨을 좋아하며
뇌물에 속아 일본 재무장과 재확장에 전력을 다하며…

심지어는 우리에게 일본과 친선을 권고하고 있으니….'

이 대통령은 서문을
'우리는
미국이 어찌 하든지 간에
우리 백성이 다 죽어
없어 질지 언정
노예는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합심하여
국토를 지키면

하늘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고 맺었다.

평생 반일(反日)한 이 대통령을 친일(親日)이라고 하고,

평생 용미(用美)한 그를
친미(親美)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 매도하는 것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어지러운 구한말 모두 중·일·러만 볼 때
청년 이승만은 수평선 너머에서 미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를 19세기 한국의 콜럼버스라고 부른다.

우리 수천년 역사에
오늘날 번영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 박사의 공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은
이 위대한 지도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거인이 이룬 공(功)은
외면하고 왜곡하며,

과(過)만 파헤치는 일들이 지금도 계속된다.

건국 대통령의 50주기를
쓸쓸히 보내며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자해(自害)와 업(業)을 생각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난 후 겨울에 난방할 땔감도 없었다.

하와이에선  교포가 내 준 30평짜리 낡은 집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친정에서 옷가지를  보내줄 때
포장한 종이 박스를 옷장으로 썼다.

교포들이 조금씩 보내준 돈으로 연명하며

고국행 여비를 모은다고
5달러 이발비를 아꼈다.

늙은 부부는
손바닥만 한 식탁에 마주 앉아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이 대통령이 우리 음식을 그리워하자
부인이 서툰 우리말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줬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따라 불렀던
그 노래를  이동욱 작가가 전한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개 김칫국/
날마다 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날마다 날마다 두부찌개 두부국/
날마다 날마다 된장찌개 된장국.'

아무도 없이 적막한
그의 묘 앞에 서
이 노래를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양상훈

2018년 1월 23일 화요일

霞帔帖(하피첩)

<歷史斷想>
茶山 丁若鏞(정약용)의 霞帔帖(하피첩)
[노을 하(霞),치마 피(?),문서 첩(帖)]

"霞帔帖(하피첩)"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이다.

2005년에 수원의
어느 모텔 주인이 파지를
마당에 내다 놓았는데,
폐품을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파지를 달라고 했다.

모텔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있던
이상한 책에 눈이 갔고,
그는 책과
파지를 맞바꿨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고
KBS'진품명품'에
내놓았다.

김영복 감정위원은
그 책을 보는 순간
덜덜 떨렸다.고 했다.

"진품명품" 현장에서
감정가
1억원을 매겼고,
떠돌던
이 보물은  2015년에
서울 옥션 경매에서
7억 5,000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

'霞帔'(하피)는
옛날 禮服(예복)의 하나다.
'붉은  노을빛 치마'를
말한다.

茶山은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남았던
아내 홍 씨는 남편 귀양 10년째
되는 해,

시집 올 때 입었던
치마를 그리운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보냈다.

그  치마에 茶山이
두 아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을 쓰고
책자로 만든 것이 하피첩이다.

茶山은 치마의
한 조각을 남겨'매화'와
'새'를 그려서
족자를 만들어서
시집을 가는 딸에게
주었다.
이것이 '梅鳥圖'(매조도)이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어머니의 치마에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茶山 부부의 애절했던
사랑을 담고서
세상을 떠돌아 다니던 하피첩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정약용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내의 노을빛 치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
(하트)아버지란?

2018년 1월 19일 금요일

안녕하세요?-1달러짜리 하느님을 파시나요?

◇안녕하세요?
    1달러짜리 하느님을 파시나요?

어린 소년과 백만장자 노인의 훈훈한 미담이 미국 사회에 화제가 됐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10살 정도인 남자아이가 1달러를 손에 꼭 쥐고 거리에 있는 상점마다 들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느님을 파시나요?”

가게 주인들은 안 판다고 말하거나
혹은 아이가 장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해
매몰차게 내쫓기도 했습니다.

해가 점점 지고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69번째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느님을 좀 파시나요?”

가게 주인은 60이 넘은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하느님은 사서 무엇 하려고 그러니?”

자신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처음 본 아이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사연을 노인에게 털어놨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삼촌이 돌봐주고 있는데,
얼마 전 삼촌마저 건축 현장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현재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삼촌을 치료하던 의사가 아이에게
“삼촌을 구해줄 것은 하느님밖에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이는 이 말을 듣고 하느님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한 물건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진한 아이는 의사에게 “제가 하느님을 사 와서 삼촌에게 먹일게요.
그러면 꼭 나을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은 노인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돈은 얼마나 갖고 있니?”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1달러요.”

“마침 잘 됐구나. 하느님은 딱 1달러거든.”

노인은 아이의 돈을 받아 선반에 있던
‘하느님의 키스’라는 음료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여기 있단다 얘야, 
이 ‘하느님’을 마시면 삼촌이 금방 나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기뻐하며 음료수를 품에 안고 쏜살같이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자랑스럽게 소리쳤습니다.

“삼촌! 제가 하느님을 사 왔어요! 
이제 곧 나으실 거예요!”

다음 날, 세계 최고의 의료 전문가들이 전용기를 타고 이 작은 도시에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와 삼촌의 상태를 진찰했습니다.

아이의 삼촌은 정말로 병이 금방 낫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퇴원할 때 천문학적인 병원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어떤 억만장자 노인이 이미 비용을 전부 냈다고 말했습니다.

삼촌을 진찰한 의료진도 이 노인이 고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촌은 나중에야 아이가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의 주인이 억만장자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노인은 할 일이 없을 때 가게에서 적적한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감격한 삼촌은 아이와 함께 노인의 가게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여행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가게 점원은 이들에게 이번 도움을 마음에 크게 담아주지 말라는 말과 함께 노인이 쓴 편지를 전했습니다.

삼촌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어봤습니다.

“젊은이,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네. 
사실 모든 비용은 자네의 조카가 다 낸 것이니 말일세. 
자네에게 이런 기특한 조카가 있다는 것이 정말로 행운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네. 

자네를 위해서 1달러를 쥐고 온 거리를 누비며 하느님을 찾아 다녔으니 말이야…

하느님에게 감사하게.
자네를 살린 건 그분이니 말일세!”

                       - (실어온 글) -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읽을거리 하나 올립니다.♡
(끝까지  읽어보세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통일(天下統 一)을 하는 과정에서 오랜 전쟁으로 남자들이 너무 많이 전장(戰場)에서 죽자 왕명(王命)으로 모든 여자들에게 외출할때 등에 담요 같은 걸 항상 매고 아랫도리 속옷은 절대 입지말고 다니다가 어디에서건 남자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언제든지 애기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의 유래이며, 오늘날에도 기모노를 입을 땐 팬티를 입지 않는 풍습(風習)이 전해지고 있다.
그 덕분에 운이 좋아 전장에서 살아남은 남자들은
아무 여자하고도 하고싶은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든 깃발을 꽂는 행운(幸運)을 얻었다.
그 결과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애가 수두룩히  태어났는데, 이름을 지을 때 애를 만든 장소(場所)를 가지고 작명하였다. 그것이 족보가 되어 일본인들의 성(姓)씨가 되었다 한다.

그래서 세계에서 성씨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한국은 약 300성씨이나 일본은 10만개의 성씨가 넘는다 한다.

1木下(기노시타) - 나무 밑에서~~~
2山本(야마모토) - 산 속에서 만난 남자의 씨.
3竹田(다케다) - 대나무 밭에서 작업을 한 아이.
4大竹(오타케) - 큰 대나무 밑에서 ~~~
5太田(오타) -콩밭에서 ~~~
6村井(무라이) - 시골 동네 우물가에서 ~~~
7山野(야마노) - 산인지 들판인지 아리송하고 2명하고 연달아 해서~~~
8川邊(가와베) - 거시기 끝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개천이 보여서~~~
9森永(모리나가) - 숲속에서 오래 만난 남자의 애
10麥田(무기타) - 보리밭에서~~~
11.池尻(이케지리) - 도랑옆에서.
12.市場(이치바) - 시장(공방)에서.
13犬塚(이누즈카) - 개무덤에서.
14.田中(다나까) - 밭 한가운데.
15.內海(우츠미) - 가까운 바다에서~
16. 奧寺(오쿠테라) - 절에서~~(카도야) - 코너에 있는 집에서
17.柏木(카시와키) - 측백나무 아래서~
18.桐本(키리모토) - 오동나무 아래서.
19.小島(코지마) - 작은 섬에서.
20.小林(코바야시)- 작은 숲에서.
21.笹森(사사모리) - 조릿대(대나무와 비슷) 숲에서.
22.高柳(타카야기) - 버드나무 아래서.
23.皆川(미나가와) - 개천가에서.
24.水上(미나카미) - 물 위에서(온천?).

그중 특히 '밭전(田) 자가 많은 것은 논에서는 그짓을 할 수 없어 주로 밭에서 했기 때문이라 한다.

                        ●일본놈! 일본놈●
                   하며 무조건 욕하지 말고
                   객관적이고도 냉철하게
                 일본을 성찰해 볼 필요성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알아야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렇게 다르다
일제 강점 하, 36년의 수모를 겪은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은지 70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일본인과 우리들의 자화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배우지 못하면 무지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이지만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은 지혜입니다.
이번에 일본인에게 배우는 26가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특성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잘못된 점들은 가능한 고치도록 노력합시다.

​01. 한국인은 사소한 일로 다투기만 해도 지금까지 받은 은혜는 뒷전이 되고 원수가 된다.
일본인은 조폭 이상으로 의리를 중시한다.
한번 신세지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

02. 한국인은 귀한 손님을 모실 때면 외식을 즐긴다. 그래야 제대로 대접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귀한 손님은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그래야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03. 한국인은 상다리가 휘게 먹어야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냉장고는 반찬으로 꽉채워 숨 쉴틈이 없다.
일본인은 공기밥에 단무지 3쪽, 김 3장이면 족하게 여긴다. 냉장고는 늘 비어있다.

04. 한국 여성은 대체로 명품 백을 들어야 남부럽지 않다. 하지만 메고 다니는 루이비통의 97%는 가짜라고 한다.
일본 여성도 핸드백을 메고 다닌다. 대부분 집에서 자기 스스로 만든 수제품이 많다.

05. 한국인은 부모를 봉으로 안다. 가르치고 키웠더니 더 안 준다고 원수가 된다.
일본인은 자립심이 강하다.
부모 돈은 부모 돈, 내 돈은 내 돈이다.

06. 일본인은 집 크기를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일본 각료들도 20평이면 만족하다고 한다.
한국 여성은 남자를 만나면 몇 평에 사느냐부터 묻는다. 작은 평수면 딱지 맞는다.

07. 한국인은 기록에는 빵점이다. 자기 아내 생일도 모르고 지나다가 싸우기 일쑤다.
일본인은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메모를 한다.
기록하는 면에서는 일본인이 세계적으로 탁월하다.

08. 한국인은 공금을 눈먼 돈, 떡고물로 알고 있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일본인은 공금을 무서워한다. 공금 먹다 걸리면 집안 망한다고 생각한다.

09. 한국인은 별 것도 아닌 것도 툭하면 소송한다.
통계적으로 일본의 13배가 넘는다.
일본인은 웬만하면 대화로 끝낸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10. 한국인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뛰기 일쑤다.
교통사고 1위국으로 등극했다.
일본인은 아무도 없는데도 신호를 지킨다.
우리가 볼 때는 멍청한 것같다.

11. 한국인은 구제품을 명품으로 착각한다. 구제품은 서양에서 입다 버린 넝마다.
일본인은 근무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데이트할 때도 작업복을 입고 나간다.

12. 한국인은 누구를 만나면 주량을 자랑 한다.
양주를 병 째 마시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일본 술잔은 병아리 요강만 하다. 째째하게 이것으로 홀짝 홀짝 마신다.

13. 한국인은 의리를 찾기 힘들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이다.
일본인은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4. 일본인은 노숙자도 독서에 열을 올린다. 직장인의 한 달 독서량은 7.5권이다.
한국인은 전철을 타면 스마트 폰을 꺼내 게임을 한다. 한 달 독서량은 0.7권이다.

15. 일본인은 준법정신이 강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한국인은 돈버는 일이라면 목숨을 건다. 그래서 못할 짓도 서슴 없이 한다.

16. 일본인은 근검절약이 부자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이자가 없어도 은행을 이용한다.
한국인은 어디 한탕 해 떼 부자 될 것이 없나만 생각한다. 그래서 사기꾼이 많고 로또가 성행이다.

17. 한국인은 경찰을 우습게 안다. 데모대에게 얻어 맞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찰은 아마 우리가 유일하다.
일본인은 공권력이 절대적이다.
국민들은 경찰에게 힘을 실어준다.

18. 한국인은 주먹구구로 일을 한다.
정년 후에 사업하다 99%가 망한다.
일본인은 무엇을 하려면 전문가를 찾는다.
그의 조언대로 행동한다.

19. 한국인은 자녀가 추울까봐 옷을 겹겹이 입혀 내보낸다. 옷이 무거워 뒤뚱거리며 걷는다.
일본인은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혀 학교 보낸다.
추위를 이기는 극기훈련이다.

20. 한국인은 대통령을 우습게 안다. 사고만 터지면 뭐든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한다.
일본인은 총리 말이 절대적이다.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1. 한국인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노인들이 그래서 더 힘들다.
일본인은 누구에게나 '하이하이'하며 깎듯이 대한다. 동방예의지국이 과연 어딘지 헷갈린다.

22. 한국인은 잘못하고도 무조건 오리발 부터 내민다. CCTV에 찍혀도 내가 아니라고 발뺌한다.
일본인은 잘못은 끝까지 책임진다.
책임자가 할복자살하는 걸 너무 자주 본다.

23. 한국인은 약속은 해놓고 지키지  않는다. "중요한 일이 생겨서.."하고 변명한다.
일본인은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킨다.
그들에게 약속은 생명과 같다.

24. 한국노조는 회사가 2천억 손실이 나도  성과급 달라고 파업한다.
일본노조는 흑자가 나도 회사의 앞날 생각해 임금동결을 받아들인다.

25. 한국인은 잘 웃지 않는다. 언제나 화난 얼굴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실제로 화난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잘 웃는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보다.
그러나 속마음에는 칼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26. 한국인은 말을 퉁명스럽게 한다. 한국 방송은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 특히 뉴스시간대에 기자들 말소리는 언성높이는 시합이라도 벌리는 것처럼 들린다.
일본인은 상냥하게 말한다. 듣다 보면 귀가 간지럽다.

광복 70년, 우리는 언제까지고 일본 놈들 욕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도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점은 고쳐서 극일(克曰)의 길을 가야합니다.

꼭읽어보세요~^^

ㅡㅡㅡ★★★★★ㅡㅡㅡ

가상화폐란?


가상화폐에 대하여 잘 모르고 네트워크방식의 투자를 통한 일확천금을 노리다. 패가망신 하는 사례가 있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가상화폐란?

원숭이가 많은 한 마을에 어떤 사업가가 와서

한 마리당 100만 원을 주겠다고 잡아다 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널리고 널린 원숭이를 잡아다 사업가에게 줍니다.

사업가는 약속대로 100만 원을 지불합니다.

원숭이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사업가는 이제 200만 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를 쓰고 잡아다 줍니다.

물론 사업가는 약속대로 돈을 지불하고요.

더더욱 줄어든 원숭이는 이제는 이 마을에서 찾아보기도 힘들어 집니다.

사업가는 가격을 더욱더 올립니다.

이제 이 마을에는 애 어른 할 거 없이 모두 다 원숭이 잡기에 혈안이 됩니다.

완전히 씨가 말라버린 원숭이를 사업가는 800만 원까지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제 이 마을에 원숭이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고민하게 됩니다.

사업가는 잠시 도시로 나가고 그 밑에 있던 부하직원이 와서 말합니다.

내가 1마리당 500만 원에 그동안 잡은 원숭이를 주겠다고...

나중에 사장 오면 800만 원에 팔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열광하고 빚을 내서라도 그 원숭이들을 사들입니다.

그리고 그 착한 직원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합니다.

원숭이를 모두 판 직원도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물론 도시에 나간 사업가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을은 다시 원숭이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제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빚만 남았습니다.

※이것이 가상화폐의 현실입니다.
은행 지점장출신이 보라고 올린 의미 있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