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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일본과의 결산

일본과의 결산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금전적 비금전적 손익계산서가 존재한다. 

그 아이템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귀속재산’(Vested Property)이다. 
귀속재산이라는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국민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귀속재산 (Vested Property)

2015년 10월,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는 ‘귀속재산 연구-식민지 유산과 한국경제의 진로-’ 라는 700여 쪽의 저서를 냈다. 
그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은 그들이 36년 동안 조선 땅에 건설해 놓은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추방당했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재산 모두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갔다. 
미군은 퇴각하는 일본인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폐까지도 압수했다. 

북조선에는 29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남한에는 23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이 횡재로 굴러왔다. 
남한에 쌓인 23억 달러어치의 일본재산은 미군정이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는 당시 남한경제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귀속자산이 없었다면 당시 한국경제에는 실체가 없었다. 

이로부터 만 20년 후인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공여 받은 액수는 3억 달러, 위의 23억 달러는 이 3억 달러의 약 8배였다. 
이 엄청난 자산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한국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씨 조선 518년을 대대로 통치해온 27명의 왕들이 이룩해 놓은 자산이 무엇이었는가를. 

도로를 닦아놓았는가, 
철로를 건설해 놓았는가?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는가? 
한글 단어장 하나 마련해 놓았는가? 

그 27명의 왕들은 길을 넓게 닦으면 오랑캐가 침입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던 길도 없앴다. 
선조는 임진왜란 내내 중국으로 망명할 생각만 했다.
27명의 왕들은 아래 사진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노예들의 골만 빼먹었다. 

조선왕들이 518년 동안 쌓아올린 재산은 초가집, 도로 없는 서울, 똥오줌으로 수놓은 소로, 민둥산, 미신, 거짓과 음모를 일삼는 미개인들이 공존하는 가두리 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36년 동안에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쌓아올렸다. 
이 엄청난 재산을 미국이 빼앗아 보관했다가 대한민국 건국자 이승만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미국은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땅도 빼앗아 주었고, 조선인들로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빼앗아 주었다. 
이 두 가지 구체적 선물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일본 모두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이 묻혀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었고, 그 배은망덕의 소치는 순전히 빨갱이들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미군정은 처음, 사유재산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매우 다행하게도 곧 이어 사유재산까지도 압류했다(군정법령 제8호, 1947.10.6.제정). 
공적-사적 재산 목록이 170,605건, 이승만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은 고생을 했다. 
엄청난 관리 인력과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에 인수되지 않고 농림부 등에 등록되어 있던 또 다른 일본인 재산이 121,304건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한 총 재산은 291,909건이었다.

미국은 어느 정도로 일본인을 발가벗겨 보냈는가?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극도로 제한했다. 
민간인은 1,000엔, 군장교는 500엔, 사병은 250엔 이상 소지할 수 없었다. 
미군은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본인의 주머니를 검열했다.

1945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5년 11월 3일에 작성한 <정보일지>(G-2 Periodic Report) 54호에 의하면 일부의 일본인들이 150엔을 주고 밀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자료들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밀항선을 타고 탈출한 일본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미국이 일본인들을 무산계급으로 만들어 겨우 몸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1945년 10월12일 부산항에서 귀환선을 기다리는 일본인들의 주머니와 짐을 미군 병사가 수색하고 있다. 
미국국립문서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 사본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그 많은 주식회사 급 기업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그 회사 직원이거나 관련이 있던 조선 사람들에 헐값으로 불하되어 오늘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오늘의 우리 대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기업들이었다. 

조선인들이 세운 업체는 ‘상회’라는 이름을 단 개인가게들이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방 이후 맨땅에 헤딩해서 창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할 것이다.

쇼와 기린맥주’는 당시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되었다.
‘삿포로 맥주’는 명성황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되었다(1998년에 하이트맥주로 상호 변경).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은 당시 직원이었다가 관리인이 된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선경직물’은 공장의 생산관리 책임자이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매매 하던 선만주단(鮮滿紬緞)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이란 이름은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직물의 ’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나가오카제과‘(永岡製菓)는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은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한국저축은행’은 정수장학회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삼호방직의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조지아 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이 되었다.
‘조선제련’이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가 해방 후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되어,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조선생명’이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되었다.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이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식품’이 해방 후에 ‘동립식품’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1985년에 ‘제일제당’에 병합되었다..

토요쿠니제과’가 해방 후에 ‘풍국제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어오다가 1956년에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되었다. ‘경기직물과 조선방직’이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하던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조선우선’이 직원이던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되었다. ‘동양방직’은 관리인이던 서정익에게 불하되었다.
‘아사히견직’은 부산공장장이었던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되었다. ‘조선주택영단’이 ‘한국주택공사’가 되었다. ‘아사노 시멘트 경성공장’이 김인득에게 불하되어 ‘벽산그룹’이 되었다.
‘경성전기-남선전기-조선전업’이 해방 후 합병되어 ‘한국전력’이 되었다.
‘가네보방직 광주공장’이 김형남,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일신방직’이 되었다.

‘동립산업’이 관리인이었던 함창희에게 불하되었고, 제일제당(현CJ)이 이를 흡수했다.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가 해방후 ‘한국미곡창고 주식회사’가 되고, 후에 ‘대한통운’이 되었다.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가 되었고, 후에 한진그룹에 편입되어 ‘한진중공업’이 되었다.

‘조선화재 해상보험’이 ‘동양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가, 지금 ‘메리츠 화재해방보험’이 되었다.
‘쥬가이’제약은 서울사무소 관리인에게 불하되어 현 ‘중외제약’이 되었다. 

이외에도 내로라하는 한국기업들은 거의가 다 일본인이 설립 운영하던 회사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조선인이 설립 운영하던 큰 기업은 김성수 집안에서 설립한 ‘경성방직’, ‘삼양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商會’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화신상회, 개성상회, 경성벽지 등이다.

일본이 팽개치고 나간 회사들을 조선인들이 이승만 정부로부터 ‘불하’란 명목으로 헐값에 인수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1961년 5.16군사혁명 후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축재자’로 몰렸다. 

일본인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겠는가? 
반면 불하받은 사람들은 어떤 ‘횡재’를 했는가? 
그래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단계에서 남조선에 두고 간 23억 달러 어치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요구했다.

해방 직후 북한을 선점한 소련은 군정을 통해 북한에 건설된 발전소, 공장 등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그것들을 건설하거나 운영해온 일본인 기술자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련군정은 만주에 주재한 ‘일본피난민단장’과 협의하여 북조선에 있던 모든 기계-설비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일본 기술자들을 북조선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들이 건설하고 애지중지 운영해오던 기계-설비들에 대한 엔지니어로서의 애착심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46년 1월 현재 총 2,158명의 기술자들을 일본으로의 즉시 귀국을 막고 북조선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스탈린은 당초 북조선에 있는 설비들을 소련으로 옮기라 명령했고, 소련군정은 중요한 기계들을 분해하여 포장한 후 소련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 직전 다시 스탈린으로부터 반출을 중단하라는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한다. 
세간에는 당시 소련이 북조선 기계들을 모두 뜯어 소련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럼 스탈린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 당시 이미 6.25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한다.
6.25 전쟁을 치르려면 북조선에서 병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자체 생산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기계-설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조선의 민둥산(1903년 서울)

조선의 산은 민둥산이었다. 
여기에 일본은 과학의 힘으로 경제성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산마다 쭉쭉 뻗어 올라간 경제목들이 들어차 있다. 
그 많은 나무들에 가지도 쳐준다. 
미국도 이렇게 한다. 
그래서 해방 당시 전국의 산에는 일본이 심은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광릉에 보존된 나무들이 바로 일본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전후방에 군부대들이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서면서 ‘후생사업’이라는 것이 활기를 띄었다. 
당시는 군대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역대 사단장들이 너도나도 덤벼들어 군 후생을 빙자해 벌목을 했다. 
거목들을 베어내 시장에 팔아 자금을 마련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 
대한민국 산이 다시 민둥산으로 변한 것이다.

이에 박정희 정부 농림장관인 장경순씨가 대통령의 명을 받고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지만 그 나무들은 일정시대의 산림처럼 경제림이 아니었다. 
포항제철 사례에서 보듯이 공업 분야에서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대대적으로 받았지만, 나무를 심는 식수계획에서는 일본기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가 장경순씨로부터 직접 들었던 이야기로는 수종선택은 토종기술에 의존했다. 
그나마 푸른 산을 푸르게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땔감의 개발이 필요했다.

1960년대, 19공탄이 산림훼손을 저지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영조시대인 1750년대에 석탄이 나무를 대체했다. 
영국이 한국을 210년 정도 앞서 간 것이다. 
이런 격차를 만들어 낸 주역은 1961년에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아니라 조선의 왕들이었다. 
일본이 가꾼 산림, 비록 금전적으로 환산은 될 수 없지만 어마어마한 자산이었음에 틀림없다. 

2019.10.20. 지만원

조국 예찬

*  조국 예찬 

고맙다,  조국아
지난 두어달 동안
밤낮으로 조국(祖國)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한글 창제 573주년에 어휘 하나를 늘려 주어 고맙다.
"조국스럽다 : 지극히 위선적이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다"

고맙다,  조국아
소 한 마리는 있어야 자식 대학 보내는 줄 알았는데
소 없이도 자식 대학 보내는 방법을 알려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미스테리에 쌓였던 
사학 탈취의 비법과
운영비리의 전말을 만민이 알게 해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온 집안이 일사분란하게 교란시키는 놀라운 위장술과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대중조작의 비법을 보여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견리사의(見利思義), 춘추전국시대  공자선생의 고리타분한 가르침을 물리치고
언의행리(言義行利),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는 약삭빠른 처세술을 알려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썪어 뭉그러지던 보수의 불꽃을 살려 주어
균형잡힌 정상국가로 만들어 준 공로가 적지 않다.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너를 위해 5만이 2백만으로  둔갑되는 것을 보며
천만 촛불혁명을 네다바이한 집단의 위선을 깨닫게 해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개혁된 검찰이 정말 잘 태우는지 시험하는 첫 불쏘시개가 되길  자원해 주어 고맙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될지, 망신상인(亡身傷仁)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조국아
이젠 제발
그 더러운 입으로
민주와 정의를 언급하지 말자.

검찰개혁은 네 몫이 아니니
이젠 니나 개혁하고
니 집안이나 개혁하거라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과유불급(過猶不及),
넌 그 동안 분에 넘치게 너무 많은 것을 누려 왔구나.
이제 너 때문에  좌절하고,  울분에 젖고, 목이 쉬도록 정의로운 사회를 외쳤던
평범한 국민들의  땀과 분노에 대해 마땅히 죄값을 치를 준비를 해야지.

저 산 모퉁이에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그래,  감옥에서 푹 쉬거라. 이제 곧 눈보라치는 밤이 다가오리니...
그 동안 고마웠다.

한비자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뱀은 안개 속에 노닌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면, 용과 뱀은 지렁이나 개미와 같아지는데, 그것은 탈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구름과 안개를 타는 것도  용과 뱀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권세는  현명한 자가 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못난자가 쓰면 천하는 어지러워진다"라고 했다.

   - 2019년 10월 18일  沙川 -

홀로 웃다 ( 獨 笑 )


🌞 홀로  웃다 🌞
       ( 獨 笑 )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살림이 넉넉하여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자식이 많은 집엔 가난하여 
굶주림이 있다

達官必憃愚
(달관필창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다.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집안에 완전한 복(福)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능지)
-지극한 도(道)는 항상 쇠퇴하기 마련이다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부모가 절약하여 재산을 모으면 자식들은 방탕하고

婦慧郎必癡
(부혜낭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짓을 한다.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는날은 구름이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댄다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정약용(丁若鏞)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
위의 다산 정약용(丁若鏞)선생의 
“홀로 웃다(獨笑)” 
한시(漢詩)를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주어서 카페에 올립니다

위의 한시(漢詩)
내용은 달리 설명이 필요없이 
시(詩)내용 그대로다.

12줄의 내용이 보편적인 우리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세계사에 어떤 석학(碩學)과 견주어도 상석에
모실 분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사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
“홀로 웃다(獨笑)”
처럼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다.

18세기 초반부터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을 개혁의 인물로 
정조(正祖)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등장한다.

그러나 하늘은 조선이 행복해 지는 것을 원치 안했는지 개혁의 중요한 시기에 정조(正祖)를 하늘로 불러올렸다.

따라서 이제 막 날개를 달아 일생의 포부를 조선의 개혁에 펼치려던 정약용 선생의 날개도 꺾여 전남 강진으로 18년 유배를 간다.

필자의 개인적인 역사관이지만 오늘날 허리가 잘린 반신불수의 한반도의 불행은

*개혁을 기치를 내건 인조의 세자 소현세자
(昭顯世子)
(1612년~1645년)의 죽음과

*정조의 일찍 죽음

*고종의 무능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실패로 개혁 개방의 기회를 놓쳐 열강(列强)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남북분단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론분열(國論分裂)”이다.

일본의 명치유신
(明治維新)은 
명치왕(明治王) 때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의
막번체제(幕藩體制)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이룩한 국가변혁이다.

결국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양보를 하고 명치유신(明治維新)이 성공하여 오늘날 일본은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이 
1868년부터 1880년대에 마무리 되었으니까

정조(正祖)
(1752~1800), 
다산(1762~1836)의 생(生)이 끝날 때가 일본의 명치유신과
비슷한 시기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시작하는 때에 조선은 안동김씨 대원군 민비등의 권력다툼으로
패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산선생이 강진 유배 중에 쓴 책이 1000여권,

그중에서 “경세유표(經世遺表)”는 국정개혁의 중요한 책이다.

일본은 선진국의 깃발을 달고 대륙을 넘볼 때에 조선은 권력 다툼으로
다산을 강진으로 
귀양 보내 
“앉은뱅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람은 큰 슬픔을 당하면 슬피 운다.

울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더 큰 슬픔을 당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허허 혼자 웃는다.

다산초당
(茶山艸堂)은 단순히 강진만 바다가 넓게 펴진 아름다운 관광유적지라 생각하면 안된다.

한 인생의 포부를 짓밟힌 한맺힌 곳이다.

그렇다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할 수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도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
(廣州 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실학박물관이 있다.

여기에 다산의 생가 당호(堂號)를
“여유당(與猶堂)”
이라 했다.

다산 선생이 강진 귀양이 풀리고 바로 고향으로 가서
 “여유당(與猶堂)”
이라 당호를 붙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숨도 크게 안 쉬고”
살았다고 한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유당(與猶堂)”
은 노자(老子)
도덕경의 한 구절로

마치 코끼리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산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 시대의 위인(偉人)이 갔다.

아직도 당파의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허허허---

언제나 정신 차리려나 !
犬糞食衛이나 먹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제발 더 이상 국민 팔지 말라. 
썩은 정치인,
저급 언론사,언론인
이 땅에서 하루 속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조국 사태를 보며
오늘도 허! 허! 허! 웃는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심을 빕니다.

ㅡ옮긴 글ㅡ

Under Stand

     ☆Under Stand☆

남을 이해한다는 뜻의 영어 
"Under Stand"는  
"아래에 서 있다"라는 의미죠.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UnderStand" 이지, 결코 "OverStand"가 아니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눈 높이를 맞추면 안 됩니다.
오히려 눈 높이를 낮추어서 상대방을 올려다보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는 본래 변호사였는데,
하지만 극심한 인종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기꺼이 무장 폭력 단체의 투사가 되었죠.
그는 로벤 섬, 풀수무어 등 악명 높은 감옥에서 27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감옥안의 깊은 침묵 속에서 그는 투쟁과 대립보다는 화해와 용서가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날아주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는데, 그가 수감됐던 감옥의 교도관이었던 
"제임스 그레고리"였죠.
두 사람은 오랫동안 포옹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적대적인 관계였는데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도관은 만델라의 품위와 인격에 감동하고 그를 존경하게 됐다,
그레고리는 만델라가 주장하는 
정의를 이해했고 둘 사이에는 
우정이 싹텄고, 
그레고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만델라를 보호했고 그가 대통령이되자 교도관 직을 사임 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재판을 주도했던 "페르시 유타"를 만났을 때도 만델라는 미소를 
지으며 한때 적이었던 84세의 노인에게
"이제는 모든 일들이 과거가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만남 이후 유타가 만델라를 
덕망 높은 사람으로 묘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관대함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이 
다시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는 
진리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우리가 만일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아량을 베푼다면, 
세상의 비참함과 오해 가운데 
4분의 3은 사라질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 사회악. 
(인도의 성자 간디 무덤 비석에 새겨진 글)

* 원칙 없는 정치
* 노동 없는 부
* 양심 없는 쾌락
* 인격 없는 교육
* 도덕 없는 상업
* 인간성 없는 과학
* 희생 없는 종교

요즘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하나 하나 다시 읽어 봅니다.

문재인의 자화자찬

● 문재인의 자화자찬 : 나만큼 국민사랑 받았던 대통령 없었다. <펜앤마이크 양연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정치인》
이 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모두발언에서 “지금은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것을 가로막는 권력》의 작용은 전혀 없다. 이제 마음껏 진실을 밝힐 수 있게 됐다”며  “그러나 과연 우리가 진실을 균형있게 알리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했다.

그는 “입법, 행정, 사법의 3부에 더해 언론까지 제4부가 함께 국가를 움직여 가는데 당연히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온 데도 각각 독립된 4개 영역의 큰 기여가 있었으며 우리 언론도 그동안 많은 기여를 해줬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많은 기여를 해줘야 할 막중한 역할과 책임이 언론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언론은 입법, 행정, 사법 3부와 같은 현실적인 권력의 힘은 없지만 그러나 진실이 가장큰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정부가 출범할 때 천명했듯 조금 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나가는 역사적인 과업에 있어서도 언론인 여러분들이 끝까지 《동반자》가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요즘 여러모로 어렵습니다만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 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것이 전적으로 기자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제 모습을 잘 전해주셨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사랑받을 수 있었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소중한 동반자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판도 반대를 위한 비판, 비난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비판, 애정을 위한 비판을 달라"며 기자들을《간접적으로 압박》했다.

●네티즌들의 경악!

한편 《네티즌》들은 문 대통령인 스스로에 대해  ‘나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티즌A : 문대통령 정신적 문제있는것 같다

한 네티즌은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인간인 것 같다. 지금도 문재앙 하야 하라고 철야 농성 수많은 
인원이 광화문 앞에서 외치고 있는데?”라고 했다.

●네티즌B : 뭘 잘해서 사랑받나? 하나만 말해주셔요..
 
또 다른 네티즌은 “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경제 외교 정치 민심 정책 뭐를 잘해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하나만 이야기해 달라. 대깨문들만 국민이냐!”라고 일갈했다.

●네티즌C : 진짜 치매네! 당장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이 밖에도 네티즌들은 “진짜 치매네. 정은이가 그러던가?  사랑한다고” “이 정도면 당장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하지 않을까? 

●네티즌D : 착각은 파도를 타고 개꿈을 펼친다

정말 나라 걱정이다” 《착각은 파도를 타고 개꿈을 펼친다》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저주 받은 정치인 없을 것” “쳐맞는 걸 사랑으로느끼는 변태인가?” 등의 신랄한 비판도 감추지 않았다.

● 네티즌E : 《꿀먹은 벙어리기자》들에게 더욱화난다

“화나서 클릭하긴 처음이다. 거기에 참석한 《꿀먹은 벙어리》 같은 기자들에게 더 화가 난다” “이 나라의 《대표적인 언론사에 좌파인사》들 심어놓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하게 조종하고 있는 자가 바로 문재인 당신 아닌가...

●네티즌 F : 온국민들 박장대소 - 벌거벗은 상태로 거리활보하는 수치스런 임금님보고

온 국민이 ‘벌거벗은 상태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임금님’을 쳐다보면서 《박장대소》 하고 있다” 

●기타 네티즌 댓글
• 화성에서 온 인간인가. 
• 매일같이 고집불통 국민분열에다 입만 열면 《유체이탈 화법》이다.
• 언론인들은 대화하려 갔는가 밥 얻어 먹으려고 갔는가. 쓴소리가 보이지 않는다
• 언론인들 데리고 장난하나. 
• 가짜뉴스 많이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는구나. 
• 문통이 단단히 미쳤네. 
•《국민들이 바보처럼 보이나》” 등의 댓글도 나왔다.

삶의 태도

          삶의 태도

옛날 연만하신 산촌 아버지가 서울 사는 아들과 명동거리를
구경하러 갔다
바글대는 인파를 보고 저들이 저렇게 많은데 어떻게 살아가지하시는  아버지 물음에 아들은 서로서로 도와 가면서 살지요 했다
세월이 이십여년 지난후 그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어 상경했다
손주와 명동거리를 찾았다
여전히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얘야 저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지 참 용하다 하니까
손주왈 할아버지 서로서로 속여 먹고 살아가지요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무엇을 빼앗을까 궁리만하고 헤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남에게 더 배풀고 도울까 궁리를 하면서 살아간다
최소한 남에게 해는 끼치지 말아야지 하면서 산다

삶의 불만과 만족이 엇갈리는 지점이다

맘의 파동이 맞는 사람끼리 상관하고 어울리는게 삶의 재미 즐거움 자유로움이 더 할 수 있다
물리적 숫자는 1+1=2가 되지만 사람의 맘은 1+1=1이 될 수 있다
합일 일치 동화의 이치로 일이 될 수 있다

단순한 수나 무게나 부피의 배가가 향상 좋은 것이 아니다
오합지졸 중구난방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등산을 할때 혼자 갈때는 어느 산  어느 코스  어떤 속도로 어디 쯤에  얼마 쉬고 간식도 먹고 올라 갈까는 전적으로 자기 맘이다 
그러나 동행자가 한사람이라도 더해지면 이 모든 과정이나 선택에 있어서 협의 합의 동조가 있어야 한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 혼자 등산 할때와 같아 질 수 있다
그러나 등정과정과 선택마다 서로 이견을 보이고 자기주장 사욕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마찰 충돌 불화가 발생된다
즐겁고 자유로운 등산이 될 수 없다  등산 본래의 목적달성과 등산고유의 맛을 보기는 커녕 맘속에 찝찝한 찌꺼기가 남는다
등산의 부담이 두배 그 이상으로 무겁고 어려워진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상호 이해 협동 협조 배려 양보 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되는 것이다

동호회 동문회 친목회 동향회 어느 사회 단체행사시라도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전체행사를 수월하고 재미있게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누구의 수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무자격으로 지도 감독 잔소리만 해대고 남들이 수고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칭찬 한마디 없어도 시종 배려 희생적 노고를 쏟아 붙는 사람이 있다

인생관 가치관의 차이이다
이기적 이타적 삶의 태도 차이이다
소소한 생활현장에서 나타나는 함께 살아아가는 삶의 자세차이 이다
다중시설 자동문을 지날때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뒤따르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문을 탁 놓는 반면에 허스름한 차림의 사람은 뒷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둘이상 사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느 것이 좋고 나쁜가는 나만 좋은가 같이 좋은가로 판별하면 무난할 것 같다

한자 사람인자가 두획이 서로 평행하거나 한핵이 다른 획위에 군림하거나 두획이
한점에서 위로 서로 다른 방항으로 뻗지않고 서로 똑같지 않더라도 지지하는 형상에서 사람과 사람의 도리를 배울 수 있다

           - - 19.10,27. 청 고 - -

ㅡ경북고 카톡에서ㅡ

국립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서거 40주년 추도사

김문수 <민족중흥회ㆍ박정희기념재단 주최  국립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서거 40주년 추도사>

40년 전 오늘, 당신께서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저희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날 저는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며 대학에서 두 번 제적된 후, 공장에 위장 취업해 있었습니다.

한일공업 노동조합 분회장으로서, 출근길 지하철 바닥에 뿌려지는, “박정희대통령 유고” 호외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유신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되겠구나”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신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로 무기정학 되었습니다.

교련반대, 유신반대로 대학을 두 번 쫓겨났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히틀러의 아우토반처럼 독재 강화의 수단이라는 운동권 선배들의 가르침대로 저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36년 뒤 제가 도지사가 되어서야, 경기북부 전방지역 발전을 위해서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적임을 깨닫고, 당신의 선견지명에 반대했던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마이카시대를 외치던 당신을 향해, 히틀러 나찌 독재의 국민차 ‘폭스바겐’식 선동이라며 대학교수들과 우리 대학생들은 반대했지요.

우리나라는 자동차 제조기술도, 자본도, 시장도 없고, 후진국에서 그 어떤 나라도 자동차를 성공시킨 사례가 없다며, 조목조목 근거를 대며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당신은 우리나라를 세계 5대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제철, 자동차, 조선, 중화학, 전자, 방위산업 모든 부문에서 당신은 최고의 산업혁명가였습니다.

포항, 울산, 구미, 창원, 안산, 신도시를 건설한 당신은 최고의 도시계획가였습니다.

박정희신도시는 첨단산업 뿐만 아니라, 대학, 공원, 주거 모두 역사상 최고 수준의 복합신도시를 최단시간에 만들었습니다.

고속도로, 지하철, 항만, 공항 건설, 당신은 최고의 국토건설자였습니다.

당신의 원대한 구상과 최첨단의 마스터 플랜,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은 세계 역사상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습니다.

제가 늘 꿈꾸던 네 가지를, 제가 가장 미워했던 당신께서는 모두 이루어 주셨습니다.

첫째, 배 부르게 먹는 꿈입니다.

농지개량, 통일벼생산, 비료공장건설, 댐건설, 간척지개발 등 농업혁명으로 오천년 배고픔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둘째, 건강과 장수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살아왔던 저희들에게 지금 같은 의료혁명은 꿈만 같습니다.

당신께서 추진하셨던 의료보험제도와 의료기술 수준은 미국인조차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셋째, 20대까지도 전기 없이 호롱불 켜고 살았던 저희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당신의 원자력발전 덕택입니다.

넷째, 항상 물이 부족하여, 먹을 물 받으러 양동이를 지고 줄 서서 기다리던 저희들이었습니다.

농업용수도, 공업용수도 모두 부족한 물 부족국가에서 당신께서는 댐을 건설하고, 산림녹화를 하고, 수도시설을 발전시켜, 아무리 가물 때도 주방에서, 화장실에서, 맑은 물을 펑펑 쓸 수 있게 되었다니, 꿈만 같습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따님이자 저의 동년배인 박근혜 대통령은 촛불혁명 구호아래 마녀사냥으로 탄핵되고 구속되어 32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지금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반공을 국시의 첫 번째로 삼으셨던 당신이 떠나신 후 40년 세월동안 민주화가 도를 넘어, 지금 대한민국은 종북 주사파가 집권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적화통일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빨갱이•기생충들이 나라를 벌겋게 물들이고, 한강의 기적을 허물어 뜨리고 있습니다.

통혁당 주범 무기수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평창올림픽에서 김여정과 세계 정상들을 향해 커밍 아웃하는 김정은의 대변인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정은을 칭송하며 위인으로 맞이하는 환영단이 생겼습니다.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며, 반일 죽창투쟁을 선동하는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신께서 이룩하신 한강의 기적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는 자가, 당신을 친미•친일 반공 수구 적폐세력으로 공격하며, 역사를 뒤집어엎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무상복지를 약속하며, 평화경제를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끼리는 있어도, 주적은 없다고 가르칩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로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주사파 집권자는 이제 평화는 있어도 전쟁은 없어졌다고 거짓선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국빈방문 중에 트럼프 참수대회가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미군철수” 프랑카드를 미국대사관 앞에 몇 년 째 걸어 두어도 철거하지도, 조사하지도 않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싸우면서 일하자!”

당신의 구호입니다.

“국방과 경제”의 근본정신이요, 기본원리입니다.

소련•중공•북한 공산국가와 대치하는 최전방 대한민국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당신의 구호가 절실한 오늘입니다.

“우리민족끼리 싸우지 말고 나눠 먹자!”

종북 주사파 문재인의 “평화경제”구호입니다.

첫째, “우리민족끼리” 김정은과 백두산 천지에서, 두손 마주잡고 파안대소합니다.

김정은은 갑자기 싸움 상대가 아니라, "우리민족끼리" 퍼주기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정은의 핵무기는 폐기 대상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자와 일제 침략세력에 맞서는 "우리민족"의 보검이랍니다.

둘째, 문재인은 평양까지 김정은을 찾아가서 9.19평양군사합의서로 NLL, DMZ, 정찰비행까지 김정은에게 다 내주어버렸습니다.

셋째, 경제와 일자리의 주축인 기업을 “적폐세력”으로 몰아 다 죽이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인 민주노총의 강성•만성 파업·시위로 기업은 문을 닫고, 자본해외도피가 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넷째, 당신을 따라 “싸우면서 일하자!”고 하면, “시대착오 수구꼴통” 취급당하는 세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일하지 않고 잘 사는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없음을 절감하신 당신이 외치던 “싸우면서 일하자!”는 외침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하면 된다”던 당신을 향하여, “할 수 없다”고 침을 뱉던 제가, 이제는 당신의 무덤에 꽃을 바칩니다.

당신의 꿈은 식민지시대의 배고픔과 절망에서 자라났지만, 역사를 뛰어넘었고, 혁명적이었으며, 세계적이었습니다.

당신의 업적은 당신의 비운을 뛰어넘어, 대한민국과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당신의 무덤에 침을 뱉는 그 어떤 자도, 당신이 이룬 한강의 기적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위대한 혁명가시여!

당신의 따님, 우리가 구하겠습니다.

당신의 업적,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당신의 대한민국, 우리가 태극기 자유통일 이루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2019년 10월 26일 

국립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40주기 추도식
김문수 재배

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조국예찬

*  조국 예찬 

고맙다,  조국아
지난 두어달 동안
밤낮으로 조국(祖國)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한글 창제 573주년에 어휘 하나를 늘려 주어 고맙다.
"조국스럽다 : 지극히 위선적이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다"

고맙다,  조국아
소 한 마리는 있어야 자식 대학 보내는 줄 알았는데
소 없이도 자식 대학 보내는 방법을 알려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미스테리에 쌓였던 
사학 탈취의 비법과
운영비리의 전말을 만민이 알게 해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온 집안이 일사분란하게 교란시키는 놀라운 위장술과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대중조작의 비법을 보여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견리사의(見利思義), 춘추전국시대  공자선생의 고리타분한 가르침을 물리치고
언의행리(言義行利),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는 약삭빠른 처세술을 알려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썪어 뭉그러지던 보수의 불꽃을 살려 주어
균형잡힌 정상국가로 만들어 준 공로가 적지 않다.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너를 위해 5만이 2백만으로  둔갑되는 것을 보며
천만 촛불혁명을 네다바이한 집단의 위선을 깨닫게 해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개혁된 검찰이 정말 잘 태우는지 시험하는 첫 불쏘시개가 되길  자원해 주어 고맙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될지, 망신상인(亡身傷仁)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조국아
이젠 제발
그 더러운 입으로
민주와 정의를 언급하지 말자.

검찰개혁은 네 몫이 아니니
이젠 니나 개혁하고
니 집안이나 개혁하거라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과유불급(過猶不及),
넌 그 동안 분에 넘치게 너무 많은 것을 누려 왔구나.
이제 너 때문에  좌절하고,  울분에 젖고, 목이 쉬도록 정의로운 사회를 외쳤던
평범한 국민들의  땀과 분노에 대해 마땅히 죄값을 치를 준비를 해야지.

저 산 모퉁이에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그래,  감옥에서 푹 쉬거라. 이제 곧 눈보라치는 밤이 다가오리니...
그 동안 고마웠다.

한비자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뱀은 안개 속에 노닌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면, 용과 뱀은 지렁이나 개미와 같아지는데, 그것은 탈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구름과 안개를 타는 것도  용과 뱀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권세는  현명한 자가 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못난자가 쓰면 천하는 어지러워진다"라고 했다.

   - 2019년 10월 18일  沙川 -

유대인의 힘

🛑유대인들의 힘🛑

이 세상에는 큰 나라라고 하지만 작은 나라가 있고,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큰 나라가 있습니다.

구 소련은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막상 문이 열려 들어가보니 너무나 작은 나라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거지나라입니다.

구 소련에 들어가서 당장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늘어났겠지만, 내가 들어 갔을 때 모스크바에는 맥도날드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햄버거 먹은 이들은 포장지를 가지고 가서 벽에 걸어 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리켜 작지만 큰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국토는 작지만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수는 많지 않지만 큰일을 하고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유대인의 총 인구는 1,500만에서 1,600만명.

그중 미국에 684만명, 이스라엘에 약 500만명이 살고 있고, 나머지는 전 세계에 분산되어 살고 있습니다.

다 합쳐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의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한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20,770 평방 킬로미터입니다.

강원도 경기도를 합한 크기입니다.
그러나 큰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크지만 작은 사람이 있고, 작지만 큰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유대인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300명 정도입니다.

🔴그 중에 93명이 유대인입니다.
경제 분야에서 65%의 노벨상을, 의학 분야에서 23%, 물리 분야에서 22%, 화학 분야에서 12%,문학 분야에서 8%를 유대인이 수상하였습니다

미국 유대인의 생활수준은  평균이 미국인의 두 배입니다. 미국 인구의 2%입니다.

그런데 상위 400 가족중에 24%, 최상위 40 가족중에 4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변호사가 70만명입니다.
그 중에 20%인 14만명 유대인입니다.

뉴욕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 50%가 유대인입니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미국 국회위원 535명중 42명이 유대인입니다.

미국 유명한 대학 프린스톤 대학, 하버드 대학의 교수중에 25-35%가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총장, 주요 행정 책임자의 90%가 유대인입니다

가장 영향력이 있는 매스컴
뉴욕 타임즈 사장 슐츠버그(Shultzburger), 워싱턴 포스트지 사장 캐서린 그레이엄(Catherine Graium), 가장 출판을 많이 하는 램덤하우스(Randum House)사장이 유대인입니다.

♦모세, 솔로몬, 예수, 바울,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 심리학자 프로이드, 화가 샤갈, 상대성 이론가 아인슈타인, 세계적 지휘자 번스타인, 외교가 키신저,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공원 등 영화를 만든 스필버그 등 모두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작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우수한 민족이 된 것일가요?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가요?

한 마디로 말하면 성경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말씀과 뼈아픈 역사를 잊지않고 3,000년을 이어온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와 랍비에 의한 철저한 가르침으로 전인적 교육이 뒷바침 되었습니다.

*한편 이 적은 인구가 세계금융의 40%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하기 까지 이들을 당할 장사는 없습니다

특히 근래에 석유가 발견되어 사우디아라비아 매장량과 거의 같다고 합니다

(*근래 세일가스를 퍼내고 있는
미국은 600년 쓸 매장량으로 단연 세계최고로 향후 100년은 세계패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 모셔온 글 **


🌳인간이 신에게 질문을 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께서 대답하셨다.
"돈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다시 돈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도 미래도 행복하게 잘 살지 못하는 것이란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무엇보다 건강이 가장 소중한 것이랍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건강십계명을 실천하며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귀속재산

일본과의 결산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금전적 비금전적 손익계산서가 존재한다. 

그 아이템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귀속재산’(Vested Property)이다. 
귀속재산이라는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국민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귀속재산 (Vested Property)

2015년 10월,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는 ‘귀속재산 연구-식민지 유산과 한국경제의 진로-’ 라는 700여 쪽의 저서를 냈다. 
그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은 그들이 36년 동안 조선 땅에 건설해 놓은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추방당했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재산 모두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갔다. 
미군은 퇴각하는 일본인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폐까지도 압수했다. 

북조선에는 29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남한에는 23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이 횡재로 굴러왔다. 
남한에 쌓인 23억 달러어치의 일본재산은 미군정이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는 당시 남한경제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귀속자산이 없었다면 당시 한국경제에는 실체가 없었다. 

이로부터 만 20년 후인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공여 받은 액수는 3억 달러, 위의 23억 달러는 이 3억 달러의 약 8배였다. 
이 엄청난 자산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한국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씨 조선 518년을 대대로 통치해온 27명의 왕들이 이룩해 놓은 자산이 무엇이었는가를. 

도로를 닦아놓았는가, 
철로를 건설해 놓았는가?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는가? 
한글 단어장 하나 마련해 놓았는가? 

그 27명의 왕들은 길을 넓게 닦으면 오랑캐가 침입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던 길도 없앴다. 
선조는 임진왜란 내내 중국으로 망명할 생각만 했다.
27명의 왕들은 아래 사진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노예들의 골만 빼먹었다. 

조선왕들이 518년 동안 쌓아올린 재산은 초가집, 도로 없는 서울, 똥오줌으로 수놓은 소로, 민둥산, 미신, 거짓과 음모를 일삼는 미개인들이 공존하는 가두리 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36년 동안에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쌓아올렸다. 
이 엄청난 재산을 미국이 빼앗아 보관했다가 대한민국 건국자 이승만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미국은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땅도 빼앗아 주었고, 조선인들로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빼앗아 주었다. 
이 두 가지 구체적 선물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일본 모두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이 묻혀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었고, 그 배은망덕의 소치는 순전히 빨갱이들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미군정은 처음, 사유재산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매우 다행하게도 곧 이어 사유재산까지도 압류했다(군정법령 제8호, 1947.10.6.제정). 
공적-사적 재산 목록이 170,605건, 이승만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은 고생을 했다. 
엄청난 관리 인력과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에 인수되지 않고 농림부 등에 등록되어 있던 또 다른 일본인 재산이 121,304건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한 총 재산은 291,909건이었다.

미국은 어느 정도로 일본인을 발가벗겨 보냈는가?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극도로 제한했다. 
민간인은 1,000엔, 군장교는 500엔, 사병은 250엔 이상 소지할 수 없었다. 
미군은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본인의 주머니를 검열했다.

1945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5년 11월 3일에 작성한 <정보일지>(G-2 Periodic Report) 54호에 의하면 일부의 일본인들이 150엔을 주고 밀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자료들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밀항선을 타고 탈출한 일본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미국이 일본인들을 무산계급으로 만들어 겨우 몸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1945년 10월12일 부산항에서 귀환선을 기다리는 일본인들의 주머니와 짐을 미군 병사가 수색하고 있다. 
미국국립문서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 사본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그 많은 주식회사 급 기업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그 회사 직원이거나 관련이 있던 조선 사람들에 헐값으로 불하되어 오늘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오늘의 우리 대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기업들이었다. 

조선인들이 세운 업체는 ‘상회’라는 이름을 단 개인가게들이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방 이후 맨땅에 헤딩해서 창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할 것이다.

쇼와 기린맥주’는 당시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되었다.
‘삿포로 맥주’는 명성황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되었다(1998년에 하이트맥주로 상호 변경).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은 당시 직원이었다가 관리인이 된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선경직물’은 공장의 생산관리 책임자이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매매 하던 선만주단(鮮滿紬緞)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이란 이름은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직물의 ’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나가오카제과‘(永岡製菓)는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은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한국저축은행’은 정수장학회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삼호방직의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조지아 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이 되었다.
‘조선제련’이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가 해방 후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되어,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조선생명’이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되었다.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이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식품’이 해방 후에 ‘동립식품’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1985년에 ‘제일제당’에 병합되었다..

토요쿠니제과’가 해방 후에 ‘풍국제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어오다가 1956년에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되었다. ‘경기직물과 조선방직’이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하던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조선우선’이 직원이던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되었다. ‘동양방직’은 관리인이던 서정익에게 불하되었다.
‘아사히견직’은 부산공장장이었던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되었다. ‘조선주택영단’이 ‘한국주택공사’가 되었다. ‘아사노 시멘트 경성공장’이 김인득에게 불하되어 ‘벽산그룹’이 되었다.
‘경성전기-남선전기-조선전업’이 해방 후 합병되어 ‘한국전력’이 되었다.
‘가네보방직 광주공장’이 김형남,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일신방직’이 되었다.

‘동립산업’이 관리인이었던 함창희에게 불하되었고, 제일제당(현CJ)이 이를 흡수했다.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가 해방후 ‘한국미곡창고 주식회사’가 되고, 후에 ‘대한통운’이 되었다.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가 되었고, 후에 한진그룹에 편입되어 ‘한진중공업’이 되었다.

‘조선화재 해상보험’이 ‘동양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가, 지금 ‘메리츠 화재해방보험’이 되었다.
‘쥬가이’제약은 서울사무소 관리인에게 불하되어 현 ‘중외제약’이 되었다. 

이외에도 내로라하는 한국기업들은 거의가 다 일본인이 설립 운영하던 회사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조선인이 설립 운영하던 큰 기업은 김성수 집안에서 설립한 ‘경성방직’, ‘삼양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商會’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화신상회, 개성상회, 경성벽지 등이다.

일본이 팽개치고 나간 회사들을 조선인들이 이승만 정부로부터 ‘불하’란 명목으로 헐값에 인수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1961년 5.16군사혁명 후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축재자’로 몰렸다. 

일본인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겠는가? 
반면 불하받은 사람들은 어떤 ‘횡재’를 했는가? 
그래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단계에서 남조선에 두고 간 23억 달러 어치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요구했다.

해방 직후 북한을 선점한 소련은 군정을 통해 북한에 건설된 발전소, 공장 등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그것들을 건설하거나 운영해온 일본인 기술자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련군정은 만주에 주재한 ‘일본피난민단장’과 협의하여 북조선에 있던 모든 기계-설비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일본 기술자들을 북조선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들이 건설하고 애지중지 운영해오던 기계-설비들에 대한 엔지니어로서의 애착심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46년 1월 현재 총 2,158명의 기술자들을 일본으로의 즉시 귀국을 막고 북조선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스탈린은 당초 북조선에 있는 설비들을 소련으로 옮기라 명령했고, 소련군정은 중요한 기계들을 분해하여 포장한 후 소련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 직전 다시 스탈린으로부터 반출을 중단하라는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한다. 
세간에는 당시 소련이 북조선 기계들을 모두 뜯어 소련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럼 스탈린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 당시 이미 6.25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한다.
6.25 전쟁을 치르려면 북조선에서 병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자체 생산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기계-설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조선의 민둥산(1903년 서울)

조선의 산은 민둥산이었다. 
여기에 일본은 과학의 힘으로 경제성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산마다 쭉쭉 뻗어 올라간 경제목들이 들어차 있다. 
그 많은 나무들에 가지도 쳐준다. 
미국도 이렇게 한다. 
그래서 해방 당시 전국의 산에는 일본이 심은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광릉에 보존된 나무들이 바로 일본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전후방에 군부대들이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서면서 ‘후생사업’이라는 것이 활기를 띄었다. 
당시는 군대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역대 사단장들이 너도나도 덤벼들어 군 후생을 빙자해 벌목을 했다. 
거목들을 베어내 시장에 팔아 자금을 마련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 
대한민국 산이 다시 민둥산으로 변한 것이다.

이에 박정희 정부 농림장관인 장경순씨가 대통령의 명을 받고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지만 그 나무들은 일정시대의 산림처럼 경제림이 아니었다. 
포항제철 사례에서 보듯이 공업 분야에서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대대적으로 받았지만, 나무를 심는 식수계획에서는 일본기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가 장경순씨로부터 직접 들었던 이야기로는 수종선택은 토종기술에 의존했다. 
그나마 푸른 산을 푸르게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땔감의 개발이 필요했다.

1960년대, 19공탄이 산림훼손을 저지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영조시대인 1750년대에 석탄이 나무를 대체했다. 
영국이 한국을 210년 정도 앞서 간 것이다. 
이런 격차를 만들어 낸 주역은 1961년에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아니라 조선의 왕들이었다. 
일본이 가꾼 산림, 비록 금전적으로 환산은 될 수 없지만 어마어마한 자산이었음에 틀림없다. 

2019.10.20. 지만원

2019년 10월 22일 화요일

人事不省, 人事不成

人事不省, 人事不成

옛날 전쟁은 백성을 부리는 장수의 능력에 따라 성패가 갈리곤 했다. 물론 그 능력이란 것이 복합적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긴 쉽지 않다. 부득이 하나만 고르라면, 장수와 병사들이 똘똘 뭉치게 하는 지도력이 아닌가 싶다. 모든 병사들이 결사의 각오로 전장에 임하게 만드는 것은 장수의 꿈이었다. ‘백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면 천하에 당해낼 자가 없다.(百人必死, 橫行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 농민 출신이었던 당시의 병력 구성을 감안할 때, 자발적으로 목숨 걸고 싸우게 만들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당시 민초들은 이 나라가 망하면 저 나라 백성이 되면 그만이었다. 이런 판국인데,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명령만 내리면, 병사들이 적진으로 돌격할 거라고 기대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사기를 북돋울 어떤 전기(轉機)가 필요했다. ‘육도(六韜)’에 이런 고민이 엿보이는 내용이 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강태공에게 물었다. “나는 우리 병사들이 성을 공격할 때는 앞 다투어 성벽에 오르고, 들판에서 싸울 때는 앞 다투어 뛰쳐나가고, 퇴각하라는 징 소리를 들으면 성을 내고, 진격하라는 북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태공이 대답했다. “장수가 겨울에 갖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 부채를 잡지 않고, 비가 내려도 우산을 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병사가 느끼는 추위와 더위를 알 수 없습니다. 좁고 험한 길을 행군하거나 진창길 위를 지나가야 할 때 반드시 장수가 먼저 말에서 내려 걷습니다. 
몸소 힘써보지 않으면 병사의 수고와 괴로움을 알 수 없습니다. 병사의 숙소가 마련된 후에 비로소 숙소에 들며, 병사의 밥이 다 지어진 뒤에야 식사하고, 병사들이 불을 지피지 못하고 있으면 장수도 불을 지피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봐야 병사들의 배고픔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병사들은 진격하라는 북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퇴각하라는 징 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게 됩니다. 성벽이 높고 해자가 깊을지라도, 화살과 돌이 아무리 쏟아질지라도 병사들은 앞 다투어 성벽 위로 오르려 할 것입니다. 칼날이 서로 부딪쳐도 병사들은 앞 다투어 뛰어들 것입니다. 이는 병사가 죽기를 좋아하고 부상을 즐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장수가 병사들이 추운지 더운지, 배고픈지 배부른지 세심히 살펴보고, 수고와 괴로움을 밝게 살폈기 때문입니다.”

성군이라는 무왕도 실전에서는 애로점이 많았다. 어떤 병사가 죽기를 좋아하겠는가. 
장수와 병사의 강한 유대가 정예부대를 만든다. 요새 말로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람이 붙는다. 문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가의(賈誼, BC200~168)의 ‘신서(新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춘추시대 괵나라 임금 우공은 교만했다.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충간하는 신하를 배척했다. 민중이 따르지 않고 나라는 엉망진창인 판에 진나라가 쳐들어왔다. 백성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괵나라는 망했다. 우공이 달아나다 쉬는데, 목이 마르다고 하자 마부가 술을 바쳤고, 배가 고프다 하자 마부가 먹을 것을 바쳤다. 우공이 기뻐하며 어디서 구했냐고 묻자, 준비한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까닭을 묻자, 임금께서 도망가다 목마르고 배고프실 때를 위해서 마련해 두었다고 했다. 우공이 내가 도망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왜 미리 간하지 않았냐고 따지자 마부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아첨을 좋아하시고 바른 말을 싫어하시어, 말하고 싶었지만 나라가 망하기 전에 제가 먼저 죽을까봐 겁이 나서 말을 못했습니다.” 우공이 불같이 화를 내자 마부는 자기가 틀렸다고 사죄했다. 우공이 다시 대답해보라고 재촉하자, 임금이 너무 현명해서 도망치게 됐다고 말한다. 마부의 답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현명하다면 자리를 보존해야 하는데 왜 도망치는 신세가 된 것인지 캐물었다. 

그러자 마부가 말했다. “천하의 임금들이 모두 못나고 어리석어, 그들이 우리 임금님이 홀로 뛰어난 것을 질투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공이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아! 뛰어난 사람은 본래 이처럼 고생스럽다.” 
결국 임금이 자는 사이에 마부마저 도망치고 남겨진 임금은 굶어죽어 짐승 밥이 되었다. 

우공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망한 이유를 몰랐다. 그야말로 인사불성(人事不省)하다가, 인사불성(人事不成)한 것이다. ‘삼략(三略)’의 말미에 이런 말이 있다. ‘원망 받는 자에게 원망하는 사람들을 다스리게 함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짓이다. 임금이 한 사람을 이롭게 하고 백 사람을 해롭게 하면 백성은 성곽을 버리고 지키지 않는다. 임금이 한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 사람을 해롭게 하면 모든 백성이 흩어져 다른 나라로 갈 것을 생각한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현인은 몸을 낮추고 성인은 마음을 낮춘다. 
몸을 낮추면 시작을 도모할 수 있고 마음을 낮추면 끝을 보전할 수 있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나이 들어서야 이해되는말 18가지


나이 들어서야 이해되는말 18가지

1. 인생은 운칠기삼, 운이 70%,        
     의지가 30%

2. 인생에서 제일 안 좋은 것이
    초년성공 중년상처(아내가 먼저.  
     떠남) 노년빈곤.

3. 잘난 사람보다 약간 무능한 사람이   
     회사를 오래 다닌다.

4. 동창 모임에 가보면 학교 다닐 땐. 
     별 볼일 없었던 이들이 성공한
     경우가 많다.

5. 인생의 가장 큰 실수는 사람들
    관계에서 영양가를 따지는 것

6. 무엇이든 20년은 해야 겨우
    전문가 소리를 듣는다.

7.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뿌리지만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8. 업계를 떠나면 그쪽 인맥은 거의
    남지 않는다.

9. 월급은 회사에 공헌해 받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기회손실에 대한
    비용이다.

10. 남자는 40대 초반에 자뻑이
       제일 심하고 40대 후반부터
       급속하게 비겁해진다.

11. 다음의 5가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입 밖에 낸 말,
       쏴버린 화살,
       흘러간 세월,
       놓쳐버린 기회,
       돌아가신 부모님.

12. 결국 남는 건 배우자가 아니라
       자식과 사진이다.

13. 재능보다 중요한 건 배짱과
      끈기다.

14. 사람들의 추억이나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다.

15. 회사는 기억력이 없다.

16. 행복해지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신의 엉뚱하고 무모한
      꿈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17. 인생은 당신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누구를 만나느냐는   
       대부분 '운'이다.

18. 삶은 생각할수록 비극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살려고 마음을
      먹으면 즐거운게 꽤 많다.

걱정은 돌멩이 하나도 옮길 수 없다.


    걱정은 돌멩이 하나도
         옮길 수 없다.

"미국 콜로라도주 한 봉우리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400여년간
열네 번이나 벼락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나무가 쓰러진 까닭은 바로 딱정벌레 떼가 나무속을 파먹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폭풍과 벼락을 견뎌온 그 거목이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죽일 수 있는 작은 벌레 들에게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이 거목처럼 인생의 폭풍우와 눈사태와 벼락은 이겨내면서도 '근심' 이라는 벌레에게 우리의 심장을 갉아먹히고 있지는 않은지요?"

데일 카네기의 <근심이여 안녕> 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그만큼 걱정과 근심은 나를 파괴합니다.

일본 왕실의 서자로 태어나 존경받는 큰스님이 된 이큐 스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일을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편지 한 통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열어보아라. 조금 어렵다고 열어봐서는 안 된다.
정말 힘들 때, 그때 열어 보아라"

세월이 흐른뒤 사찰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승려들은 마침내 이큐스님의 편지를 열어볼 때가 왔다고 결정하고 편지를 열어보았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단 한마디가 적혀 있었습 니다.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된다."

이큐스님은 평소
"근심하지 마라.
받아야 할 일은 받아야 하고, 치러야 할 일은 치러야 한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이렇게 한 마디로 집약해 놓은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걱정하는 일조차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걱정은 거리의 돌멩이 하나도 옮길 수없습니다.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인생무상


일본여행 중에 누군가가 선술집에 걸어둔 글이다.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하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다리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리는 것이 안 멈추는 18세
심장질환이 안 멈추는 81세

사랑에 숨 막히는 18세
떡 먹다 숨 막히는 81세

학교 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 당료 걱정하는 81세

아무것도 모르는 18세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찾아나서는 81세.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다
가지 않으면 세월이 아니다
늙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자들 좀 보게!

담배는 피웠으나,
술은 마시지 않았던
린바오[林彪]. 63세 사망

술은 마셨으나,
담배는 피우지 않았던
주은래[周恩来]. 73세 사망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던
모택동[毛泽东].  83세 사망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카드도 즐겼던
등소평[邓小平]. 93세 사망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카드도 즐기고,
첩도 있었던
장학량[张学良]. 103세 사망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카드도 안하고,
여자도 없고,
오직 좋은 일만 한
레이펑[雷锋].  23세 사망

그런데 왜 죽어?

인물 좋고
허우대 좋고

학벌 좋고
가문 좋고

인심 좋고
돈 많고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장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그나마 한 방에 간다면 복 받은 것이다. 모든 게 끝이다.

걱정한다고 달라질게 없다. 그래도 걱정이 되면 오늘 까지만 걱정하고 내일은 내일을 살자!

힘들다고 술에 코 박을 수는 없는 일, 아프다고 세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원망하고 짜증내면 자기만 괴롭다. 그러려니 하고 살자. 

악몽을 꾸었다면 바로 잊어버리고 내일은 내일의 꿈을 꾸자.  고맙게도 인생은 내일에도 계속된다.

당신은 몇 살까지 살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근래 부쩍 '100세 시대' 라고 하니 100살 까지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래 자료를 보면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요, 축복입니다. 

한국인의 연령별 생존확률 
 
70세 생존확률 86%
75세 생존확률 54%
80세 생존확률 30%
85세 생존확률 15%
90세 생존확률 5% 
 
90세가 되면 100명중 95명은 저 세상으로 가고 5명만 남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확률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는 75세~78세입니다. 아파트나 돈은 90세까지 쓸 요량으로 하고 그 후의 일은 나 몰라라 하세요. 그 나이에 저축이라니?

당장 오늘부터 친구를 찾아 나서세요.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웃고 사십시오. 참! 맞있는 거 많이 드세요.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 하지 않습니까?

2019년 10월 8일 화요일

효부(孝婦) 이야기

♡효부(孝婦) 이야기♡

옛날 한 마을에....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정성스레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장에 갔는데
날이 어두워지도록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아기를 등에 업은 채
마중를 나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니
어느새 고갯마루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저만치
불빛 두개가 보이기에
시아버지이겠지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호랑이가 술에 취한채 잠이든 사람을 막 해치려던 참이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시아버지였습니다.

호랑이가 시아버지를 덥치려는 순간 며느리는 있는 힘을 다해

"안돼"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어 시아버지를 끌어 안자
호랑이가 멈칫하며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등에 업고 있던 아기를 내려놓으며 호랑이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이 아이를 드릴테니 제발 우리 시아버지를 해치지 말아요"

그리고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시아버지를 들쳐업고는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야 정신이 번쩍 든 며느리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무것도 모른 채 잠에서 깬 시아버지가 손자를 찾았습니다.

며느리는 눈물을 쏟으며
전날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벌컥 방문을 열고는 고갯길을 향하여 내달렸습니다.

며느리도 뒤쫓아갔습니다.

고갯마루에 이르러 살펴보았으나 아기도 호랑이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때 길을 가던 사람이
아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건넛마을의 부자(富者) 집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락섬 위에 웬 아기가 울고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달려가 보니

자기 아기가 부잣집 나락섬 위에서 새근 새근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며느리가 달려들어 덥석 아기를 안자 부잣집 주인이
사연을 물었습니다.

여인은 전날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연을 들은 부자 집 주인이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당신의 효성에 감동 해서 아이를 살려 주었군요.
그러니 이 나락섬의 주인은
이 아이입니다."

여인은 사양을 했지만 부잣집 주인은 하인을 시켜
나락 백섬을 이 아기의 집에
실어다 주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하늘은 변함이 없는 법,

하늘을 움직일만한 효성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오복(五福) 이야기

옛날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五福)을 보면,

♡️첫번째는 수(壽)로서 천수(天壽)
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
의 복(福)을 말했고,

♡두번째는 부(富)로서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
운 부(富)의 복(福)을 말했으며,

♡세번째는 강령(康寧)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
서 편안하게 사는 복(福)을
말했다고 합니다.

♡네번째는 유호덕(攸好德)으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福)을
말했고,

♡️다섯번째는 고종명(考終命)으로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
의 복(福)을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큰 행복으로 여겼던 이 오복(五福)을 염원하기 위해 새 집을 지으면서 상량(上梁)을 할 때는 !
대들보 밑에다가 "하늘의 세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엔 오복을 갖춘다"는 뜻의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는 글귀를 써 넣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서민들이 원했던 또 다른 오복(五福)으로는

1. 치아가 좋은 것 !
2. 자손이 많은 것 !
3. 부부가 해로하는 것 !
4.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
5. 명당에 묻히는 것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오복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건강한 몸을 가지는 복 !

두번째로 서로 아끼면서 지내는 배우자를 가지는 복 !

세번째로 자식에게 손을 안벌려도 될 만큼의 재산을 가지는 복 !

네번째로 생활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일거리를 갖는 복!

다섯번째 나를 알아주는 참된 "친구"를 가지는 복을 오복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오복이 가득하시길 소원합니다.♡♡♡

2019년 10월 6일 일요일

100세까지 걸을수있는 방법 4가지


사람은 며칠만 못 걸어도 우울증에 빠지고 건강도 나빠져 폐인이 된다.

노년이 되면 결국 걸으면 살고 못 걸으면 죽는다. 100세까지 활발하게 걷게 만들어주는 방법 4가지가 있다.

🔹️첫째.

1. 나이가 들수록 고기를 먹어라

보고에 의하면, 한국인의 72.6%는 단백질 섭취가 결핍돼 있다. 단백질은 근육, 피부, 장기, 머리카락, 뇌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단백질이 부족하면 우리 몸의 모든 대사기능이 떨어진다. 또 단백질은 젊음과 정력을 유지하는 성장호르몬, 성호르몬 생성에 관여한다.

인간은 하루에 몸무게 1kg당 1g 정도의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60kg의 성인 남자는 하루에 60g의 순수 단백질이 필요하다.

우리가 60g의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할까? 하루에 등심 600g, 장조림(우둔살) 300g 정도를 먹어야 한다.

단백질을 섭취하기 좋은 음식 세 가지가 있다. 우선, 돼지목살 수육이다.

단백질 함량은 소고기의 경우 등심보다는 안심이 높고, 돼지고기는 삼겹살보다 목살이 높다. 조리방법은 불에 구워 먹는 것보다 삶아서 기름을 뺀 것이 좋다. 따라서 단백질을 가장 잘 섭취할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는 돼지목살을 삶아서 기름을 쫙 뺀 수육이다.

중년이 되면 고기를 잘 소화시키지 못해 육류를 피하는 경우가 있다. 위산 분비가 줄어들어 고기를 소화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산 분비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은 식사 전이나 식사 중간에 식초나 레몬을 물에 희석해 마시면 된다. 식초는 위를 자극해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

2. 청국장이다.
건강 때문에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고기를 잘 안 먹는 사람들이 있다.

고기 대신 콩이나 식물성 단백을 섭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식물성 단백은 동물성 단백에 비해 흡수율이나 효율성 면에서 떨어진다.

그래도 식물성 단백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싶다면 콩보다는 청국장이 좋다.

콩은 단백질 함량이 높아 100g당 17.8g의 단백질을 함유하지만 흡수율이 떨어진다(생콩 55%, 삶은 콩 65%). 이때 청국장을 먹으면 바실러스균에 의해 발효가 되면서 단백질 분해 효소를 생성해 100% 가까이 흡수된다.

3. 달걀을 푼 황태 해장국이다.

황태는 100g당 단백질이 79g이나 되는 단백질의 지존이다. 게다가 단백질의 조성(류신 7.9 아이소류신 4.1, 발린 3.6g)이 좋아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황태 껍질에는 많은 양의 콜라겐이 들어 있다. 콜라겐은 우리 피부의 70%, 관절연골의 53%를 차지하는 성분으로 근육의 탄력을 높여주고, 동안의 비결이 된다.

🔹️둘째

1. 매일 같은 시간에 걸어라

운동은 꾸준함이 생명이다. 일시적으로 몇 번 하는 것은 몸에 이득이 안 된다. 또 하나 강조하자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운동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건강이 좋아지는 쪽으로 움직인다.

아침에 걷든, 저녁에 걷든 상관없다. 일정한 시간이 중요하다.

빨리 걸을 필요도 없다. 산책하듯 30분 정도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릎이 아파 잘 못 걷는데도 걸어야 할까?
무릎이 아파 얼마 못 걸으면 몇 번으로 나눠 걸어도 상관없다. 만약 10분 이상 걸으면 무릎이 아파 쉬어야 한다면 하루에 10분 걷는 것을 3번 해서 30분을 채우면 된다.

2. 매일 스쾃을 하라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수명과 직결된다. 일반적으로 40대가 넘어서면 매년 1%씩 근육이 감소한다고 하니, 100세가 되면 근육의 40%밖에 안 남게 된다.

필사적으로 근육량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불끈 불끈한 팔근육이나 복근은 미용을 위한 사치다.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은 우리 근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이 튼튼해야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1인치만 띄우고 그 자세로 몇 초나 버틸 수 있는지 측정해 보자. 무릎을 90도로 유지해 무릎이 발보다 앞으로 나가지 않아야 하고, 허리를 곧게 펴서 상체가 앞으로 구부러지지 않도록 한다. 그 자세로 30초 이상 버틸 수 있다면 당신의 허벅지는 이상 없다.

만약 10초도 못 버틴다면 빨간불이다. 당신은 허벅지 근육 강화를 위해 매일 스쾃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3. 집에서 운동화를 신어라

인간의 무릎 연골은 일반적으로 65년 정도 사용하면 닳아서 얇아지고 떨어져 나간다. 과거에는 평균 수명이 60~70세 정도였으니 65세쯤 무릎 연골이 없어지는 것이 큰 문제가 안 됐지만, 지금 65세는 청춘인데 무릎이 다 닳아버리면 나머지 30년은 어떻게 걸어 다니겠는가?

100세 시대에 무릎과 발을 보호하려면 집에서 운동화를 신어라.

요즘은 집 안 바닥이 타일이나 대리석 등 단단한 재질로 되어 있어 바깥의 아스팔트나 흙바닥보다 딱딱하다.

특히 집안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바깥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집 안에서 걸을 일이 더 많다. 이런 경우 집 안에서 맨발로 지내다 보면 실외보다 발에 충격을 훨씬 더 받게 된다. 발이 고장 나면 연쇄적으로 무릎과 허리에 무리를 줘 통증이 발생한다.

발은 안 아프고 무릎만 아프다는 사람이 있다. 발은 통증에 둔감해 이상이 생겨도 통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은 무릎 통증의 원인이 발에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발이 원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집에서 운동화만 신어도 무릎의 수명을 5년은 늘릴 수 있다. 슬리퍼는 밑창이 얇아 충격을 흡수하기에 충분치 한다.

운동화를 집 안에서 신으면 무릎에 걸리는 충격이 많이 완화돼 무릎 통증이 개선될 수 있다. 족저 근막염 등 발바닥 통증은 말할 것도 없다.😚

2019년 10월 5일 토요일

아내란 무엇인사?

아내란 무엇인가?
                 
(퍼 온 글)

아내라면 모름지기
조국의 아내다!

아내라면 적어도
교수 정도는 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50억 재산은 굴려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주식투자는 척척 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사모펀드 10억은 굴러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펀드 운용사 정도는 직접 설립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국정과제 사업 정도는 따먹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남편 신경 안쓰게 돈 척척 벌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이혼한 시동생 동서도 챙겨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상장 위조 정도는 척척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교수 인맥관리 정도는 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인턴 척척 주선해 스펙관리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서울대 KIST 정도는 가지고 놀아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딸에게 제1저자 거저 먹여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가짜 봉사활동 만들어 주선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자녀 외고는 쉽게 보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고려대 정도는 가쁜하게 입학시켜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서울대 환경대학원 우습게 보고 자퇴시킬 수 있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의학전문대학원 정도는 척척 입학시켜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2학기 유급하고도 6학기 연속 장학금 정도는 받아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자퇴하고도 장학금 알뜰하게 챙겨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멘탈 중무장'할 줄 아는 딸 하나는 있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사기꾼 조카도 수하에 두고 거느려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투자한 10억 세탁해 바로 돌려 받아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증권사직원 식재료 배달시키고 종처럼 부려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필요한 문서 바로 조작해 바쳐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월 200만원은 자문료로 챙겨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처남 컨설팅비 월 800만원은 챙겨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총장하고 맞짱 뜰 수 있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하드디스크 척척 갈아 치워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증거인멸 정도는 척척 해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변장하고 새벽에 스파이놀이는 할 수 있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텔레그램 정도는 쓸 줄 알아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입원하고 페북 정도는 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검찰총장한테 배신당할 정도는 돼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남편이 다 뒤집어 씌워도 찍소리 않고 참아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변호사 14명 정도는 선임할 수 있어야지…

아내라면 적어도
나라 뒤집어 놓고도 인권침해 받는다고 불평할 수 있어야지...

조국의 아내는 아무리봐도
우리 시대의 최고의 아내다!

마누라야
제발 조국 아내한테 좀 배워라!

우리 딸 의전원 보내고
나도 서울대 교수 법무장관 좀 되게…

오늘부터 밥 청소 빨래 그만두고
제발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