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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4일 화요일

♥70세 고개 넘으면 건강 관리법 완전히 새로 배워라

♥70세 고개 넘으면 건강 관리법 완전히 새로 배워라

'고령인' 나이와 건강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최근 노인을 두 단계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65~74세를 '준(準)고령인'이라 하고,
-75세 이상을 '고령인'으로 하자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75세를 기준으로 제안한다.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양윤준 교수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75세 이후로 신체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80세부터는 앓는 질환이 갑자기 늘어난다' 며
-'75세 전후로 신체 상태와 건강 관리법이 확연히 다르다' 고 말했다.

◇혈압·혈당 관리 75세 이후 '느슨하게'

65~74세 노인은 혈압·혈당 목표를 중장년층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하게 잡는다. 체중 감량, 운동 역시 강도 높게 하도록 권장한다.

반면 75세 이상은 느슨하게 관리하도록 한다. 혈당 수치보다는 저혈당 등 부작용을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다.

미국당뇨병학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당화혈색소(3개월간 혈당 조절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정상 6.5% 이하)를

▲건강한 노인은 6.5~7.0%
▲쇠약한 노인은 8.5% 이하
▲매우 쇠약한 노인은 9.0% 이하를 목표로 삼는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집안일·목욕 같은 일상생활을 혼자서 무리 없이 한다면 건강한 노인,
-누군가의 도움이 약간 필요하면 쇠약한 노인,
-혼자서는 불가능하면 매우 쇠약한 노인으로 구분한다' 며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75세 전후' 라고 말했다.

비교적 젊고 건강한
75세 미만 노인은 살을 빼고 과식을 피해야 하지만,
고령이면서 쇠약해진 75세 이상 노인은 고기 등 단백질을 되도록 많이 먹으면서 체중이 줄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비교적 젊고 건강한
75세 미만 노인은 살을 빼고 과식을 피해야 하지만,
고령이면서 쇠약해진 75세 이상 노인은 고기 등 단백질을 되도록 많이 먹으면서 체중이 줄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고혈압도 비슷하다. 고령 환자의 적절한 목표 혈압에 대한 결론은 아직 확실히 나지 않았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목표 혈압을 높게 정하고 있다.

65~74세는 140/90(㎜Hg)미만,
75세 이상은 150/90 또는 160/100 미만으로 관리하는 식이다.

서울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는 "고령 환자의 혈압을 너무 강하게 관리하면 저혈압 등 부작용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콜레스테롤, 나이 들어선 적절히 높게

이상지질혈증의 경우 고령일수록 되려 유병률이 낮다.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60~69세의 이상지질혈증 환자 비율은 전체의 37.6%지만,
-70세 이상에선 23.9%다. 섭취하는 음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입맛이 바뀌고 치아가 나빠져 고기 등 기름진 음식을 꺼린다.

75세 이후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진다고 안심해선 안된다. 오히려 75세 이후엔 콜레스테롤 수치를 적절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콜레스테롤은 혈관 벽의 주요 재료다. 너무 줄어들면 혈관 벽이 약해져 뇌졸중·심근경색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콜레스테롤은 호르몬의 주요 재료이기도 하다. 나이 들어 각종 호르몬의 분비량이 감소한 상태에서 콜레스테롤 섭취마저 줄어들면 신체 균형이 더 빠르게 무너진다.

◇나이 들수록 과체중일 때 치매 위험 낮아져

이러한 이유로 의사들은 75세 이후부터는 고기·과일 등을 충분히 먹으라고 권장하고 있다.
-75세 미만은 체중이 적을수록,
-75세 이상은 약간 과체중이어야 사망률이 낮다.

임수 교수는 "75세 이후의 과체중은 신체 기능 저하로부터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체질량지수(BMI) 기준 23~25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체중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도 75세를 전후로 확연히 다르다.
-75세 미만에선 과체중·비만이,
-75세 이후론 저체중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노인 68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60~69세의 경우 비만일 때 치매 위험이 정상 체중보다 70% 높았지만,
-70세 이상에선 오히려 3%,
-80세 이상에서는 비만일 때 치매 위험이 2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65~74세는 팔·어깨 부상, 75세 이상 다리·고관절 골절 주의

낙상(落傷)을 입더라도
-65~74세는 손목·팔·어깨처럼 상체에 부상이 집중된다.
-75세 이상은 다리·고관절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어깨관절치환술을 받은 노인은
-65~74세가 3만3121명,
-75세 이상이 2만2621명이었다.

반면 고관절치환술은
-65~74세가 5287명,
-75세 이상이 1만3532명이었다.

양윤준 교수는 "75세 이상은 근육량이 더 적고 반응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넘어지면 손을 짚어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 들수록 골다공증이 더욱 심해져 같은 충격이라도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암은 75~80세에 발병률이 가장 높다. 그러나 75세 이전에 많이 발생하는 암도 있다. 여성의 유방암·갑상선암이다.

국립암센터 김열 암관리사업부장은 "이유는 모르지만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선 40~60대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불쌍한 노희찬 영가님아!!

불쌍한 노희찬 영가님아!!

참 무지하고 무식한 세상이다.
생명의 준엄한 가치조차 모르는  야만인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노무현 노희찬의 자살이다.

이 우주속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내 자신의 육신
은 내 소유물일 수 없고 우주법계의 자산이라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말 무지하고 무식한  인간이 소란만 피우다 수미산보다 더 큰 업을 짓고 무간지옥으로 직행했으니 오호 통재로다.

도둑도 좀 있어야 열쇠장수도 먹고사는 도리쯤은 알아야 경세가인데 혼자 청정한척 위선을 더럽게  떨며 국민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다가 자승자박을 당한 것이다.

참으로 아쉽다
노희찬이는 죽을 것이 아니라  감방에가서 도를 닦았다면 박근혜 이명박처럼 선승의 반열에 오를 행운아가 될 뻔 했는데 기회를 놓쳤으니 병신중의 상 병신이다

노가 죽을 일이 아니고 정치란 놈이 죽어서 다시태어나야 하는데

골치 아프면 다 죽어야 하는지 노무현 노희찬 영가 님께 묻고 싶다
세상의 정의를 혼자 다 실천하는 양 까불다가
이게 뭐꼬?
정말 불쌍하고 가련한 영가님들 저승가서라도 철 좀들거라.

- http://v.media.daum.net/v/20180723124503569?f=m?rcmd=rn
- http://v.media.daum.net/v/20180723124503569?f=m?rcmd=rn

2018년 7월 23일 월요일

한 노병의 외침

🔵한 노병의  외침 -🔵

그대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촛불따라  가는길이 그리도 밝던가?

수십년 저주하던 얼굴이 하루 이침에 그리도 곱던가?

몽롱한 정신의 세계로 빠져가고 있는 그대모습들이 참으로 가련하구나.

춤추는 언론들의 가면극의 무대가 남인가 북인가?

발목잡힌 방북객들의 목줄이 이성을  잃고 조국을 버리려 하는구나!

그대가  원하는 평화란 어떤것인가? 방탕할만큼 누리던 자유가  싫어  졌던가?

잘사는 사람 성공한 사람들을 시기질투  할수 있었던 자유도 이제는 싫어 졌던가?

주체못할 자유도 이제 버리고 싶은가? 미끼를 미끼인줄  모르고 덥석 물은  우매한 인간들이 가야할 길은 어디이던가

오호 통재라!
그토록 악랄하고 무자비한 지옥같은  삶 을 수없이 듣고 보아왔건만 한 순간에 뒤집어진 생각들이 과연 정상적 이었던가?

몇푼의 청년수당에 젊은 패기를 버렸고, 달콤한 육아수당에 정신이 녹았고,

인상된 노년수당에 젊음과 생명을 바쳤던 조국애를 팔았고,

최저임금 운운하며 마치 자기돈이라도 퍼주듯하며 재벌을 죄악시하고

가진자들을 적대시하는 이 나라의 평등사회란 어떤  사회이며

막 퍼준 인기의 종말은 어디이며 그 부담은 누가 짊어져야하며 그 책임은 누가 질것인가?

이미  체면상태에 들어간 몽롱하고 우매한 인간들이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미 때는 늦었도다

오호 통재라! 
침몰해가는 조국이여! 자유대한민국이여!

허수아비처럼 춤추는 지성이라던 언론과 평론가들.

나라살리는 일꾼으로 뽑아준 국개들은 제살길 찾느라고 나라생각 잊어 버린지 오래고,

이 나라의 보수 지성들은 겁먹은 새앙쥐처럼 궤멸되어가는 보수를 보고도 무엇에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털면 먼지 날짓이라도 했는지 저항은 커녕 떨고만 있구나.

국가의 정체성에 반하는  세력에게  국가가 지원을 하지  않는것은  당연한 조치이거늘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며 생사람 다 잡아가더니 언제부터인가 TV에서는 그들을 비판하던 보수냄세나는 인물들은 자취를 감추었으니

이것은 브랙리스트가 아니고 보수괘멸 리스트이던가?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같은 그대들이여! 이렇게 보수가 쉽게 무너질줄 몰랐다고 점령군들 스스로도 놀랐다던데.

국립현충원에 잠들고. 있는 호국영령들이 없었다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나라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5만4천명의 전사자와 10만명의  부상자를 낸 미국을  물론이고 참전 및 의료 지원군을 보내준 21개국의 6ㆍ25참전국들을 대할 면목이 없구나.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이 나라의 국민들은 왜 이다지도 무지하단 말인가?

國破山河在라더니 이런들 어뗘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오.

참으로 태평이시던가? 이  모든게 자업자득이 이닐가?

소멸되어가는 자유대한민국이여! 소리 높여 외쳐본다

오호 통재라! 이미 때는 늦었도다. 이제는 그 업보로 가득찬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몸부림쳐도 소용없으리,
  (펌글)
월남전 참전병  예종이 씀

2018년 7월 22일 일요일

친구가 몇이나 되오?


[ 친구가 몇이나 되오? ]
        
류진사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다.

한 평생(平生) 살아오며 남의 가슴에 못 한 번 박은 적이 없고, 적선(積善) 쌓은 걸 펼쳐 놓으면 아마도 만경창파(萬頃滄波) 같은 들판을 덮고도 남으리라.

그러다보니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財産)을 야금야금 팔아치워 겨우 제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중농(中農) 집안이 되었다.

류진사(柳進士)는 덕(德)만 쌓은 것이 아니라 재(才)도 빼어났다. 
학문(學問)이 깊고, 붓을 잡고 휘갈기는 휘호(揮毫)는 천하(天下) 명필(名筆)이다.

고을 사또(使道)도 조정(朝廷)으로 보내는서찰(書札)을 쓸 때는 이방(吏房)을 보낼 정도였다.

류진사네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文士)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婦人)과 혼기(婚期) 찬 딸 둘은 허구한 날 밥상, 술상을 차려 사랑방에 들락날락하는 게 일과(日課)다.

어느 날, 오랜만에 허법(虛法) 스님이 찾아왔다.
잊을만하면 류진사를 찾아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허법 스님을 류진사는 스승처럼 대한다.

그날도 사랑방엔 문사들이 가득 차, 스님이 처마 끝 디딤돌에 앉아 기다리자, 손님들이 눈치채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허법 스님과 류진사가 곡차상(穀茶床)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류진사는 친구(親舊)가 도대체 몇이나 되오?”
스님이 묻자 류진사는 천장을 보고 한참 생각하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얼추 일흔은 넘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진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오.”

류진사가 눈을 크게 뜨고 문을 활짝 열더니 말했다.
“스님, 한눈 가득 펼쳐진 저 들판을 모두 남의 손에 넘기고, 친구 일흔을 샀습니다.”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친구란 하나 아니면 둘, 많아야 셋, 그 이상이면 친구가 아닐세.”

두 사람은 밤새도록 곡차를 마시다가, 삼경(三更)이 지나 고꾸라졌다.
류진사가 눈을 떴을 때 스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 부터 류진사네 대문(大門)이 굳게 닫혔다.
집안에서는 심한 기침소리가 들리고 의원(醫員)만 들락거려, 글 친구(親舊)들이 대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열흘이 가고 보름이 가도 진사네 대문은 열릴 줄 몰랐다. 그러더니 때아닌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밤에 곡(哭) 소리가 터졌다.

진사가 지독(至毒)한 고뿔을 이기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下直)한 것이다.

빈소(殯所)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부인과 딸 둘이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를 떨어뜨린 채 침통(沈痛)하게 빈소(殯所)를 지켰다.

진사 생전(生前)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글 친구들은 낯짝도 안 보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문상(問喪)을와 섧게섧게 곡을 하더니, 진사 부인을 살짝이 불러냈다.

“부인(夫人), 상중(喪中)에 이런 말을 꺼내 송구(悚懼)스럽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그 친구는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미망인(未亡人)에게 건넸다.

봉투를 열어보니 차용증(借用證)이다.  
류진사가 돈 백냥을 빌리고 입동(入冬) 전에 갚겠다는 내용(內用)으로, 진사의 낙관(落款)까지 찍혀있었다.

또 한 사람의 문상객(問喪客)은 왕희지(王羲之) 족자(簇子) 값 삼백 냥을 못 받았다며 지불각서(支拂覺書)를 디밀었다.

구일장을 치르는데, 여드레째가 되니 이런 채권자(債權者)들이빈소(殯所)를 가득 채웠다.

“내 돈을 떼먹고선 출상(出喪)도 못해!”
“이 사람이 빚도 안 갚고 저승으로 줄행랑을 치면 어떡해.”
빈소(殯所)에 죽치고 앉아 다그치는 글 친구들 면면(面面)은 모두 낯익었다.

그때 허법 스님이 목탁(木鐸)을 두드리며 빈소(殯所)에 들어섰다. 
미망인(未亡人)이 한 뭉치 쥐고 있는 빚 문서(文書)를 낚아챈 스님은 병풍(倂風)을 향해 고함(高喊)쳤다.

“류진사! 일어나서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던지고 산 잘난 당신 글 친구들에게 빚이나 갚으시오~.”

병풍(倂風) 뒤에서 ‘삐거덕’ 관 뚜껑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류진사가 걸어 나왔다.

빚쟁이 친구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해 신도 신지 않은 채 도망쳤다.

류진사의 만류(挽留)에도 불구(不拘)하고 허법 스님은 빚 문서 뭉치를 들고 사또에게 찾아갔다.
이튿날부터 사또(使道)의 호출장(呼出壯)을 받은 진사의 글 친구 빚쟁이들이 하나씩 벌벌 떨면서 동헌(東軒) 뜰에 섰다.

“민초시(閔初試)는 류진사에게 삼백 냥을
빌려줬다지?” 
사또의 물음에 꿇어앉아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린 민초시는 울다싶이 읍소했다.

“나으리,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곤장 삼백 대를 맞을 텐가, 삼백 냥을 부의금(賻儀金)으로 류진사 빈소에 낼 건가?”  
류진사는 글 친구들을 사느라 다 날린 재산(財産)을 그 친구들을 버려서 다시 찾았다.

"친구(親舊)란 온 세상(世上)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다"

2018년 7월 21일 토요일

머슴이 이조참판이 되고 그 아내는 정부인이 되는 아름다운 역사이야기.


[좋은 글]

머슴이 이조참판이 되고
그 아내는 정부인이 되는
아름다운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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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숙종때의 일입니다.
아직 나이가 스물이 되지 않고 허름한 옷차림의 젊은 청년이 경상도 밀양땅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高裕(고유)!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쳐 물리친 고경명의 현손이었지만 부모를 어린 나이에  잃고서  친족들의 도움도 받지못하고 외롭게 떠도는 입장이었지요.

밀양땅에 이르러서는 생계를 위해서 남의 집 머슴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머슴살이를 살고있고 학문이 짧아서 무식하여도 사람됨이 신실(信實)하였고 언변에 신중하고 인격이 고매하였으므로 그를 대하는 사람마다 그를 존중해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고도령"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박좌수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박좌수는 관청을 돕는 아전들의 우두머리였지만 박봉이었으며 중년에 상처를 하고 가세가 매우 구차하였는데  효성스런 딸 하나가 있어 정성껏 그 아버님을 모셨으므로 가난한 가운데도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고있었습니다. 

高裕(고유)는 그 마을에서 달을 넘기고 해를 보내는 가운데 어느덧 그 처녀의 효성과 현숙한 소문을 듣게되었고 먼 빛으로 보고 그 처녀를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운 처녀에게 연모의 정을 품게 되었답니다.

내 처지가 이러하거늘
그 처녀가 나를 생각해줄까?
     그 처녀와 일생을 함께 한다면 참 행복할 텐데!
     벌써 많은 혼사가 오간다고 하는데~
     한 번 뜻이나 전해보자
   그래!  부딪혀 보자고~!

그러던 노을이 곱게 밀려드는 어느날!
   고유는 하루의 힘든 일을 마치고 박좌수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본래 박좌수는 장기를 매우 좋아했으므로 우선 장기판부터 벌려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실없는 말처럼 그러나 젊은 가슴을 긴장시키면서 품었던 말을 꺼내 보았지요.
   "좌수어른, 장기를 그냥 두는 것보다 무슨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떠리까?"

   "자네가 그 웬 말인가, 듣던중 반갑구먼.
그래 무엇을 내기하려나?"
좌수는 웃어넘겼다. 이웃집에서 빚어 파는 막걸리나 파전을 내기라도 하자는 건가 생각하면서 ~

   "이왕 할 바에는 좀 큼직한 내기를 합시다.
이러면 어떨까요.?
제가 지거든 좌수댁 머슴살이를 삼년 살기로 하고 좌수님이 지거든 내가 좌수님 사위가 되기로요!"

박좌수는 그제야 고유의 말이 뼈있는 말임을 알았다.
  "에끼 사람아!
"내 금옥 같은 딸을 자네 같은 머슴꾼에게 주겠다던가?.
"어찌 자네따위나 주려고 빗발치는 청혼을 물리치고 스무해를 키웠다던가?"

고유는 박좌수에게  무안을 당하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고유가 돌아간 뒤에  박좌수와 고유가  말다툼하는 것을 방안에서 듣게된 딸이 물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무엇때문에 고도령을 나무라셨습니까?"
 
   "그 군정이 글쎄 나더러 저를 사위 삼으라는 구나~
그래서 내가 무안을 주었지..."
     박좌수는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면서 딸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았답니다.

그런데!
     "아버님, 그이가 어때서 그러셨어요. 지금은 비록 빈천하지만 본래는 명문 사족(士族)이었고 또 사람이
듬직하고 그렇게 성실한 걸요."

오히려 박좌수의 딸은
     처녀의 수줍음 탓에 얼굴은 불그레해졌지만
얼굴 두 눈에는 가득히 좌수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문을 얻어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좌수에게 혼인을 지내도록 하라고 권해 마지 않았습니다.
아니?따님도 싫어하지 않는데~
마치 자신들 집안의 일인양 여럿이 우겨대자 좌수도 끝내 반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
물 한사발 떠 놓고 두 젊은 청년과 처녀의 혼례가 이뤄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모은 돈으로 술 한동이를 받아 놓고 고기와 과일을 먹고 마시면서 그들 한 쌍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화촉동방의 밤은 깊어지고 고유와 신부는 촛불 아래서
부부의 연으로 초야를 치뤘습니다.
고유는 가난하였으나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색시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꿈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서방님!  글을 아시나요.?

     "부끄러우나 배우지 못했오.!"

     "글을 모르시면 어떻하시나요?. 대장부가 글을 알지 못하면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도 공명을 얻을 길이 없는 법입니다.

색시는 고유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앞으로 십년 작정을 해서 서로 이별하여 당신은 글을 배워 과거에 오르기로 하고 첩은 길삼을 하여 세간을 모으도록 해요.
  그렇게 한 뒤에도 우리들의 나이가 삼십이 되지 않으므로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닙니다.

이제, 사랑하는 우리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쓰라리지만 훗날을 위해서 고생하기로 해요."
색시는 고유의 품에 안기어 눈물을 쉼없이 흘렸습니다.

고유의 두눈에서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색시의 두손을 꼭 잡았습니다.
긴세월 접어두었던 학문의 길을 깨우쳐준 색시가
어찌 그리도 사랑스러운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지요!
아직도 동이트지 않은 새벽녁~
고유는 짧은 첫날밤이 새자 아내가 싸준 다섯필 베(布)를 짊어지고 입지출관향(立志出關鄕)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떠나서 어느 시장에서 베를 팔아 돈으로 바꾸고 스승을 찾았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도 자고,빈 사당 아래서도 밤을 새워가면서 좋은 스승을 찾아 발길은  합천땅에 이르렀습니다.

    고유는 인품과 학문이 높아보이는 스승님인듯한 사람에게 예를 올리고 글을 가르쳐 줍시사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학동들과 함께 천자문(千字文)을 처음 배웠습니다.
    처음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시작했으나
오륙년이 지난 후에는 놀라움 속에서 고유의 글은 실로 대성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스승도 탄복하면서
     "네 뜻이 강철처럼 굳더니 학문이 일취월장(日就月長)하였구나!
     "너의 글이 그만 하면 족히 과장에서 독보할만 하다. 이제 나로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올라가 과거나 보도록 하라."

     고유는 그동안의 신세를 깊이 감사하면서 그곳을 물러나서는 다시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방 한칸을 빌리고 사정을 말하여 밥을 얻어 먹으면서 상투를 매어 달고 다리를 찌르며 글을 익혔답니다.

    어느해!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숙종대왕이 정시(庭試)를보이는 영을 내렸지요.
뜻은 헛되는 법이 없었습니다. 고유는 처음 치루는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금방에 그 이름이 휘날렸습니다.

     그리하여 고유는 곧 가주서(假注書)로 시립(侍立)하여  왕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왕을 가까이 모시던 어느날!
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처마에 그 소리가 요란했으므로 왕은 대신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숙종은 "신료들 소리가 빗방울 소리에 방해되어 알아 들을수 없구나!라고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고유는 초지에 받아 쓰기를,
'처마에서 나는 빗 방울소리가 귓가에 어지러우니 의당 상감께 아뢰는 말은 크게 높여라' 하니 주서들이 모두 글 잘 한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왕은 그 쓴 글을 가져오라하여 본 다음에 크게 기뻐하여
     "너는 누구의 자손이냐" 고 물었습니다.

"신은 제봉  고경명(霽峰 高敬命)의 현손(孫)이옵니다."

   "허~! 충성된 제봉이 손자도 잘 두었군. 그래 고향부모께서는 강령 하시더냐?"

     "일찍 부모를 여의었습니다."

     "그럼 처자가 있겠구나."
     "예, 있아옵니다."

그날밤!
숙종대왕은 고유를 따로 불러서 그의 사연을 사적으로 듣고싶어했습니다
고유는 감히 기망할 수가 없어 그가 떠돌아 다니다가 밀양 어느 마을에서 머슴을 살게 된 이야기며, 거기서 장가들어 첫날밤에 아내와 약속하고 집을 떠나 십년동안 공부를 한 그의 이력을 모두 아룄었습니다.

     "허허~! 그러면 십년 한정이 다 되었으니 너의 아내도 알겠구나."

     "모를 줄 믿사옵니다. 과거에 오른지가 며칠이 못되와 아직 통지를 못했습니다."

     "음 그래?"
   왕은 그 자리에서 이조판서를 불러들여 현 밀양부사
(密陽府使)를 다른 고을로 옮기고 고유로 밀양부사를 임명하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유를 바라보면서,
    "이제 내 너를 밀양 땅으로 보내니 옛 살던 마을에 가서 아내를 보되 과객처럼 차리고 가서 아내의 마음을 떠 보아라."
     "과연 수절하며 기다리고 있는지~
변심했는지 그 뒷 이야기가 나도 궁금하구나!
대왕이 웃는다.
      "하하하!"

고유는 부복사은하고 물러나왔습니다.
그는 왕이 명한대로 신연하인(新延下人)들은 도중에서 떼어놓고 홀몸으로 허술하게 차린 다음 옛 마을 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집터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이었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이 버려진지 수년의 세월이 지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고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요.
    "못 믿을 건 여심이라던가?
첫날 밤에 맺은 굳은 언약이 가슴속에 사무치건만~"

     마침 가까이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보고 박좌수집 형편을 물으니 그가 고유인 줄은 못 알아보고는 동네의
그 늙은 이는 그가 아는 대로 일러 주었습니다.
      "박좌수 어른이요?
그러니까, 그게 3년 전이었군요. 병으로 죽었지요.  그에겐 딸이 하나 있지요. 벌써 10년 전에 이 마을 머슴을 살던  고도령에게 시집을 갔는데 웬일인지 첫날밤에 신랑이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혼자 되었지만~

"허허~
신기하게도 첫날 초야에 유복자(遺腹子)가 하나 생겼어요 참 ! 똑똑하지요.
그 여자는 현숙하고도 어찌나 부지런한지~
남편이 없는데도 크게 가산을 일으키더니
땅과 살림이 무수하고 저 건너 산 밑에 백여호가 넘는 대촌을 이뤄놓았어요
모두 그 낭속(廊屬)이요."

    고유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가산을 크게 이뤄놓은 사실이 아니라~
사랑의 언약을 지키면서 자신을 기다려줬다는 사실때문에 !

   고유는 노인에게 사례하고 자신을 따르는 군속들에게는 곧 주막에서 대기하도록 하였습니다.
어슥 어슥 어둠이 마을을 감싸올 무렵~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제일 큰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구걸하는 소리를 질렀다.
     '얻어 먹는 인생이 한 그릇 밥을 바라고 왔오이다."

사랑방에서 늙은 스승한테 글을 배우고 있던 소년이 그 소리를 듣고 나왔다.
     "들어 오세오. 손님" 

고유는 그가 아들인줄 알면서도 짐짓
     "아니 처마밑에서라도 좋네."  라고 하였다.

     "아니 올라오세오. 우리집에서는 과객을 절대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굳이 올라 오라 하므로 못이기는 체 올라가 웃목에 쭈그리고 앉았다.

     "저 그런데 손님의 성씨는 무었인지요"

     "허 비렁뱅이에게 무슨 성이 있나. 남들은 고가라 하지만."

그러자 소년의 눈이 더욱 빛났다.
     "저 그럼 손님 처가의 성씨는요.?

     "10년 전에 장가들어 그도 첫날 밤을 지내고는 헤어졌으니, 무슨 처가랄 게 있을까? 그댁호야 박좌수댁이었지만..."

      그때 박씨부인이 사랑에 웬 과객이 들었는데 성이 고씨라 하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들이 나왔다.
아들의 두눈은 기쁨과 설렘으로 어머니의 눈빛을 확인한다.
박씨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들 손을 잡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비록 10년을 떠나 살았지만 한 눈에 알 수 잇는 남편이라 기쁜 나머지 반가운 눈물을 흘렸다.
오래 그리던 회포에 쌓인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열살 먹은 아들을 인사 시켰다.
고유는 그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전히 힘없는 소리로 그의 그간 지난 일을 꾸며댔다.
     "그렇게 집을 떠나서는 뜻을 이루어 보려 하였으나, 운수가 사나워 베를 판 돈은 도적을 만나 빼았겨 버리고 이리저리 유랑 걸식하여 다니자니 글을 배울 힘도 나지 않았거니와, 혹 서당이 있어 글을 배우자하여도 돈이 없으니 가르쳐 주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 세월만 허비하고는 글은 한 자도 배우지 못하고 이렇게 비렁뱅이가 되었지요."

     그러나 부인은 조금도 원망하거나 민망해 하는 빛이 없이 사람의 궁달(窮達)은 운수에 있다고 하면서 그가 벼로도 수천석 추수를 장만해 놓았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좋은 옷과 음식을 들여 놓으며 도리어 남편을 위로하여 주었다. 
고유는 음식상을 앞에 두고 부인이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의 눈길에 남편의 겉옷이 걸렁뱅이 옷차림이지만 속옷은  새하얗고  께끗한 것에 놀랐습니다.
더구나 허리춤에는 관리들이 차는 명패가 흔들거리고 있었으니!

부인이
   "서방님! 사실대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고유는
    "나와 동행하던 사람이 있으니, 그들도 불러 들여 함께 먹어야 겠오."  했다.
      그래 부인이 하인을 시켜 그 사람을 사랑방으로 모셔 들이라 하였다.
      하인이 나가서 문 밖에 서 있는 과객을 보고 들어 가시자고 하자, 그는 들은 척도 않고 대로에 나가더니 품에서 호적(胡笛)을 꺼내어 높이 불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수십명의 관속들이 달려와 안으로 들어가서는 도열하였다.
그리고,박씨부인을 향해 문안인사를 아뢰고 야단이었다.  문밖에 서있던 과객은 먼저 고유의 지시를 받은 군관이었다.

     고유는 그제서야
"우리부부의  사연을 들으신 상감마마께서 지시한 것이라오. 당신의 마음을 떠보려 한것이 결코 고의가 아니었오!"
군속이 관복을 가져오니  갈아입고,박씨 부인앞에 당당하게 서게되니 부인의 기쁨은  어떠하였으랴.~

     그 이튿날부터 3일간 크게 잔치를 베풀어 동리의 남녀노소를 청하여 실컷 먹였습니다.
박씨 부인은 그동안 모아놓은 전답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글을 깨우쳐 주신 서당의 스승과 해인사 중들에게도 많은 보은의 폐백(幣帛)을 보냈음은 물론입니다.

      고유는 얼마 안 있어 다시 벼슬이 경상감사에 올랐다가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니,
숙종과 영조, 정조대왕등 3대를 모시면서 그 영화로움이 말할 것도 없고, 부인도 나라에서 지정하는 정부인(貞夫人)이 되어 늦도록 복록을 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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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高敬命)은
1533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으로
1552년(명종 8)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동래부사로 있다가 서인(西人)이 제거될 때 파직되어 낙향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성을 점령하자 격문을 돌려 6,000여 명의 의병을 담양(潭陽)에 모아 진용을 편성했다
큰아들에겐 전주성을 사수하게하고
금산(錦山)에서 관군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작은아들 고인후(高因厚)와 함께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의정부좌찬성에 추존하였고
광주의 포충사(褒忠祠), 금산의 성곡서원(星谷書院)·종용사(從容祠),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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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점은
고경명의 후손들은
고경명과 함께  임진왜란때 전사한 2명의 노비들 제사도 함께 모신다고 합니다

### 지구 위에 사람이 많이 살다 보니 별 다른 재주를 지닌 기인도 있어요

2018년 7월 20일 금요일

친구를 잃지 마라 (인생철학)

친구를 잃지 마라 (인생철학)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함께 갈 친구가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다.

친구를 찾았을 때의 기쁨과
잃었을 때의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큰 의미는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둘 다 대단히
큰 기쁨이고 대단히
큰 슬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친구를
잃었을 때의 슬픔이
더 클 것 같다.

친구 중의 최고의 친구는
단연 자신의 배우자다.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
사망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은 대개
새로 얻는 것보다도
이미 가진 것을 잃는 것에
더 큰 상실감을 느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친구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첫째,
똑같이 갚아 주려 하지 마라.

두루미가
여우를 저녁에 초청한다.
모든 음식들이 주둥이가 긴
그릇에 담겨 있다.
여우는 한 모금도 못먹고
쫄딱 굶고 돌아간다.

그야말로 황당함의 극치다.
역시, 두루미는 '새대가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에는 여우가
두루미를 저녁에 초대한다.
모든 음식이 납작한
접시에 깔려 있다.
두루미 역시 굶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보자.
자기 방식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온 사람은
로마식으로 대접하라!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대해주는 것 역시
서비스의 핵심정신이다.

더 큰 문제는 두루미는
머리가 모자랐을지 모르지만
여우는 사악하게
행동했다는 점이다.
여우는 귀한 친구 한 명을
잃어버리는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둘째,
혼자 다 먹으려고 하지 말라.

쥐 중에서 제일 잡기 쉬운 쥐는
단연 '독 안에 든 쥐'다.

그런데 쥐가 어쩌다가
독 안에 갇히게 됐는지
물어본다면
대개는 쥐 스스로 빈 독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쥐가 독 위에 올라가 보니
쌀이 독 끝까지 가득 차 있고
그래서 쥐 혼자서
먹을 욕심에 위에서부터
먹어 들어가다가
그만 독 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독 안에 든 쥐가 되지 않으면서
독 안에 든 쌀을 다 먹는
유일한 방법은
'친구와 밧줄' 뿐이다.
다른 어떤 방법도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다음부터 친구 없이
혼자 쌀을 다 먹겠다고 하는 순간
'하~아~, 내가 이러다가
독 안의 든 쥐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하시라.

나눠 먹는 사람은
친구를 잃지 않는 법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출구전략(exit plan)이
있어야 한다.

셋째,
상대방을 비난하지 마라.

두 친구가 길을 떠난다.
저쪽에서 곰이 갑자기 나타난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두 친구가 취한 태도는
정반대다.

한 명은 재빨리
옆에 있던 나무 위로 올라가서
곰을 피한다.
또 다른 한 명은
땅에 바짝 엎드린다.
죽은 척하는 것이다.

"곰은 죽은 동물을 안 먹는다"는
말이 진짜든 가짜든
일단 살고 봐야 하는 순간에
취한 선택이다.

곰이 땅에 엎드린
친구에게 다가오더니
귀에다 대고 뭐라고 얘기한다.
"저 나무 위에
혼자 살겠다고 올라간
저런 애랑 다시는
친구하지 말라."

곰은 땅에 엎드린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냥 지나친
셈이다.

나무 위에 피신한 친구가
내려오더니 궁금해서 묻는다.
"곰이 너한테 뭐라고 얘기했냐?"

친구가 답한다.

"다음부터 너 같은
친구하고는 함께 다니지
말라고 하던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당신이라면 그 곰의 말을
친구에게 전했을까.
그게 잘한 일인가.
곰의 '분할통치
(divide and rule)'
전략에 말려 들어갈 것인가.

그 말을 전달하는 순간
곰의 말이 아니라 당신의
진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이후 둘의 사이는
전과 같아질 수 있을까.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당신의 조직은
빨리 가려고만 하지 않는가.
빨리 가려고 조직원들
다 팽개치면서 냅다 뛰고
있지는 않는가.

방향이 어딘지,
몇 명이 같이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생존은 같이 가는 사람만이
챙길 수 있는 트로피다.

= 김형철 교수(연대 철학과)
= 카톡으로 받은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