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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30일 화요일

종아리마사지는 만병을 예방하고 개선

♧진짜 좋은 내용 입니다
이 글 맨아래 주소창을 열어서 그림들을 꼭 보시고 실천하세요.

🌺종아리를 만져보기만 해도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 수있고,하루5분씩만주물러도몸이따뜻해지면서면력력이5배높아진다.종아리마사지를 실천한 사람들의 체험 후기입니다

🌺하루 5분 정도 마사지를 했더니 3일 만에혈압수치가 20이나 내려갔습니다. (60대주부)

🌺두 살짜리 딸이 잠투정이
심해 애를 태웠었는데,
종아리를 주물러 주었더니
2분 만에 쌔근쌔근 잠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제 스스로 다리를 내밀며 주물러달라고 하네요. (30대회사원)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의사에게 종아리 마사지를 추천 받고 하루 2번씩 마사지를 했더니
심전도 결과도 좋아지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개선되었어요. (50대)

🌺종아리를 주물렀더니
허리통증과 어깨결림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50대 공예가)

🌺설암 수술을 받은 다음날
얼굴이퉁퉁부어오른남편의 종아리를주물렀더니놀랍게도 부기가 싹 빠지더군요. (40대)

🌺종아리 마사지를 하고 자면 다음날 전혀 피로하지 않고 몸이 개운해요. (30대 주부)

🌺고혈압/당뇨병/천식/아토피/암/심근경색/치매/요통/무릎통증/어깨결림/냉증/불면증/갱년기증상 까지...

🌺종아리마사지는 만병을 예방하고 개선시켜주며 언제 어디서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최강의 건강법이자 장수법이다.
🌺오니카 유타카 감수,
마키 다카코 지음 글에서-
미세먼지가 심한 아침에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ZZrP&articleno=275&daumid=22-quf&isUploadFarmUser=tr

고통! - 아파도 감사해요

고통! - 아파도 감사해요

세계적인 한센병 권위자인
'폴 브랜드' 박사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의 한센병환자
(나병)재활원의 원장 이다.

인도에서 20년, 미국에서 30년,
50년을 한센병 치료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가 출장차 미국을 떠나
영국에 도착하여 여러 지
방에서 업무를 본 뒤에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을
여행해서 런던에 도착했다.

그 날 밤,

그가 호텔에서 옷을 갈아 입
고 양말 한 짝을 벗는 중에
갑자기 발 뒤꿈치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센병의 권위자인
그 이기에 이 일은
그냥 넘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인도에서
수 많은 한센병 환자들을
시술하고, 피 고름을 만지
면서 치료해 본 경험이 많
은 그는 순간적으로 의심이 스쳐갔다.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날카로운 핀을 찾았다.

그리고

복숭아 뼈 아래 부분을
찔러 보았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는
핀을 한 번 더 깊이 찔러 봤다.

찔린 부분에서 피가 나오는데
도 감각이 없었다.

한센병에 감염된 것이
틀림 없었다.

그 날 밤,

'브랜드' 박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한센병 환자로구나.

한센병 환자로서의 인생
을 어떻게 살아 가야 할
것인가?’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격리되어서 살아 가야 할
외로운 자신의 인생의 말
로를 그려 보았다.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통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밤은 지나고 아침은 오지만,

'브랜드' 박사의 마음 속에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더 자기의 발을
찔러 보았다.

그 순간,

너무나 아파서 "악!”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오는 것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파서 감사합니다.

아파도 감사합니다.

아프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어제 장시간 기차 여행
을 하면서 좁은 자리에 오랫
동안 앉아 있다 보니,

신경의 한 부분이 눌려서
호텔의 방에 올 때까지
그 마비가 풀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날 이후,

'브랜드' 박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의 몸 아픔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렇게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실수로 손가락을 베일 때에도
감사, 찔려도 감사, 수술하다
손을 베어도 감사, 넘어져도
감사,

발을 잘 못 디뎌서 발목이 삐
긋하여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와도 감사,

모든
고통에 감사하며,

신경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평생을 살았갔다.

지금 몹시 아픈가?

여러 고통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었는가?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음에 먼저
감사하기 바란다.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이며, 어떤 면에서는 건강하다
는 표증이기도 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공기를 마시고,

누군가의 수고로 받은 고마움,

작은 일 하나 하나에 감사하자!

지금 가지고 있는 여러 고통과
상처, 아픔 조차도 감사한 것
이다.

- 골로새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또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내십
시오."

틱낫한 스님의 온전한 행복

♧ 틱낫한 스님의 온전한 행복 ♧

"삶은 1초마다 귀중한 보석으로 가득합니다.

이 보석은 바로 하늘과 지구는
물론, 산과 강, 바다와 주변의
모든 기적들을 인식하는
알아차림 입니다.

아침에 깨어날 때마다 새로운 24시간의 삶이라는 선물을
마음에 새깁니다.

마음챙김과 집중, 지혜가 있다면
이 24시간을 온전히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잠시
시간을 내어 즐거운 마음으로 얼굴을 씻습니다.

수도꼭지를 조금만 열어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합니다.
저는 수도꼭지 아래 손을 놓고
그 차가운 물을 온전히 느낍니다.

물방울이 손바닥에 조금 모이면 부드럽게 눈으로 가져갑니다. 눈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그 순간이 정말 즐겁습니다. 얼굴에 닿은 물의 느낌을 즐깁니다.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 있음을 즐기고
시간을 들여 물방울이 주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마음챙김, 집중, 지혜가 저를 도와 이 물이 아주 먼 곳에서 왔음을
알게 합니다.

이 물은 저 험준하고도 높은 산과 지구별 깊숙한 곳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여행하여 저의 욕실에 온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저는 곧 행복해 집니다.

마음챙김을 수행하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보석이고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지구, 평화, 행복 《깨어 있는 마음으로 깊이 듣기》
중 에서

2019년 4월 20일 토요일

Notre Dame de Paris 'Le Temps des Cathedrales'

Notre Dame de Paris 
'Le Temps des Cathedrales'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파리의 노트르담)의 오프닝 곡 
'대성당
(大聖堂)들의 시대'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 (1831)이 원작인, 프랑스 뮤지컬입니다.

1998년 초연된 이 뮤지컬은
이탈리아 음악가 리카르도
코치안테가 작곡을, 캐나다 퀘벡 출신인 뤽 플라몽동이 극본과 가사를 담당했습니다. 

15세기 파리와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삼은 '노트르담 드 파리'는 집시 여인을 향한 성당 종지기의 순수한 사랑뿐만 아니라 성직자의
세속적인 욕망과 파멸 등 당대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안소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
주연의 영화 '노틀담의 꼽추'로도
익숙한 작품입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요 등장인물은
에스메랄다 (집시 여인), 콰지모도 (노트르담 대성당 종지기), 프롤로 (노트르담 대성당 부주교) 페뷔스 (파리 근위대장) 등입니다.

세 남자 모두 에스메랄다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종지기 콰지모도는 추한 얼굴을 지닌 꼽추이지만, 맑은 영혼만큼이나 
에스메랄다를 순수하게 사랑합니다.

프롤로는 성직자임을 망각하고
에스메랄다에게 연정을 품었고,
페뷔스는 에스메랄다를 만나면서  
약혼녀를 버린 인물입니다.

에스메랄다는 이들 중 페뷔스와
사랑에 빠집니다. 프롤로는 이를 
질투해 페뷔스를 죽이고,
에스메랄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웁니다.

에스메랄다는 결국 교수형으로
숨지는데요. 종탑에서 처형 장면을 지켜보던 프롤로 역시 콰지모도에게
떠밀려 추락하며 죽음을 맞이하죠. 

이후 콰지모도가 숨진
에스메랄다를
품에 안고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란 
노래를 애절하게 부르는 가운데,
뮤지컬은 막을 내립니다.

소설에선
콰지모도가
종적을 감춘 몇 년 후, 한 지하실에서 꼭 껴안은 남녀의 백골이 발견되는데요.
다름 아닌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그토록 흠모했던 콰지모도
였답니다. 

감상할 '대성당들의 시대'는 뮤지컬의  오프닝 곡으로,
화자이자 해설자 역할을 하는  
음유시인 그랭구와르가 부릅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능한 신의 시대.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우리는 무명의 예술가. 제각각의 작품으로
훗날의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돌 위엔 돌들이 쌓이고 하루 또 백년이 흐르고
사랑으로 세운 탑들은 더 높아져만 가는데
시인들도 노래했지. 수많은 사랑의 노래를.

인류에게 더 나은 날을 약속하는 노래를.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그들을 성 안으로 들게 하라.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그건 이천년이라고." 

노트르담 드 파리 中 '대성당들의 시대'

https://www.youtube.com/watch?v=EocLKUzsaoc

http://news1.kr/naver/subscribe/1056

2019년 4월 19일 금요일

같은 일, 전혀 다른 삶


■ 같은 일, 전혀 다른 삶 ■

어느 날 공자가 조카 공멸을 만나 물었습니다.

"네가 벼슬한 뒤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대답했습니다.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나랏일이 많아 공부할 새가 없어 학문이 후퇴했으며

둘째,
받는 녹이 너무 적어서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공무에 쫓기다 보니 벗들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공자는 이번엔 공멸과 같은 벼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제자 복자천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복자천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글로만 읽었던 것을 이제 실천하게 되어
학문이 더욱 밝게 되었고,

둘째,
받는 녹을 아껴 부모님과 친척을 도왔기에
더욱 친근해졌습니다.

셋째,
공무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우정을
나누니 벗들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공멸과 복자천,
그들은 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똑같은 수입을 가지고도 한 사람은
세 가지를 잃었다고 푸념하는데
한 사람은 오히려 세 가지를 얻었다고 감사합니다.

공멸과 복자천의 차이가 있다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제임스 베리 -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두유


《두유》

소년은 급사(給仕)였다.
황해도에서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왔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대중목욕탕 심부름꾼부터 모자가게 점원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의학강습소의 급사 자리를 얻게 됐다.
등사기를 밀어서 강습소 학생들이 볼 강의 교재를 만들어내야 했다.

“자연스레 교재를 들여다봤죠. 용어가 어려워 옥편을 뒤져가면서 독학을 하다 보니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의대에 다니지 않아도 시험만으로도 의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거든요.”

주경야독으로 의사고시에
매달린 지 꼬박 2년.
그는 20세에
의사고시에 합격했다.
주변에선 국내 최연소
의사라고 축하해줬다.

시험에 합격한 해인 1937년 서울 성모병원의 의사가 됐다.
병원 생활은 평탄했지만
수십 년 뒤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사건이 생겼다.
뼈가 앙상하고 배만 볼록 솟아오른 갓난아기 환자가 병원에 온 것이었다.

“아이 엄마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아이를 업고 꼬박 하루 걸려 왔다고 했어요.
어렵게 얻은 아들이라며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요.
차트를 보니 병명이 ‘소화불량’이었는데,
아이는 끝내 세상을 떴습니다.”

어떤 의사도
아이를 살릴 수 없었다.
이후에도 복부 팽만으로 병원을 찾은, 적지 않은 신생아들이 설사만 하다가 무력하게 죽어갔다.
의사가 된 청년은 자책과 의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이 아이들을 언젠가는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이제는 유학을 가보자.’ 당시 43세였던 그는 의사 초년병 시절에 접했던, 소화불량에 걸린 신생아들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의학 선진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때가 가장 큰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주변에서는 반대했다.
그에게는 아내와 6남매가 있었고,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도 보장돼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살려내야겠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영국 런던대에 공부하러 갔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어요. 곧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UC메디컬센터로 건너가 미국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나 샅샅이 뒤져봤지요.”

1964년, 그는 도서관에서 소아과 교재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바로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lactose intolerance)’이 소개된 대목이었다.
20여 년간 지녀온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유당불내증은 우유나 모유의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을 가진 신생하는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

우유 대용식을 만드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줬던 콩국을 떠올렸고,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서울 명동에서 ‘정소아과’를 운영하며 아내와 함께 우유 대용식 개발에 매달렸다.
아내가 콩을 맷돌로 갈아 콩국을 만들면 그는 콩국의 영양이 충분한지 분석했다.
병원 지하에 실험용 흰 쥐를 잔뜩 갖다 놓고 콩국을 먹인 쥐에게 유당불내증이 나타나는지 등을 실험했다.
주변에선 “정소아과 원장이 미국에 다녀오더니 이상해졌다” 고 수군댔다.

이렇게 3년 남짓 연구한 끝에 두유를 개발해냈고 이것을 설사병에 걸린 신생아들에게 줬다.
병상의 아이들은
눈을 뜨면서 기력을 차렸다.
콩에는 필수영양소(단백질 40%, 탄수화물 35%, 지방 20%)가 들어 있지만 유당은 들어 있지 않다. “인생에서 최고로 기뻤던 순간”이었다.

설사병을 앓는 아이의 부모들 사이에서는 ‘정소아과가 용하다’는 입소문이 났다.
전국 각지에서 그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환자가 몰리자
두유 수요가 달렸다.
자연히 아픈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이 두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결국 정재원은 1973년 ‘정식품’이란 회사를 세워 두유 대량 생산에 나섰다.
콩국이 식물성 우유라는 점에 착안해 식물(vegetable)과 우유(milk)의 영문명을 합쳐 ‘베지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당시 56세였던 그는 다시 한번 도전의 길에 접어들었다.

“개인 병원만 운영하다 기업을 이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지요. 하지만 신생아들을 살리려면 창업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어요.”

그가 사명감을 갖고 만든 베지밀은 지금도 두유업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창업 후부터 올해(5월 말 기준) 까지 만들어진 두유는 총 130억 개다.
이를 나란히 세우면 서울∼부산을
1630차례 오갈 수 있다.
‘인류 건강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저’를 정식품의 창업이념으로 정한 그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기업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의 이야기다.
그는 생존해 있는 한국 재계의 창업주 중 최고령이다.
우리 나이로 99세인 그는 올 1월 ‘백수연(白壽宴)’을 치렀다. 백수연을 한자로 쓸 때는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을 뺀 ‘흰 백(白)자’를 쓴다.
100세보다 한 살이 적은 99세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다.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은 아내인 고(故) 김금엽 여사와 사이가 각별했다.
그는 서울 성모병원에서 의사생활을 하던
시절 아내를 만났다.
고아였던 아내는 수녀원에서 자랐고, 성인이 된 뒤 가톨릭 계열인 성모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내로라하는 집안에서 중매가 여러 건 들어왔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박꽃처럼 예뻤던’ 아내 때문이었다.

공부하는 여성이 드물 때였지만, 그는 아내에게 유학을 권했다. 아내가 일본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해인 1942년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정 명예회장은 “선 봐서 결혼했더라면 처갓집 눈치가 보여 40대에 유학도, 50대에 창업도 선뜻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두유를 개발한 아내는 정식품의 ‘각자대표’ (1973∼1987년)를 맡아 사업에서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줬다.

그런 아내는 2004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정 명예회장은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턱시도를 차려 입고 조문객을 맞이했다.
그의 턱시도는 황해도
고향에서 올린 결혼식 때
입었던 예복이었다.
부부는 반세기 넘게 ‘결혼의 징표’인 턱시도와 면사포를 간직했다.
턱시도를 입은 정 명예회장은 아내의 관(棺) 속에 흰색 면사포를 넣어줬다.
백발의 노신사는 아내에게 예(禮)를 다해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
.
.
.
너무 감동적이라..

2019년 4월 17일 수요일

황홀한  밤


황홀한  밤

집에서 
아내와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왠 낯선 여자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는 날 너무 잘 알고있다면서 내일 저녁시간에 만날 수 없겠냐고 나는 힐끗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그러마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는 누구냐고 물었지만 별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사우나를 다녀오고 미용실에도 들렀다 
저녁에 약속장소인 호텔커피숍에 도착하니 그 여인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너무나 멋지고 세련된 여인이였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자 그녀가 자기 소개를 했다. 오래 전부터 가까운 곳에 살면서 나를 좋아 했지만 
말도 전하지못하고 야속하게 세월만 많이 흘렸노라고.
부모님을 따라서 케나다로 이민가서 
기반을 잡고 재산을 많이 늘렸는데 작년 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단다. 부모님 재산이 국내에 남아 있어서 유산 정리 차 국내에 왔다고했다.
술이나 한잔하면서 얘기나 나누자며 잔을 권했다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하니 황홀한 밤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흐르자  호텔 5층에 자기가 예약한 룸이 있어니 그곳에 가서 얘기나 더하고 가란다. 
이번에 다녀가면 한국에 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면서
'오~!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 오는구나...'
룸에 가자 그녀가 윗옷을 벗는데 
드러난 몸매가 얼마나 멋지던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녀가 또 다시 사정조로 나왔다.
오늘밤만 같이 있어주면 안되겠냐고...나는 그렇게 해서 이름도 모르는 그 여인과 사랑을 나눴다.
한참 후 
그녀가 봉투를 하나 건네 주었는데 3억 원이 든 통장과 도장이 들어 있다고 했다 로또당첨도 아니고 이런 횡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으로 그 봉투를 받는 순간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나딩굴어진 초라한 나...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대낮에 뭔 개꿈을 꾸길래 침대에서 떨어지고 난리야?"
아...! 이것이 정녕 일장춘몽이란 말인가...!
ㅍ ㅎ ㅎ ㅎ
                        (끝)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코믹 楚漢志(1)


■ 코믹 楚漢志(1)

-楚漢志 이전의 진시황(秦始皇) 이야기

코믹楚漢志를 시작하기 전에 중국 역사를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은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그당시 중국은 진(秦)을 포함하여 한(韓), 조(趙), 위(魏), 초(楚), 연(燕), 제(齊) 등 7개의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진시황(秦始皇)은 이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중국을 통일합니다.

만약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하지 않았다면?

중국 역시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나뉜 채로 발전해 왔겠지요?

진시황(秦始皇)은 기원전 259년...

진(秦)나라 왕자 자초(子楚)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을 알기 이전에 진시황(秦始皇)의 아버지 자초(子楚)부터 살펴보죠.

자초(子楚)는 당시 진(秦)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의 뒤를 이은 안국군(安國君)의 후계자로 입적된자 입니다

안국군(安國君)은 정실인 화양부인(華陽夫人)과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고, 측실에서만 20여명이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자초(子楚)는 화양부인이 아들로 삼은 자입니다

그래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고, 이웃 강대국 조(趙)나라에 인질로 보내지는 신세로 본국에서는 잊혀진 인물이었죠.

일과가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늘도 하루 해가 저무는구나..
아! 내 고향 진(秦)나라가 그립다..
언제나 돌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무료하게 생활하는 자초(子楚)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장사치 여불위(呂不韋)를 만나게 되는 거죠.

여불위(呂不韋)는 세상을 읽는 눈과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판단력이 매우 비상했다고 합니다.

여불위(呂不韋)가 우연히 자초(子楚)를 만나보고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특이한 상품이다..기화가거(奇貨可居)로다!"

* 기화가거(奇貨可居)

진기한 물건은 사둘 만한 가치가 있다는 내용으로, 훗날 큰 이익으로 돌아올 물건이나 사람한테 미리 투자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판단한 후 자초(子楚)에게 접근하여 황금 날개를 달아줍니다..

자초(子楚)로서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질 일뿐이었지요..

"이 재물을 고관대작들에게 마구 뿌리시오..
그래서 인기를 끌도록 하시오."

"인질 주제에 인기는 끌어서 뭐합니까?"

"공자께서 귀국할 사유가 있을 때 고관대작들의 반대가 없어야 합니다."

"여불위(呂不韋) 선생....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자님...
밤이면 밤마다 외로우실 터이니 여자를 한 명 바치겠나이다."

이렇게 설득하여 자기가 아끼던 애첩 조희(趙姬)를 자초(子楚)에게 줍니다.

조희(趙姬)는 자초(子楚)를 모시라는 말을 듣더니..

"어머...이거 명백한 <스와핑> 아니야?
날더러 자초(子楚)를 모시라니?

그...그런데....자초(子楚) 품에 안기기도 전에 왜 자꾸 헛구역질이 나지?
우..액..우..액..신맛나는 과일이 자꾸 땡기네.."

졸지에 자초(子楚)의 품에 안긴 조희(趙姬)가 애를 낳아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애가 '영정(嬴政)' 즉 후일의 진시황(秦始皇)입니다.

[이거 DNA 검사 해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까지도 진시황(秦始皇)은 자초(子楚)의 아들이 아니고..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여하튼... 이런 조처를 한 후 여불위(呂不韋)는 진(秦)나라로 갑니다.

진(秦)나라에서는 왕위 계승이 유력한 안국군(安國君)과 정실 화양부인(華陽婦人)을 만납니다..

화양부인(華陽婦人)에게는 엄청난 값진 선물을 안기며..

안국군(安國君)에게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따로 제공합니다..

조(趙)나라에 인질로 있는 자초(子楚)가 보낸 것이라고 하면서..

자초(子楚)를 양자로 삼으라고 꼬드기지요.

이 공작이 성공하여 자초(子楚)는 안국군(安國君)의 양자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여불위(呂不韋)의 투자는 멋지게 성공했지요?

안국군(安國君)이 진(秦)나라 효문왕(孝文王)이 되었으나,

그는 왕위에 오른 지 불과 사흘 만에 죽습니다.

왕이 죽자 그 양자인 자초(子楚)가 조(趙)나라에서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그가 바로 진시황(秦始皇)의 아버지 장양왕(莊襄王)입니다.

당연히 여불위(呂不韋)는 진(秦)나라 최고 실권자인 상국(相國) 즉, 수상이 되고.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읍니다.

3년 후 장양왕(莊襄王)이 죽자 영정(嬴政)이 왕위에 오르죠

그가 바로 장차 천하를 통일할
진시황(秦始皇)입니다.

자초(子楚) 즉 장양왕(莊襄王)이 죽자 그에게 주었던 애첩 조희(趙姬)는 자연스럽게 여불위(呂不韋)의 품 안으로 돌아옵니다.

애첩 조희(趙姬)는 태후(太后)의 신분입니다.

왜냐면 아들 영정(嬴政)이 왕이 됐으니까요.

그런데.. 여불위(呂不韋)가 정력이 쬐금(?)부족하여..

애첩 조희(趙姬).
아니 태후(太后)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 영감탱이가 비아그라 먹고도 고작 이렇게밖에 힘을 못써?

니가 여불위야...토불이야?  토끼만도 못해....."

발악하는 태후(太后)가 무서워진 여불위(呂不韋)는 그녀에게 내시로 가장한 사내 한 사람을 바칩니다.

그가 바로 어마어마한 물건을 가진 정력의 사나이 '노애(嫪毐)'입니다.

그걸로 마차 수레바퀴를 돌렸다고도 하지요?

태후(太后)는 크게 만족하죠. 그리고 밤마다 태후전(太后殿)에서는 교성(?)이 울려 퍼집니다..

"어...머..머...멋....하악...하악........"

불과 13세에 왕이 된 영정(嬴政)은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으나.

10년 후 23세가 된 젊은 왕은 이를 알게 되었고..

"창피하고 불미스러운 일이다.
노애(嫪毐)를 때려죽이고..
내 어머니를 유폐시켜라."

영정(嬴政)은 자기 어머니의 내연남.

그...물건(?) 큰 노애(嫪毐)를 때려죽입니다.

그리고 진시황(秦始皇)은 어머니 태후(太后)를 옹(雍, 함양 서쪽)이라는 고을에 유폐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여불위(呂不韋)까지 숙청하죠...

1년 뒤 여불위(呂不韋)는 자살합니다.

여불위(呂不韋)가 죽으면서 남긴 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Vanity of vanities ; all is vanity.(전도서 1:2)]

이렇게 되어 진(秦)나라는 영정(嬴政)의 천하가 됩니다...

다음은 영정(嬴政) 진시황(秦始皇)의 천하통일 과정을 살펴볼까요?

-다음회로

미친놈 씨리즈


♥미친놈 씨리즈😂

*집.재산 다물려주고 자식에게 붙어 사는 놈

*친구 말한디에 보증서주고 집도 절도없이 길거리에 나앉은 놈

*한입에 먹으려고 전재산 주식투자해 거지가 되는 놈

*10억대 부동산 부자가 단칸방에서 밥해먹고 사는 놈

*통장에 수억원 돈넣어 놓고 휴지줍고 사는 놈

*사이비종교에 재산헌납하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놈

*집 팔아서 자식놈 사업밑천 다 대주는 놈

*손주녀석 봐주느라고 못 놀러가는 놈

*뼈빠지게 퇴직금 받아서 자식들에게 다 돈 꿔주는 놈

*재산도 얼마 되지 않은 말년에 선보러 다니는놈

*28청춘 한창인놈이 애딸린 이혼녀에게 장가간다는 놈

*선거에 3번 떨어지고도 빚내서 또 출마하는 놈

*집.재산.돈 다 물려주고 자식들이 구박한다고 고소하는 놈

*60넘어 사업하겠다고 집 저당잡히는 놈

*70세에 드라이버 거리 내겠다고 스윙폼 렛슨받는 놈

*80세에 젊은여자 즐겁게 해주겠다고 비아그라 먹는 놈

*90세에 더 오래 살겠다고 귀한 보약 찾는 놈

*100세에 건강진단 받으로 종합병원 가는 놈

*약속시간이 두시간 넘도록 여자 기다리는 놈

*꽃뱀에게 속아 재산 다 탕진하고도 또 여자 찾는 놈

*가는여자 안붙잡고 오는여자도 안붙잡는 놈

*50세 넘어 거시기에 다마 박는 놈

*60세에 여자에게 한번만 달라고 쫒아다니는 놈

*70세에 젊은 여자와 재혼하고 재산 명의 다 이전해주는 놈

*80넘어 뭘 배운다고 열공하는 놈.

*여자가 줘도 못먹는 놈.

*다른여자는 몰라도 내여자는 자연산일거라고 생각하는 놈.

*이 세상여자를 다 지꺼라고 생각하는 놈.

*어쩌다 정선가서 100만원 따고 또 다니다 재산 날리는 놈.

*여자가 어쩌다 한번주면 지 마누라로 착각하는 놈

*첫날밤에 내가 첫남자냐고 물어보는 놈

*잘모시겠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전재산팔아 큰집사주고 며느리밑으로 들어가 눈칫밥 얻어먹고 사는 놈

2019년 4월 14일 일요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의 의미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의 의미★

 지금은 별로 쓰지 않는 말이 되었지만 수 십년 전만 해도 아이들을 어르거나 놀릴 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고, 너의 진짜 엄마는 지금도 그곳에서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을 해놓고 울면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어른들로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이 말은 과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아주 재미있는 유래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이 처음 생겨난 곳은 그전에는 강원도였다가
지금은 경상북도가 된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 옆에 있는 ‘청다리’라는 곳이다.
순흥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지역으로 원래 고구려 땅이었다가 신라로 편입되었던 곳이다.

고구려 때에는 급벌산군이었다가 신라로 편입되면서
경덕왕 때에 급산군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에 와서는 흥주로 되었고 고려말 조선초에 순정 혹은 순흥으로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지니는 순흥은 영남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자리를 해오면서 그 명성을 떨쳤는데, 북쪽에는 송악이 있고 남쪽에는 순흥이 있다고 할 정도로 큰 도시였으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비가 올 때도 비를 맞지 않고 처마밑으로 십리를 갈 수 있을 정도로 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는 말은 순흥의 번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명성을 떨치던 순흥이 멸망의 길을 걸은 것은 세조 때의 일로 이곳으로 유배 온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역모의 땅으로 지목되면서부터였다.
 
“다리 혹은 청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워왔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소수서원은 1542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사묘를 세운 후 이듬해에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1550년에 풍기 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이 임금께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이라고 하였으니 우리나라의 체계적인 사립대학은 여기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처럼 최초의 사액서원이 성립되자 이때부터 전국의 선비들이 공부와 수양을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순흥은 다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소서서원에 공부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선비들은 주로 젊은 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이 그 지역의 처녀들과 사랑을 나누면서부터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남녀가 사랑을 하면 거의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가 바로 임신인데, 현대사회처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인지라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교사회였던 조선조 사회에서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당사자 집안에서는 비밀리에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갓 태어난 아기를 강보에 싸서 한 밤중에 소수서원 옆에 있는 청다리 밑에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버려진 아이는 누군가가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이 소문이 점차 퍼져나가자 이번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많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선비라면 최고의 신분이고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핏줄을 데려가 기르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안에서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전국에서 몰려든 아이 없는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도착한 다음날 새벽에 아이를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운이 나쁘면 몇 달씩을 기다려서 아이를 얻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전국으로 입양된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지금도 그 말이 남아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상당수의 아이가 입양되었다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겨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변화를 거듭하여
현대에 들어와서는 해당 지역의 다리를 증거물로 하는 이야기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 재미있는 이야기라 옮깁니다^^♥^^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멋쟁이로 살자

(꽃) 멋쟁이로 살자
          
세월이 흘러 인생 일흔 줄에 들어서야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잠이 깨면 그때부터 자유다.
하루라는 시간이 모두 내 꺼다.

무얼 하든,
무얼 먹든
나의 자유, 내 마음 대로다.

구속도 없고 속박도 없고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다.

하고 싶은 일 하면 되고
가고 싶은 곳 가면 된다.

무엇이든 내가 알아서 하면 되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 없으니
완전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다.

일흔 줄에 들어서  비로소
나의 인생이 이렇게 넉넉하고
풍요롭게 된 것이 놀랍지 않는가?

더구나 무슨 짓을 해도
그릇됨이 없다는 일흔 줄에,
무슨 일을 해도
부끄럼이 없다는 나이에 말이다.

그러나 매일 먹고 놀고,
놀고먹고 무위도식,
허송세월해서야 될 말인가?

하고픈 일 하면 되고
제일 잘하는 일 즐기면서 살면 된다.

친구 만나 점심 나누면 되고
그리움과 사랑 나누며 어울리면 된다.

절대 구질구질하지 않게 멋있고
아름다운 심성으로 살아야 한다.

주책스럽고 망령스런
탐욕 같은 것 버리고

세상사 모두 달관한 원로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권위와 존경은 공짜가 아니다.

스스로 노력과 모범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너그럽고 관대함은 필수이고
아픔과 갈등을 풀어가는
포용력도 있어야 한다.

가슴을 열고 스스로 먼저 다가가서
가슴이 따뜻한 이웃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질 익은 사과 향기처럼
원로의 향기가 나는 사람,

멋쟁이로 살자.

즐겁고 아름다운 삶도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

인생은 연극이다.

각본, 연출, 주연

모두 자기 자신이다.

한 번 뿐인 인생,

다시 못 오는 인생.

멋쟁이 원로로 살면  좋겠다. ♂♨♡♀
  
           -  수필가 시인 권우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