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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0일 화요일

어머님

♥   어머님  ♥
 
           ㅡ 법정 스님 ㅡ

우리 같은 출가 수행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불효자다.  

낳아 길러준 은혜를 등지고 뛰쳐 나와 
출세간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해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나는 집을 나와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골목 길을 빠져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중이 되러 절로 간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시골에 있는 친구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보다도 비쩍 마른 할머니의 품속에서 혈연의 정을 
익혔을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내 입산 출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어머니 보다 할머니가 더욱
가슴 아파 했을 것이다. 

내가 해인사에서 지낼 때 할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외동 손자인 나를 한 번 보고 눈을 감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시더란다. 
 
불전에 향을 살라 명복을 빌면서 나는 중이 된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린시절을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덕이다.

내게 문학적인 소양이 있다면 할머니의 팔베개 위에서 소금 장수를 비롯한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란 덕일 것이다.
 
맨날 똑같은 이야기지만 실컷 듣고 나서도
하나 더 해달라고 조르면 밑천이 다 됐음인지 긴 이야기 해주랴, 짧은 이야기 해주랴고 물었다.
 
긴 이야기라고 하면 "긴긴 간지때"로 끝을 냈다. 간지 때란 바지랑 대의 호남 사투리다. 
 
그러면 짧은 이야기하고 더 졸라대면 
"짧은 짧은 담뱃대"로 막을 내렸다. 
 
외동 독자인 나는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
어린시절 할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 나섰다.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선뜻 나서서 기꺼이 해드렸다.

일제 말엽 담배가 아주 귀할때 초등학생인 나는 혼자서 10리도 넘는 시골길을 걸어가 담배를 구해다 드린 일도 있었다.
 
내가 여덟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를 따라 옷가게에 옷을 사러 
갔는데 그 가게에서는 덤으로 경품을 
뽑도록 했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뽑은 경품은 원고지 한묶음이었다. 운이 좋으면 사발 시계도 탈 수 있었는데 한묶음의 종이를 들고 아쉬워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에
일찍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성은 김해 김씨이고 이름은 금옥 
고향은 부산초량, 부산에 처음가서 초량을 지나갈 때 그곳이 아주 정답게 여겨졌다.

지금 내 기억의 창고에 들어 있는 어머니에 대한 소재는 할머니에 비하면 너무 빈약하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나를 낳아 길러주신 
우리 어머니는 내가 그리는 어머니의 상
즉 모성이 수호천사처럼 늘 나를 받쳐 주고 있다.
 
한 사람의 어진 어머니는 백사람의 교사에 견줄만 하다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한 인간이 형성되기 까지에는 그 그늘에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이나 옮겨 다녔다는 고사도 어머니의 슬기로움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절에 들어와 살면서 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갔다. 내가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후 어머니는 사촌동생이 모시었다.

무슨 인연인지 이 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 어머니보다 우리 어머니를 더 따랐다. 모교인 대학에 강연이 있어 내려간 김에 어머니를 찾았다.
 
대학에 재직중인 내 친구의 부인이 새로 이사간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불쑥 나타난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점심을 먹고 떠나 오는데 골목 밖까지 따라 나오며 내 손에 꼬깃꼬깃 접혀진 돈을 쥐어 주었다.
 
제멋대로 큰 아들이지만 용돈을 주고 싶은 모정에서 였으리라. 나는 그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어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절의 불사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주를 했다

두 번 째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가는 길에 대전에 들러 만나 뵈었다. 동생의 직장이  대전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 때는 많이 쇠약해 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전에 없이 눈물을 지으셨다. 이 때가 이승에서 모자간의 마지막 상봉이었다.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광주에서 사실 때인데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드렸다.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그 날로 산을 내려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위태로웠다.
나는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마른 솔잎단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팠었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를 두고 두고 생각케 했다. 
 
어느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꺾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이라면 지체없이 달려갔겠지만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승가의 안거제도) 를 철저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 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49재는 결제가 끝난 후라 참석할 수 있었다. 단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렸다.

나는 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 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늙어가면서 문득 문득 생각나는 '어머니'라는 단어는 한없이 기대고 한없이 불러보고 싶은 단어입니다.

이제 어디서 불러 볼까요?

2023년 5월 3일 수요일

세월이간다

■ 세월이간다 ■
                             - 송 정 -

어려서 빨리 어른이되고 
싶었다
결혼도 하고 출세도 
하고싶었다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른지
어느새 머리가 빠지고
주름이 생기더니 

물 마시다 사래들고
오징어를 두마리씩 씹던
어금니는 인프란트로 채웠다 

안경 없으면 더듬거리니
세상만사 보고도 못본척 
조용히 살란 이치인가 

세상이 씨끄러우니 
눈감으란 말인가
모르는척 살려니 눈꼴이 시린게 
어디 한두가지인가 

나이들면 철이든다 하더니
보고 들은게 많아선가 
잔소리만 늘어가니
구박도 늘어가네 

잠자리 포근하던 
젊은시절은 가고
긴밤 잠 못이루며 
이생각 저생각에 

개 꿈만 꾸다가 
뜬 눈으로 뒤척이니
긴 하품만 나오고 

먹고나면 식곤증으로 
꼬박꼬박 졸다가
침까지 흘리니 누가 보았을까 
깜작놀라 얼른 훔친다 

구두가 불편하여 운동화 
신었는데
쿳션따라 사뿐히 걷다가 
중심이 헷갈려 
엎드러지고 뒤뚱대니 
꼴불견이로구나 

까만 정장에 파란 넥타이가 
잘 어울리더니 
이제는 트렌드가 아니라나 
어색하기 짝이없어 차라리 
등산복 차림이다 

속알머리 빠진 머리는 여름에 
뜨겁고 
겨울에는 추워서 벙거지 뒤집어 쓰는데 
손 발은 봄이오는 소리 모른척 
시리구나 

전화 번호부에 등록한 이름은 
하나둘
지위져 가고 
누군지 알듯 모를듯한 이름은 
삭제를 한다 

정기 모임 날자는 꼬박꼬박 
달력에 
표시하며 친구들 얼굴 새기고 
이름도 새겨 보며 손꼽아 
기다려진다 

늙는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은
아마도 가을 논에 풍년들어
허리 굽혀 고개숙인 벼이삭을 
말했는가 보다 

점점 늘어 가는것은 기침소리요
손발이 저리고
서랍장에는 자식들이 사다준 
건강식품 과  병원 약봉지 뿐이다 

외출 하려면 행동이 느려지고 
신발신고 현관을 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안경쓰고 

나가다 돌아서 지갑찾고
마스크 챙겨서 나가는데 
뭔가 불안해서 멈추니 핸드폰 
두고 나왔다 

이쯤되니 혹여 치매인가 불안에 떨다가
하루 이틀 지냈더니 제자리 
오라가락 

모임에 나갔더니 너도나도 
그렇다하니
정상이라 치부하고 그러러니 
한다 

이제 뒤 돌아보니
가버린 시절 그립고 추억으로 
가득한 
지나간 날들이 인생의 가치였다 

아이들아!
어른이  되려고 하지마라
추억이 그리우려니
거기에서 머무러 꿈을 꾸어라 

어른이되니
이렇게 인생이 간다
저물어 간다
모르는척 세월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