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ed By Blogger

2018년 1월 31일 수요일

인생, 이렇게 살아라


고달픈 인생

오죽하면 태어날 때 울기부터 했을까마는
양껏 벌어도 먹는 건 세끼요
기껏 살아도 백년은 꿈인 것을
못 산다고 슬퍼말고 못 났다고 비관마라

재물이 늘어나면 근심도 늘어나고
지위가 높아지면 외로움도 더하는 법
부자 중에 제일은 마음 편한 부자요
자리 중에 제일은 마음 비운 자리이다

하늘이 무너질 걱정도
하늘의 몫이지 사람의 몫이 아닐테니
웃으며 살아라
맘껏 웃으며 살아라

웃어야 복이 오고 웃어야 건강하다

물처럼 살아라

물을 벗하지 아니하고 어찌 불을 다스리리
사람이 사람인 이상
비운다 한들 다 비울 수 있을까 마는
어느날 분수에 넘치는 탐욕이 일거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이치에 맞게 양심을 거스르지 말 것이며
어느 순간 미움과 증오로 분노가 일거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분노의 언 가슴 용서로 물로 흘러보낼 일이다

물이 그릇을 탓하더냐
둥글면 둥근대로
모나면 모난대로
제 모습을 그릇에 맞추는 물처럼 사는 사람은
세상을 탓하지 아니하네
각박한 세상에서도 맑은 소리로
순수하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도리에 어긋남이 없고 노릇에 부족함이 없다

- 이채 -

누가 묻거든

누가 묻거든

얘야 묻지 말거라
인생을 알려면 세월에게 물어보렴

얘야 묻지 말거라
그걸 알려고 사계절을 살아봤는데 다시 오는 계절은 또 다른 대답을 가져다 주는구나

해마다 같은 꽃이 피고 해마다 같은 바람이 불고 해마다 같은 비가 오는데 나이가 들수록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니 내가 정답을 말해줄 수가 없구나

얘야 묻지 말거라
배운 게 있다면 수학 공식은 알려줄 수 있겠고 들은 게 있다면 아는 것은 가르쳐 줄 수 있으나 인생만큼은 내가 가르쳐 줄 게 없구나.

똑같은 사람이라면 내 너에게 내가 실패한 것을 말해줄 수 있으나,

사람은 저마다 달라서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니 얘야 묻지 말거라

그저 세월에 가끔 힘들면 해님에게 물어서 방긋이 웃는 법을 배우고
그저 가슴이 아플 땐.! 살포시 내리는 빗물한테 배우고,
고통을 잊고 싶을 땐 휘익하고 지나가는 바람에게 배워서,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렴

혹시나 누가 묻거든 온 세상이 선생님이니 자연에게 배웠다고 전해주렴.

인생도처다상수(人生到處多上手)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인생도처유청산 (人生到處有靑山) 이라 하여 뜻만 있으면어디든 사람살곳은 있다고 했고

이를 응용한듯한 유홍준 교수의 세상 곳곳에 인생의 고수가 있다는 말(人生到處有上手)이 요즈음처럼 나에게 절실히 다가온적은 없었다

또 비슷한 말이 논어에도 있다

子曰 三人行에 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이니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요
其不善者而改之(택기불선자이개지)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세 사람이 길을 감에 반드시 거기에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르고 그 선하지 않은 것을 고친다.” 라는 뜻이다

젊었을때나 한창 일할때는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
아니 내가 최고였다는 생각보다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보다도 더 무지했었을지도...

경험하고 눈에 보인것만 인정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생겨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 오는게 많아짐으로 인해 내가 아는게 우물안 개구리의 개구리보다 못하다는걸 알고..또 알아야 할것들이  점점 많아지져 간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참 세상에 고수가 많다는걸 느낀다

뒷산에 피어 있는 꽃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나를 보면서 오늘도 나는 평범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잘난척하는 많은 사람들...인생도처다상수(人生到處多上手)다 .

2018년 1월 30일 화요일

[結草報恩]

結 (맺을 결), 草 (풀 초)
報 (갚을 보), 恩 (은혜 은).

춘추시대, 진나라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아끼는 첩이 있었으나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어 눕자
본처의 아들인 위과에게 말했다.

“첩이 아직 젊으니 내가 죽거든
다른 곳에 시집 보내도록 해라.”

그런데 병이 깊어지자
말을 바꾸었다.

“나를 묻을 때 첩도 함께 묻어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는 난감했다.
처음에는 시집보내라고 했다가
다시 자신과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고민하던 그는
결국 첩을 살려 주어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깊어지면
생각이 흐려지기 마련이오.
정신이 맑을 때
아버지가 처음 남긴 유언을
따르는게 옳다고 생각하오.”

그 뒤,
진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침략당하자 위과는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터로 향했다.
양측이 싸움을 벌일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위과의 군대는 적군의 공격에 몰려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잡아매어
온 들판에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적군들은 말을 타고 공격해 오다
거기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그 틈을 타, 공격하자 위과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적의 용맹한 장수 두회도 사로잡았다.

위과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친정아버지요.
그대가 그대 아버지의
첫 번째 유언대로
내 딸을 살려 주어,
그 은혜에 보답했다오.”

이 이야기에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유래했는데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위과는
자신이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훗날, 그 대가를 받았다.
반대로 노인은 죽어서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았다.

우리에게 이 고사성어는
은혜를 베푼 사람이나
받은사람 모두에게
본 보기가 될만하다.(share)

그렇습니다
선악은
반드시 뿌린대로 거둡니다

선을 행하고 뿌리면
행운이 뒤따라 오지만,

은혜를 잊거나
보답을 악을 행하면 후일
큰 불행한 날이 연속됩니다

매사 은혜와 보답을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죽으면 흙됩니다. 즐겁게 살아 갑시다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호화로운 묘지 속에
묻힐 수도 있고
이름없는 풀섶에 버려질 수도 있으며
한 줌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기도 한다.

극락이나 천당은
인간의 생명이 있는 동안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理想鄕)일 뿐이다.

신(神)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신을 만든 것은 사람이다.

인간은 본래  나약해서
의지할 신(神)과 종교를 만들어놓고
스스로 그 카데고리 속에 갇혀서 살게 된 것이다.

즉, 사람은
人間으로 시작되어
人間으로 끝나는 것이다.

초대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왔고

허락하지 않았어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간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일진대,

거기에 어떤 탄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살아오면서
다소의 화를 내었을 것이다.

지나고 나니 그 화란 모두
나를 불태운 것이고,
상대를 불태운 것이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불태웠던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장맛이 나쁘면 집안이 기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메주를 담가서 새끼줄로 엮어 벽이나 천장에
걸어 집안의 온갖 미생물이 메주에 달라붙어 그것을 발효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가족 간에 다툼이 잦다면 그 다툼의 홧김에 의해
메주 균이 죽게 된다.
그래서 메주가 꺼멓게 되고 결국 장맛이 고약해진다.

이렇듯 무서운 것이 홧김인데,잔뜩 화를 품고서 아기나 사람을 대하면 어찌 될까?

싸움이 잦은 집에서 사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온몸에 부스럼과 종기를
달고 사는 것은 그 이유다.

노여운 기운은
항상 그 죄없는 아이들의 혈관 속을 흐른다.

살아있는 동안에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언날 바람처럼 떠나는 게
인생'입니다.⛪🍏🍁

2018년 1월 29일 월요일

1%의 행복

♥ ♥

  '텔마 톰슨' 이라는 여인은2차 세계대전 중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한 육군 장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제이브 사막'근처의  육군훈련소에
배속되어 왔습니다.
 
  남편 가까이에 있고자 이사를했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외롭고 고독하기만 했습니다.

  못마땅한 점은 이루 말할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훈련차나가고 오두막집에 혼자남게 되면,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이야기 상대라고는 고작 멕시코인과 인디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항상 모래 바람이 불어 음식물은 물론이고, 호흡하는 공기에도 모래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절로 신세 한탄이 나왔고,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생각이 들어 친정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당장이라도 짐을꾸려 집으로 돌아가겠으며, 이곳에더 눌러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편이 낫겠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형편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당장오라거나 자신을 위로해줄거라 기대했던 아버지의 답장은 '단 두 얘기' 뿐 이었습니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바퀴벌레를 세며,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다."

  너무 간단한 편지 내용에 처음엔
너무나 실망했지만, 이 두 얘기가 그녀의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문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던 그녀는,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그때부터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자신에게 밤하늘의 별이 무엇일까 ?  를 생각했고, 주변을 살피던 중, 원주민들과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반응은 그녀를 놀라게했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편물이라든가 도자기에 대해흥미를 보이면, 그들은 여행자에게는 팔지도 않던 소중한 것들을 이것저것 마구 선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선인장, 난초, 여호수아 나무 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했고, 사막의 식물들을 조사했으며, 사막의 낙조를 바라보기도 하고, 1백만 년 전 사막이 바다의 밑바닥이었을 무렵에 존재했을 법한 조개 껍질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
시켰을까요 !?

  '모제이브 사막' 은 변함이 없고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변한 것은, 바로 그녀 '자신' 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가짐' 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녀는'비참한 경험' 을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모험' 으로 바꾸었고, 새롭게 '발견한 세계' 에 자극 받고, 너무나 감격한나머지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성벽"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출판 싸인회' 에서 그녀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사막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너는 불행하다 !'
'너는 외톨이다 !'
'너는 희망이 없다 !' 라고  말하는 ~
'마귀의 소리' 도 들렸고,

  "너는 행복한사람이다 ! 이곳으로 너를 인도한 이는 바로 나 하나님이다.

  이곳에서 너의 새 꿈을 꾸려무나 "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도 들었습니다.

  "저는 '마귀의 소리' 에 귀를 막고 ~
'하나님의 소리' 를 들으면서,
오늘의 이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

  이와 같이 '행복' 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떤 상황' 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가짐' 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덥다고 짜증을 부리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면, 나머지 가족들까지 신경질을 부리게 되며, '부정적 바이러스'는 모든 가족에게 번져서 ~기분을 망치게 됩니다 !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하면 '살자' 가 되며, 영어의 '스트레스(stressed)' 를 반대로 하면,
'디저트(desserts)' 란 말이 됩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고,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고 살 권리가 있습니다 !

  우리는 절대로 "행복"하여야 합니다 !

  이해인님의  이란 시 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행복 하냐고 ~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살고있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 을 달면 ~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 이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 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 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

  어느 상품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
다시, 얼른 채워 넣어 ~

  "행복의 무게" 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좋았던 추억,
감미로운 음악,
파란하늘, 태양, 달, 별, 나무와 꽃들 ~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

  팽팽한 무게 싸움에서는
아주 '미미한' 무게라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 , 라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행복합니다 ! "

     (받은글)

2018년 1월 28일 일요일

선현들의 자취를 기리자 ! ! !

  선현들의 자취를 기리자  ! ! !

🎋
<<한 위대한 한국인을
    무릎 꿇고 추모하며>>

50년 전
1965년 7월 19일
오전 0시 35분

하와이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나이 아흔의 한국인 환자가
숨을 거두었다.

한 달 전부터 피를 토했다.
7월 18일엔 너무 많은 피가 쏟아졌다.

옆에는 평생 수발하던 아내,
대(代)라도 잇겠다며 들인 양자와
교민 한 사람밖에 없었다.

큰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숨이 끊어졌다.
어떤 어려움에도 우는 법이 없었던 아내가  오열했다.

전기 작가 이동욱씨는 영결식의 한 장면을  이렇게 전했다.

한 미국인 친구가 울부짖었다.

"내가 너를 알아!
내가 너를 알아!
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는지…

그것 때문에 네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바로 그 애국심 때문에.

네가 그토록 비난받고
살아온 것을.
내가 알아…."

그 미국인은 장의사였다.

그는 1920년에 미국서 죽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유해를
중국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이라는
한국인이 찾아와
그 관(棺)에 숨어
상하이로 가겠다고 했다.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데
일본이 자신을
현상수배 중이라고 했다.

그 한국인은 실제 관에 들어가 밀항에 성공했다.

'너의 그 애국심 때문에
네가 얼마나 고생했고,
얼마나 비난받았는지
나는 안다'는  절규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15일 아침 서울 국립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나흘 뒤면  그의 50주기다.

필자 역시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얘기만 듣고 자랐다.

그의 생애 전체를 보고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이 대통령 묘 앞에서

'만약 우리 건국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정치의
변동을 알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 없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없이 우리가
자유민주 진영에 서고,

그 없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그 없이 한·미 동맹의
대전략이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에 누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추모비에 적힌
지주(地主) 철폐,
교육 진흥, 제도 신설 등

지금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바탕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원자력발전조차 그에 의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무지몽매한 나라에 태어났으나

그렇게 살기를 거부했다.

열아홉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나라 밖 신세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썩은 조정을 언론으로 개혁해보려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감옥에선 낮에는 고문당하고 밤에는 영어 사전을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독립하는 길은 미국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1905년 나이 서른에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을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국제정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1년 미국에서 'JAPAN INSIDE OUT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을 썼다.

그 책에서 이 대통령은
일본이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책이 나온 지 넉 달 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인 이승만을 다시 보았다.

이 대통령은 1954년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이렇게 썼다.

'일본인은 옛 버릇대로
밖으로는 웃고
내심으로는  악의를 품어서 교활한 외교로 세계를 속이는…
조금도 후회하거나 사죄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뿐더러…

미국인들은 지금도
이를 알지 못하고
일인들의 아첨을 좋아하며
뇌물에 속아 일본 재무장과 재확장에 전력을 다하며…

심지어는 우리에게 일본과 친선을 권고하고 있으니….'

이 대통령은 서문을
'우리는
미국이 어찌 하든지 간에
우리 백성이 다 죽어
없어 질지 언정
노예는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합심하여
국토를 지키면

하늘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고 맺었다.

평생 반일(反日)한 이 대통령을 친일(親日)이라고 하고,

평생 용미(用美)한 그를
친미(親美)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 매도하는 것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어지러운 구한말 모두 중·일·러만 볼 때
청년 이승만은 수평선 너머에서 미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를 19세기 한국의 콜럼버스라고 부른다.

우리 수천년 역사에
오늘날 번영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 박사의 공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은
이 위대한 지도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거인이 이룬 공(功)은
외면하고 왜곡하며,

과(過)만 파헤치는 일들이 지금도 계속된다.

건국 대통령의 50주기를
쓸쓸히 보내며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자해(自害)와 업(業)을 생각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난 후 겨울에 난방할 땔감도 없었다.

하와이에선  교포가 내 준 30평짜리 낡은 집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친정에서 옷가지를  보내줄 때
포장한 종이 박스를 옷장으로 썼다.

교포들이 조금씩 보내준 돈으로 연명하며

고국행 여비를 모은다고
5달러 이발비를 아꼈다.

늙은 부부는
손바닥만 한 식탁에 마주 앉아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이 대통령이 우리 음식을 그리워하자
부인이 서툰 우리말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줬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따라 불렀던
그 노래를  이동욱 작가가 전한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개 김칫국/
날마다 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날마다 날마다 두부찌개 두부국/
날마다 날마다 된장찌개 된장국.'

아무도 없이 적막한
그의 묘 앞에 서
이 노래를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양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