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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3일 화요일

일본(日本)을 좀 배웁시다


◐일본(日本)을 좀 배웁시다 ◑

1.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귀족의 나라로 인정되는 나라다.

2. 독서 제1등 국이다. 이는 객관적 사실이다.
일본을 배척하기엔 배울 게 너무 많은 나라다.

3. 일본인은 국제사회에서1등 국민의 대접을 받고,
품질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책임 있는 국민이다.

4. 일본인들은 국가를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한다.

5. 일본인들은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다.

6. 일본인들은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원자탄을 만들어 일본을 이긴 미국에 무릎을 꿇고 미국을 배웠다.

7. 미국을 배워서 미국과 경쟁을 한다.

8. 우리는 미국을 배워서 미국과 경쟁하는 일본인들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일본을 증오하고 무조건 미워만 했습니다. 미워했음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1900년대 초만 해도 약육강식 철학이 유행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일본은 강자였고, 우리는 못난 약자였습니다. 지금처럼 당파 싸움만 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고 과학을 수입하고 실용주의 철학을 익혔습니다.
우리나라는 문을 닫고 우물 안 자존심만 내세우며 관념주의 말싸움에 밤과 낮을 지샜습니다. 못나서 당해놓고 우리는 잘났던 일본을 지금까지도 원망하고 증오합니다.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6.25를 상기해 보십시오. 지난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이 동족상호간에 저질렀던 만행 중에 일본인 이상으로 가혹했던 사례들이 과연 없었던가요?
일본이 우리보다 야만적이냐 아니냐, 잘났느냐 못났느냐는 지금의 일본인과 지금의 한국인들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보다 몇 배나 잘 났습니다.

증오로부터는 창의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오죽 못났으면 약육강식 시대에 일본에게 먹혔을까 부터 참회해야 합니다.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잘 난 것 딱 한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미국은 원자탄을 만들어 그 무기로 일본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그 방사능을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면 미국은 지금도 우리의 철천지원수일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그 고통을 배움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일본인은 잘 난 미국인을 배우고, 배워서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잿더미를 쓸어내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 문밖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들보다 잘난 미국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__
1957년 당시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수많은 일본 군중을 향해 미국의 우월감을 표현했습니다.
"친애하는 일본국민 여러분! 일본은 지금 세계 최고의 손수건과 훌륭한 파자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미국에 수출하려 하지 않습니까?".

감히 미국을 흉내 내겠다며 공장 문을 기웃거리는 모습들을 비평하는 연설문이었습니다. 1957년에 미국에 건너간 볼품없는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비웃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세계GNP의54%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생산기지가 미국에 있었고, 세계의 신제품은 모두가"MADE IN U.S.A" 이였습니다. 미국인들의 우월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제품을 멸시했습니다. 이를NIH 증후군(Not Invented Here Syndrom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줄줄이 선생님들을 불러들였습니다.
1950년에는 그 유명한 데밍 박사를, 52년에는 쥬란 박사를, 54년에는 피겐바움 박사를 모셔다가 과학 경영, 씨스템 경영, 통계학적 품질관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데밍상(Deming prize)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오늘날의 품질1등 국으로 우뚝 솟은 데에는 미국인 스승 데밍 박사가 있었다는 것을 세계에 기념했습니다. 우리를 뒤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외국을 배척하는 속 좁은 국수주의에 젖어 있습니다. 우리라면 우리를 원자탄으로 패배시킨 나라 사람, 미국인을 스승으로 기념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을 모방하자"(Copy the West), "미국을 따라잡자"(Catch up with the West).
일본인들은 미국을 따라 잡으려고 정열을 짜고 지혜를 짰습니다. 그리고1980년대에는 드디어 일본이 생산기술과 품질관리에서 미국을 앞섰습니다. 그 때부터 한동안은 미국이 일본을 배우러 갔습니다.

덜레스 미국무장관의 조롱 섞인 연설이 있은 이후25년, 1982년에 승용차에 대한 미국인의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일본 승용차가 나란히1,2,3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미국 차는 겨우7위를 차지했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는 미국 차가 아니라 일본 차였던 것입니다. 일에 몰두하고 따라잡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일본 놈들이 한 일이면 이런 것도 보기 흉한 것입니까?
일본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까지도 미워하는 사람 수가 늘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습니까?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답답하고 따분합니까? 나보다 잘 난사람도 적이요, 우리보다 잘난 나라도 적이면 우리는 누구로부터 배우고 누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까? 외세를 미워하고 국제사회에서 생떼를 쓰면서 주민을 탄압하고 굶어 죽이는 북한과 손잡고 살아야 하나요?

증오심을 부추기면 단합은 시킬 수 있어도 발전은 할 수 없습니다.
못난 사람끼리 어울리면 모두가 못나집니다. 정말로 무서운 사람은 증오심에 불타는 북한 사람이 아니라 증오심을 배움으로 승화시켜 끝 내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사람입니다.

마음에 있는 증오심을 버리십시오. 내가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어찌 감히 남의 것을 탐내십니까? 어째서 요사이 부쩍 이러한 몹쓸 풍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겁니까? 젊음은 당신의 미래를 위해 쓰라고 주어진 것이지, 증오심을 키우고 혈기를 부리라고 주어진 게 아닙니다.

혈기를 부리고 증오심을 키워 보십시오.
당신의 인생은40 이전에 폐가로 변할 것입니다. 잘 나가는 일본인, 잘 나가는 미국인들은 부모가 재산을 나눠준다 해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가 제게 재산을 주시면, 거기에 제가 무엇을 더 얹는다 해도 그건 제가 이룬 게 아닙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삽니까? 저의 것은 제가 이루겠으니 아버지가 이루신 것은 사회발전을 위해 내 놓으십시오".

당신의 힘으로 당신의 노후를 준비하십시오.
노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지금부터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모셔온 글)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주는 사랑 나누는 기쁨


오 헨리의 소설 '현자의 선물'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돈리라는 사람이 추운 겨울에 직업을 잃었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는 굶주림에 지쳐 할 수 없이 구걸에 나섰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고급 식당 앞에 서서 한 쌍의 부부에게 동정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습니다. 

그때 함께 가던 여인이 남자가 퉁명스럽게 거절한 것을 알고, 이렇게 추위에 떠는 사람을 밖에 두고 어떻게 우리만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겠느냐며 1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이 1달러로 음식을 사 드시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이 직업을 곧 구하도록 기도할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돈리는 "부인! 고맙습니다. 부인은 나에게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당신은 예수님의 떡을 먹는 것입니다. 이 떡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하세요" 라고 다정히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돈리는 우선 1달러로 요기부터 하고 50센트를 남겼습니다.
그때 마침 한 노인이 부러운 듯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돈리는 남은 돈 50센트를 꺼내 빵을 사서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이 노인은 빵을 조금 떼어 먹다가 남은 빵 조각을 종이로 쌌습니다. 

돈리가 “내일 먹으려고 합니까?”하고 묻자
이 노인은 “아닙니다.
저 길에서 신문을 파는 아이에게 주려고 합니다.”
노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빵을 건네자 이 아이는 좋아하며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길 잃은 강아지가 빵 냄새를 맞고 꼬리를 치며 다가왔습니다.
이 소년은 조금 남은 빵 부스러기를 개한테 주었습니다.

소년은 기쁜 마음으로 신문을 팔러 뛰어갔고, 노인도 일감을 찾아 갔습니다. 

돈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이렇게 있을 순 없지.”생각하는 순간, 강아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돈리는 길 잃은 개의 목걸이에 적힌 주소를 보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주인은 매우 고마워하며 10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같이 양심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돈리도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나가는 한 여인의 1달러가 나누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가진 게 없어서 남에게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돈리는 구걸하는 처지에서도 가진 바를 나눔으로써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복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굶주리는 사람,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진 바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무엇이든지 가지고만 있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나눌 때 소중한 가치를 발휘합니다.

나눔은 행복의 시작이며, 진정한 행복은 나누어 줄때 느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귀한 나눔은 사랑일 것입니다.
주는 자,
나누는 자는 하늘에서 더욱 큰 것으로 보상 될 것입니다.

옮긴글

2019년 7월 21일 일요일

어떤것이 생애의 행복일까요 


인간이란ᆢ 무얼 파괴하기 위하여 또 창조합니다.
어렸을때를 생각해 보십시요.
장난감을 갖고 싶어 간절히 조르다가도 
막상 손에 쥐면 한참
갖고 놀다가 싫증이 나고 때가 되면 부셔 버리고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100% 만족되는 일이 어디가 있겠는가요?
  
억만장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
(향년69세)는 무대 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칼라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8년이 되기 전에 주부로서 너무 
모자라고 권태가 나서 이혼하고  재클린에게 다시 장가 갔습니다.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과 함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재클린과 결혼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내가 실수 를 했다."  하며 고민
하기 시작합니다. 
  
'파혼할 길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니 이혼도 못합니다.
  
재클린이 한달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니. 오나시스는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 갑니다.
그의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도 얼마 못살고 죽었습니다. 
 
끝까지 이혼에 합의 않던 재클린은  오나시스의 엄청난 유산을 거의 차지 했지요.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하며
오나시스는 가슴을 치고 후회하다 죽습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 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가정주부로서는 크게 미흡 했습니다.
 
우리는 오나시스의 체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세기적인 미녀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와
 살면 행복할까요?
  
아름다운 외모와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그저 가정살림 잘하고 따뜻이 가족들
볼줄 아는 알뜻 살뜻한
주부가 최고랍니다.
  
평생 '갑(甲)'으로 살아온 사람들 일수록 
퇴직하면 더 외롭게 지내는 것을 종종
봅니다.
항상 대우만 받고 
남들이  만나자고 하는 약속만  골라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언제 한번 만나자.는 말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점심 약속을 잡으세요. 
아니면, 그 다음날 전화나 이 메일로 먼저
연락하자고 하든지요.
 
안그럼 영영 사람 만날 기회를 놓치고 결국
평생 외롭게 됩니다. 
 
보십시오.
개처럼 고생하다 살다가는 우리네 인생이랍니다.
 
-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뇌기능 중
 70%는 놀고 있다.
- 최고급 핸드폰 기능 중 
 70%는 쓸데가 없다. 
- 최고급 승용차의 속도 중 70%는 불필요하다. 
- 초호화 별장의 면적 
  70%는 비어있다. 
- 사회활동의  
  70%는 의미없는 것이다. 
- 집안의 생활용품 중  
 70%는 놔 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 
- 한평생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70%는 다른 사람에게 쓴다.
-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죽은뒤에는 
 70%의 재산은 남이 갖는다.
 
결론은, 삶은 간단 명료합니다.
살아있을 적에 인생을 즐기십시요. 
개고생만 하지 말고..
그리고 상대의 겉모습에 헛정신 팔지 마십시오. 
그리고 
70%는 남이 가지니 
자신을 위해 쓰십시요

구름 같은 人生
Enjoy 하시길

Niagara Falls USA Explorer Story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


   지구촌에서 빚을 가장 많이 진 나라는 미국이다.
   純(순)채무가 약 2조6000만 달러이다. 미국이 빚더미 위에 앉아서도 큰 소리를 치는 이유는 세계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고 있어 부도가 나지 않는 나라가 된 덕분이다.
   그러면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빚을 내어준 나라(돈은 꾸어 준 나라)는? 일본이다.

   세계 1위의 債權國(채권국)이다.
   일본은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 빚을 내어주었는데, 2011년 현재 약 7조5000억 달러이다.
   여기에서 일본이 진 빚을 뺀 純(순) 채권액은 약 3조2000억 달러이다.

   한국은 순 채권액이 약 1000억 달러이다.
   일본에 이어 두 번째 純채권국은 중국으로서 약 1조8000억 달러, 3위가 독일 약 1조2000억 달러, 4위가 스위스 약 1조 달러, 5위가 홍콩 약 7000만 달러, 러시아 약 4000만 달러이다.
   이런 일본을 우습게 보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純(순)채권 1000억 달러짜리 나라가 그 30배의 나라를 우습게 본다면 視力(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빚을 많이 내어준 나라는 외교적 발언권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외교정책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이 2007년 말 현재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는 資産(자산)은 610조엔 이다.
   약 6조 달러라는 이야기이다. 일본이 해외에 대하여 지고 있는 대외(對外)채무는 약 330조엔, 약 3조3000억 달러이다.
   대외 채권액 에서 대외 채무를 뺀 순 대외채권은 2조 달러를 넘어 3조 달러에 육박한다.

   2등인 중국의 약 배이며, 이는 한국 한 해 총생산의 두 배 이상 되는 액수이다.
   일본은 16년째 세계 최대의 대외 채권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구촌에서 일본은 가장 큰 채권국이고 미국은 가장 큰 채무국이다.
   미일(美日)동맹은 최대 채권국과 최대 채무국 사이의 짝짓기이다.
   일본의 대외자산은 해외직접 투자(6400억 달러), 채권 및 주식 투자 (2조7000억 달러), 대출금 등 기타투자(1조5000억 달러), 외화준비금 (1조 달러)으로 되어 있다.

   방대한 대외채권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자소득도 엄청나다.
   2006년의 경우 일본은 대외 투자에 의한 이자소득으로 약 1300억 달러를 벌었다.
   이는 상품과 용역수출로 얻은 무역흑자 730억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대외투자에 따른 이자소득 부문에서도 일본은 영국과 독일을 누르고 1등을 달리고 있다.
   국민총생산 대비 이자소득의 비율 부분에서도 일본은 1등이다.
   일본은 제조업 국가로 알려져 있으나 상품을 팔아서 번 이득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대외투자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怪力(괴력)이다.

   일본 호감도 세계 2위인바, 이명박은 임기 때 '일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모든 통계는 그렇지 않다.
   2010년 초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세계 28개국의 '국가 영향력'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하였다.
   28개국의 29,977명을 인터뷰하여 국가별 부정적 여론과 호의적 여론을 채점하여 순위를 매겼다. 영향력을 好感度(호감도)로 평가한 조사였다.
   세계 여론으로부터 가장 好評(호평)을 받은 나라는 독일로서 59점,2등이 일본으로 53점이었다.

   한국은 32점으로 下位圈(하위권)이었다.
   28개국 중 중국만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혐오도보다 높았다.
   일본에 대하여 가장 좋은 평가를 하는 나라는 필리핀으로 77점, 다음이 인도네시아 71점, 브라질 70점, 미국 65점이었다.

   여러 기관의 국가별 호감도 조사에서 늘 1등을 하는 나라는 독일, 늘 상위권에 드는 나라가 일본이다.
   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켜 세계인들을 괴롭힌 과거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두 나라가 戰後(전후)에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두 나라는 경제개발에 성공하였고 대외원조를 많이 하며 민주주의도 착실하게 발전시켰다.

   국가브랜드 인덱스(Nation Brands Index)라는 게 있다. 안홀트와 GfK 로퍼 홍보회사가 세계 여라 나라 국민들을 인터뷰하여 국가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하고 순위를 매긴다.
   조사항목은 국민에 대한 好感度(호감도), 정부의 관리 능력, 제품, 관광, 문화와 역사, 투자 및 이민이다. 2년 전 발표된 자료를 보니 다음과 같다.

   정부에 대한 호감도 부문에서는 스위스가 1등이다.
   2위는 캐나다, 이어서 스웨덴, 독일, 호주,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 프랑스, 핀란드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 벨기에(15위) 차례였다.

   제품에 대한 호감도 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1위였다.
   이어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스웨덴, 이탈리아, 호주, 네덜란드, 스페인,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15위)였다.

   문화 부문에 대한 호감도 순위는 1위가 프랑스, 이어서 이탈리아, 영국 독일, 미국, 스페인, 러시아, 일본, 중국, 브라질, 호주, 캐나다, 스웨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15위)였다.

   국민에 대한 호감도 에서는 캐나다 사람들이 1등이었다.
   이어서 호주, 이탈리아, 스웨덴, 스위스, 영국, 독일, 일본, 스페인, 뉴질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노르웨이-스코틀랜드(공동 14위)였다.

   관광하고픈 국가 순위로는 이탈리아가 1등이고 이어서 프랑스, 스페인, 영국, 호주, 미국, 캐나다, 일본, 스위스, 독일, 이집트, 스코틀랜드, 브라질, 스웨덴, 오스트리아였다.

   투자 및 이민을 가고 싶은 나라 1위는 캐나다, 이어서 영국, 미국, 스위스, 독일, 프랑스, 호주, 스웨덴,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뉴질랜드(15위) 순위였다.

   종합 국가브랜드 순위를 보면 1등이 독일로서 67.4점이다.
   2등이 프랑스인데 67.3점이다.
   3위는 영국 66.8점.

   이어서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미국, 스위스, 호주, 스웨덴(10위),스페인, 네덜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핀란드, 아일랜드 벨기에(20위) 브라질, 러시아, 아이슬란드, 싱가포르, 아르헨티나, 멕시코, 인도, 헝가리, 중국(공동 28위), 폴란드, 체코-이집트, 한국(33등), 태국, 대만, 터키, 남아프리카, 칠레, 말레이시아, 페루,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인도네시아, 에스토니아, 아랍에미리트-쿠바, 에콰도르, 사우디아라비아, 나이제리아, 이란(50위) 순이었다.

   국가브랜드 1위인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나라이다. 유태인들을 수백만 명이나 학살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이미지가 가장 좋은 나라가 되었다.
   그 이유는 뭘까?
   1. 1945년 이후 독일(서독)이 민주주의를 착실히 발전시켰다.
   2. 나치 시절의 과오를 솔직하게 시인했다.
   3. 외국 원조를 많이 한다.
   4. 사람들이 근검 절약하고 성실하며 정직하다.
   5. 동서독(東西獨)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6. 경제력이 세계 3위인데도 국제사회에서 겸손하게 행동한다.
   7. 세계에서 가장여행을 많이 하는 독일 국민인데도, 태도가 모범적이라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最惡(최악)의 국가 이미지를 최선(最善)의 이미지로 바꾼 독일사람 들 한테서 배울 게 많다.
   하나를 꼽으라면 법(法)을 잘 지킨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의 브랜드가 세계 33위. 1인당 국민소득이나 삶의 질 통계에서도 30등 전후이다.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인도, 중국이 우리보다 앞이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가장 나쁜 나라로 지목하는 일본은 세계 사람이 호감을 갖는 나라중 세계 5위이다.

   이명박이 근거도 없이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깔보는 식으로 발언하는 것은 낭패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상대편을 얕잡아 보는 건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국인들은 視覺(시각)교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 자료는 2010년대 자료지만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별로 변한 게 없이 대등하다.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

  「좋은 글에서 추림」

2019년 7월 17일 수요일

헤밍웨이 와 老人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미국문단의 긍지다.
그가 거주하던 키웨스트에 가보면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고 헤밍웨이가 키우던 고양이의 자손 수십 마리가 아직도 이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명성에 비하면 그저 그런 정도의 박물관이다.

그런데 쿠바의 아바나를 관광할라치면 다운타운 여기저기에 헤밍웨이를 소개하는 박물관과 호텔, 바, 레스토랑 - 심지어 헤밍웨이 칵테일까지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헤밍웨이가 5년 동안이나 머물렀다는 아바나 올드타운의 ‘호텔 암보스 문도스’의 511호실은 쿠바 방문객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되어있다.

쿠바국민들은 왜 헤밍웨이를 이처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을까. 노벨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를 헤밍웨이가 아바나 ‘호텔 암보스 문도스’에 머물면서 썼고 소설의 배경이 쿠바 앞바다인데다가 주인공인 노인 산티아고가 쿠바인이라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늙는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노인취급을 당하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킬리만자로 등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카리브해에서 며칠씩 파도와 싸우며 대어낚시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는 경비행기 사고로 세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그의 일생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처럼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대어를 낚는 데는 성공하지만 상어공격으로 그 대어를 육지로 끌고 오는 데는 실패한다.
뼈대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오게 되었지만 산티아고 노인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정복될 수는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헤밍웨이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입을 통해 자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목숨만 유지하는 노인생활은 하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용기와 도전을 통해 남성적 가치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서로 다른 속도로 쇠퇴한다.
정신은 젊은이지만 육체는 급속도로 노화된다. 나이 들어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게 정말 나인가“ 의심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헤밍웨이는 비행기 추락사로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글을 쓰기 어려워지고 침대에 들어눕게 되자 총으로 자살해 버렸다. 그의 나이 불과 62세였다.

요즘 헤밍웨이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자살원인이 무엇인가가 재조명되고 있는데 우울증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헤밍웨이는 말년에 가장 친한 친구 윌리엄 예이츠,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특히 자기 저서의 편집자로 낚시와 사냥을 함께하던 맥스 퍼킨스를 잃은데 대한 슬픔이 지나쳐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는 여성을 좋아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남자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결국 외톨이가 되기 마련이다. 나이 들면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함께 고민하는 친구가 없다면 누구든 고독의 만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돈과 건강을 가졌다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행복의 요소는 돈과 건강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에게는 친구가 돈과 건강 못지않은 행복의 요소다.

우리는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출세하는 법, 돈 버는 법에만 열중하고 친구 사귀는 법은 등한시했다.

친구는 배우자와는 또 다른 인생 반려자다. 배우자에게 의논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려움에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수 있는 참다운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의 노년인생은 성공한 셈이다.
괴테가 그렇게 말했다.

인생말년에 행복해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재테크보다
우(友) 테크를 공부하시라고.

2019년 7월 15일 월요일

요양병원^^

요양병원^^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어떤 의사가 쓴 글이다.

요양병원에
갔을 때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의사의 말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그래서 전문가라고
하는 것 같다.

◆ 요양병원에 면회 와서
서 있는 가족 위치를 보면
촌수가 딱 나온다.

◆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이것저것 챙기는
여자는 딸이다.

◆  그 옆에 뻘쭘하게
서있는 남자는 사위다.

◆  문간쯤에 서서
먼 산 보고 있는 사내는
아들이다.

◆  복도에서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는 며느리다.

◆  요양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는
부모를 그래도 이따금씩
찾아가서

살뜰히 보살피며
준비해 온 밥이며 반찬이며
죽이라도 떠먹이는
자식은 딸이다.

대개 아들놈들은
침대 모서리에
잠시 걸터앉아 딸이 사다놓은
음료수 하나 까먹고
이내 사라진다.

아들이 무슨
신주단지라도 되듯이
아들 아들 원하며
금지옥엽 키워 놓은 벌(罰)을
늙어서 받는 것이다.

◆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는
세상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  요양병원&요양원!

오늘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많은 그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의미없는 삶을 연명하며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도 자신의 말로가
그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자신과는
절대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서서히 정신이 빠져 나가면
어린애처럼
속이 없어지고

결국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식이 있건 없건,
마누라나 남편이 있건 없건,
돈이 있건 없건,

잘 살았건 잘못 살았건,
세상 감투를 썼건 못썼건,
잘났건 못났건

대부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고려시대에
60세가 넘어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밥만 축낸다고

모두들 자식들의
지게에 실려 산속으로
고려장을 떠났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고려장은 일제가
만든 거짓 역사였다)

오늘날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노인들의 고려장터가
되고 있다.

한 번 자식들에게
떠밀려 그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그곳이
고려장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곳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가기 싫다고 해서
안 가는 곳도 아니다.

늙고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자식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갈 곳은 그곳 밖에 없다.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

두고 보면 안다.

◆  그래도 어쩌랴!

내 정신 가지고
사는 동안에라도 맛있는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보고,
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  기적 같은 세상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출처 :메일 받은글 -

위 글을 올려놓고
한번 읽어보니
한숨만 나오며 한심하기
짝이 없도이다.!

마지막 인사

몇년전 일이다.

나와 같은 병실에
80세가 넘으신  할어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병은 깊었다.

할머니는 성경을 읽으며
지극정성으로  할아버니 곁을 지켰다.

아침저녁으로 할어버지 가족들이
병실을 다녀 갔다.

"니 아버지 이번엔 못 일어 나신다.
이젠 화장실 걸음도 못하신다.

조금 전에도 의사가
호스로 오줌 빼 주고 갔다."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
할어버지 막내딸이

병실로 찾아 왔다.

지방에서 올라 온 막내딸은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할어버지는 말이 없었다.

막내딸은
3일 동안 할머니와  함께

병실에서 잠을 잤다.

  "아빠, 나 이제 가봐야 하거든

아빠하고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어

김서방 출근도 시켜야 하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해."

그 녀는 울먹이며
늙으신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 옛날 일 기억나?

아빠하고 나하고,
매일 들길을  걸어서

학교 갔었잖아,

여름 장마 때면 아이들은
잔뜩 불은 개울물 앞에서

늘  아빠를 기다렸어.

감자처럼 작은 아이들을
한 명씩  한 명씩 가슴에 안아

개울물을  건네 주었지..

아빠는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었으니까,

아빠가 학교에서
숙직하던 날 기억나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내가  눈밭을 걸어서

아빠에게 갔던 날,

내 발바닥 꽁꽁 얼었다고
아빠가 따뜻한 배 안으로

내 발을  집어 넣었잖아,
얼마나 차가 왔을까."

막내딸은 울움을 삼키며
할아버지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딸의 울음소리에도
할어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빠. 나 이제 가야 돼.
꼭 다시 일어나야돼. 아빠.. 꼭.."

옆자리에 서 있던 할머니가
막내 딸의 손을 끌었다.

"어여 가거라, 어여.
네 아버지  다 알아들으셨을게다."

할머니는 막내딸을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병실 안으로 들어 왔다.

"조금 전에 나간 아이가
우리 막내 딸이라우.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요.

응석받이로 자라
지금도 아빠 아빠 하잖아요.

이제,
지 아버지 눈이나 감으면 와야지 뭐...

아버지를
끔찍이 좋아했는 데,

아버지 얼굴을
마지막 본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슬펐을까..."

바로 그때,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자.. 임자.. "

할아버지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일으켜 달라고 했다.

할머니와 나의 부축을 받으며
할아버지는 한 걸음 한 걸음

창가  쪽으로 걸어 갔다.

할아버지는

힘겨운 숨을 고르며
창 밖을 살폈다.

창 문밖,
멀지 않는 곳에

정문 쪽으로  걸어 가는
막내딸의 뒷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른팔을 들었다.
딸의 뒷모습을 어루만지 듯

할아버지는
유리창을 쓰다 듬었다.

딸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할아버지의 눈가로
눈물이 가만 가만.. 흘러 내렀다

- 모셔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