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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9일 화요일

착각하지 말자


♧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노후에 
대해서 착각을 합니다.
7대 착각이라고 
해서 일곱 가지를 주로 얘기합니다.

-첫 번 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광고에 자주나오는 이야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보면요, 
절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제 나이가 1946년생
만으로 79세 입니다. 
70세 초반하고 75세 중반 하고 큰 차이가 나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러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나이가 차면 굉장히 힘들어 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노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됩니다.

만약에 60이다. 
아직도 40년이 남았어, 
그건 거짓말 입니다. 
그 40년의 삶의 질이라고 하는 건 팍 떨어지기 때문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 
그 착각에서 깨어야 됩니다.
 
-두 번째, 
인생은 60부터인 줄 안다

인생은 
60부터 내리막길 입니다.
60쯤 되면 현직에서 떠나지 않습니까? 
그 다음부터는 나머지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덤으로 사는 것 처럼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60부터가 아닙니다. 
한가지 여기서 인생이 60부터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인생은 60부터 한가 하니까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60부터입니다. 
그 외의 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죽을 때까지 일해야 되는 줄 안다.

수많은 노후에 관한 책들이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100세 시대이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일해야 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90살, 100살까지 일하고 있는 분들을 자꾸만 거론하면서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 하는데 
그런 분들 어쩌다가 한 두 분이지 일반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생각할 때는 80세 정도까지 자기의 취미생활 이라든가 
이런 걸 하면서 또는 일자리가 있으면 일을 하되 가급적이면 노후에는 편히 즐기면서 살기를 권합니다. 

그것이 저는 노후 생활의 바람직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는 
100세 시대라 40년 더 
살 줄 안다. 그건 착각입니다

세상과 만나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전부 건강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병원에 가 보면 그리고 요양원에 가보면 앓아 누워 있는 분들이 엄청 많다는 거 잊지 마십시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되고 절대로 노후에 건강하게 9988이 되기가 힘들다는 거 어느 가수가 불렀더라고요. 
“99세까지 팔팔하게 3일만 앓다 사망하자” 
99세까지 팔팔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99세까지 팔팔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셔야 됩니다.

-다섯 번 째, 
자기만은 멋지게 늙을 줄 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늙으면 다 노후에 멋쟁이라고 해봤자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나만은 그래도 멋지게 늙을 줄 안다는 거 착각이라는 거 잊지 마시고 자기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여섯 번째, 
막연히 무슨 수가 있을 줄 안다. 그건 착각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며 보람찬 노후, 멋진 노후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막연히
’잘 되겠지, 무슨 수가 나겠지, 국가가 알아서 해주겠지‘
국가가 뭘 어떻게 알아서 해줍니까? 
그 착각에서 깨시기 바랍니다

-일곱 번 째, 
그래도 나만은 예외일 줄 안다. 그거 착각입니다. 
다 똑같습니다

다 나이 들면 몸도 아프고, 
건강도 해치고 일거리도 없어지고, 주변에서 싫어하고, 꼰대가 되고 다 똑같습니다. 
예외없이 노후가 온다는 것
노후 대비 잊지말고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고 요약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쓴웃음을 지어봅니다
나도 똑같이 착각속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60대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줄 알았습니다.그렇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지금 느낌은 “나이는 그냥 먹는게 아니구나” 생각이 확실합니다.

세월의 느낌이 
60대만해도 한해 두해 지나는 것이 별 느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70대가 되니까 한해가
지날때 마다 달라짐이 
느껴 졌습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 살아보진 않았지만 살아본 분의 이야기로는 90대는 날마다 달라진
다고 들 하시더라고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통계상 보면 80세 이상 20%~30% 살아있고, 

90세 나이면 2% 만 살아 
있다고 합니다.

지금껏 산것 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하시고  감사하며

나이에 맞은 생각 
나이에 맞는 언어
나이에 맞는 행동
나이에 맞는 운동
나이에 맞는 삶을 
살아 봅시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을 준비 하여야
합니다.

*참고 사항*
거울 앞에 서서 본인의 모습을 바라 볼때면 
대충 바라 보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두눈을 크게 뜨고 거울 가까이 서서 현재 본인의 
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며
바라 보세요~~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실감 하게되고 모두가
착각과 망상 이였음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결코 나이는 속일수 
없다는 것을...~~

오늘도 복된 날  
몸과  마음이 
건강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2025년 8월 20일 수요일

Coffee 이야기

Coffee 이야기! 

나이 60~70대 후반 지난 사람치고 옛날 다방에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시의 다방에는 낭만도 있었고, 남자의 자존심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눈물 쏟아내는 이별의 장이기도 했었다.​

가끔 열리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단체 관람 장이기도 했으니, 그 당시 다방은 ‘한국적 명물’로 
어른들의 사랑방, 대학생들의 만남의 방, 직장인의 휴식 공간, 
동네 한량(閑良)들의 Hideout (아지트)였으며, 데이트와 맞선 공간, 
가짜 시계등이 거래되는 상거래 공간, 
음악감상 공간 등, 
'거리의 휴게실'이자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45년 해방무렵 서울에 60개 정도의 다방이 있었고, 1950년대 말엔 1,200개로 늘었다고 하는데, 
1990년대 후반 들어 커피 전문점 ‘cafe(카페)’로 대변되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부흥하기 이전인, 30년간 다방은 한국 문화를 이끌며 전성기를 謳歌(구가)했다.​

본격적 음악 감상실이 생겨나기전까지 항구도시 부산의 光復洞과 南浦洞에도,
大邱 半月洞에서 東城路를 거쳐 大邱驛으로 이어지는 큰 길, 골목길에도,
우후죽순처럼 다방이 
마구 생겨나고 있었다.​

작은 booth(부스)에 DJ가 들어 앉아 金秋子 노래도, 宋昌植의 고래사냥, 
pop song도 틀어 주면서, 때로는 “양복점 이사장님 카운터에 전화 왔습니다.”라는 소식도 들려주면서
연락병 역할도 했었고, 음악감상실의 역할까지 하면서 “邑內茶房” "鄕村茶房" "심지茶房'' "수茶房" "王妃와 王茶房" "
黃金茶房" “中央茶房”에서, 서서히 이름이 바뀌어 “松竹茶房” “준(JUN)茶房” “New York 茶房”까지, 
한 시대를 風靡(풍미)했다.​

젊은 청춘을위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다방은 카운터에 중년 여성인 ‘마담’이 앉아있고, ‘레지’( lady)라고 불리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커피를 날라주는 동안에, 구슬픈 뽕짝가락이 손님들의 가슴을 저윽히 적셔주는 그런 형태였다.​

그 당시 사람치고 시골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 中央통에있는 다방의 마담이나 레지와의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친숙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려고 酒幕(주막)에서 세련된 다방으로 가는 사람도 많았다.​

다방에 들어서면 낮익은 마담과 레지가 경쟁하듯 환하게 웃으며 맞아줬고,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어김없이 옆자리에 살포시 앉으면서 속보이는 친절을 떨었다.

손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정오빠보다 더 정겹게 팔짱을 끼며 애교까지 부리는 그 분위기를 우쭐하며 즐겼으니..​

"커피 한잔 가져와!"하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저도 한잔하면 안 될까요?"가 곧바로 이어졌고, 
그 상황에서 "NO!"는 존재하지 않았다.​

70년대 후반 들어 Yakult(야쿠르트)로 바뀌기도 했지만, 요즘이야 맹숭커피한 잔에도 돼지국밥 한그릇 값을 지불하지만, 그 당시 커피 한 잔은 실없는 농담에 가벼운
신체접촉 권한까지 주어졌으니 참으로 옹골진 값어치였던 셈이다.​

분위기가 넘어왔다 싶으면 마담이나 레지의 "우리 쌍화차 한 잔 더하면 안되요?"라는 
비싼 차 주문이 발사되고, 여기에도 "NO!"는 거의 없었다.​

그 시절 그렇게 분위기가 익어가는것이 뭇 사내들의 멋이었고 낭만이기도 했지만, 마담이나 레지에게는 매출을 올려 주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인사고과였으니, 그런 손님과 레지의 의기투합에 그 당시 인기 레지는 거의 연예인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60~70년대의 다방에서는 커피가 한 종류만 있었기에 손님들은 그냥 ‘커피’를 주문하면 되었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초기에는 우리와 비슷해서 모든 종류의 커피를 그냥 조(Joe)라고 불렀으며, 한 잔의 커피란 뜻의 ‘ a cup of Joe'라는 숙어도 있었다.​

다방이 아닌 요즘의 커피 전문점 ‘cafe'에서 coffee 메뉴판을 보면 커피 종류가 다양하고, 그 이름이 하나같이 복잡하고 어렵다. Espresso(에스프레소)는 ‘진한 커피’로,
Americano(아메리카노)는 ‘연한 커피’로, Caffe Latte(카페라떼)는 ‘우유 커피’로,Cappuccino(카푸치노)는‘거품 커피’ 등으로 불러지면 좋을 텐데....!​

다방에서 Café로, 세월 따라 이름도 변해감에 따라, 한 때 옛날 다방을 주름잡던 청춘에게 나이만큼 서글픔이 몰려온다.

한 잔의 커피에는 반드시 꽃향기가 있으므로 꽃향기가 풍성한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의 다양해진 커피 맛과 향이 옛날 다방의 낭만적인 커피맛보다 더 낫다고 누가 말할수 있겠는가? morning coffee (모닝커피)라며 족보에도 없는 계란 노른자까지 곁들였으니, 커피를 한잔하고 마담과 레지의 환송을 받으며, 다방문 나설 때의 우쭐해지던 커피 맛 외의 또 다른 그 맛을 요즘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양장을 걸치고 카운터에서 무게 잡던 김 마담과 Miㅡ미니스커트 입고 아양 떨던 미스 박이라는 레지는 
지금 쯤 뭘 하고 있을까? 
그 들도 그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영화도 흘러간 영화가 정겹고 가슴에 와닿듯이, 커피도 옛날 다방의 커피 맛이 더 맛있고 운치있고 정겨웠다고 한다면 
그냥 넌센스라는 말이나
들을까?

하지만, 문득문득 그시절이그리워 지는것은 나이탓일까.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미국은 일본인들을 어느정도로 빨가벗겨 보냈는가!


📚 미국은 일본인들을 어느정도로 빨가벗겨 보냈는가!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이 정도는 알아야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귀속재산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그 진실을 들여다보자.

귀속재산 (Vested Property)이란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제가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그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금전적, 비금전적 손익계산서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귀속재산》 이다.
(Vested Property) 이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2015년 10월,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는
<<귀속재산연구 : 식민지 유산과 한국경제의 진로>>
이숲, 682쪽의 저서를 냈다. 아래에서 그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 일본인들이 놓고 간 국내 기업들

두산그룹, OB맥주, 하이트맥주, 한화그룹, 해태제과, SK그룹,
동양시멘트, 삼호방직,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화점, LG화학,
쌍용그룹, 동국제강, 삼성화재, 제일제당, 대성그룹, 동양제과, 대한조선공사, 동양방직, 한국생사, 한국주택공사, 벽산그룹, 한국전력, 일신방직, 한진중공업, 대한통운, 한진그룹, 대한해운,
동양화재해상보험,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중외제약 등.

국민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사람들은 재산을 만든
일본인과 이를 빼앗아 우리에게 넘겨준 미국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은 그들이 36년 동안 선택의 여지가
없이 조선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을 고용하여 조선 땅에 건설해
놓은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강제로 추방당했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재산
모두를 그대로 두고 <몸> 만 빠져나갔다.

북한에는 29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남한에는 23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이
한순간 횡재로 조선에 굴러 들어왔다.

남한에 쌓인 23억 달러어치의 일본재산은
미군정이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는 당시 이 돈은 남한경제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귀속자산이 없었다면 당시 한국경제에는
그 실체가 없었다.

이로부터 만 20년 후인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공여 받은 액수는 3억 달러, 위의 23억 달러는
이 3억 달러의 약 8배였다.

이 엄청난 자산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한국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씨 조선 518년을 대대로 통치해온 27명의 조선시대 왕들이
이룩해 놓은 자산이 무엇이었는가를~
도로를 닦아놓았는가? 철로를 건설해 놓았는가?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는가?
한글 단어장 하나 마련해 놓았는가?

그 27명의 조선왕들은 길을 넓게 닦으면
오랑캐가 침입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던 길도 없앴다.

선조는 임진왜란 내내 중국으로 망명할 생각만 했다.
이 27명의 왕들은 조선의 백성, 노예들의 골만 빼먹었다.

조선왕들이 518년 동안 쌓아올린 재산은 초가집,
도로 없는 서울, 똥오줌으로 수놓은 소로, 민둥산, 미신, 거짓과
음모를 일삼는 미개인들이 공존하는 가두리 땅에 불과했다.

급기야 고종과 민비 일족은 부정부패로 나라를 거덜냈고,
이권이 되는 것은 외국에 마주잡이로 팔았으며,
결국 왕과 왕족, 고관대작, 지방유지들은 일제로부터 한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 거금의 경제적 혜택과 높은 작위를 받고
묵묵부답으로 묵종하며, <총 한 방 못 쏘고> 나라를 넘겼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36년 동안에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쌓아올렸다.

이 엄청난 재산 중 남한지역의 23억달러를 미국이 빼앗아
보관했다가 대한민국 건국자 이승만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미국은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땅도 빼앗아 주었고,
조선인들로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빼앗아 주었다.

이 두 가지 구체적 선물에 대해 우리는 빼앗아 준 미국과
돈을 만들어 준 일본 모두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이 묻혀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었고, 좌파정권은 북중러의 지령에 따라 걸핏하면 반일 반미
감정에 불을 지피고 있고, 그 배은망덕의 소치는 순전히 빨갱이
들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이런 자료들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길 두려워하며 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미군정은 처음 사유재산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매우 다행하게도 곧 이어 사유재산까지도 압류했다.
(군정법령 제8호, 1947.10.6.제정).

공적-사적 재산 목록이 170,605건,
이승만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은 고생을 했다.
엄청난 관리 인력과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에 인수되지 않고 농림부 등에 등록되어 있던
또 다른 일본인 재산이 121,304건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한 총 재산은 291,909건이었다.

↪️ 미국은 어느 정도로 일본인을 발가벗겨 보냈는가?

미군은 퇴각하는 일본인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폐까지도 압수했다.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극도로 제한했다.

민간인은 1,000엔, 군장교는 500엔, 사병은 250엔 이상
소지할 수 없었다. 미군은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본인의
주머니를 검열했다.

1945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5년 11월 3일에
작성한 (G-2 Periodic Report) 54호에 의하면
일부의 일본인들이 150엔을 주고 밀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밀항선을 타고 탈출한 일본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미국이 일본인들을
무산계급으로 만들어 겨우 몸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조선반도에서 이렇게 빈손으로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전후 일본의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그 많은 주식회사 급 기업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그 회사 직원이거나 관련이 있던 친일 조선인들에게
헐값으로 불하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오늘의 우리 대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기업들 이었다.

조선인들이 세운 업체는 작은 ‘상회’라는 이름을 단
개인 가게들이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방 이후 맨땅에
헤딩해서 창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할 것이다.

• 쇼와 기린맥주 = 당시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되었다.

• 삿포로 맥주 =  명성황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되었다(1998년에 하이트맥주로 상호 변경)

•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 = 당시 직원이었다가
  관리인이 된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 = 해방 후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되어,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 조선제련 =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 =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 =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 의 모태가 되었다.

• 아사노 시멘트 경성공장’ = 김인득에게 불하되어
                                                ‘벽산그룹’이 되었다.

• 경성전기-남선전기-조선전업 = 해방 후 합병되어
                                                        ‘한국전력’이 되었다.

• 조선우선 = 직원이던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되었다.

• 선경직물 = 공장의 생산관리 책임자이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매매 하던 선만주단(鮮滿紬緞)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이란 이름은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직물의 ’京‘를 따서
지은 것이다.

• 경기직물과 조선방직 =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하던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 동양방직 = 관리인이던 서정익에게 불하되었다.

• 아사히견직 = 부산공장장이었던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되었다.

• 가네보방직 광주공장 = 김형남,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일신방직’이 되었다.

• 동립산업 = 관리인이었던 함창희에게 불하되었고,
                       제일제당 (현CJ)이 이를 흡수했다.

• 쥬가이제약 = 서울사무소 관리인에게 불하되어
                           현 ‘중외제약’이 되었다.

• 조선주택영단 = ‘한국주택공사’가 되었다.

•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 = 해방후 ‘한국미곡창고 주식회사’가
                                               되고, 후에 ‘대한통운’이 되었다.

• 조선중공업주식회사 =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가 되었고,
              후에 한진그룹에 편입되어 ‘한진중공업’이 되었다.

• 한국저축은행 = 정수장학회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삼호방직의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 조선생명 =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되었다.

• 조선화재 해상보험 = ‘동양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가,
                                        지금 ‘메리츠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

•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 =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 백화점’ 이 되었다.

• 조지아 백화점 = ‘미도파 백화점’이 되었다.

• 나가오카제과‘(永岡製菓) =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식품 = 해방 후에 ‘동립식품’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1985년에 ‘제일제당’에 병합되었다.

• 토요쿠니제과 = 해방 후에 ‘풍국제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
           되어오다가 1956년에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되었다.

이외에도 내로라하는 한국기업들은 거의가 다 일본인이
설립 운영하던 회사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조선인이 설립 운영하던 큰 기업은 김성수, 김연수 집안에서
설립한 ‘경성방직’, ‘삼양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商會’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화신상회, 개성상회, 경성벽지 등이다.

일본이 팽개치고 나간 회사들을 조선인들이 이승만 정부로부터
‘불하’란 명목으로 헐값에 인수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1961년 5.16군사혁명 후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축재자’로
몰렸다.

일본인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겠는가?
반면 불하받은 사람들은 어떤 ‘횡재’를 했는가?
그래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단계에서 남조선에
두고 간 23억 달러 어치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요구했다.

해방 직후 북한을 선점한 소련은 군정을 통해 북한에 건설된
발전소, 공장 등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그것들을 건설하거나
운영해온 일본인 기술자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련군정은 만주에 주재한 ‘일본 피난민단장’과 협의하여
북조선에 있던 모든 기계-설비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일본 기술자들을 북조선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일부는 억류했다. 친일파가 남아 북의 재건을 도운 것이다.

그들이 건설하고 애지중지 운영해오던 기계-설비들에 대한
엔지니어로서의 애착심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46년 1월 현재 총 2,158명의 기술자들을
일본으로의 즉시 귀국을 막고 북조선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스탈린은 당초 북조선에 있는 설비들을 소련으로 옮기라
명령했고, 소련군정은 중요한 기계들을 분해하여 포장한 후
소련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 직전 다시
스탈린으로부터 반출을 중단하라는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
세간에는 당시 소련이 북조선 기계들을 모두 뜯어 소련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럼 스탈린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 당시 이미 6.25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한다.

6.25 전쟁을 치르려면 북조선에서 병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자체 생산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기계-설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산의 나무도 귀속재산이었다. 또한 조선의 산은 민둥산이었다.
여기에 일본은 과학의 힘으로 경제성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산마다 쭉쭉 뻗어 올라간 경제목들이
들어차 있다. 해방 당시 전국의 산에는 일본이 심은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광릉(수목원)에 보존된 나무들이 바로 일본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전후방에 군부대들이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서면서 ‘후생사업’이라는 것이 활기를 띄었다.

당시는 군대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역대 사단장들이
너도나도 덤벼들어 군 후생을 빙자해 벌목을 했다.
거목들을 베어내 시장에 팔아 자금을 마련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 대한민국 산이 다시 민둥산으로 변한 것이다.

이에 박정희 정부 농림장관인 장경순씨가 대통령의 명을 받고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지만 그 나무들은 일정시대의 산림처럼
경제림이 아니었다.

포항제철 사례에서 보듯이 공업 분야에서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대대적으로 받았지만, 나무를 심는 식수계획에서는
일본기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장경순 씨의 이야기로는 수종선택은 토종기술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나마 푸른 산을 푸르게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땔감의 개발이 필요했다.
1960년대, 19공탄이 산림훼손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강원과 문경 등지의 탄광에서 서울과 대도시로 직행하는
열차에는 석탄이 실렸고, 그 후부터 산은 푸르게 우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영조시대인 1750년대에 석탄이 나무를
대체했다. 영국이 한국을 210년 정도 앞서 간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격차를 만들어 낸 주역은 1961년에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아니라 조선의 왕들이었다.

일본이 가꾼 산림, 비록 금전적으로 환산은 될 수 없지만
어마어마한 자산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도 귀속재산이라 할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일본과 미국의 덕분이다.
제대로 알고나, 반미 시위를 하자.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제공/

 

2024년 9월 10일 화요일

평범한 진실


      🛑  평범한 진실
건강(健康) 하게 산다는 것은 위대(偉大)한 일이고, 생존(生存) 한다는 것은 지뢰밭처럼 예측(豫測)할 수도 없으며, 위험성(危險性)도 매우 큽니다. 

정말 인생 80까지 살면 90점이고, 85면 100점 이라고 평소에 공언(公言)해 온 것이, 타당(妥當)함을 새삼 느낍니다. 

오늘도 “평범(平凡)한 진실(眞實)”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1.기적(奇蹟) 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2.행운(幸運)도 특별한게 아닙니다.
아픈데 없이 잘 살고 있다면 그것이 행운(幸運)입니다. 

3.행복(幸福)도 특별한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지내면 그것이 행복(幸福)입니다.

🔺️하루하루가 하늘이 특별히 주신 Bonus 입니다.

1. 오늘은 선물입니다.
하늘이 나에게 특별히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2.오늘은 내가 부활한 날입니다.
어제 밤에서 다시 깨어 났습니다. 자다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생각 하면 깨어난 것이 부활 입니다.

3.오늘은 Bonus로 받은 날입니다 70부터는 하루하루가 특별히 받은날, Bonus는 안 주면 그 뿐입니다.

4.오늘을 인생(人生)의 첫날처럼, 또한 마지막날 처럼 살겠습니다.

"天國은 감사하는 者만 가는 곳이다." 라고 Martin Luther(마틴 루터) 는 말했습니다. 

🎈
그러므로 스트레스 받을 이유도 없고 누구를 원망 하거나 미워할 이유도 없으니, 오늘도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로 합니다. 

하루 종일 감사하면서........!

2024년 5월 26일 일요일

노년의 자세


         노년의 자세 

어느 조찬(朝餐) 모임에서 저 보다 연세가 많은 분이 퀴즈를 냈습니다. "우리 나이가 어떤 나이냐?"는 것입니다.  

느닷없는 질문이어서, 그냥 무슨 말이 이어질지 기다리고 있었더니 "미움 받을 나이"라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의미가 큰 화두입니다. 저는 배우자, 자식, 이웃 친구에게 미움 받지 않고 살려고 애써야 된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년의 자세" 란 글을 친구로 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우리 세대에게도 실용적인 지침이 되지만 다음 세대도 이런 생각과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부디 차근차근 읽으시면서, 생각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1. 노년은 그 동안 모은 돈을 즐겨 쓰는 시기이다. 돈을 축적하거나 신규 투자하는 시기가 절대로 아니다. 자식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찾아라.

2. 자손들의 재정상태는 그들의 문제이다. 부모가 개의치 마라. 지금까지 키우고 돌봐준 것으로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3.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 하라. 건강이 최고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나이니 건강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라.

4. 평생의 반려자를 위해서는 언제나 최상의 가장 아름다운 고급품을 사라.

5.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마라. 과거의 나쁜 기억은 잊고 좋은 일만을 생각하라. 현재가 더 중요하다.

6. 나이에 개의  말고 사랑으로 넘치는 생활을 하라. 반려자, 인생, 가족, 이웃들....

7. 내적, 외적인 몸치장을 철저하게 잘 하고 자신만만하게, 당당하게 살라. 몸과 마음을 잘 가꾸는데 신경써라.

8. 어울리지도 않는 유행을 따르려
하지 말고 자신의 나이에 걸 맞는 홰션(옷 등)을 추구하라.

9. 항시 최신의 시대 흐름에 너무 뒤쳐지지 마라. 이메일이나 SNS를 멀리 하지 말고 항상 세상소식를 듣고, 보고 얘기하라.

10.젊은세대를 인정하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라. 너무 조언하려 말고 더욱이나 비평하지는 마라. 미래를 열 사람은 젊은이들이다.

11.“옛날 그 시절에”라는 과거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마라. 당신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다.

12. 긍정적인 사람들, 명랑한 사람들과 어울려라. 쓰고 힘든 날들을 얘기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13.가족들과 자주 어울려 지내되 혼자 살 재력이 있다면 자손들과 함께 살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라. 

14. 자신의 취미를 살려서 활용하라. 취미가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라.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15.모임, 회식, 세례식, 결혼식 초대에 적극 참여하라. 그렇다고 초대를 못받는다고 화내지 말라. 중요한 건 집밖을 나서서 세상살이를 몸으로 접하는 것이다.

16.말은 적게 하고, 남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이 되라.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떠들어 대면 주위 사람들이 떠난다. 불평, 불만, 비판의 말이 아니라 남이 듣기 좋은 대화의 소재를 찾아라.

17. 노쇠에 따르는 불편함과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라. 늙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 세월 탓이다.

18. 타인의 잘못에는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실수에는 빨리 사과하라. 남의 옳고 그름을 따지면 따질수록 당신의 마음이 먼저 불편해지고 옹졸해진다.

19.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간증하라. 남에게 자신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설교하거나 선교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신앙을 따라 살면서 모범을 보여라.

20. 웃어라 ~ 많이 웃어라 ~~ 모든 것에 웃어라 ~ 살면서 유머를 잃지 말라! 

21. 남이 나에 대해 한 말이나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휴식하며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때이다.

그리고,  좋은 것을 뒤로 미루며 〰 먼저 나쁜 포도주부터 마시기에는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다

삶을 즐겨라. 소중한 인생은 매순간 삶속에 있다..

              몸은 전셋집 이다
몸은 전셋집이다  임대기간이 다 되면 
돌려줘야 한다. 그때 하자보수는 필수

몸은 무엇일까? 몸은 내가 사는 집이다. 

지식이나 영혼도, 건강한 몸 안에 있을 때 가치가 있다. 

몸이 아프거나 무너지면, 별 소용이 없다. 집이 망가지면, 집은 짐이 된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노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 

정말 맞는 말이다. 몸만이 현재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몸은 늘 현재에 머문다. 현재의 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늘 모든 것에 우선한다.  
 
"몸이 곧 당신이다."  몸을 돌보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인 동시에 남을 위한 일이다. 

그런면에서 몸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어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 

몸을 돌보면, 몸도 당신을 돌본다. 하지만 몸을 돌보지 않으면, 몸은 반란을 일으킨다.

하루 30분 걸으면 몸에 나타나는 놀라운 변화 10가지

1. 치매가 예방 된다.
2. 근육이 생긴다.
3. 심장이 좋아지고 혈압을 낮춰 준다.
4. 소화기관이 좋아진다.
5. 기분이 상쾌해 진다.
6. 녹내장이 예방 된다.
7. 체중을 관리 할 수 있다.
8. 뼈를 강화 시킨다.
9. 당뇨병 위험을 낮춰 준다.
10. 폐가 건강해 진다.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나를 사랑하면 삶도 나를 사랑합니다

2024년 2월 9일 금요일

뛰는놈위에 나는놈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이 俗談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나는 놈의 머리 위에 걸터 올라 앉아있는 사람이 또 있슴나다.
경력과 시스템이 학력을 앞선다. 

중국 광저우의 한 은행을 턴 두 형제의 강도사건 이야기이다. 

두 형제 은행 강도는 당당하게 은행에 들어가서 이렇게 소리친다.

 "움직이지 마시오~이 돈은 정부의 돈일뿐이고

목숨은 여러분의 것이니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모든 사람들은 강도의 말에 예상외로 마음이 편해져서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이건 바로 ‘일반적인 생각을 바꾸는 반전 콘셉트 형성 전략!’.

강도라면 큰 패닉에 빠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한 늙은 여성이 갑자기 도발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자

강도는 그녀에게 차분하게 말한다.
"어머님~! 교양있게 행동 하십시오.

말씀 드렸듯이 당신을 해칠 이유도 생각도 없습니다!" 

이건 바로‘프로다운 냉정함을 유지하기 전략!’. 

그들은 평소 연습하고 훈련한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돈을 가져오는

목적에만 집중하며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 결과 두 강도는 무사히 돈을 갖고 나올 수 있었다. 

돈다발을 들고 무사히 집에 돌아와

동생 강도(MBA 출신)가 중학교만 졸업한 형 강도에게 말한다. 

"형님 우리 얼마 가져왔는지 세어 봅시다!"

형이 답한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이 많은 돈을 세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오늘 밤 뉴스에서 알려줄테니기다려 봐라!" 

이건 바로 ‘경험의 중요성’ 경험이 학벌보다 더 중요한 이유를 알게 해준다. 

강도들이 은행을 떠나고 은행은 정신없이 요란하다.

 은행 매니저는 상관에게 경찰을 부르자고 채근한다. 

그러나 상관은 침착하게 말한다.

 "잠깐! 경찰 부르기 전에, 일단 10억은 우리 몫으로 빼놓고

 지금까지 우리가 횡령했던 70억을 이번 기회에 메꾸도록 하자." 

이것이 바로 ’파도타며 헤엄치기 전략‘. 

“하늘이 무너져도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기억하며 

위기의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기지와 용기를 발휘한다. 

상관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강도가 매달 털어 주면 좋겠구만..."

다음날 뉴스에 100억이 강탈되었다고 보도된다. 

강도형제는 하도이상 해서 결국 돈을 세어 본다. 

아무리 세어 봐도 20억 이다. 

강도 형제는 땅을 치며 말한다. 

"우린 목숨 걸고 고작 20억 벌었는데 저놈들은 손가락 하나로 80억을 버는구나!."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중요성’으로 각 분야에서

그 시스템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대장동 사건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세상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옮긴글)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나이가 들어감에ㅡㅡ

⛰️성찰 
*** 나이가 들어감에ㅡㅡ

⓵ 말을 적게 해야 한다. 
입을 다물고, 
남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을 많이 하면, 
품위가 떨어지고, 
체신머리가 없어진다. 
입은 밥을 먹을 때에만 벌려라.

⓶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마음은 28청춘’이라고 몸 따로, 마음 따로 놀면 안된다. 
늙은 사실을 모르고 Boxing 대회에 나가면 곧 KO된다.

⓷ 연애는 젊은 사람의 몫임을 인정해야 한다. 
로미오도 애들이고, 
줄리엣도 애들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모든 애정소설의 주인공들은 20대다. 
6,70대가 주인공인 영화는 서부영화에서 총맞아 죽는 역밖에 없다. 

⓸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나이들면, 
돈밖에 모르고, 
제 몸밖에 모른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욕만 먹는다.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못사는 친척, 
친구에게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헌혈도 너무 나이들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⓹ 세상일에 아는척 하지 말아야 한다. 
몇십년전에 배운 일, 
경험한 것을 금과옥조로 삼고 떠들면 꼴통 소리를 듣는다. 
컴퓨터, 인터넷 시대이고, 달나라 가는 시대다. 
드론으로 정확하게 IS 요인 공격살해 하는 세상이다. 
늙은 사람이 정치 경제 외교 안보 군사 문화 스포츠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인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면, 애국하는 것이 아니라, 
애곡하는 것이다.

⓺ 왕년에 잘나갔다는 이야기는 혼자 있을 때 장독 안에다 머리를 틀어 박고 하는 게 좋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배고픔을 참고 성공했다든가, 피나는 노력을 해서 서울대 갔다든가, 
여자를 잘 꼬셔서 미인과 사겼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수천번 반복하고 있으면, 
그건 공해다.
 
⓻ 젊은 사람들의 두뇌와 능력을 인정하여야 한다. 
우리도 옛날에 붓으로 사무보는 사람을 우습게 보고 살았다. 
지금도 마찬 가지다. 
젊은 사람들의 지능과 정보력,
신속한 동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젊은 사람들과 경쟁 하려는 것은 사자와 맞짱 뜨자는 것과 같다.
 
⓼ 성관계는 아예 포기하거나 극도로 절제하여야 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자와 새로운 연애를 시도하는 것은, 
복상사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로 들린다. 
젊은 여자와의 사랑을 유지 관리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허망한 구름을 잡겠다는 것이다. 
구름을 잡고 있으면, 곧 지상으로 추락 해서 끝이 난다.
 
⓽ 마지막까지 가정을 지키고, 
가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해야 한다.
은퇴했다고 운동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고 있으면 안 된다. 
정 할 일 없으면, 
손자 손녀 학습지도 라도 하라.

⓾ 안 하던 일을 새로 하지 마라. 
창업을 하든가, 
주식 투자를 하든가, 
다단계를 하든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돈을 벌려고 하다가 얼마 남지 않은 쌈짓돈 다 날리고 쭈굴쭈굴한 거지가 되면, 아주 비참해진다.
 
⑪ 황혼이혼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참고 살았으면, 
앞으로 얼마 남지 않는 인생도 그대로  살아라. 
조강지처 버리고 밖에 나가 방황 하다가 우습게 된 노년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⑫ 뒤늦게 정치하지 마라. 
갑자기 국회의원 출마하고, 시장 군수, 도의원 구의원 나가지 않는게 신상에 좋다. 
정치는 하던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⑬ 쓸데없는 고집을 버려라. 
집안에서도 부인과 다투지 마라. 
큰일에서는 다투더라도, 
작은 일과 사소한 일에서 다투면 사람만 쩨쩨 하다고 손가락질 받는다.
 
⑭ 지금까지 살면서 잘못한 일을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라. 
부모에게 불효한 것,
아내에게 잘못한 것,
자식들에게 제대로 못해준 것, 
본인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 등등 반성할 것이 108가지는 될 것이다. 
108번뇌라는 말은 바로 꼰대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⑮ 자식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 하지 마라. 
자식들은 스무살 넘으면 알아서 사는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 걱정만 하고 있어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⑯ 자식들에게 먼저 모든 재산을 증여해주면 안된다. 
재산 다 넘겨주면 자식들로부터 구박 받는다. 
그건 다 자업자득이다. 
집 넘겨주고 쫓겨나서 양로원 가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⑰ 죽을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어라. 
혹시 재산이 많으면 죽기 전에 마음껏 쓰고 죽어라. 
주변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도 조금 하는게 좋다. 
선을 베풀면, 
악을 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감을 느낀다.

⑱ 자서전을 쓸 생각을 하지 않는게 좋다. 
특히 대필해서 자서전 써놓아야 읽는 사람 아무도 없다. 
자식들조차 읽을 시간이 없다. 
자식들도 페이스북 해야 하기 때문 이다.

⑲ 건강을 챙기는 것은 좋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120세까지 사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사는 것도 곤란하다.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한다.
 
⑳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잘난척하면 어디에 가도 왕따 당한다.
나이들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나이 들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조금이라도 
지혜로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