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인 1920~30년대 신여성들은 상대가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그와 연애하고 스스로 ‘제2부인’이 되기도 했다. 제2부인이란 전통시대 조혼 풍습으로 어린 나이에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결혼한 ‘구여성 부인’이 아니라 당시 새로운 풍조로 떠오른 자유 연애로 만나 결혼한 여성을 말한다.
제2부인은 전통시대 ‘첩’과는 다른 존재였다. 어릴 때 부모가 정해준 대로 강제 결혼한 구여성 부인과는 달리 제2부인은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결혼의 근거가 있었다. 게다가 제2부인은 본처인 구여성보다 대체로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당시 ‘첩’이 아니라 ‘제2부인’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이 때문이다.
일반적인 신여성뿐 아니라 당대 최고 엘리트 신여성들도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으로 한국 여성 최초로 총독부가 시행하는 의사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 신여성인 허영숙은 와세다대학 학생인 춘원 이광수를 사랑했다. 이광수는 어릴 때 고향 처녀인 백혜순과 결혼한 유부남이었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2부인은 전통시대 ‘첩’과는 다른 존재였다. 어릴 때 부모가 정해준 대로 강제 결혼한 구여성 부인과는 달리 제2부인은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결혼의 근거가 있었다. 게다가 제2부인은 본처인 구여성보다 대체로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당시 ‘첩’이 아니라 ‘제2부인’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이 때문이다.
일반적인 신여성뿐 아니라 당대 최고 엘리트 신여성들도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으로 한국 여성 최초로 총독부가 시행하는 의사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 신여성인 허영숙은 와세다대학 학생인 춘원 이광수를 사랑했다. 이광수는 어릴 때 고향 처녀인 백혜순과 결혼한 유부남이었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춘원 이광수(오른쪽)와 신여성 부인 허용숙(가운데). 아들 봉근은 8세때 사망했다./민음사 제공
동아일보는 1929년 2월 24일 ‘결혼난과 신여성’이란 기사에서 “조선은 조혼의 관계로 신여성의 상대 될 만한 사회적 지위가 있고 학식이 있는 이는 거의 전부가 기혼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여성의 결혼 대상이 되기를 바랄 수도 없는 무식 계급이 아니면 아직 입에서 젖내 나는 청소년층”이라고 전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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