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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孝不孝橋(효불효교)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어린 나이에 시집 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 밭 몇마지기가 전 재산이다.

정신없이 시집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이다.

아들 둘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다.

혼자서 아들 셋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셋이 쑥쑥 자랐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

세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 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이다. 베개를 부둥켜 안아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농익은 30대 후반 유씨댁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삼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세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뼈를 사다 고아줬다.

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셋이 잠든 후 집을 빠져 나와 범골로 향했다.

유씨댁은 깜짝 놀랐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세 아들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경상북도 사적 제 457호지정)이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다

요즈음  자식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다리를 놓아줄려는지?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황혼의 사춘기


아직은 바람이고 싶다.
조용한 정원에 핀 꽃을 보면
그냥 스치지 아니하고 꽃잎을 살짝 흔드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

스테이크 피자가 맛있더라도
조용한 음악이 없으면 허전하고
언제 보아도 머리를 청결하게 감은
아가씨가 써빙해야 마음이 허뭇한
노년의 신사이고 싶다.

선생님이라고도 부르지 마라
질풍 노도 같은 바람은 아닐지라도
여인의 치맛자락을 살짝흔드는 산들바람으로 저무는 노년을 멋지게 살고 싶어하는 오빠라고 불러다오

시대의 첨단은 이니지만
두손으로 핸드폰 자판을 누르며 문자 날리고 길가에 이름없는 꽃들을 보면
디카로 담아 메일을 보낼줄 아는 센스있는 노년이고 싶다.

아직은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를 보면
살내음이 전해와서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나이
세월은 어느듯 환갑이 이미 지났지만

머물기 보단 바람 부는 대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나이
이제는 선생님 이라고 부르지 말고
젊은 오빠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

나에겐 병이 있었노라

강물은 깊을수록
고요하고
그리움은 짙을수록 말을 잃는 것

다만 눈으로 말하고
돌아서면 홀로 입술 부르트는
연모의 질긴 뿌리
쑥물처럼 쓰디쓴
사랑의 지병을

아는가
그대 머언 사람아

(이수익·시인, 1942-)

효자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효자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남편은 권위적이어서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입만 열면 도덕책 같은 소리를 했다. 넌더리를 내던 아내는 딸의 대학 진학을 핑계 삼아 서울로 와 별거했다. 남편은 다달이 봉급을 아내 통장으로 입금했다. 은퇴한 뒤에도 연금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을 찾아가지 않았다. 박완서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부부의 결혼은 껍데기만 남았다. 많은 아내가 벼른다. ‘남편 늙어 아파도 눈 하나 깜짝하나 봐라.’ 자식은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다. 낯 붉혔다가도 아이들 봐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다 자식 크고 남편 은퇴하면 일이 꼬인다.
 
남편은 할 줄 아는 게 없어 집에만 붙어 있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으니 편히 수발 받고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손가락 까딱 안 하는 남편에게 세끼 챙겨주자니 열불이 난다. 갖은 살림 참견을 해대는 '남편 살이'에 시달린다. 애들 키우고 이제야 하고 싶은 일하려는데 남편이 발목을 붙잡는다. 10개구 조사에서 한국 50대 여성의 행복도가 꼴찌였다. ‘불행하다’는 답이 37%였다. 일본에 ‘나리타의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가 막내 결혼식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 보낸 뒤 갈라선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인천의 이별’이 닥쳤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에 결혼 20년 넘은 부부가 26.4%를 차지했다. 그동안 가장 높던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비율 (24.7%)을 처음 넘어섰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고, 이혼을 보는 사회 시선이 너그러워졌고, 여자 몫 재산 분할이 나아지면서다.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가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아내는 남편의 모기 물린 정강이를 어루만지며 화해한다. 박완서는 그것이 측은한 마음도 동정도 아니라고 했다. “세월을 함께 하며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자, 늙음과 삶의 허망함에 대한 연민”이라고 했다.

우리 중, 노년 이혼이 늘어나지만 대다수는 결혼 서약을 지키며 산다. 유대 금언집 탈무드에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이 키를 낮추라'고 했다. 결혼은 둘이 다리 하나씩 묶고 뛰는 이인삼각이다. 일흔 세 살 남편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치매에 걸렸다. 부모 자식도 기억 못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은 알아본다. 불편한 대로 걷고 밥 먹고 책 본다. 일흔 두 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간병 일지를 쓰며 지성으로 수발한 덕분이다. 남편은 아내가 장 보러 간 사이 마루 걸레질하고 세탁기 돌린다.
 
아내 고생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다. 부부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닌다. 부부가 추억 어린 계곡에 갔다. 처녀 총각 때 남편이 나오라고 했던 곳이지만 아내는 바람을 맞혔다. 남편이 “여기 온 생각이 난다.” 더니 노래를 불렀다. “내 사랑 양춘선은 마음씨 고운 여자 / 그리고 언제나 나만을 사랑해···.” 남편이 결혼식 때 불러줬던 노래다. 의사는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도 “병이 나아진 건 아니다” 고 했다. 아내는 말했다. “남편이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본 서귀포 노부부 이야기다.
 
“부부 사랑은 주름살 속에 산다”는 말이 있다. 좋든 싫든 기대고 부대끼며 서로 닮아 간다. 이혼을 바라보는 시인 김종길은 늙은 부부를 한 쌍 낡은 그릇에 비유했다. “오십 년 넘도록 하루같이 붙어 다니느라 때 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들 명이 짧아 해로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0년만 해도 예순다섯 넘는 고령자 성비는 여자 1000명당 남자가 62밖에 안 됐다. 통계청이 지난해 ‘고령자 통계’에서 노인 성비가 70.7까지 올라갔다고 밝혔다. 부부 함께 사는 노인비율도 2000년 52%에서 2010년 57.7%로 높아졌다. 남자 수명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2030년이면 노인성비가 81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늙도록 오래 사는 부부가 그만큼 많아지는 셈이다. 속담에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는 속담도 있다. 늙은 남편 너무 타박할 일 아니다.

가슴으로 하는 사랑

가슴으로 하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사랑하는 일 인줄 알았습니다.

아무 것 가진 것 없어도
마음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은 바다처럼 넓고도 넓어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르고
주고 또 주어도 모자라고
받고 또 받아도 모자랍디다.

사랑은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가슴에 소복소복 모아놓고
간직만 하고 있으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쌓아놓고 보니 모아놓고 보니
병이 듭디다 상처가 납디다.

달아 날까봐
없어 질까봐 꼭꼭 쌓아 놓았더니
시들고 힘이 없어 죽어 갑디다.

때로는 문을 열어 바람도 주고
때로는 흘려보내 물기도 주고
때로는 자유롭게
놀려도 주고 그래야 한답니다.

가슴을 비우듯 보내주고
영혼을 앓듯 놓아주고
죽을 만큼 아파도 해봐야 한답디다.

모아둔 만큼 퍼내야 하고
쌓아둔 만큼 내주어야 하고
아플만큼 아파야 한단걸

수 없이 이별연습을 하고 난 후에야
알수 있겠습디다.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디다.

그리움 흐려지면

그리움 흐려지면
                         / 빗새

파란 하늘 푸른 색이 탈색되는 것처럼
물기 빠진 낙엽도 단풍물이 바래집니다
겨울로 향하는 잠겨 있던 그리움도
그대 멀어지듯 흐려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은 늘 푸른 물 속에 잠겨 있는데
그대는 강건너에 희미하게 서 있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강이었을 땐
그대 모습 선명했는데
계절이 지워지는 옅음을 닮아
그대 그리움도 흐려지는가 봅니다

그래도 나는 그대가 보일 때까지
이 강가를 지키겠습니다
혹여 날이 맑아 그대가 보일지도,
혹여 누군가 당신 향해 건너갈
다리를 놓아줄 지도 모를
기적을 기다려 봅니다

하지만, 하루씩 지날 때마다
옅어져 가는 이 그리움은
하늘과 강물과 그대가
물기에 얼룩진 수채화처럼 헝클어져
구분할 수 없는 아련함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이젠 이 손 놓아드려야 하는 건지요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미국 대통령 바위얼굴이 조각되기 까지

미국 대통령 바위얼굴이 조각되기 까지

미국 대통령 바위얼굴이 조각되기 까지
1923년 사우스 다코타주의 역사학자 로빈슨은 로키산맥의
블랙힐스(Black Hills)의 연봉 바위에 서부개척에 공로가 많은 몇몇
인물들의 초상을 조각할 것을 착안하고 지역 유지들을
설득하기 시작해 지역 연방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과 의견을 모으고
인물 선정을 논의한 끝에 다음 네 명의 대통령을 조각하기로 하고
당시의 유명한 조각가 굿천 보글럼(Gutzon Borglum)을초청했다.
*죠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미국 초대대통령으로 위대한 미국의 탄생에 공헌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독립선언문을 기안했고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해 국토를 넓힌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연방을 살렸고 흑인 노예제도를 혁파한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서부의자연보호에 공이 컸고 파나마 운하구축등 미국의지위를
세계적으로 올려놓은 대통령

죠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조각가 굿천 보글럼(Gutzon Borglum)



굿천 보글럼(Gutzon Borglum)은 1871년 아이다호 출신으로
샌프란 시스코와 프랑스 파리에서 조각 공부를한 사람이다
1925년 보글럼은 적당한 바위산을 찾아 답사에 나섰다.
길도없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천막을 치고 밤을 지새면서 공사에
알맞는 바위산을 찾아 2주간을 헤멘 끝에
15일째로 사우스 다코타주와 와이오밍주 사이 로키산맥중에 솟아 있는
블랙힐스(Black Hills)의 거대한 바위산 밑에 도달한 보글럼은
정상의 바위상태를 조사하기위하여 산에 오를 준비를 했으나 전문장비도
없이 500 피트가 넘는 절벽산을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갖은 고생끝에 정상에발을 딛고 조사한 후에 이곳에
조각하기로 결심했다.



보글럼이 이곳에 조각하기로 결심한 러시모어 바위산(Mt,Rushmore)↓

작업의 준비

우선 3마일 떨어져 있는 키스톤(Keystone)에서 무거운 권양기(Winch)와
케이블, 착암기 등 작업에 필요한 물품들을 운반해야 할 도로가 필요했다

다행히 역사적인 일에 감동한 키스톤 마을 사람들이 대거 참여해 도로공사에
나섰으며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나 어린이들까지 자발적으로 참가해
원시적인 도로 를 산밑에까지 만들었다.
계단이 많아서 한 번 올라가는데 기력이 다 소진될
정도로 힘이 들었다고 한다

권양기를 정상에 설치하고 연결된 케이블로 작업도구와 폭파에
사용되는 다이나 마이트 등이 운반됐으나 계단을 이용하는
인부들이 지쳐서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자 나중엔 권양기 케이블에
부착한 상자를 타고 오르내리게 했다.

이 때 만든 계단 수가 760개나 되며 수직으로 올라가다시피 하는


케이블에 매달려 조각 그네모양의 의자를 케이블에 매달고 인부들이
타고 상하좌우로 이동할! 수 있게 하고
작업도중 실수로 떨어지지 않게 안전벨트를 장치했으며
지시 사항을 전달하게 인부들이나 권양기 운전사가 잘 보이는 곳에
소위
콜보이를 배치하여 양쪽의 말과 신호를 전달하는 방법을 썼다.
대통령의 호소로 전국적인 모금운동 작업자체의 어려움과
자금조달 문! 제등이 있어 1927년 8월에 드디어 조각작업이 시작 되었다
당시 대통령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는 러시모어 산을 '미국민의
역사적인 기념지역' 으로 정하고 모든 국민이 적극 돕자고 호소하여
노인으로부터 어린아이들까지 전국민이 모금운동에 참여해 오늘날의
이 위대한 조각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2대에 걸쳐 완성

네개의 얼굴 윤곽이 완성단계에 들어서고 팔과 손 그리고 입은 옷 등의
작업에 들어갈 무렵인 1942년 봄 어느날 갑자기 보글럼이 심장마비로사망했다.

돌발적인 보글럼의 사망으로 공사가 중단되었으나 처음부터 아버지
옆에서 조수 역할을 한 아들이 감독직을 맡아 시작 14년만에 완성된 것이다.

<'미국 여행가이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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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모습들





















작업하는 인부의 모습을 보면 조각상 얼굴의 크기가 짐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