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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5일 금요일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원수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

서강대 최진석 철학교수가 글을 광주일보에 게재하였는데 정말 훌륭한 글입니다.

"국가가 민족을 살리지, 민족이 국가를 살리는 일은 없다. 폭력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 집단, 국가의 최종목표는 ‘강병’ 그래야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 가능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원수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즉 국가의 명칭을 100년이나 사용하고도 새삼스럽게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매우 복잡한 일이다. 아니 내게만 갑자기 복잡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성계나 정치계를 둘러볼 때, 나만 혼자서 심사가 복잡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미쳤는지 스스로 의심이 된다. 그렇더라도 나를 복잡하게 하는 이 질문을 그냥 넘기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우리는 지금 국가를 국가의 단계에서 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일단 미쳤을지도 모를 사람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해본다.

개인의 세계가 가장 넓게 확장된 공적 영역은 국가이다. 한 개인은 자신의 사고나 가치 혹은 생활의 영역을 자신의 주관적인 뜻대로 5대양 6대주나 우주까지 확장할 수도 있겠지만, 법적인 제약을 공유하면서 보호를 받고 권리를 주장하는 공적인 영역으로는 국가가 가장 크다. 자기가 속한 국가를 벗어나서도 최소한의 보호나 권리를 향유하려면 여권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마저도 국가 간의 협의를 거쳐 허락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니 개인의 삶이 보호되고 또 허용되는 일이 일어나는 가장 큰 단위는 국가이다. 보호와 허용은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른다. 이 규칙은 누구나 한 국가 안에서 다 지켜야 하기 때문에 공적 영역이다. 

다시 말해, 공적인 체계를 구성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북돋우고 견제하는 삶의 장치로는 아직까지 국가보다 더 큰 것이 개발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앞으로도 상당 기간) 개인에게 가장 큰 공적 공간으로 국가를 넘어선 것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가는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이다.

국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배타성이다. 배타성은 배타적 동일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서 동일성은 대내적으로 적용되고, 배타성은 대외적으로 적용된다. 배타성을 발휘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힘이 폭력이다. 그래서 국가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 집단이라고 해도 된다. 

국가 안에서 폭력은 관리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을 임의대로 사용하면 국가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가진 모든 폭력성을 다 거두어서 국가가 총체적으로 관리한다. 국민은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되고, 국가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 국가가 대외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때는 군대가 나서고, 대내적으로는 경찰이 나선다. 군대와 경찰로 한 국가의 폭력은 관리되고, 내외적으로 생명과 재산이 보호되는 것이다. 국가가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임을 감안할 때, 결국 최종적인 일은 전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국가는 전쟁을 하는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 국가의 자부심과 역량은 최종적으로 군대로 표현된다. 그래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가 된다. 대통령을 규정하는 어휘 가운데 대통령과 가장 일치하는 것이 바로 군통수권자이다. 헌법 제66조에서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규정할 때, 그 핵심적인 내용은 군통수권자라는 뜻이다. 제74조에서는 따로 대통령을 군통수권자로 명문화해놓고 있다. 군 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고 또 강화도 할 수 있다.(헌법 제73조) 따라서 국가의 목표는 단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부국강병을 이루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국가 단위에서는 배제되어야 한다. 문중이나 시민단체나 동아리나 정치집단 등에서는 부국강병과 다른 길을 가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에게는 부국강병만이 유일한 길이다. 사실 부국강병에서도 ‘부국’이 ‘강병’을 위하는 것인 만큼, 국가에게는 ‘강병’이 최종 목적지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병(强兵)이 빠진 부국(富國)은 체력은 없이 체격만 커진 꼴과 같이 허망(虛妄)하다. 이 허망함을 감추려다보면, 정신승리법으로 겨우 버티는 아큐(阿Q)가 된다. 우리는 이미 아큐(阿Q)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하여 많은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도 말했듯이 “현충원은 살아있는 애국의 현장”인데, ‘애국’(愛國)이라고 할 때의 ‘국’(國)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다.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고도 했는데, 애국으로 통합되어야 할 보수와 진보는 중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미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다. 배타적으로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말을 할 때, 말로는 애국이라고 하면서 느낌은 ‘민족’을 가졌을지 모른다. 민족적 의미에서 기려야 한다면, 민족적으로 기리면 된다. ‘애국의 현장’은 대한민국만을 중심에 놓고 배타적으로 적용해야만 한다. 국가는 원래 이런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에 기여하고, 6·25 전쟁 중에 대한민국의 파괴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한 사람을 ‘애국’의 한 전형으로 제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직 논리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논리를 좌충우돌 끼워 맞추려 할 것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권력을 배타적으로 응집하여 완전한 독립의 상태에서 자력으로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해방 자체를 우리 힘으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라도 근본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도와서 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누가 더 자주적이었는가 하는 논쟁은 정치적인 우격다짐일 뿐이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근대 국가를 세워본 경험도 없이 독립을 상실한 우리는 일본에 저항하고 독립의지를 키우기 위해서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민족은 근대국가 안에서 국가를 이루는 구성 중심이 되지만, 굳이 구분해서 말한다면 국가가 민족을 리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국가가 민족 개념을 리드해서 국민 국가를 이룬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여러 요인 때문에 민족 개념으로 국가를 리드하려다가 나치즘에 빠지는 우를 범하였다. 

우리의 민족관은 아직 과거의 독일 쪽에 더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우리는 국가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삶의 뿌리에서 인식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를 가졌기 때문에 국가를 국가의 높이에서 다룰 실력이 아직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가보다 민족이 더 생생한 상태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언어나 문화나 풍습을 공유한다는 믿음으로 구성되는 정서적 공동체이다. 법률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민족에 빠지면 감정적이고 정서적이 된다. 국가는 감성과 정서를 배제한 법률과 이성으로 관리된다. 민족은 따뜻하지만, 국가는 차가울 수도 있다. 민족은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기대가 허용될 수도 있지만, 국가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사실적 효과에만 기댄다. 민족에 빠지면 호소하려들고, 국가관이 투철하면 힘을 길러 판을 조정하려 한다. ‘힘’을 믿지 않고 설득과 호소와 간절한 눈빛과 따뜻한 태도를 앞세워서 일을 이루려고 한다면, 이는 아직 ‘국가’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을 앞세우면 이런 태도들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일은 국가적 단계에 맞는 태도로만 성사된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원수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나라의 모든 일이 복잡해지고 해결이 난망해진다. 모든 것이 꼬일 수 있다.

외국의 귀빈이 방문하면 군인들로 이뤄진 의장대를 사열하곤 한다. 의장대의 사열을 베푸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따뜻하고 친근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국의 군대가 얼마나 군기가 잡혀 있으며, 얼마나 강한지를 과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국의 폭력성이 얼마나 잘 정련되어 있는지를 알게 해주려는 것이다. 국군의 날도 마찬가지이다. 대내적으로는 자국의 국민들에게 국가의 폭력성이 얼마나 잘 훈련되어 있고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서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이 잘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려는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강하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군의 날은 ‘무력 과시의 날’이지, 흥을 돋우고 위로를 나누는 날이 아니다. 그런 일은 따로 하면 된다. 유엔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하는 날이 아니다. 국군의 날은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날이 아니다. 그런 날은 따로 있다. 군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날이 아니다. 그런 일은 날을 따로 잡아 해야 한다. 군사퍼레이드도 없이 야밤에 가수들 불러 쇼로 국군의 날을 보내는 일이 처음으로 벌어졌다는 것은 이제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단계를 벗어나 국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방치의 단계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가가 아무래도 상관없다면, 과연 상관있는 것은 무엇인가. 군대와 대통령의 마음속에 국가보다 더 상관있는 것이 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아덴만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항한 해군 청해부대의 ‘최영함’ 입항 환영 행사 도중 사고로 군인 한 명이 사망하고 네 명이 부상을 당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바로 달려와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빈소에라도 와야 한다. 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해 조화를 보내고 직접 조문하지 않은 것은 군통수권자로서의 사명감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해 수호의 날에 대통령이 연속 참석하지 않은 것은 국가가 무엇이고, 대통령은 어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 사고의 희생자보다 군 사망자들이 대접을 덜 받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들이 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일어났어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누군가를 배려하고 눈치를 보느라 그리되었다면,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골목에서야 배려하고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면, 무엇인가 얻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절대 그렇지 않다. 국가가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못 얻고 치욕만 남긴다. 골목과 국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골목길의 평화는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고, 비굴한 태도를 보이고, 망신을 당하고도 그냥 모른 체하고 넘어가면 얻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의 평화는 싸울 의지를 더 분명히 하고, 당당한 호전성을 거침없이 과시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북한 비핵화는 한 걸음도 진척이 없는데, 군 대비태세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도 국가를 국가의 높이로 경영하고자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대에는 언제나 목적한 일이 다 풀리고 난 후, 마지막 단계에서나 겨우 조금 손을 댈 수 있다. 우리는 비핵화 진행과정에서 가장 나중에 손을 대야 할 군대에 가장 먼저 손을 댔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문제는 국가를 국가의 높이에서 경영하지 않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대통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민족의 시각으로는 국가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시각으로는 민족의 문제를 풀 수 있다. 국가가 민족을 살리지, 민족이 국가를 살리는 일은 없다. 게다가 우리는 민족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국가들과는 다 등을 돌리고, 민족이라고 상상하는 북한에만 목을 매고, 그 북한과 가까운 중국에만 굽실거리는 것으로는 국가의 높이에 있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阿Q가 되어 풀리지 않은 현실을 풀린 것으로 ‘정신승리’하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심지어 북한과 중국도 민족적 처신을 하고 있지 않다. 철저히 국가적 처신을 하고 있다. 우리만 그것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만 환상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제부터라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건명원 초대원장

2019년 7월 4일 목요일

사소십다 (四少十多)


옛날 조선의 왕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수라상엔 통상 밥과 탕을 빼고 모두 열두 반찬이 올랐지요.
찜, 구이, 조림, 산적, 편육, 생채, 장아찌, 젓갈 등으로 꾸몄는데
역대 왕들이 즐긴 특별 보양식은 붕어찜이었다고 하지요.
닭과 메추라기도 기운을 돋우는 음식으로 꼽혔으며 해산물 중에서는 전복을 최고로 쳤다네요.

그러나 가뭄과 홍수가 들어 백성이 고통을 받을 때는 왕은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또 반찬 가짓수를
덜거나 보통 하루 다섯차례인 횟수를 세끼로 줄이기도 했어요.
또 신하들이 당파싸움에 빠질때는 숟가락을 들지 않은 왕도 있었지요.
신하들이 왕의 뜻을 알아서 스스로 정쟁을 멈추게 하는 이른바 "밥상정치"였어요.

역대 왕중 과식을 가장 멀리한 왕이 영조대왕(英祖大王) 이었지요.
영조는 미음에 우유를 섞어 끓인 타락죽(駝酪粥)을 좋아 했어요.
특히 입이 짧았던 영조는 임금자리에 오른뒤 수라상에 산해진미를 즐기지 않았고
금주령까지 내렸어요.영조는 특히 차고설익은 음식을 싫어했지요.
영조가 그나마 좋아한 생선은 조기 였다고 하지요.
그는 여름철이면 보리밥을 물에말아 조기를 반찬으로 먹는 것을 즐겼다 하네요.
일흔이 넘어서는 고추장의 감칠맛에 빠져 고추장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하니
우리 고유의 음식 매력에 푹 빠졌었나봐요.

아무튼 조선왕실의 음식문화는 소식(少食) 이었다 하지요.
왕자들은 "식탐(食貪)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으며 "진수성찬을 멀리하라"는
신하들의 말을 잘 들은 임금은 성군(聖君)이 되었다 하네요.

옛 성현들의 말씀중에 사소십다(四少十多)란 말이 있어요.
이것은 네가지는 적게하고 열가지는 많이 하라는 뜻이지요.
이것을 지키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한다 했어요.

*사소십다(四少十多)*
四少란?
1, 소식(少食)
과식하지 말고 소식하라.
2, 소언(少言)
말을 많이 하지말고 경청(傾聽)하라.
3,소노(少怒)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내지마라.
4, 소욕(少慾)
욕심은 만병의 근원이니 마음을 비우라.

十多란?
1, 다동(多動)
많이 움직여라.
2, 다욕(多浴)
따듯한 물로 매일 목욕하라.
3, 다설(多泄)
눈물. 콧물. 땀. 대소변을 잘 배설하라.
4, 다접(多接)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만져주고 접촉하면 활력이 생긴다.
5, 다소(多笑)
많이 웃어라 웃음은 건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다.
6, 다망(多忘)
될수 있는대로 아픈 과거는 빨리잊어라 과거는 다시 오지 않는다.
7,다정(多靜)
고요한 마음을 자주 가져라. 그리고 명상을 많이 하라.
8.다용(多容)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라.
9, 다인(多忍)
매사에 많이 참는 습관을 들이고 끝까지 참아라.
10, 다용(多勇)
매사에 용기를 가져라 .주저하면 오래 못 살고 얻는 것이 없다.

그 밖에도 삼다(三多)가 더 있다하는데
다견(多見) 많이 보고 새로운 것을 배워라.
다애(多愛) 사랑을 많이 하라. 사랑은 생동력을 주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다보(多步) 가능한 많이 걸어라. 걷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게 한다.

사소십다(四少十多)를 잘 지키면 무병장수 할 수 있다하니 과식하지 마시고
늘 건강관리에 유념 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이분들에게 ''꼰대세대'' 라고 하는가?

지금 60~70~80 세대들은 '젊은시절'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의 캥거루 세대들을 키워왔다.~

1. 그들은 <호롱불> 세대었다.
''전깃불''이 없어 ''호롱불''을 켜놓고,
'앉은책상'에서 공부해야만 했다.~

2. 그들은 <측간> 세대었다.
''실내 화장실''이 없어 살을 에이는 듯한 한겨울 새벽에도 '마당 한구석탱이'에 있는 '재래식변소'에서 ''볼일''을 보아야만 했다.~

3. 그들은 <우물> 세대었다.
''상수도''가 없어 동네 ''공동우물''에서 양동이로 물길어 ''항아리''에 담아놓고 먹야만 했다.~

4. 그들은 <가마솥> 세대었다.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부엌한구석' 에서 ''목욕''을 해야만 했다.~

5. 그들은 <손빨래> 세대었다.
"세탁기"가 없어 '한겨울' 에도 개울에 나가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해야만 했다.~

6. 그들은 <자전거> 세대었다.
"자가용"은 물론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만 했다.~

7. 그들은 <고무신> 세대었다.
''구두''는 물론 '운동화'도 없어 "한겨울'' 에도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녀야만 했다.~

8. 그들은 <까까중> 세대었다.
''이발소''에 갈 '돈'이 없어 '일년내내 '까까중머리'를 하고 다녀야만 했다.~

9. 그들은 <보자기> 세대었다.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차고 다녀야만 했다.~

10. 그들은 <고무줄> 세대었다.
'장난감' 이나 '놀이기구'가 없어 '고무줄'로 ''새총''을 만들고 ''줄넘기''를 하면서 놀아야만 했다.~

11. 그들은 <강냉이> 세대었다.
'도시락'을 싸들고 갈 '쌀'이나 '보리쌀'이 없어서 '학교'에서 "강냉이죽"을 끓이거나, '강냉이빵'을 만들어 '급식'을 제공하는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12. 그들은 <주경야독> 세대었다.
낮에는 '가사일 농사일 돕기' 풀베기 나무하기 소먹이기 동생돌보기 등등을 하고서 밤이 이슥해서야 ''학교숙제''를 해야만 했다.~

13. 그들은 <주판> 세대었다.
'컴퓨터'가 없어 다섯알짜리 '주판'을 굴리면서 '셈'을 해야만 했다.~

14. 그들은 <일제고사> 세대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전교생이 일제히 '시험' 을 치르고 '등수'를 매겨 ''평가'' 했다.~

15. 그들은 <입학시험> 세대었다.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를 "본고사 입학시험"을 치루어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16. 그들은 <공돌이 공순이> 세대었다.
하도 '가난'하여 '진학'하지 못하면 '식모살이' 아니면 구로공단 같은 공장에서 '공돌이' '공순이'를 해야만 했다.~

17. 그들은 <삭월세> 세대었다.
"신혼살림집"을 구할 ''돈''이 없어 거의 모두가 "삭월세 단칸방'' 부터 시작하여 '전세'로 옮겨다녀야만 했다.~

18. 그들은 <월남전> 세대었다.
나라가 '빈곤' 하여 ''목숨'' 걸고 돈을 벌어와야만 했다.~

19. 그들은 <광부.간호사> 세대었다.
'빈곤국'으로 ''독일''에 가서 그렇게 ''돈''을 벌어와야만 했었다.~

20.그들은 <중동노동자> 세대었다.
'국가와 가족'을 위하여 이역만리 '중동지역' 에서 땀흘러가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국가와 가족을 위하여 일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지 않는가 !~

누가, 이분들에게 "꼰대"라고 하는가?~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부모"가 된다.~

가족을 위하여 불을 피우고 집안에 ''못''을 박는 "부모"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부모''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부모"는 "어린 자식들과 가족" 들에게 울타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싸운다.~

부모는 자식에게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일 것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가난하고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와 열심히 "캥거루세대"를 키워낸 죄밖에 없는 "샌드위치 세대" 들일 뿐이다.~~

-<옮>-

독서는 돌대가리도 천재를 만든다.


벤카슨은 미국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이다.

그가 8살 때 부모님은 이혼하고 어머니 소냐카슨이 아들 둘을 키웠다.
어머니는 식모였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벤카슨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기초학습이 되어 있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을 따라 갈수가 없었다.
결국 전교 꼴찌를 했다.
2학년 때도 꼴찌, 3학년 때도 꼴찌, 4학년 때도 전교 꼴찌 4연패를 했다.
그의 별명은 돌대가리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가지 좋은 습관을 가지게 했다.
그것은 독서하는 습관이었다. 어머니가 식모하러 여러집을 다녀 본 결과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집안은 집안이 조용하고 책을 읽는 분위기였고, 그렇지 않은 집은 시끄러웠다.
그래서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게 했다.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에 책 두 권을 읽게 했다.
어떤 책이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두 아들은 도서관에 갔지만 이해되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택한 책이 자연학습도감 상하권이었다.
그림이 많아서 보기 쉬웠다. 벤카슨은 이 책을 6개월간 읽었다.
그리고 형제끼리 철길에서 돌 이름 맞추기 게임으로 놀이를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암석 3개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무슨 암석인지 아는 학생?" 하고 말하자 벤카슨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은 화가났다.
수업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생각했다.
앞에 나와서 말해보라고 하자 아주 쉽게 암석들의 이름을 맞추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공부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뒤집어졌다. '벤카슨이 공부를 해?'

그리고 1시간의 수업 시간 동안 벤카슨이 암석 강의을 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기절초풍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인정받는 시간이었다.
 
벤카슨은 그 다음날부터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읽기 시작했고, 2학년, 3학년 교과서를 모두 읽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선생님의 강의가 조금씩 이해되었다.
그는 다음해 전교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의대에 진학해서, 신경외과를 선택하여 전문의가 되었다.

30대 초반에 존스홉킨스 대학의 신경외과 과장이 되었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이 유명의대 과장 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흑인에게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최고의 베테랑들이 과장이 되는데, 그는 30대 초반에 과장이 되었다.
거의 모든 의학 논문을 다 읽었다. 다른 의사들이 모르는게 있으면 척척 알려주었다.
돌대가리에서 만물박사로 별명이 바뀌었다.
 
그리고 드디어 세계 최초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수술에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독서의 힘이다.

독서는 꼴찌를 1등으로 만들어 준다.

ㅡ옮긴 글ㅡ

2019년 7월 3일 수요일

작금의 대한민국

노조가 기업을 지배하고

전교조가 교장을 지시하고

환자가 원장을 좌지우지하고

학생이 선생을 갖고 놀고

여자가 군대를 조롱하고

젊은이가 노인을 비웃고

오산시 아줌마들이 정신병원 문닫게 하고

사시 불합격자가 법무부장관하고

통역사가 외교장관하고

개그맨이 헌법강의하고

학생운동출신이 청와대에 포진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나라

마이너스 성장을 찍어도

경제가 잘 돌아간다며

한미일 동맹을 멀리하고 중국몽 꾸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일 안해도 알바보다 더 많이 돈 주는 나라

외노자가 돈 더 많이 받는 나라

군은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적에게 허락 받고 정찰기 띄우고

군인은 스마트폰게임에 빠져 있는 나라

게이는 거리에서 춤추고

에이즈 걸리면 세금으로 치료해 주는 나라

세계 제일의 원전기술을 포기하고

하도급 국가로 스스로 전락하는 나라

오늘도 이것을 평등이라 포장하며 선동하는 나라

그 나라가 작금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현실에 딱맞는 글이라 퍼왔어요. .)

4명의 군목 이야기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월 22일, 뉴욕항을 떠난 연합군 병력 수송선 도체스터호는  904명을 태우고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항해 12일 만인 그 해 2월 3일, 독일 잠수함이 도체스터호에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했다. 어뢰를 맞은 도체스터호는 얼마가지 않아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병사들은 서로 붙잡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네 명의 군목들은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며 병사들을 구명정 타는 곳으로 안내했다. 더 이상 나누어줄 구명 조끼가 없었다.

그 때 군목 클라크 폴링 중위가 병사에게 물었다.
“자네 예수 믿는가?”
“아니요” 

그러자 군목은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면서 말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다. 당신은 이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서 꼭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네 명의 군목은 모두 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병사들에게 주었다.

도체스터호에 점점 물이 차올랐다. 네 명의 군목들은 서로 팔을 끼고 기울어진 갑판에 서서 ’내 주를 가까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였다.

생존한 병사 그래디 클락은 군목들의 최후를 이렇게 진술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군목들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병사들에게 벗어주고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수병들은 군목들의 희생을 기억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4명의 군목, 조지 폭스, 알렉산더 구스, 클라크 폴링, 존 와싱턴을 기리는 기념예배당(US Naval Chapel)을 건축하였다.

필라델피아시에서는 용감하고,
희생적인 네 사람의 군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훠 채플린스 기념관’ 을 짓고, '4인의 불멸의 군목들'이라는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작곡가 제임스가 이들을 소재로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이라는 뮤지컬을 제작,  공연하여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군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군목들, 이것이 강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지요!

주여!
우리도 저런 삶을 살게 하소서!

~ 옮긴글 ~

2019년 7월 2일 화요일

논바닥에서 펑펑 울던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 한토막


1960년대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을 때
아주 늦은 밤 마침내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고 한다.
모두 잠든 시간, 박정희 대통령은 조용히 운전기사를
깨워 농촌 들녘으로 향하셨다.
논이 보이자 차를 세우신 박 대통령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논 한가운데로 저벅 저벅 걸어 들어 가셨는데,
한참을 지나도 안나오셔서 운전기사가 가까이 가 보니
논바닥에 주저앉은 박대통령이 어린아이 처럼 펑펑
울고 계셨다고 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운전기사도 박 대통령을 따라
한참을 울었다고 (박정희 대통령 운전기사의 증언)
박정희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박정희 대통령 에게는 그가 어릴 때 그를 등에 업고
다니며, 극진히도 돌봐주시던 누님이 딱 한 분 계셨다.
동생이 대통령이 되었을 당시 누님은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어렵게 살아 올케가 되는 육영수 여사에게
좀 도와 달라고 어려운 부탁에 편지를 보냈다.
이를 받은 육 여사는 친인척 담당 비서관에게
이 편지를 건네 주었다.
당시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생이었고,
박 대통령의 집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 대통령 모르게 은행에서 대출을 알선해
(일종의 압력이었음) 박 대통령 누님의 아들에게
택시 3대를 사서 운수업으로 먹고살도록 주선을 해
주었으나,
나중에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박 대통령은 대노
해서 친구이기도 했던 담당 비서관을 파면하고,
택시를 처분함과 동시에 누님과 조카를 고향으로
내 쫓아 버렸다.
이 조카는,
"삼촌!! 대한민국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습니다."라며
울먹이면서 대들었지만, 박 대통령은 단호하게
고향으로 쫓아 버렸다.
누님의 원망을 들은 박 대통령은 "누님 제가 대통령
그만 두면 그 때 잘 모시겠습니다." 라며 냉정하게
누님을 외면했다.
그 후 누님은 할 수 없이 대구에서 우유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대통령인 동생을 원망하면서…….
단 한 분 그것도 자신을 극진히 돌봐 주시던 누님이
어렵게 살고 있는데, 대통령이 된 지금 이렇게도
냉정하게 뿌리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총을 들고 혁명을 일으킨 진정 메마른 눈물을 가진
독재자 였기에 때문에 감정 없는 그런 인간 이었을까??
피를 나눈 혈육의 정까지도 마다하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며, 사리사욕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관이 확실한 애국심을 가지고 이 나라
4,000만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탁월한 영웅,
대한민국 역사 이래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만이
할수 있는 것이다.
보라.....!! 후임 지도자들을......
그 누구 하나 부정부패 비리로 국민들을 실망 시키지
않은 지도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며, 전직 대통령들의
자식들이 감옥에 갔었음을….
박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인척
그 누구도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고,
청와대 초청 한번 안 했으며,
또, 박 대통령 자녀 중 누구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지도 않았고, 단 한푼의 재산도 물려주지
않았으며, 특혜도 베풀지 않았다.
인간이 재물에 대한 욕망은 그 끝이 없음이 현실이다.
그러나 재산은 죽은 후 주머니에서 십만 원과
고물시계를 팔에 차고 있었던 것 뿐이였으며,
그 이상 발견된 것이 없다.
단군이래 대한민국 지도자 중, 단 한 건의 비리도
없었던 박 대통령 말고 또 그 누가 있었던가??
대통령은 커녕, 장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제 자식 취직 자리부터 먼저 챙기는 썩어빠진 것들이,
현 정권은 개혁을 외치며, 박 대통령을 헐뜯으려 단점만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 어찌 기가 막힐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대한민국 역사 이래 누가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훌륭한 지도자였느냐??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 인사 운운하는 자들아!!
박 대통령 사후 지난 수십 년 간 그의 정적들이
박 대통령을 깎아 내리려 눈에 불을 켜고 비리를 찾아
보려 했으나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를 똑바로 세워야 된다며 친일파 청산이란
명제하에 박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취임초 부터
한일 외교 문건과 문세광 비밀 문건을 공개,
흠집 찾기에 몰두하더니,
화풀이 분풀이 욕구 해소라도 해야겠다고
박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운현각' '충의사' 현판을
다 뜯어내고 부수는 것이냐.
혈육의 정까지도 냉정하게 공과 사를 분명히 한
청렴결백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진정한 지도자!!
아~~아~~                              

【박정희】 대통령이 그립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