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을 안다는 것●
(조순박사: 서울대 교수. 한은총재. 부총리역임)
인생에는 운(運)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어떤 신비로운 힘이 나를 인도하여 오늘 여기에 오게 한 것 같고, 앞으로도 그 힘이 나의 여생(餘生)을 결정할 것이다.
인간(人間)은 자유롭게 자기 운명(運命)을 개척(開拓)한다고 하지만 그 자유(自由)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어떻게 보면 자유라는 것도 환상(幻想) 같기만 한다. 내가 태어난 것부터 나의 자유의사(自由意思)는 아니었다.
왜 하필 강원도 강릉(江陵)에서 태어났는가.
나의 부모라는 특수한 사람들.
왜 나는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는가. 경제학(經濟學)은 왜 했는가. 6.25사변이 아니었던들 내가 군대 가서
육군사관학교 교관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육사 수석 고문관의 통역을 하지 않았던들 미국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밖에 내가 지금까지 한 것, 안 한 것 모두가 겉으로는
나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졌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이 아닌 것 같다.
좋든 싫든 다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인도(引導)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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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陽明의 시에“하늘의 판정(判定)에 의한 것이지,
사람의 꾀에 의한 것이 아니다.”(憑天判下非人謀)라는 구절이 있다.
그는 일세의 대유(大儒)였고, 난리를 평정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인물이었지만 그게 다 운명(運命)이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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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현대 회장(會長)의 업적을 칭송하지 않을 사람은 드믈 것이다. 그분의 엄청난 노력, 결단(決斷), 능력(能力),
모두가 신화(神話)와 같다.
무엇이 정 회장으로 하여금 그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가?
Adam Smith에 의하면
정 회장(會長) 같은 분의 업적은 ‘자연(自然)의 기만(欺瞞)’(nature's deceit)의 결과이다.
자연은 탁월한 능력(能力)을 타고난 사람을 골라서
여러 가지 욕망(慾望)을 안겨줌으로써 그에게 힘겨운 업적을 남기도록 유도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 노력의 결과를 향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Adam Smith에 의하면
정 회장(會長)은‘자연(自然)의 기만(欺瞞)’에 걸린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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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가 말한 다음 같은 말이 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使命)을 주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窮乏)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어 어지럽게 한다.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모난 성품을 인내(忍耐)로서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 하도록
그 성품과 역량(力量)을 키워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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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논하자면 주역(周易)을 빼놓을 수 없다. 정이천(程伊川)이 지적한대로 주역에는 네 가지 용도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점(占)을 치는 일이다.
사람의 운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전복위화(轉福爲禍)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주역의 운명관.
좋은 운(運)도 잘못 받으면 나쁘게 될 수도 있고,
나쁜 운(運)도 좋게 받으면 좋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자기의 운을 결정한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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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는“세상 모든 것이 운명(運命)이 아닌 것이 없지만 순(順)하게 그 바른 것을 받아야 한다(莫非命也 順受其正).”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지나고 보면 운명(運命)이 아닌 것이 없지만 운명에는 바른 것이 있고 바르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 가운데서 바른 것을 받도록 하라. 바르지 않은 운명을 받는 것은 운명을 아는 자(知命者)가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孟子)가 말한 ‘바른 운명(運命)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바른 마음을 가지고 최선(最善)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정말로 바른 마음으로, 최선(最善)을 다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야 운명(運命)을 알고 바른 운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운명을 알아야 세상을 달관(達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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