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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일본과의 결산

일본과의 결산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금전적 비금전적 손익계산서가 존재한다. 

그 아이템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귀속재산’(Vested Property)이다. 
귀속재산이라는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국민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귀속재산 (Vested Property)

2015년 10월,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는 ‘귀속재산 연구-식민지 유산과 한국경제의 진로-’ 라는 700여 쪽의 저서를 냈다. 
그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은 그들이 36년 동안 조선 땅에 건설해 놓은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추방당했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재산 모두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갔다. 
미군은 퇴각하는 일본인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폐까지도 압수했다. 

북조선에는 29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남한에는 23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이 횡재로 굴러왔다. 
남한에 쌓인 23억 달러어치의 일본재산은 미군정이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는 당시 남한경제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귀속자산이 없었다면 당시 한국경제에는 실체가 없었다. 

이로부터 만 20년 후인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공여 받은 액수는 3억 달러, 위의 23억 달러는 이 3억 달러의 약 8배였다. 
이 엄청난 자산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한국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씨 조선 518년을 대대로 통치해온 27명의 왕들이 이룩해 놓은 자산이 무엇이었는가를. 

도로를 닦아놓았는가, 
철로를 건설해 놓았는가?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는가? 
한글 단어장 하나 마련해 놓았는가? 

그 27명의 왕들은 길을 넓게 닦으면 오랑캐가 침입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던 길도 없앴다. 
선조는 임진왜란 내내 중국으로 망명할 생각만 했다.
27명의 왕들은 아래 사진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노예들의 골만 빼먹었다. 

조선왕들이 518년 동안 쌓아올린 재산은 초가집, 도로 없는 서울, 똥오줌으로 수놓은 소로, 민둥산, 미신, 거짓과 음모를 일삼는 미개인들이 공존하는 가두리 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36년 동안에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쌓아올렸다. 
이 엄청난 재산을 미국이 빼앗아 보관했다가 대한민국 건국자 이승만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미국은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땅도 빼앗아 주었고, 조선인들로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빼앗아 주었다. 
이 두 가지 구체적 선물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일본 모두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이 묻혀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었고, 그 배은망덕의 소치는 순전히 빨갱이들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미군정은 처음, 사유재산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매우 다행하게도 곧 이어 사유재산까지도 압류했다(군정법령 제8호, 1947.10.6.제정). 
공적-사적 재산 목록이 170,605건, 이승만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은 고생을 했다. 
엄청난 관리 인력과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에 인수되지 않고 농림부 등에 등록되어 있던 또 다른 일본인 재산이 121,304건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한 총 재산은 291,909건이었다.

미국은 어느 정도로 일본인을 발가벗겨 보냈는가?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극도로 제한했다. 
민간인은 1,000엔, 군장교는 500엔, 사병은 250엔 이상 소지할 수 없었다. 
미군은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본인의 주머니를 검열했다.

1945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5년 11월 3일에 작성한 <정보일지>(G-2 Periodic Report) 54호에 의하면 일부의 일본인들이 150엔을 주고 밀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자료들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밀항선을 타고 탈출한 일본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미국이 일본인들을 무산계급으로 만들어 겨우 몸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1945년 10월12일 부산항에서 귀환선을 기다리는 일본인들의 주머니와 짐을 미군 병사가 수색하고 있다. 
미국국립문서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 사본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그 많은 주식회사 급 기업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그 회사 직원이거나 관련이 있던 조선 사람들에 헐값으로 불하되어 오늘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오늘의 우리 대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기업들이었다. 

조선인들이 세운 업체는 ‘상회’라는 이름을 단 개인가게들이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방 이후 맨땅에 헤딩해서 창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할 것이다.

쇼와 기린맥주’는 당시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되었다.
‘삿포로 맥주’는 명성황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되었다(1998년에 하이트맥주로 상호 변경).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은 당시 직원이었다가 관리인이 된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선경직물’은 공장의 생산관리 책임자이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매매 하던 선만주단(鮮滿紬緞)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이란 이름은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직물의 ’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나가오카제과‘(永岡製菓)는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은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한국저축은행’은 정수장학회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삼호방직의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조지아 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이 되었다.
‘조선제련’이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가 해방 후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되어,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조선생명’이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되었다.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이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식품’이 해방 후에 ‘동립식품’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1985년에 ‘제일제당’에 병합되었다..

토요쿠니제과’가 해방 후에 ‘풍국제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어오다가 1956년에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되었다. ‘경기직물과 조선방직’이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하던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조선우선’이 직원이던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되었다. ‘동양방직’은 관리인이던 서정익에게 불하되었다.
‘아사히견직’은 부산공장장이었던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되었다. ‘조선주택영단’이 ‘한국주택공사’가 되었다. ‘아사노 시멘트 경성공장’이 김인득에게 불하되어 ‘벽산그룹’이 되었다.
‘경성전기-남선전기-조선전업’이 해방 후 합병되어 ‘한국전력’이 되었다.
‘가네보방직 광주공장’이 김형남,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일신방직’이 되었다.

‘동립산업’이 관리인이었던 함창희에게 불하되었고, 제일제당(현CJ)이 이를 흡수했다.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가 해방후 ‘한국미곡창고 주식회사’가 되고, 후에 ‘대한통운’이 되었다.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가 되었고, 후에 한진그룹에 편입되어 ‘한진중공업’이 되었다.

‘조선화재 해상보험’이 ‘동양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가, 지금 ‘메리츠 화재해방보험’이 되었다.
‘쥬가이’제약은 서울사무소 관리인에게 불하되어 현 ‘중외제약’이 되었다. 

이외에도 내로라하는 한국기업들은 거의가 다 일본인이 설립 운영하던 회사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조선인이 설립 운영하던 큰 기업은 김성수 집안에서 설립한 ‘경성방직’, ‘삼양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商會’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화신상회, 개성상회, 경성벽지 등이다.

일본이 팽개치고 나간 회사들을 조선인들이 이승만 정부로부터 ‘불하’란 명목으로 헐값에 인수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1961년 5.16군사혁명 후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축재자’로 몰렸다. 

일본인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겠는가? 
반면 불하받은 사람들은 어떤 ‘횡재’를 했는가? 
그래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단계에서 남조선에 두고 간 23억 달러 어치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요구했다.

해방 직후 북한을 선점한 소련은 군정을 통해 북한에 건설된 발전소, 공장 등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그것들을 건설하거나 운영해온 일본인 기술자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련군정은 만주에 주재한 ‘일본피난민단장’과 협의하여 북조선에 있던 모든 기계-설비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일본 기술자들을 북조선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들이 건설하고 애지중지 운영해오던 기계-설비들에 대한 엔지니어로서의 애착심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46년 1월 현재 총 2,158명의 기술자들을 일본으로의 즉시 귀국을 막고 북조선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스탈린은 당초 북조선에 있는 설비들을 소련으로 옮기라 명령했고, 소련군정은 중요한 기계들을 분해하여 포장한 후 소련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 직전 다시 스탈린으로부터 반출을 중단하라는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한다. 
세간에는 당시 소련이 북조선 기계들을 모두 뜯어 소련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럼 스탈린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 당시 이미 6.25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한다.
6.25 전쟁을 치르려면 북조선에서 병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자체 생산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기계-설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조선의 민둥산(1903년 서울)

조선의 산은 민둥산이었다. 
여기에 일본은 과학의 힘으로 경제성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산마다 쭉쭉 뻗어 올라간 경제목들이 들어차 있다. 
그 많은 나무들에 가지도 쳐준다. 
미국도 이렇게 한다. 
그래서 해방 당시 전국의 산에는 일본이 심은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광릉에 보존된 나무들이 바로 일본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전후방에 군부대들이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서면서 ‘후생사업’이라는 것이 활기를 띄었다. 
당시는 군대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역대 사단장들이 너도나도 덤벼들어 군 후생을 빙자해 벌목을 했다. 
거목들을 베어내 시장에 팔아 자금을 마련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 
대한민국 산이 다시 민둥산으로 변한 것이다.

이에 박정희 정부 농림장관인 장경순씨가 대통령의 명을 받고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지만 그 나무들은 일정시대의 산림처럼 경제림이 아니었다. 
포항제철 사례에서 보듯이 공업 분야에서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대대적으로 받았지만, 나무를 심는 식수계획에서는 일본기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가 장경순씨로부터 직접 들었던 이야기로는 수종선택은 토종기술에 의존했다. 
그나마 푸른 산을 푸르게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땔감의 개발이 필요했다.

1960년대, 19공탄이 산림훼손을 저지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영조시대인 1750년대에 석탄이 나무를 대체했다. 
영국이 한국을 210년 정도 앞서 간 것이다. 
이런 격차를 만들어 낸 주역은 1961년에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아니라 조선의 왕들이었다. 
일본이 가꾼 산림, 비록 금전적으로 환산은 될 수 없지만 어마어마한 자산이었음에 틀림없다. 

2019.10.20. 지만원

조국 예찬

*  조국 예찬 

고맙다,  조국아
지난 두어달 동안
밤낮으로 조국(祖國)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한글 창제 573주년에 어휘 하나를 늘려 주어 고맙다.
"조국스럽다 : 지극히 위선적이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다"

고맙다,  조국아
소 한 마리는 있어야 자식 대학 보내는 줄 알았는데
소 없이도 자식 대학 보내는 방법을 알려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미스테리에 쌓였던 
사학 탈취의 비법과
운영비리의 전말을 만민이 알게 해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온 집안이 일사분란하게 교란시키는 놀라운 위장술과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대중조작의 비법을 보여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견리사의(見利思義), 춘추전국시대  공자선생의 고리타분한 가르침을 물리치고
언의행리(言義行利),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는 약삭빠른 처세술을 알려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썪어 뭉그러지던 보수의 불꽃을 살려 주어
균형잡힌 정상국가로 만들어 준 공로가 적지 않다.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너를 위해 5만이 2백만으로  둔갑되는 것을 보며
천만 촛불혁명을 네다바이한 집단의 위선을 깨닫게 해 주어 고맙다.

고맙다,  조국아
개혁된 검찰이 정말 잘 태우는지 시험하는 첫 불쏘시개가 되길  자원해 주어 고맙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될지, 망신상인(亡身傷仁)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조국아
이젠 제발
그 더러운 입으로
민주와 정의를 언급하지 말자.

검찰개혁은 네 몫이 아니니
이젠 니나 개혁하고
니 집안이나 개혁하거라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과유불급(過猶不及),
넌 그 동안 분에 넘치게 너무 많은 것을 누려 왔구나.
이제 너 때문에  좌절하고,  울분에 젖고, 목이 쉬도록 정의로운 사회를 외쳤던
평범한 국민들의  땀과 분노에 대해 마땅히 죄값을 치를 준비를 해야지.

저 산 모퉁이에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그래,  감옥에서 푹 쉬거라. 이제 곧 눈보라치는 밤이 다가오리니...
그 동안 고마웠다.

한비자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뱀은 안개 속에 노닌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면, 용과 뱀은 지렁이나 개미와 같아지는데, 그것은 탈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구름과 안개를 타는 것도  용과 뱀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권세는  현명한 자가 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못난자가 쓰면 천하는 어지러워진다"라고 했다.

   - 2019년 10월 18일  沙川 -

홀로 웃다 ( 獨 笑 )


🌞 홀로  웃다 🌞
       ( 獨 笑 )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살림이 넉넉하여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자식이 많은 집엔 가난하여 
굶주림이 있다

達官必憃愚
(달관필창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다.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집안에 완전한 복(福)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능지)
-지극한 도(道)는 항상 쇠퇴하기 마련이다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부모가 절약하여 재산을 모으면 자식들은 방탕하고

婦慧郎必癡
(부혜낭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짓을 한다.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는날은 구름이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댄다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정약용(丁若鏞)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
위의 다산 정약용(丁若鏞)선생의 
“홀로 웃다(獨笑)” 
한시(漢詩)를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주어서 카페에 올립니다

위의 한시(漢詩)
내용은 달리 설명이 필요없이 
시(詩)내용 그대로다.

12줄의 내용이 보편적인 우리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세계사에 어떤 석학(碩學)과 견주어도 상석에
모실 분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사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
“홀로 웃다(獨笑)”
처럼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다.

18세기 초반부터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을 개혁의 인물로 
정조(正祖)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등장한다.

그러나 하늘은 조선이 행복해 지는 것을 원치 안했는지 개혁의 중요한 시기에 정조(正祖)를 하늘로 불러올렸다.

따라서 이제 막 날개를 달아 일생의 포부를 조선의 개혁에 펼치려던 정약용 선생의 날개도 꺾여 전남 강진으로 18년 유배를 간다.

필자의 개인적인 역사관이지만 오늘날 허리가 잘린 반신불수의 한반도의 불행은

*개혁을 기치를 내건 인조의 세자 소현세자
(昭顯世子)
(1612년~1645년)의 죽음과

*정조의 일찍 죽음

*고종의 무능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실패로 개혁 개방의 기회를 놓쳐 열강(列强)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남북분단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론분열(國論分裂)”이다.

일본의 명치유신
(明治維新)은 
명치왕(明治王) 때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의
막번체제(幕藩體制)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이룩한 국가변혁이다.

결국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양보를 하고 명치유신(明治維新)이 성공하여 오늘날 일본은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이 
1868년부터 1880년대에 마무리 되었으니까

정조(正祖)
(1752~1800), 
다산(1762~1836)의 생(生)이 끝날 때가 일본의 명치유신과
비슷한 시기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시작하는 때에 조선은 안동김씨 대원군 민비등의 권력다툼으로
패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산선생이 강진 유배 중에 쓴 책이 1000여권,

그중에서 “경세유표(經世遺表)”는 국정개혁의 중요한 책이다.

일본은 선진국의 깃발을 달고 대륙을 넘볼 때에 조선은 권력 다툼으로
다산을 강진으로 
귀양 보내 
“앉은뱅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람은 큰 슬픔을 당하면 슬피 운다.

울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더 큰 슬픔을 당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허허 혼자 웃는다.

다산초당
(茶山艸堂)은 단순히 강진만 바다가 넓게 펴진 아름다운 관광유적지라 생각하면 안된다.

한 인생의 포부를 짓밟힌 한맺힌 곳이다.

그렇다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할 수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도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
(廣州 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실학박물관이 있다.

여기에 다산의 생가 당호(堂號)를
“여유당(與猶堂)”
이라 했다.

다산 선생이 강진 귀양이 풀리고 바로 고향으로 가서
 “여유당(與猶堂)”
이라 당호를 붙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숨도 크게 안 쉬고”
살았다고 한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유당(與猶堂)”
은 노자(老子)
도덕경의 한 구절로

마치 코끼리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산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 시대의 위인(偉人)이 갔다.

아직도 당파의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허허허---

언제나 정신 차리려나 !
犬糞食衛이나 먹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제발 더 이상 국민 팔지 말라. 
썩은 정치인,
저급 언론사,언론인
이 땅에서 하루 속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조국 사태를 보며
오늘도 허! 허! 허! 웃는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심을 빕니다.

ㅡ옮긴 글ㅡ

Under Stand

     ☆Under Stand☆

남을 이해한다는 뜻의 영어 
"Under Stand"는  
"아래에 서 있다"라는 의미죠.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UnderStand" 이지, 결코 "OverStand"가 아니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눈 높이를 맞추면 안 됩니다.
오히려 눈 높이를 낮추어서 상대방을 올려다보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는 본래 변호사였는데,
하지만 극심한 인종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기꺼이 무장 폭력 단체의 투사가 되었죠.
그는 로벤 섬, 풀수무어 등 악명 높은 감옥에서 27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감옥안의 깊은 침묵 속에서 그는 투쟁과 대립보다는 화해와 용서가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날아주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는데, 그가 수감됐던 감옥의 교도관이었던 
"제임스 그레고리"였죠.
두 사람은 오랫동안 포옹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적대적인 관계였는데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도관은 만델라의 품위와 인격에 감동하고 그를 존경하게 됐다,
그레고리는 만델라가 주장하는 
정의를 이해했고 둘 사이에는 
우정이 싹텄고, 
그레고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만델라를 보호했고 그가 대통령이되자 교도관 직을 사임 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재판을 주도했던 "페르시 유타"를 만났을 때도 만델라는 미소를 
지으며 한때 적이었던 84세의 노인에게
"이제는 모든 일들이 과거가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만남 이후 유타가 만델라를 
덕망 높은 사람으로 묘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관대함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이 
다시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는 
진리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우리가 만일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아량을 베푼다면, 
세상의 비참함과 오해 가운데 
4분의 3은 사라질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 사회악. 
(인도의 성자 간디 무덤 비석에 새겨진 글)

* 원칙 없는 정치
* 노동 없는 부
* 양심 없는 쾌락
* 인격 없는 교육
* 도덕 없는 상업
* 인간성 없는 과학
* 희생 없는 종교

요즘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하나 하나 다시 읽어 봅니다.

문재인의 자화자찬

● 문재인의 자화자찬 : 나만큼 국민사랑 받았던 대통령 없었다. <펜앤마이크 양연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정치인》
이 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모두발언에서 “지금은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것을 가로막는 권력》의 작용은 전혀 없다. 이제 마음껏 진실을 밝힐 수 있게 됐다”며  “그러나 과연 우리가 진실을 균형있게 알리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했다.

그는 “입법, 행정, 사법의 3부에 더해 언론까지 제4부가 함께 국가를 움직여 가는데 당연히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온 데도 각각 독립된 4개 영역의 큰 기여가 있었으며 우리 언론도 그동안 많은 기여를 해줬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많은 기여를 해줘야 할 막중한 역할과 책임이 언론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언론은 입법, 행정, 사법 3부와 같은 현실적인 권력의 힘은 없지만 그러나 진실이 가장큰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정부가 출범할 때 천명했듯 조금 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나가는 역사적인 과업에 있어서도 언론인 여러분들이 끝까지 《동반자》가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요즘 여러모로 어렵습니다만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 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것이 전적으로 기자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제 모습을 잘 전해주셨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사랑받을 수 있었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소중한 동반자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판도 반대를 위한 비판, 비난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비판, 애정을 위한 비판을 달라"며 기자들을《간접적으로 압박》했다.

●네티즌들의 경악!

한편 《네티즌》들은 문 대통령인 스스로에 대해  ‘나만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티즌A : 문대통령 정신적 문제있는것 같다

한 네티즌은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인간인 것 같다. 지금도 문재앙 하야 하라고 철야 농성 수많은 
인원이 광화문 앞에서 외치고 있는데?”라고 했다.

●네티즌B : 뭘 잘해서 사랑받나? 하나만 말해주셔요..
 
또 다른 네티즌은 “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경제 외교 정치 민심 정책 뭐를 잘해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하나만 이야기해 달라. 대깨문들만 국민이냐!”라고 일갈했다.

●네티즌C : 진짜 치매네! 당장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이 밖에도 네티즌들은 “진짜 치매네. 정은이가 그러던가?  사랑한다고” “이 정도면 당장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하지 않을까? 

●네티즌D : 착각은 파도를 타고 개꿈을 펼친다

정말 나라 걱정이다” 《착각은 파도를 타고 개꿈을 펼친다》 “저만큼 국민들로부터 저주 받은 정치인 없을 것” “쳐맞는 걸 사랑으로느끼는 변태인가?” 등의 신랄한 비판도 감추지 않았다.

● 네티즌E : 《꿀먹은 벙어리기자》들에게 더욱화난다

“화나서 클릭하긴 처음이다. 거기에 참석한 《꿀먹은 벙어리》 같은 기자들에게 더 화가 난다” “이 나라의 《대표적인 언론사에 좌파인사》들 심어놓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하게 조종하고 있는 자가 바로 문재인 당신 아닌가...

●네티즌 F : 온국민들 박장대소 - 벌거벗은 상태로 거리활보하는 수치스런 임금님보고

온 국민이 ‘벌거벗은 상태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임금님’을 쳐다보면서 《박장대소》 하고 있다” 

●기타 네티즌 댓글
• 화성에서 온 인간인가. 
• 매일같이 고집불통 국민분열에다 입만 열면 《유체이탈 화법》이다.
• 언론인들은 대화하려 갔는가 밥 얻어 먹으려고 갔는가. 쓴소리가 보이지 않는다
• 언론인들 데리고 장난하나. 
• 가짜뉴스 많이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는구나. 
• 문통이 단단히 미쳤네. 
•《국민들이 바보처럼 보이나》” 등의 댓글도 나왔다.

삶의 태도

          삶의 태도

옛날 연만하신 산촌 아버지가 서울 사는 아들과 명동거리를
구경하러 갔다
바글대는 인파를 보고 저들이 저렇게 많은데 어떻게 살아가지하시는  아버지 물음에 아들은 서로서로 도와 가면서 살지요 했다
세월이 이십여년 지난후 그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어 상경했다
손주와 명동거리를 찾았다
여전히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얘야 저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지 참 용하다 하니까
손주왈 할아버지 서로서로 속여 먹고 살아가지요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무엇을 빼앗을까 궁리만하고 헤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남에게 더 배풀고 도울까 궁리를 하면서 살아간다
최소한 남에게 해는 끼치지 말아야지 하면서 산다

삶의 불만과 만족이 엇갈리는 지점이다

맘의 파동이 맞는 사람끼리 상관하고 어울리는게 삶의 재미 즐거움 자유로움이 더 할 수 있다
물리적 숫자는 1+1=2가 되지만 사람의 맘은 1+1=1이 될 수 있다
합일 일치 동화의 이치로 일이 될 수 있다

단순한 수나 무게나 부피의 배가가 향상 좋은 것이 아니다
오합지졸 중구난방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등산을 할때 혼자 갈때는 어느 산  어느 코스  어떤 속도로 어디 쯤에  얼마 쉬고 간식도 먹고 올라 갈까는 전적으로 자기 맘이다 
그러나 동행자가 한사람이라도 더해지면 이 모든 과정이나 선택에 있어서 협의 합의 동조가 있어야 한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 혼자 등산 할때와 같아 질 수 있다
그러나 등정과정과 선택마다 서로 이견을 보이고 자기주장 사욕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마찰 충돌 불화가 발생된다
즐겁고 자유로운 등산이 될 수 없다  등산 본래의 목적달성과 등산고유의 맛을 보기는 커녕 맘속에 찝찝한 찌꺼기가 남는다
등산의 부담이 두배 그 이상으로 무겁고 어려워진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상호 이해 협동 협조 배려 양보 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되는 것이다

동호회 동문회 친목회 동향회 어느 사회 단체행사시라도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전체행사를 수월하고 재미있게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누구의 수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무자격으로 지도 감독 잔소리만 해대고 남들이 수고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칭찬 한마디 없어도 시종 배려 희생적 노고를 쏟아 붙는 사람이 있다

인생관 가치관의 차이이다
이기적 이타적 삶의 태도 차이이다
소소한 생활현장에서 나타나는 함께 살아아가는 삶의 자세차이 이다
다중시설 자동문을 지날때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뒤따르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문을 탁 놓는 반면에 허스름한 차림의 사람은 뒷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둘이상 사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느 것이 좋고 나쁜가는 나만 좋은가 같이 좋은가로 판별하면 무난할 것 같다

한자 사람인자가 두획이 서로 평행하거나 한핵이 다른 획위에 군림하거나 두획이
한점에서 위로 서로 다른 방항으로 뻗지않고 서로 똑같지 않더라도 지지하는 형상에서 사람과 사람의 도리를 배울 수 있다

           - - 19.10,27. 청 고 - -

ㅡ경북고 카톡에서ㅡ

국립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서거 40주년 추도사

김문수 <민족중흥회ㆍ박정희기념재단 주최  국립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서거 40주년 추도사>

40년 전 오늘, 당신께서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저희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날 저는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며 대학에서 두 번 제적된 후, 공장에 위장 취업해 있었습니다.

한일공업 노동조합 분회장으로서, 출근길 지하철 바닥에 뿌려지는, “박정희대통령 유고” 호외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유신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되겠구나”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신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로 무기정학 되었습니다.

교련반대, 유신반대로 대학을 두 번 쫓겨났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히틀러의 아우토반처럼 독재 강화의 수단이라는 운동권 선배들의 가르침대로 저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36년 뒤 제가 도지사가 되어서야, 경기북부 전방지역 발전을 위해서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적임을 깨닫고, 당신의 선견지명에 반대했던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마이카시대를 외치던 당신을 향해, 히틀러 나찌 독재의 국민차 ‘폭스바겐’식 선동이라며 대학교수들과 우리 대학생들은 반대했지요.

우리나라는 자동차 제조기술도, 자본도, 시장도 없고, 후진국에서 그 어떤 나라도 자동차를 성공시킨 사례가 없다며, 조목조목 근거를 대며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당신은 우리나라를 세계 5대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제철, 자동차, 조선, 중화학, 전자, 방위산업 모든 부문에서 당신은 최고의 산업혁명가였습니다.

포항, 울산, 구미, 창원, 안산, 신도시를 건설한 당신은 최고의 도시계획가였습니다.

박정희신도시는 첨단산업 뿐만 아니라, 대학, 공원, 주거 모두 역사상 최고 수준의 복합신도시를 최단시간에 만들었습니다.

고속도로, 지하철, 항만, 공항 건설, 당신은 최고의 국토건설자였습니다.

당신의 원대한 구상과 최첨단의 마스터 플랜,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은 세계 역사상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습니다.

제가 늘 꿈꾸던 네 가지를, 제가 가장 미워했던 당신께서는 모두 이루어 주셨습니다.

첫째, 배 부르게 먹는 꿈입니다.

농지개량, 통일벼생산, 비료공장건설, 댐건설, 간척지개발 등 농업혁명으로 오천년 배고픔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둘째, 건강과 장수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살아왔던 저희들에게 지금 같은 의료혁명은 꿈만 같습니다.

당신께서 추진하셨던 의료보험제도와 의료기술 수준은 미국인조차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셋째, 20대까지도 전기 없이 호롱불 켜고 살았던 저희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당신의 원자력발전 덕택입니다.

넷째, 항상 물이 부족하여, 먹을 물 받으러 양동이를 지고 줄 서서 기다리던 저희들이었습니다.

농업용수도, 공업용수도 모두 부족한 물 부족국가에서 당신께서는 댐을 건설하고, 산림녹화를 하고, 수도시설을 발전시켜, 아무리 가물 때도 주방에서, 화장실에서, 맑은 물을 펑펑 쓸 수 있게 되었다니, 꿈만 같습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따님이자 저의 동년배인 박근혜 대통령은 촛불혁명 구호아래 마녀사냥으로 탄핵되고 구속되어 32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지금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반공을 국시의 첫 번째로 삼으셨던 당신이 떠나신 후 40년 세월동안 민주화가 도를 넘어, 지금 대한민국은 종북 주사파가 집권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적화통일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빨갱이•기생충들이 나라를 벌겋게 물들이고, 한강의 기적을 허물어 뜨리고 있습니다.

통혁당 주범 무기수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평창올림픽에서 김여정과 세계 정상들을 향해 커밍 아웃하는 김정은의 대변인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정은을 칭송하며 위인으로 맞이하는 환영단이 생겼습니다.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며, 반일 죽창투쟁을 선동하는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신께서 이룩하신 한강의 기적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는 자가, 당신을 친미•친일 반공 수구 적폐세력으로 공격하며, 역사를 뒤집어엎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무상복지를 약속하며, 평화경제를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끼리는 있어도, 주적은 없다고 가르칩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로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주사파 집권자는 이제 평화는 있어도 전쟁은 없어졌다고 거짓선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국빈방문 중에 트럼프 참수대회가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미군철수” 프랑카드를 미국대사관 앞에 몇 년 째 걸어 두어도 철거하지도, 조사하지도 않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싸우면서 일하자!”

당신의 구호입니다.

“국방과 경제”의 근본정신이요, 기본원리입니다.

소련•중공•북한 공산국가와 대치하는 최전방 대한민국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당신의 구호가 절실한 오늘입니다.

“우리민족끼리 싸우지 말고 나눠 먹자!”

종북 주사파 문재인의 “평화경제”구호입니다.

첫째, “우리민족끼리” 김정은과 백두산 천지에서, 두손 마주잡고 파안대소합니다.

김정은은 갑자기 싸움 상대가 아니라, "우리민족끼리" 퍼주기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정은의 핵무기는 폐기 대상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자와 일제 침략세력에 맞서는 "우리민족"의 보검이랍니다.

둘째, 문재인은 평양까지 김정은을 찾아가서 9.19평양군사합의서로 NLL, DMZ, 정찰비행까지 김정은에게 다 내주어버렸습니다.

셋째, 경제와 일자리의 주축인 기업을 “적폐세력”으로 몰아 다 죽이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인 민주노총의 강성•만성 파업·시위로 기업은 문을 닫고, 자본해외도피가 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넷째, 당신을 따라 “싸우면서 일하자!”고 하면, “시대착오 수구꼴통” 취급당하는 세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일하지 않고 잘 사는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없음을 절감하신 당신이 외치던 “싸우면서 일하자!”는 외침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하면 된다”던 당신을 향하여, “할 수 없다”고 침을 뱉던 제가, 이제는 당신의 무덤에 꽃을 바칩니다.

당신의 꿈은 식민지시대의 배고픔과 절망에서 자라났지만, 역사를 뛰어넘었고, 혁명적이었으며, 세계적이었습니다.

당신의 업적은 당신의 비운을 뛰어넘어, 대한민국과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당신의 무덤에 침을 뱉는 그 어떤 자도, 당신이 이룬 한강의 기적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위대한 혁명가시여!

당신의 따님, 우리가 구하겠습니다.

당신의 업적,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당신의 대한민국, 우리가 태극기 자유통일 이루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2019년 10월 26일 

국립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40주기 추도식
김문수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