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를 바로 알자♧
우리나라의 나라꽃인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중국의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산해경은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지리와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서 백익(伯益)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백익은 요순의 대를 이어 하(夏)나라를 세웠던 우(禹)임금이 재위한 기원 전 2183~2175년 사이에 활동했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단군조선에 해당하는 시기에 활동한 사람이다.
그가 지은 산해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북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는데 그들은 항상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고 다니며 짐승을 기르고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리며 겸양(謙讓)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싫어하는 겸허의 덕성을 지니고 있다. 그 곳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고대 조선은 군자의 나라로 이름 높았던 국가라는 사실과 그때부터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무궁화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커스(Hibiscus syriacus)이지만 옛날에는 알테아 로세아(Althea rosea)로 불리기도 했다. 알테아(Althea)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치료하다”라는 뜻인데 그 만큼 옛날부터 무궁화의 뿌리와 껍질과 꽃은 위경련, 복통, 설사, 등에 효능이 탁월한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무궁화의 꽃과 씨와 껍질과 뿌리는 모두 소중한 약재로 쓰이고 있고 잎은 차의 대용으로 일품이며 나무껍질의 섬유는 고급종이의 원료로 쓰인다. 무궁화는 그만큼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실속 있는 꽃나무이다.
이런 무궁화는 왜 나라꽃이 되었을까?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하자고 법으로 정한 일도 없고 나라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임금도 없다. 그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 하면서 나라꽃으로 정해졌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무궁화를 뜰에 심는 것조차 일제관리들이 시비를 걸었고 여인들이 활짝 핀 무궁화로 뒤덮인 한반도를 수놓아 벽에 거는 것은 거의 반역죄처럼 여겨졌다.
무궁화에 대한 그런 박해가 계속되자 한때 진달래를 나라꽃으로 정하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이른 봄 화려하게 피는 꽃으로 국민들의 가슴속에 새봄의 상큼하고 화사한 기운을 듬뿍 안겨주는 꽃이다. 이에 반해 무궁화는 꽃나무모양이 꾀죄죄하다는 둥, 봄에 싹이 너무 늦게 튼다는 둥, 벌레가 많이 붙는다는 둥, 꽃이 겨우 하루밖에 못 간다는 둥, 잎이 보잘 것 없다는 둥,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벌레가 많이 붙는다는 말은 그만큼 영양가가 높고 맛있는 꽃이라는 말이 된다. 파먹으면 죽는 독초에 벌레가 붙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궁화는 일제 때 나라의 상징으로 깊이 사랑받았던 꽃일 뿐만 아니라 가꾸어 보면 볼수록 특유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정원수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뉴욕식물원의 본관 건물 앞뜰에는 여러 그루의 커다란 무궁화나무가 있는데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광경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무궁화는 아침태양과 함께 피어나서 저녁태양과 함께 지는 태양을 닮은 꽃이다. 저녁마다 사라진 해가 아침마다 다시 떠오르듯 저녁마다 사라진 꽃은 아침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그러므로 아침에 보이는 꽃은 아무리 많아도 모두 그날 새벽에 갓 핀 꽃들이다. 이렇게 날마다 피고 지는 무궁화는 덧없이 짧은 인생살이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변화무상한 온갖 날씨를 이기고 계속 피는 꽃임을 감안할 때 온갖 풍상을 이기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간사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법으로 정해진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자리매김 된 이면에는 이렇게 무궁한 세월에 걸쳐 날마다 뜨고 지는 태양처럼 날마다 피고지면서도 그 쓰임새 또한 무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라꽃이자 참한회의 꽃인 무궁화를 올바로 알고 올바로 지켜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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