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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5일 목요일

무궁화를 바로 알자

   ♧무궁화를 바로 알자♧

우리나라의 나라꽃인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중국의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산해경은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지리와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서 백익(伯益)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백익은 요순의 대를 이어 하(夏)나라를 세웠던 우(禹)임금이 재위한 기원 전 2183~2175년 사이에 활동했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단군조선에 해당하는 시기에 활동한 사람이다.

그가 지은 산해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북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는데 그들은 항상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고 다니며 짐승을 기르고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리며 겸양(謙讓)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싫어하는 겸허의 덕성을 지니고 있다. 그 곳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고대 조선은 군자의 나라로 이름 높았던 국가라는 사실과 그때부터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무궁화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커스(Hibiscus syriacus)이지만 옛날에는 알테아 로세아(Althea rosea)로 불리기도 했다. 알테아(Althea)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치료하다”라는 뜻인데 그 만큼 옛날부터 무궁화의 뿌리와 껍질과 꽃은 위경련, 복통, 설사, 등에 효능이 탁월한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무궁화의 꽃과 씨와 껍질과 뿌리는 모두 소중한 약재로 쓰이고 있고 잎은 차의 대용으로 일품이며 나무껍질의 섬유는 고급종이의 원료로 쓰인다. 무궁화는 그만큼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실속 있는 꽃나무이다.

이런 무궁화는 왜 나라꽃이 되었을까?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하자고 법으로 정한 일도 없고 나라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임금도 없다. 그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 하면서 나라꽃으로 정해졌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무궁화를 뜰에 심는 것조차 일제관리들이 시비를 걸었고 여인들이 활짝 핀 무궁화로 뒤덮인 한반도를 수놓아 벽에 거는 것은 거의 반역죄처럼 여겨졌다.

무궁화에 대한 그런 박해가 계속되자 한때 진달래를 나라꽃으로 정하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이른 봄 화려하게 피는 꽃으로 국민들의 가슴속에 새봄의 상큼하고 화사한 기운을 듬뿍 안겨주는 꽃이다. 이에 반해 무궁화는 꽃나무모양이 꾀죄죄하다는 둥, 봄에 싹이 너무 늦게 튼다는 둥, 벌레가 많이 붙는다는 둥, 꽃이 겨우 하루밖에 못 간다는 둥, 잎이 보잘 것 없다는 둥,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벌레가 많이 붙는다는 말은 그만큼 영양가가 높고 맛있는 꽃이라는 말이 된다. 파먹으면 죽는 독초에 벌레가 붙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궁화는 일제 때 나라의 상징으로 깊이 사랑받았던 꽃일 뿐만 아니라 가꾸어 보면 볼수록 특유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정원수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뉴욕식물원의 본관 건물 앞뜰에는 여러 그루의 커다란 무궁화나무가 있는데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광경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무궁화는 아침태양과 함께 피어나서 저녁태양과 함께 지는 태양을 닮은 꽃이다. 저녁마다 사라진 해가 아침마다 다시 떠오르듯 저녁마다 사라진 꽃은 아침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그러므로 아침에 보이는 꽃은 아무리 많아도 모두 그날 새벽에 갓 핀 꽃들이다. 이렇게 날마다 피고 지는 무궁화는 덧없이 짧은 인생살이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변화무상한 온갖 날씨를 이기고 계속 피는 꽃임을 감안할 때 온갖 풍상을 이기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간사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법으로 정해진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자리매김 된 이면에는 이렇게 무궁한 세월에 걸쳐 날마다 뜨고 지는 태양처럼 날마다 피고지면서도 그 쓰임새 또한 무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라꽃이자 참한회의 꽃인 무궁화를 올바로 알고 올바로 지켜가자.

2019년 8월 13일 화요일

이중분열적접근


*이중분열적접근(schizophrenic approach)*

나는 경제학자가 아닌 내과의사이다.
그런데 경제학용어에 우리가 쓰는 의학용어인 schizophrenia(정신분열증)가 경제학 용어에 사용하고 있다.
단지 번역어는 정신분열이 아닌 이중분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야기는 문제인대통령의 여식이 반일에 가장 큰 정치적 견해를 보여주지만 여식인 문DH양이  일본에 대표적인 극우대학인 국사관대학에 유학한것이 밝혀졌고 또 태국으로 이민을 간 사실이 또한 사실로 밝혀졌다.
본인은 줄기차게 반일을 외치면서 자식은 대표적 조선침략 옹호세력이 운영하는 대학에 유학한것이 바로 이중분열이라는것이다.
대통령의 딸이 유학하는것은 자식의 일이라고 변명할것이다.
물론 자식의 사생활이라 말할수 있지만 딸도 살지 않는 이나라는 당신의 선거공약대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고 있는것이 확실하다.

우린 다 기억하고있다.
유력한 대권후보인 이회창씨가 두아들이 병역면제 사실로 밝혀지면서 두번의 대권도전에 고배를 마셨다.
그만큼 한나라의 수장한테는 자신의 자식들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것이다.
그때 이회창씨를 공격했던 세력이 오늘의 여당세력이다.
대표적인 공격인사로 박원순서울시장은 저체중으로 빠진 이회창씨 아들을 지칭하여 "공개수배 사람인가?  귀신인가? 어찌 이런체중으로 살수 있는가"
난리를 쳤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면제 논란에서는 공개검증 하지않고 비공개로 몰래검증하고 영국으로 유학가서 아직도 법원의 출두요구를 불응하고 아들의 소재를 모른다고 얼버무라고있다.
이또한 schizophrenia approach라 말할수 있다.

그뿐아니다.
자사고 폐지를 그렇게 외치고 있는 현정권의 조국민정수석과 자사고폐지 주업무관장인 서울시조희연교육감의 자녀들이 모두 자사고 출신이고 반미를 그렇게 외치는 임종석전비서실장. 박영선중기장관. 강경화외교부장관. 문정인특보. 문제인대통령아들. 이해찬여당대표.정동영전통일부장관 등등등....모두 미국유학중이거나 유학을 마쳤다.
이또한 이중분열이라는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정신을 차리고 저들을 지켜봐야 한다.
그냥 단순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집단이 아니라 정신이 둘로 나누어 공적입장에서는 남한테 단호하면서 개인적입장에서는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을 보여주는 저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본한테 다시는 지지 않겠습니다.
이날 집권당대표인 이해찬더불어민주당대표는 그날저녁에 일식집에서 사케를 마시면서 일본을 이깁시다라고 건배를 외치는 이중분열적접근이 그들인것이다.

어쩌다 이런자들한테 지배를 받는가!!!

플라톤이 한말중에 "정치에 무관심하면 미개한자들한테 지배받는다 "
정신좀 차리자.

이놈들 모두 정신병자 입니다.

대통령과 밥솥!

☆대통령과 밥솥!☆

*'이승만'!
: 미국서 돈 빌려 가마솥을 장만했으나 밥 지을 쌀이 없었고,

*'박정희'!
: 어렵게 농사 지어 밥을 해 놓았으나 정작 본인은 맛도 못 보고 세상 떠났고,

*'최규하'!
: 그 밥 먹으려고 솥뚜껑 열다가 손만 데였고,

*'전두환'!
: 그 밥을 뺏어 '순자'랑 일가친척 불러다가 다 나누어 먹었고,

*'노태우'!
: 남은 게 누룽지 밖에 없어서 물 부어 혼자 다 퍼먹었고,

*'김영삼'!
: 그래도 남은 게 있을까봐 박박 긁다가 솥에 구멍이 나자 엿 바꿔 먹었고,

*'김대중'!
: 빈 손으로 시작하여 국민이 모아준 금과 신용카드 빚으로 미국(IMF)에서 전기밥솥 하나 사왔고,

*'노무현'!
: 전기코드 잘못 꽂아 밥솥을 몽땅 태워 버리고는 코드가 안맞는다고 늘 불평을 했고,

*'이명박'!
: 밥 짓기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고장난 전기밥솥을 고칠 줄 알았더니 코드를 어디에 꽂을 줄 몰라 동분서주 땀만 흘리고,

*'박근혜'!
: '최순실'이라는 식모한테 밥솥을 통채로 맏겨 버렸고,

*'문재인'!
: '김정은'이에게 밥솥을 아예 줄 모양, 얼마전에는 '현송월'이란년이 대신 밥솥보러 왔다가 갔거든...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요약)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요약)💝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저자 소노 아야코는 1931년 생이며, 이 저자는 나이 40세가 되던해 부터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들을 메모형식으로 기록하여 계로록(戒老錄)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일본에서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발췌한 내용을 보면

1.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더 엄격해져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귀찮아도 많이 걷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2.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은 노인에게는 공통의 운명이자 최대의 고통일 것이다.
매일 함께 놀아주거나 말동무를 해 줄 사람을 늘 곁에 둘 수는 없다. 목표를 설정해서 노후에 즐거움을 주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3.마음에도 없는 말을 거짓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됐어"라고 사양하면 젊은 세대는 주지 않는다. "나도 먹고 싶은데 하나씩 돌아가나?" 라고 말 해야 한다.

4.같은 연배끼리 사귀는 것이 노후를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노인에 있어서 정말로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는 상대는 노인뿐이다.

5.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얻고 싶으면 댓가를지불해야 한다.

6.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이가 들면
친구도 한사람 한사람 줄어 든다.
아무도 없어도 어느날 낯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할 수 있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7.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천박한 생각이다.
돈은 노후에 중요하지만 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세상을 너무 황량하고 냉정하게 만든다.

8.노인들은 어떠한 일에도 감사의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훈훈한 노후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중의 하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란 없다.

9.노인들은 새로운 기계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혀야 한다.

10.노인들은 몸가짐과 차림새를 단정히 해야 한다.
체력이 떨어지고 건강이 약화되면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세가 흐트러진다.

11.노인들은 매일 적당한 운동을 일과로 해야 한다.
몸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12.여행은 많이 할수록 좋다. 여행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디서 죽든 마찬가지이다. 고향에서 죽는다해서 무엇이 좋은가? 자필의 화장승낙서만 휴대하고 다니면 된다.

13.관혼상제, 병문안 등의 외출은 일정 시기부터 결례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부터 기도하는 것이다.

14.재미있는 인생을 보내었으므로,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재를 해 둔다.

15.유언장 등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 둔다.
사후에 유산을 둘러싸고 남은 가족들이 다투는 것보다 비참한 일은 없다.

16.죽음은 두려운 것이지만 죽는 것은 한 번 뿐인 것이고, 대부분의 병은 잘 낫지 않는다.
병을 친구로 삼는다.

17.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자연스레 주어진 늙음의 모습에 저항할 필요는 없다.

18.혈육 이외에 끝까지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죽는 날까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20.행복한 일생도 불행한 일생도 일장춘몽이다.

21.노년의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과의 화해이다.

사랑이 깃든 거짓말


[오늘의 묵상]

<..사랑이 깃든 거짓말..◇

왕이 한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신하 두 사람이 죄인을 감옥으로 호송했습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죄수는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못된 왕아! 지옥 불구덩이에 빠져 평생 허우적거려라."

이때 한 신하가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이 보시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죄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무슨 말인 듯 못하겠소!"

신하들이 돌아오자 왕이 물었습니다.
"그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던가?"

그때 죄수의 말을 가로막던 착한 심성의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예!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폐하를 용서해 달라고 신께 기도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 죄수를 살려주라고 명하려 했습니다.

그때 다른 신하가 말했습니다.
"폐하! 아닙니다. 그 죄수는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폐하를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신하를 나무랐습니다.
"네가 하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나는 저 사람의 말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폐하, 어째서 진실을 마다하고 거짓말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십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비록 거짓일지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네 말에는 사람을 미워하는 악의가 있구나.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분란을 일으키는 진실보다 나은 법이니라."

왕은 결국, 착한 신하의 말에 탄복하여 죄수의 목숨을 살려주었습니다.

영국 속담에, 거짓말에도 새빨간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속이려는 나쁜 의도가 숨어 있고, 하얀 거짓말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 위해 좋은 의도로 사람을 살리는 선한 거짓말입니다.

둘 다 분명히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만, 마음은 선과 악이 갈리는 극과 극의 거짓말입니다.

가끔은 악의에 찬 진실보다도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깃든 말, 아름다운 말은 말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ㅔ옮긴 글)

행복한 사람

[ 5分 冥想 ]   🌜Encore🌛

<< 행복한 사람 >>

세 자녀의 운동화도 
사줄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고 세탁기를 판다는 광고를 보고 
판다는 집을 찾아 갔습니다.   
 
그 집은 
크고 좋은 집이었는데 
집안에 있는 최고급 가구와 
주방 시설들을 보면서 
그는 마음이 무척 울적했습니다.  
 
그는 
세탁기를 내어 나오면서
주인 내외와 
짧은 얘기를 주고 받게 되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이렇게 중고 세탁기를 구입하게 되었으며,
두 아들이 얼마나 개구장이인지 
신발이 남아나질 않고 금방 닳아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부인이 
고개를 숙이면서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순간 
그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나 몹시 당황했고 
그 때 그 부인의 남편이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딸 하나가 있지요.   
 
그런데 
딸은 이 세상에 태어나 
12년이 지난 지금껏 
단 한발자국도 걸어 본적이 없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제 아내가 저렇게 
슬픔에 못 이겨 울고 있네요.”  
 
집에 돌아온 그는 
현관에 놓여있는 아이들의 
낡은 운동화를 
물끄러미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 꿇고 자신이 불평했던 것에 대한  
 
회개와 
아이들의 건강함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달팽이는 
빨리 달리는 노루를 부러워하지 않고,
바다에서 느긋하게 유영하는 해파리는 하늘에서 빠르게 비상하는 종달새의 날갯짓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도 않고, 
미래에 있지도 않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훔쳐올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만,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설 수만 있다면,
들을 수만 있다면, 
말할 수만 있다면, 
볼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자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 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삶, 
내 인생, 
나...   
 
-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2019년 8월 10일 토요일

라면 이야기

     🌹 라면 이야기🌷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태어났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아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봅니다.

전 사장은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전 사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기술을 들여옵니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 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 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 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 씨를찾아갑니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집니다.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 했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전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말합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무상으로 제공하고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5.000 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 주었다고합니다

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제작의 전 공정을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더랍니다.

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줍니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 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가격이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저렴한 가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오늘도 고마움을 잊지 않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애국자의
덕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진입하여 배고픔을 겨우 벗어났는데 지도자 잘 못 뽑아서  나라가 풍전등화 직전입니다
우리 후세대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