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도 길이다 - 감태준
까마득히 높은 절벽과 처음 맞닥뜨렸을 때
파도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백사장 놓치고
유채밭 옆 갯고랑도 놓친 파도가
애 터지게 절벽을 밀어붙인다.
절벽을 넘지 않으면
물살 드센 바다밖에 돌아갈 데 없는 생이라.
절망하고 절망하면서도 남은 절망으로
몸을 세우는 억척.
길지 않은 천명에
머뭇댈 틈 있는가.
다치고 부서지고 짐승처럼 우는
파란도 길이다.
절벽 너머 세상은
못 가는 곳이 아니라 안 가본 곳이라고,
백사장에 행장 풀 순서 아니라면
살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한 번 더, 한 번 더 절벽을 밀어붙인다.
옆에서 폐지 리어카 끄는 꼬부랑 노파도
기를 쓰고 절벽을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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